양윤준
인제의대 상계백병원 가정의학과
매년 새로운 이름, 새로운 모습으로 유행하는 독감, 그렇기에 예방주사도
바뀔 수밖에 없다. 계란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독감 주사를 맞으면 안된다.
어떤 사람이 꼭 맞아야 하나.
지난 가을에 한 젊은 가장이 부인, 아들, 딸 가족 모두를 진료실에 데리고
왔다. 가족을 대표해서 그 가장이 한말은 가족 모두에게 독감예방주사를 놓아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집안은 겨울철만 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감기에 걸리기 때문에 미리 예방을 해야겠다는 얘기였다. 다른 한 아주머니는
자신의 아이가 미리 독감예방주사를 맞았는데 왜 감기에 걸리는냐고 필자에게
따지듯이 물은 적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독감예방주사는 노인이나 오래도록 심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 등 일부에게는 필요하지만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불필요하다. 또 독감은
일반적인 감기 바이러스와는 다른 인플루엔자라는 균에 의해 생기므로
독감예방주사를 맞더라도 감기를 예방할 수는 없다.
18세기말 제너에 의해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천연두는 1979년 전세계에서 사라졌으며, 이 외에도 상당수의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병균들 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함으로써
예방접종을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인류에 대항하고 있다. 아마 인류와
전염병과의 싸움은 끝이 없을 것이다.
독감균은 전염력이 강하여 전세계로 급속히 퍼지며 신체가 약한 사람에게는
심각한 증상을 일으킨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독감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심혈관계나 폐의 질환을 만성적으로 앓고 있는 성인 또는 소아
만성적인 질환으로 입원중이거나 요양소에 수용중인 사람
65세 이상의 노인
당뇨 등 대사이상질환을 가진 환자
신부전 환자
면역억제 상태의 환자
하지만 건강하고 젊은 사람에게는 며칠 앓다가 마는 몸살감기에 불과하므로
굳이 예방접종을 맞을 필요가 없다. 우리 나라에서 독감은 보통 건조하고 추운
11월 말에서 다음 해 4월까지 발생하는데, 2월과 3월에 가장 발생빈도가 높다.
최근에 사용되는 독감예방접종은 독감균을 특수한 물질로 처리하여 일부
성분만을 추출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 몸 안에 들어오면 질병을 일으키지는
못하는 대신 마치 독감을 앓는 것처럼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그런데 독감균은 거의 매년 자신의 옷을 바꿔입어 모습을 바꾸기 때문에(이를
항원변이라 한다). 바뀐 모습에 맞는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만약 적절한
예방접종을 하지 못하면 홍콩독감, 소련독감 들과 같이 세계적인 독감유행이
생긴다. 따라서 독감예방주사는 한번 맞으면 그 보건기구에서는 매년 새로
유행될 독감균을 예상하여 새로운 성분의 예방주사를 개발하고 있다.
예방접종을 맞으면 가벼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 주사맞은 자리가
아프거나 가려울 수 있고 열이 나거나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6개월 미만의
어린 아이에게는 부작용이 심하기 때문에 주사를 맞히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다행히 노인에서는 심각한 부작용이 드물다. 또 독감예방주사는 계란을
이용하여 만들기 때문에 계란에 과민한 사람에게는 심각한 알러지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계란에 과민한 사람은 예방주사를 맞지 말아야 한다.
독감예방주사는 임산부나 태아에게 아무런 해가없으며 산모가 독감에 걸리면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만성질환이 있는 산모는 임신 4개월 이
언제부터 다시 나올거냐는 상담소 동료들의 채근에 두 돌이 지날 무렵,
아이를 집 근처 놀이방에 맡기려고 찾아가 보았지만, 13평 좁은 공간에서
보모 한 명이 열너뎃 명의 아이를 맡아서 키우느라 큰 아이 작은 아이 할
것 없이 뒤엉켜 노는 것을 보니 도저히 맡길 마음이 나지 않았다. 다른
곳을 찾아보았지만 형편은 마찬가지였다. 잠깐씩의 외출 시간을 제외하곤,
온종일 좁은 방에 갇혀 있어야 하고 간식을 과자로 대신해야 했다. 탁아
후진국의 실상을 새삼 확인하고서, '다들 놀이방에 맡기고 직장 다니는데
왜 당신만 별나게 그래?'라는 남편의 핀잔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계속
아이키우기를 계속 고집했다.
