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윤미
단국의대 가정의학과
우리 나라에서는 매년 만명 가량의 만성간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간염은
그만큼 심각하고 뚜렷한 치료방법이 나와 있지 않는 질병이다. 잘먹고 푹쉬는
것이 만성 간염환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만성간염으로 진단받고 진료를 받던 30대 후반의 젊은 남성환자가 있었다.
이것저것 여러가지를 물어보다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묻게 되었다.
건강문제의 진단과 치료에 직업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전에는 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간염으로 진단받은 후에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 일을 그만두셨느냐고 물었더니 "간염에는 푹 쉬고 잘 먹는 것이
좋다는 얘기등을 하던데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체중을 재보았더니
170센치미터의 키에 몸무게는 80키로그램으로 10년전에 비하여
15키로그램정도가 늘었다. 활동을 하지않고 쉬며 잘 먹으니 체중이 증가할수
밖에 없었다. 이환자는 왕성한 사회활동, 경제활동을 해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만성간염으로 진단받은 후 거의 10여년 동안을 아무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며 영양가가 높은 음식물만을 먹으며 지내온 것이다. 다른 경우라면
집안 경제상태가 엉망이 되었을 텐데 다행히 집안이 좀 여유가 있고 부인이
직업을 가져 경제적으로는 그리 쪼달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좀 더 얘기를
해보았더니 본인이 일을 하지않고 놀기를 희망하는 것은 아니고 본인은
무엇인가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한데도 불구하고, 간염에는 쉬는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근 10여년을 그렇게 보낸 것이었다. 의사에게 "쉬는
것이 좋지요?"라고 물은 적이 몇번 있었는데 대답이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여서 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 왔단다.
우리나라에는 간염이 아주 많아 매년 거의 만여 명정도가 만성간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게다가 간염은 다른 병과는 달리 현재까지 이렇다 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런 사실은 간염으로 진단받은 환자, 그 중에서도 만성간염으로
진단받은 사람들에게는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간염이 낫는다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러니 쉬라는 말도 잘 지키고 잘 먹으라는
말도 잘 지킨다.
과거에는 만성간질환에는 절대안정이 좋다고 생각하여 이를 강력히 권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따랐었다. 또 식이에 대해서도 과거에는 간염환자에게
하루에 150그램 이상의 단백질과 고열량음식을 섭취하도록 권유했고 지방질
섭취는 좋지 않다고 해서 제한했었다. 그런데 현재는 여러 연구결과
절대안정보다는 적당한 활동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병세가
심한 경우는 예외이지만 너무 심하게 무리하지 않는 한 직업을 가져도 되고,
집안일을 해도 되며 산책과 같은 심한 피로감을 유발하지 않는 정도의 규칙적인
운동은 대부분의 만성간질환 환자에게 권유되는 일이다. 즉 즐거운 피로감을
느낄 정도까지의 활동을 해도 괜찮다. 식이에 대해서도 과거와는 달리 요즘에는
황달에 의한 지방변을 보지 않는 한 지방질의 섭취를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표중체중 1kg 단백질1g과 총 30-35cal의 열량공급을 권할 뿐이며,
단백질과 열량을 그 이상으로 섭취하는 것은 간질환의 경과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들을 알려주었더니 이 환자는 그럼 일을
해도 되냐고 좋아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낸 10년을 몹시 안타까워 했다.
이 환자 외에도 간염이라면 잘 먹고 푹 쉬는 것이 최고인 줄 알고 그렇게
지내는 환자가 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간질환에 대한 왜곡된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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