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my blog with Bloglovin FraisGout: 제1장 생각한다는 것

제1장 생각한다는 것

  1. 마음속은 항상 잡동사니로 가득

  우리들의 눈에 자주 띠는 풍경이지만-예컨대 10월 하순의 저녁 무렵, 석양이
정원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대문에 서서 그 광경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당신은
멍하니 어떤 생각에 잠겨 있다고 하자.-이때 누군가가 살짝 곁에 다가와서
  "뭘 생각하고 있지?"
하고 말을 건다.
  이럴 때 당신은 곧장 적당한 대답을 찾아낼 수가 있을까?
  또 밥이 되어, 책을 읽고 있다고 하자. 당신은 즐거운 독서를 할 때와는 달리 얼굴

온통 찌푸리고 책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럴 때
  "지금 뭘 생각하고 있지?"
  "그건 무슨 책이지?"
하고 갑자기 상대방으로부터 질문을 받게 되면, 조금 전 어느 날 저녁 무렵 때처럼
  "응, 뭐 별로..."
  "이런 일, 저런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지"
하고 대답해 버리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막연하게 아참, 이런 일은 전에도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자신도 은연중 얼마나 차리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언제나 밝게 빛나고, 잘 정돈된 방과 같은
것이 아니고, 자신도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고, 어두컴컴하고 마치 모기가 사는 창고

같은 것이라 할 수가 있다. 더구나 마음속을 유심히 들여다보려고 문을 열어 보면,
갑자기 고동색의 한 작은 모기 새끼가 얼른 모습을 감추어 버리는 것처럼 되어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사실 유쾌한 일은 못된다.
  "뭘 생각하고 있지?"
하고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들이 흔히 난처한 표정을 짓거나 때로는 쑥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되었을 대 우리들은 마치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고 짖거나,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뜯으려고 두세 번 시도해 보고는 실망해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강아지와 흡사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진지하게 연습하면, 적어도 자기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 시도하려면, 아주 멍하니 얼이 빠져 있을 때, 즉 우리들의 의식이
완전히 경계를 풀고 있을 경우에는 오히려 적당하지 않으며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데는 좀더 좋은 기회가 있다.
  예를 들면, 신문을 읽고 있는데 그 신문에 실린 어지러울 정도로 변화하는 다채로운
기사 거리에 약간 싫증나기는 했어도 아직은 그렇게 피곤한 상태가 아닌 때, 차를 타

있는데 차의 진동이 쾌적해서 마음을 놓을 상태가 되었을 때, 꾸벅꾸벅 졸음이 오는
듯한 기분인 데도 아직은 마음의 활동이 다소 느슨하기는 하지만 계속되고 있을 때,
또 강연을 들으러 갔는데 그 강연이 주위를 기울여 들을 만한 값어치가 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난처하게 하지 않는 경우 등등 즉 우리들의 마음이 잠깐 동안
휴식하는 상태에 있을 경우가 자기의 마음을 활동하고 있는 상태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잇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에 있을 때 의식을 갑자기 긴장시켜서, 3초나 4초 정도, 마음의
흐름의 일부를 멈추고
  '자, 나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자기 자신을 검사하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하는 데 성공을 하면, 당신은 틀림없이 계속 시도해 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 까닭은 어떤 의식의 실험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손쉬운
방법이며, 또 이 방법을 해보면 해볼수록 쉽게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2. 마음의 헝클어짐