그리고 나서 얼마 뒤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공부를 하겠다며,
유학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결혼 전부터 무료로 하던 노동
상담소 대신 생활비를 위해 직장을 찾아나서지 않으면 안 될 처지였다.
그러나 그 때도 나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대신 싫다는 아이 고모에게
사정사정해서 아이를 잠깐씩 맡기고 학생들 과외 지도하는 것으로 겨우
생활비를 충당했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생각은 어느 새 조금씩 보수화되어갔고
사회 활동에서 큰 보람을 찾았던 내게 민근이는 더 큰 보람으로 자리잡아
갔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갈등도 없이 아이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지내 온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 연연해 하면서 매달려 있는 내게 '너 참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시댁식구들뿐인 것 같다.
너무 활동적이라 걱정스럽던 며느리가 얌전하게 들어앉아 아이들을 키워
주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싶으신 모양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여자도 능력을 키워서 자기 일을 가져야 된다'고 늘 말씀하시던 친정
부모님들의 마음은 다르시다. 힘들게 공부시켜 서울대까지 보내 놨더니
아이에게 매달려 아무 일도 못하고 있는 내가 한심스러우신지, 남편처럼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라고 성화시다. 친구들의 비판은 이보다 더
만만치가 않다. '너 예전에는 누구보다 투철한 여권론자였잖니? 그런 애가
왜 이렇게 멍청해졌니?'라며 기회있을 때마다 한 마디씩 하며 사람
주눅들게 만들곤 한다. 그럴 때면 '너는 시어머니가 애를 키워 주니까
그런 말 할 수 있는거야, 믿고 맡길 만한 육아시설이 어디 한 군데가
있니?'라면서 슬그머니 뒷꽁무니를 뻬 본다. 여기에 놀이터에서 만나는
동네 아줌마들까지 한 몫 거든다. '민근이 엄마 학교 어디 나왔어? 어휴
서울대까지 나와서 아깝게 집에서 애나 키우고 있어? 그러니 여자 공부
잘하는 거 소용없다니까! 공부는 안 하고 죽자고 놀다가 시집오나, 죽도록
공부한 사람이나 집에서 살림하고 애 키우는 건 마찬가지 아니야?'라고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에 오를 때면 뭐라고 할 말이 없어진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론'의 산증인이 되는 것 같아서...
그러나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내가 한 번씩 열병까지 앓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여성으로서의 삶이 가정과 육아에게 전적으로 보람을 얻을
수는 없다는 확신을 나 자신이 누구보다도 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입학하던 1980년도 봄의 대학은 민주화의 열기로 어느 때 보다도
뜨거웠었다. 10 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오랜 유신 통치가 막을
내리고, '민주 정부 수립'이라는 시대적 열망으로 대학에서는 연일
학생집회가 열렸다. 결국 '5 18 군사 쿠테타'로 광주에서의 참혹한 학살을
남긴 채 끝났지만, 그 영향으로 나는 대학 시절 학생 운동에 깊이
참여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어려운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가치관으로 가지면서 여성들도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고
확신해 왔다. 가정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을 갖고 사회에서
당당히 한 몫을 담당해 보탬이 되는 일꾼으로서 살아가야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왔고, 그런 생각에서 졸업한 뒤 근로자들을 위한 노동
상담소에게 무료 상담을 해 왔다.
그런데 현실은 나의 이런 오랜 신념을 뒷받침해 주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키워 주실 시어머님도 안 계시고 친정어머님도 아이를 맡아
주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우리 나라의 복지 수준이 천박하다 보니 육아는
전적으로 개인 부담으로 돌아오고, 아무런 보조금도 없이 운영되는 탁아
시설들은 조건이 열악하여 도저히 아이를 키울 환경이 아니다.
바로 이런 신념과 현실의 갈등으로 나는 한 번씩 열병을 앓아 왔고,
획기적인 탁아 정책이 국가로부터 나오지 않는 한, 아이가 어느 정도
자립적인 생활 능력이 생기기까지 당분간 그 열병을 계속 앓을 것 같다.
더구나 요즘 들어서는 혼자 크는 민근이가 안쓰럽게 느껴져 동생을 하나
더 낳아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마저 드니, 나의 열병은 어쩌면 더
심해질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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