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심환'이다. 여기에서 한약이라고 하는 말은 흔히 화학적인 합성약이 아니라 생약을
달이거나, 가루로 만들거나, 알코올에 녹이거나 하여 유효 성분을 물약, 가루약 또는
환약으로 만들어 놓을 것을 말한다. 물론 첩약이라고 하는, 생약을 종이에 싸 놓은 형
태의 전통적인 한약도 있다.
그러면 우리들이 보통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약들 중에서 한약은 어느 정도의 비
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쌍화탕과 우황청심환이 한약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그 외에도 갈근탕, 용각산, 고약, 은단, 기응환, 구심, 포룡액, 백초, 위청
수, 활명 수, 총명탕, 청간탕, 편자환, 경옥고, 키디, 아토실, 정로환, 여성모, 고호
환, 만금고, 진사나, 홍삼원, 생위단, 안중산, 자모 ... 등 우리가 광고를 통해 한번
쯤은 들어 본 적이 있는 이와 같은 약들은 모두 한약이다.
그리고 이렇게 명맥히 한약이라고 할 수 있는 약 외에 원비, 삼정톤, 젠, 브론치쿰,
아스마, 사포날, 지미코프, 치선액, 영비천, 속청, 사루비아, 맥생, 생단액, 화콜 ...
등의 약은 한약과 양약이 섞여 있는 종류들이다. 사실 약국에서 시판되고 있는 약 중
에서 한 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은데, 다만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서양
에서 들어온 양약 중에도 생약을 추출한 형태의 약이 상당히 많은데, 아락실, 네프리
스, 싸이피놀, 파로돈탁스, 징코민, 비코 사이드, 다이어트라, 홀스, 레가론, 인사돌,
마데카솔, 오제나, 알로에 ... 등이 바로 그러한 종류들이다).
그런데 이렇듯 우리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있어서 한약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
음에도 불구하고, 한약이 우리 몸에서 어떠한 원리로 약효를 나타내는지가 아직도 과
학적으로 확실하게 해명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한약 대중화의 시대에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첨단 과학의 시대가 아닌가? 우리 몸의 생존(생리적
인 현상)과 질병(병리적인 현상)은 대부분 과학적으로 밝혀졌으며, 우리가 아플 때 사
용하는 약들도 과학적인 판단 하에 처방된다. 그런데 유독 한의학과 한약만이 아직도
그 이론이나
효과가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다.
따라서 한의학과 한약의 이론과 효과를 과학적으로 규명해 내는 일은 이 시대를 살
아가는 우리 민족의 공통 과제가 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모든 보건의료 전문
가와 과학자들이 힘을 합해 '한의학이란 무엇인지, 한약의 약효는 어떤 것인지'를 과
학적으로 해명하고, 세계 만방에 우리 한약의 우수성을 증명해 보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한편 한의학과 한약의 이론과 효과가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전까지 환자나 소비자들
은 한약과 양약을 마음대로 섞어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산형과 식물(대표적으로
당귀, 백지, 지실, 강활 등의 약제가 있다)은 간장의 약물대사기능을 떨어뜨린다는 서
울대학교 생약연구소(신국현 박사)의 연구결과만 보더라도 그러한 주의가 반드시 필요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더욱 바람직스럽기는 양의학 체계와 한의학 체계가 합리적으로 접목되고, 또한 의와
약이 완전하게 분업되어서(의약분업이 제도화되면, 의사의 처방이 공개되고 약사의 진
단과 처방이 없어지기 때문에 양질의 투약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국민들이 양약이나
한약을 안 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길이다.
한약 이야기-한약은 우리의 유산, 발전시켜야 한다
한약의 역사는 줄잡아 오천 년이다. 전설에 의하면 오천 년 전 중국의 세 황제 중신농씨는 평생을 약초를 발견하고 구분하다가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때 신농씨에 의해 구분된 약초는 상약(보약)의 120종, 중약(강장약)의 120종, 하약
(치료약)의 125종으로 나뉘어졌다. 요즈음 신비의 영약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영지버
섯은 신농에 의해 상약으로 구분된 약이었다.
물론 신농씨 이후에 수많은 한의학자들에 의해 약물도 많이 발견되고 분류되었고,
그 약물들의 배합 방법도 다양하게 분류, 복합되어 왔다. 그러나 한의학과 한약은 한
가지로 공통되어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만들고 약물을 사용한사람의 독자적인
학설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통일된 한의학 이론이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설명해 내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서
양의 의학이나 의약품이 세계 모든 사람에게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과학적으로 입증되
는 것과 비교한다면 바로 이 부분이 한의학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약에는 많은 장점이 있다. 어떤 사람은 가슴에 심한 통증이 자
주 일어나서 병원의 진찰을 많이 받아 보았지만 신경성이라는 진단만을 받았을 뿐 아
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다가 하도 답답해서 한약을 먹었더니 깨끗하게 나았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소화기능이 약해서 병원에서 위내시경과 초음파 검사를 받고 약을 몇
년 동안 사용했는데, 약을 먹을 때만 괜찮다가 안 먹으면 다시 병이 재발하는 고생을
면해 보려고 노력하던 중 한약을 먹고 거의 회복되었다고 한다.
한 초로의 부인은 신장염으로 온몸이 부어올라 병원에서 포기한 상태였는데, 속는
셈 치고 한약을 사용한 후 건강해져서 10년간이 나 재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일화는 불임으로 고민하던 부인이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려다가 그 전에 한약
부터 시험 삼아 먹었는데, 한약 한두제로 임신을 하게 된 경우이다. 그러한 경우 중에
는 여의사도 있었고, 심지어는 산부인과 여전문의도 들어 있었다.