  "뭘 생각하고 있느냐구요? 그거야 당신이 쓴 책에 관해서지요. 내가 그 책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이 책을 쓴 당신 자신은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내용에 무척 호감이 갑니다"
  "당신이 매우 열중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뭘 생각하고
계시느냐고 묻는 실례를 범했습니다. 만일 약간의 흥미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신다면,
그건 별로 도움이 안되지요. 그런데 당신은 이 테마가 마음에 드십니까?"
  "네, 좋아합니다"
  "이 테마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당신의 흥미를 끈다. 즉 당신 속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자극하고, 당신으로 하여금 뭔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물론 책을 읽는 동안에 떠오르는 생각은 당신 자신의 것이지. 결코 내가 말하는
바를 반드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쓴 문장에서 당신이 느끼는 여러
가지 생각, 그것이 바로 당신이 이 책을 즐겨 읽는 주요한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당신 자신의 생각이지, 나의 생각이 아니며 그러한 생각은 결국 이
책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고, 사실이 책에서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걸맞은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책에서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걸맞은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상 나는 당신이
쓴 책을 충실하게 읽고 있었습니다. 하기야 외우려고는 하지 않았지요. 왜냐하면
외우려고 하면, 책을 읽는 즐거움이 없어져 버리게 될 것이니까요. 하여튼 나의
즐거움이 나혼자만의 것이라면, 당신이 말했듯이, 책에서 마음을 다른 곳으로
흐트러뜨리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참, 그렇군요"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메인 주(미국 동북부의 주 이름)에 있는 농장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옛날 당신의 책에 나오는 것과 같은 창고가 하나
있었어요. 여름이 돼서 내가 거기에 찾아갔을 때, 그 창고에는 겨울 사과의 향기가
아직 남아 있었는데, 나는 그 향기가 몹시도 좋았어요. 소년 시절의 나는 몇 시간이건
거기서 깊은 생각에 잡기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에라스무스(1466-536, 네덜란드의 신학자)의 초상화를 볼 때마다 항상 흐뭇한
행복감에 젖게 되는 그 초상화를 보면서 저 낡은 창고의 일을 상기하곤 한다. 사실
나도 2, 3분 전에, 에라스무스의 일을 생각해 냈던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뚜렷한
생각이었다. 그 까닭은 언젠가 그 그림 앞에서
  "여기 자기 코를 내려다보고 있는 늙은이는 누굽니까?"
하고 나에게 물은 바보 녀석을 생각해 내고는 갑자기 불쾌한 기분에 사로잡혔기 때문
이다.
나는 이런 바보 녀석은 싫다. 이 일을 생각하면 그때마다 나는 기분이 언짢아서, 뭔가
다른 일을 생각하도록 애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가 그렇게 틀리지는 않았군요. 당신은 이 책에는 쓰여 있지 않은 여러 가지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군요"
  "그건 그렇습니다. 이 책이 근거가 되어서 그런 생각이 떠오른 거지요 내가 내일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한참 열심히 하고 있는 중에 당신 책에 관한 것을 머리에
떠올리고, 문장 하나하나까지도 생각해 낼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런 것까지도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그런데, 내일 내가 서명(사인)을 할 일 중에는, 나의 5년 분 정도의 수입에 해당되

큰 동이 걸려 있어요. 그러니까 그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

일이지요. 그렇지만, 이 책만큼 내가 열심히 읽은 것은 일찍이 없었어요. 아무리
되풀이해서 읽더라도 소용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당신은 이 책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한편, 또 다른 일에
대해서도 마음을 주고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요. 이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인데, 예를 들면, 월터 스콧(1771-1832,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이라는 소설가는 새로 쓸 소설의 줄거리를 찾아내게 되면, 그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책을 읽어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유는, 독서를 통해서 두뇌의 작용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신이 이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당신의 지성이 당신의 의식의
어떤 부분-5분의 1내지 3분의 1 정도-을 이 책을 위해서 쓰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당신에게 있어서는 지성이란 외부의 일을 맡아서 해주는 일종의 우수한
 사무원과 같은 것이다. 당신 자신은 자기 일을 하고, 자기에게 있어서 어떤
이론보다도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를 들면, 주위에 퍼져 있는 사과의 향기를 맡으면서
몇 시간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일이 있는 창고이고, 당신이 좋아하는 에라스무스

초상화이며, 그 그림의 훌륭한 점을 알지 못하는 남자에 대한 어쩔 수 없는 혐오감 같

것들이다.
  이런 것들과 또 당신의 의식의 표현에 뚜렷이 떠오르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독서하는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짓이라고 당신은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신의 자아의 입장에서 보면, 도리어 책 쪽이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이다.
  글을 쓴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정성껏 펜을 잡고 있는 사이에 나의
자아는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이야기해 보자.
  나는 두 시간쯤 전에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가랑비를 맞으며 길을 헤매고
잇는 가엾은 어미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가 마음에 걸리어 아무래도 이 글이 잘
 써지지 않더군요. 당신이 에라스무스를 깔본 바보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3. 개울물과 같은 마음의 움직임

