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호
연세대 원주의대 정신과
정신병의 유전에 관한 연구는 수많은 반전과 변화를 겪어왔다. 아직까지도 이
문제는 명쾌한 해답을 구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섣부른 판단으로 한 사람의
존엄이 무참히 짓밟히고 재활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신병은 정말 유전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이고 적흥적이어서 남의 이야기나 소문을 무턱대고
믿어버리는 비과학적인 경향이 있다. 예로 어떤 이론이나 물질이 과학적이라고
하면 이것에 대해 다시 과학적으로 검토하거나 비판하여 보는 법 없이 무조건
수용해 버린다. 이러한 경향은 의료의 경우에서 더욱 현저하고 특히 암이나
정신병처럼 치료가 어렵고 무서운 질환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한낱 논두렁의 잡초에 지나기 않던 풀이 항암제로 등장하여 못 고치는
병이 없다는 소문으로 비싼 값에도 잘 팔리고 사람들은 잘 알아보지도 않고
마구 섭취한다.
새로 입원한 환자의 병력을 조사하기 위하여 보호자를 만나면 꼭 한마디
덧붙이는 것이 있다. 이는 "우리 집안에 정신병환자는 한 명도
없었는데..." 라는 말이다. 집안식구가 정신병이라도 생기면 누구라도 사실
'이 병이 유전되는 것은 아닌가?' 혹은 '이 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겠으나 유전병에 대해서나
정신병에 대해서 평소에 한번도 심각하게 고려하여 보지 않은 사람도 정신병은
당연히 유전이라 믿어버린다.
정신병과 유전의 관계에 대하여는 최근 2, 30여 년 동안 분자생물학적
분야의 눈부신 발달로 훨씬 많은 정보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분야의 정보가
늘었다고 해도 아직도 모든 정신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불확실한 것이 많고
유전에 관한 지식도 제한적이다. 실제 유전적으로 뿌리가 같은 경우에도 발병의
차이가 있고, 유전적인 정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재의 여러 가지
치료방법에 의해서도 많은 정신병이 치료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조건 유전만이
정신병의 모든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반증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유행이 있어서 어떤 첨단의 이론으로 모든 현상을
해석하려고 한다. 의학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든 질환을 그 시대에
동원가능한 첨단의 과학적 지식으로 모두 설명하려고 한다. 이렇듯 과학은
반전을 거듭하기도 하고 어떤 한계에 봉착하여서는 한 단계 비약하면서
발전하여 온 것이다. 따라서 한 시대의 과학적 진실은 다음 세대에 와서는
허구로 판명되는 경우도 있다. 약30년 전만 하더라도 정신분석이 정신의학을
풍미하고 있을때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병을 유전에 대한 보호자의 불안에
대해 늘 자신있게 대답하였을 것이다. "절대 유전이 아닙니다. 환자가
유아발달기 동안 부모 자식간에 충격이 많아서 그렇지요." 라고 말했었다.
정신병 모두가 유전에 의한 것만은 아니듯 이러한 설명 또한 부분적인 해석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과학적 연구의 결론가들은 그 해석에 주의를 요한다.
전부 아니면 전무의 논리로 한 인간의 정신에 관계되는 이 복잡한 질환을
무더기로 싸잡아 '이것 때문에 또는 저것 때문에' 라고 말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아직까지도 정신병이 단지 유전적 원인에 의해 발병한다는 증거는
없다. 정신병의 원인으로 유전의 영향이 관여한다고 인정되며 여기에다 심리적,
정신적, 사회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병하게 된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이다. 이러한 결론은 그나마 우리에게 안도감을 준다. 왜냐하면 이 병이
정말로 단지 유전 때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단지 대자연의 여러가지 재앙에
무력하게 노출되어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 왜소한 생명체에 불과하고, 우리의
치료적 노력은 보잘 것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원인을 균형적으로 받아들여 병세의 치료, 예방, 재활에 환자 본인은
물론 주위의 가족이나 우리 사회가 무엇인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많고 그 결과로
병세를 호전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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