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판도라의 상자가 따로 없군!"
촉새네 아빠는 신문을 보다 말고 혀를 끌끌 찼어요. 부엌에서 음식을 준
비하던 엄마가 돌아보았어요.
"무슨 얘기가 실렸길래 그래요?"
"이번에 터진 정치권 비리 얘기지, 뭐. 검찰에서 수사를 시작했는데 파헤
치면 파헤칠수록 떳떳지 못한 검은 돈 거래와 여러 가지 부정한 일들이 마
구 쏟아지고 있군 그래."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촉새가 끼여들었어요.
"아빠, 판도라는 무슨 과일이에요?"
촉새의 뚱딴지 같은 질문에 아빠는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저도 TV에서 봤어요. 사과 상자에 뭉칫돈을 담아서 검은 돈 거래를 했
다면서요. 근데 사과 상자는 알겠는데 판도라는 무슨 과일인지...."
"하하하...."
"호호호...."
촉새의 말을 듣고 엄마와 아빠는 배꼽을 잡고 웃었어요.
"판도라는 과일 이름이 아니야.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류 최
초의 여자란다."
"그럼, 그 여자의 상자 속에도 돈이 가득 들어 있었어요?"
"허허허.... 이 녀석이 점점 엉뚱한 소리만 하네. 신화에 보면 맨 먼저 만
들어진 인간은 남자였어. 인간들은 처음에는 신의 말에 잘 따랐지. 그런데
점차 난폭해져서 전쟁을 일삼게 되었던 거야.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이를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화가 났지. 그래서 인간을 혼내 주려고 인간에게서
불을 빼앗아 버렸던 거야. 그런데 프로메테우스라는 신이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다시 불씨를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주었어.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큰 벌을 주었지. 그런 다음
인간에게도 벌을 주기 위해 여신의 모양을 본떠 흙으로 판도라라는 여자를
빚게 했어. 그리고는 그 여자에게 아름다운 얼굴뿐 아니라 간사한 마음씨
와 말재주도 함께 불어넣었어. 그런 다음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
스에게 데리고 갔는데,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를 보고 첫눈에 반해 판도라
를 아내로 맞이했던 거야. 판도라는 제우스로부터 받은 선물 상자를 하나
갖고 있었지. 그 상자는 절대로 뚜껑을 열어 봐서는 안 되는 상자였어. 그
런데 판도라는 호기심이 많았어. 어느 날 남편이 일하러 간 사이 그 뚜껑
을 열어 보았던 거야. 그랬더니 거기서 괴상한 연기와 함께 온갖 고통과
재앙, 질병 등이 튀어나왔지. 놀란 판도라가 얼른 뚜껑을 닫는 바람에 상자
속에는 '희망'만이 남게 되었어. 오늘날 인간이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희
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란다. 그 상자는 제우스가 인간을
벌주려고 만든 것으로 괜히 건드렸다가 온갖 재앙과 나쁜 일들이 수두룩하
게 생기는 것을 보고 판도라의 상자라고 말하는 거야. 아빠가 아까 신문에
서 본 정치권 사건도 만찬가지고.... 이제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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