  지금까지 이야기한 대화와 똑같은 일이 자기 혼자서 하는 내성-활동하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안쪽으로 들여다보는 것-에 의해서 밝혀지게 된다. 심리학자는
이러한 것을 '마음의 흐름'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정신을 따로따로
떨어진 여러 가지 기능으로 쪼개서 생각하는 잘못되기 쉬운 방법에 비해서는 정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데 커다란 진보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우리들의 두뇌의 흐름은 현실적으로는 기억되기도 하고, 때로는 수정되어진 이미지
·
감정, 주의, 지성 또는 부분적으로는 지적 판단을 흐릿한 혼란 상태인 채로
흘러 보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마치 강이 그 흐름을 멈추지 않듯이 잠자는 동안에

결코 멈추는 일이 였다
  그러나 마음의 흐름이란 마치 개울물과 같은 것이어서, 그 흐름은 항상 방해를
받기도 하고 끊기기도 하고 빙빙 돌면서 혹은 굽이치면서 멋대로 흘러간다. 우리들의
내부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가 있지만, 잠깐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말고 유심히 잘 관찰하면 심리적인 연쇄의 변환과
재현이 거듭 되풀이되면서 순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연쇄가 이미지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이미지가 생각에 따라서 연쇄가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 막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은 여러 가지 많은 이미지-강물의 흐름 속의
잔물결과 같이 재빨리 부서져서 잡기가 힘들 정도의 자질구레한 반사작용-로 마음이
가득 차 있었지만, 그가 의식하고 있는 것은 그 중의 작은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시골집의 창고, 홀바인이 그린 에라스무스의 초상화, 그리고 그 바보 녀석 등
이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것은 만화경 속의 크고도 밝은 조각과 같은
것으로서, 독서를 하고 있는 중이라 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2, 3분마다 이들 이미지로
되돌아가곤 한다.
  이와 같은 이미지가 그에게 주는 것은 우리들에게 다른 이미지가 작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란 점은 되풀이해서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그 이미지의 몇 가지에 마음이 끌리기도 하고 또 다른 몇 가지 이미지에
대해서는 반발하기도 한다. 낡은 사고 창고의 이미지는 마음을 듬뿍 채워 준다.
에라스무스의 초상화도 그렇다. 그 바보 같은 녀석만 없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러한 바보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일기도 한다. 그 까닭은
그 사나이가 나를 몹시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어 주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기분
좋은 우월감에 젖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불유쾌한 광경에서 가끔 유쾌한 감정을 구할 수도 있다. 마음의 흐름은 개울물처럼
관목이 우거진 양쪽 기슭 사이를 재빨리, 또 매우 깊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 물 속

뚜렷이 들여다보기란 몹시 어려운 것이다.
  #1 우리들 심적 작용의 거의 전부는 이미지라는 것과 끊을 수가 없으며,
이미지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 접에서는 주위의 동물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개의 뇌 속에는 이미지·
소리, 냄새가 백과사전만큼이나 대량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면
개의 행동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다.)
  #2 이들 이미지는 욕구나 혐오, 바라는 것과 바라지 않는 것들에 밀접하게 대응(對
應)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바란다,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존의 기본적인
조건과 결부되어 우리들 심리의 궁극적인 동기가 되고 있다.
  #3 사람들의 생각이나 주고받는 대화, 생활방식이나 생활 그 자체로 미루어 보아
어떤 이미지가 그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 주고 잇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이미지를 알아내어 평가하면, 그것은 우리들의 기호의 조사나 평가와
상호 보완되어 행동에서 미루어 판단하는 것 이상으로 정확하게 우리들의 값어치를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행동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말하기로 하겠다.

  4. 이미지야말로 사색의 첫걸음

  지금까지 말한 것은 사상과는 아무런 관계없다고 하겠다. 분명히 우리들의 머리는
가끔 이미지나 기호, 바라는 것 또는 바라지 않는 것에서 떠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뭔가 틀림없이 가장 정도가 높은 마음의 작용, 형태가 없는 추상적인
개념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수학이나 철학의 체계 같은 것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진화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른바 논리란 어떤 것일까?
  이와 같은 연구는 '과학 사상'의 분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기술'만을 문제로
삼는 우리들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분야이긴 하지만, 그런 점에 관해서 여기서 부연해
둔다는 것도 우리의 목적에 전혀 무익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사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순수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것,
이미지를 중개하지 않고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지의 도움을
빌지 않고도, 실용적, 또 때로는 이론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미 마음의 움직임의 과정을 관찰함으로써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보통 '사상'이라고 할 때, 사람의 머리, 또 때로는 두뇌의 내부를
시각화해서, 그것도 흐물흐물한 기분이 좋지 않는 뇌로서가 아니고, 아마도 받아들인
데이터를 분류하고 정리하는, 복잡하게 마치 전선을 배선한 듯한 것, 혹은 최고로
정밀한 기계 장치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없을까?
  정신작용 또는 기능이라는 말은 그리 특이한 말은 아니다. '보다' '알다'는 말은
희랍어로는 같은 말로 쓴다 '숙고'라고 하는 말은 매우 지적인 냄새가 풍기는
말로 들리지만, 이것은 원래 '무게를 달라'는 뜻이다.
'생각하다'는 것은 이런 것들보다는 한결 거친 '...인 듯하다'를 의미하는 말에서 온
것이다. '논리'와 '연설'은 같은 말이고 또 '관념'과 '이미지'도 결국은 같은 말이다.
  우리들은 내부에서 자동적으로 회전하는 이미지의 필름은 의식할 수가 있지만,
좀처럼 쉽게는 보여지지 않는 그 밖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을 하지 않는다.

두 가지 세트의 이미지는 스피드를 바꾸어서 시종 서로 겹쳐지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관계가 없는 일들에 마음을 팔고 있는데, 예기치도 않던 결론이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이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메인 주에 있는 집의 기억에 정신이 사로잡혀 있던 아까 그
신사는,
  "읽을 필요가 없을 때 읽는다는 것은 좋지 않는 일입니다"
라고 하는 내부로부터의 소리를 갑자기 듣고는 당황해서 책을 덮어 버리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그 까닭은 앞에서 말했듯이 메인 주의 집에 관한 필름 밑에 겹쳐져서, 얼마 전에
진찰을 받고 난 후에 잠재의식에서 거의 한 순간도 떠난 일이 없는
안과의사의 이미지가 나타나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의식 속에 세 개의
층(아마도 그 이상일지도 모를 일이지만)이 겹쳐진 것이다.

   생각의 기술이라는 책-메인 주의 집-안과의사

  자, 여기서 아까 그 신사는 예상도 하지 못할 결론을 끄집어낼지도 모른다.
  '나는 뉴저지 주의 그 집을 사기로 하자'
  이와 같은 결론은 너무도 갑작스러운 것처럼 보여서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앞에서 본 그 겹쳐지고 또 겹쳐지고 한 이미지에서 분명히 기인하고 있다.
  #1 메인 주의 집+속도가 느린 열차+두 군데의 갈아타는 곳+존스 씨 집이
가깝다=고맙지 않다.
  #2 래이크드 씨 댁(부동산업자에게서 사도록 권유를 받은 집)+쾌적한
열차=가깝다+모기가 없다=잠이 잘 온다.
  #3 잠+가깝다+소나무숲+모래땅=매력적=미소=산다
  이 모든 이미지들은 마치 번개처럼 빠르게 하나하나 이어지면서 사고라는
것을 형성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한 가지의 연속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이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때에는, 직접 관계가 없는 것들이
어쩐지 자꾸 파고 들어오는 것을 느낄 때가 가끔 있다.
  우리들은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보다 말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고급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실상 그런 것이 아니고, 언어나 글귀로 생각한다고 하는 것은 예를
들면, 돈을 계산할 때 '더하기 일흔 다섯'이라고 중얼거리거나, 아니면 '두번 다시 이

난처한 일을 당해서는 안되지'라고 혼잣말로 자기에게 말하는 습관에서 오는
착각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느 쪽을 바라보더라도 온통 '이미지'에 둘러싸요 있다고 할 수
있다. 추상이라고 하는 조작도 이미지의 산물로서 반드시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게 한다. 역사를 생각할 때에는, 거의 위대한 인물이나 그 위대한 시대를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또 유일한 실험을 상기하지 않고 과학을 말할 수는 없다.
  '진리'라고 하는 정신적인 말도 분명히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을 들을

그 말을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라든가, 진리의 아름다움을 우리들에게
인식시키는 어떤 특정한 연구 따위와 결부시켜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미지는
또다시 모습을 나타내 보이게 된다. 기하학에서조차도 도형과 이미지가
얼마나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가는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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