우리가 경험한 사실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그 효과를 무조건 무시하는 것은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다. 또한 그 가설이 옳지 않다고 구체적인 현상을 검증하지 않는
것도 과학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면 삼가야 할 자세이다. 과학은 자유로운 상상력 속에
서 발전해 왔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문명은 과학의 산물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
마 없을 것이다.
따라서 동양의 한국에서 사는 우리들은 우리의 훌륭한 유산인 한의학과 한약을 올바
르게 발전시켜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그것이 지금 이론적으로나 학술적으로 과학적
이지 못한 점이 많다고 하더라도 가능성 있는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사는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해야 될 일이다.
또한 한약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주의를 통해 한약이 과학화될 때
까지 자중하여야 한다. 먼저 한약은 부작용이 없다고 생각하여 함부로 이 약 저 약(특
히 양약과 함께) 섞어서 사용하지는 말아야 한다. 요즘에 갑자기 술 깨는 약이라고 오
해를 받고 있는 우황청심환과 같은 약을 술 마시고 계속적으로 복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약 중에서도 환약이라고 하여 팥알이나 녹두알만하게 빛은 알약이 있는데, 이 환
약은 생산하고 보급하는 곳이 한의원이나 제약회사가 아닌 정체불명일 경우가 많다.
약국에 이러한 환약을 문의하러 오는 환자가 의외로 많다. 특히 신경통에 특효약이라
고 하는 꾐에 넘어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쌈짓돈을 털어, 경로원이나 노인대학 같은
곳으로 다니는 약장사에게 속아서 환약을 사는 일이 많다고 한다. 이러한 환약을 오랫
동안 복용하고 난 후 얼굴에 살이 찌고 속이 쓰리다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볼 때, 그 속
에 부신피질호르몬과 같은 위험한 약이 섞여 있지 않을까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약을
사용할 때는 생산 출처가 확실한 것인지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전염병이 거의 없어지고 성인병, 만성병이 더욱 보편화되
어 갈 전망인데, 우리의 한약이 과학화되고 효능이 확실해져서 질병 치료에 한몫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광고를 믿지 말자
'약을 사는 사람이 약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나라에서 약 광고가 시작된 이래 광고하는 약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가 절대적으로 커져, 제약회사들의 광고 경쟁
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광고의 문구에 나오는 '00 병에는 xx약이 좋다'라는 말
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소비자들이 병원 의사의 처방을 받거나 약국 약사의 조언을 듣
지 않고 광고에서 듣고 본 대로 스스로 처방을 내리고 약을 구입하여 사용하는 것이
다.
의약품의 대중 광고가 약에 대한 오, 남용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는 상
당히 오래되었다. 이에 대해 보건사회부는 지난 1985년 자양 강장 변질제 가운데 오,
남용의 우려가 있는 일부 제품의 광고를 금지시켰다. 이어 1990년 6월부터는 의사의
처방에 의 해서만 투약하도록 정해진 6천8백여 품목의 전문 의약품과 일반 의약품 중
25개 약효군-9백여 품목에 대해서도 대중 광고를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그리고 의약품
대중 광고에는 사용상 주의사항과 부작용에 관한 내용을 반드시 표시토록 했다. 즉 '
이 약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의사-약사에게 상의하고 사용상 주의사항을 잘 읽은 다음
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문구를 삽입토록 한 것이다.
이렇게 법으로 제한할 뿐만 아니라 제약협회 내에도 사전자율심 의위원회가 설치되
어 일간지, TV에 내는 광고를 사전에 조사하고 있고 사후관리위원회를 병설해 광고에
대한 사후심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의 실제적인 효과는 그다지 없는 것
같다. 우리 의 현실 속에서 의약품 대중 광고는 더욱더 깊숙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다.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를 할 수 있는 약품수는 1만여 개에 달하는데 실제로 광고를
하고 있는 약품수는 약 1백~2백 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른바 각 제약회사의 주력
상품들이다. 실제로 우리 나라 의약품 판매 순위의 상위에 올라 있는 약들 중에서 광
고를 하지 않는 약은 얼마되지 않는다. 특히 갑자기'판매량이 급증한 약은 거의가 틀
림없이 집중적인 대중 광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파고든 약들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보건의료계 일각에서는 약 광고는 그 자체가 약물남용으로 이
어지므로 하루 속히 의약분업을 실시하고 약품 광고를 아예 금지하자는 의견마저 제시
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보건사회부와 제약업계에서는 광고를 옹호하는 입장을 보
이고 있다. 그들은 "약품 정보 전달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소비자에게 선택
의 폭을 넓혀 주는 한편 국내 제약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자본력 축적에 긴
요하다"며 의약품 대중 광고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렇게 광고에 대한 규제와
지지의 상반된 입장 사이에서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일부 제약회사나 의약품
수입업자들 가운데는 허위, 과장, 과대 광고를 하거나 부작용 경고 문구를 쓰지 않는
약품수가 갈수록 늘고 있어 약화사고(약에 의한 부작용으로 일어나는 사고)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1991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부작용 경고문안을 삭제한 광고는 22%에
이르고 있다. 이외에도 교묘하게 '기술 적인 과대 광고로 규제의 손길을 빠져 나간 광
고'까지 합치면 문제 있는 광고의 수는 매우 많다. 특히 수입 외제 의약품 가운데 발
모나 체중감량 심지어는 태아성별 선택 등에 특효가 있는 것처럼 허위 광고하는 사례
까지도 많은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더구나 얼마 전 자양 강장 드링크제에 대한 광고 규제가 풀려서 아침 저녁으로 드링
크 광고를 볼 수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드링크를 좋아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의약
품 판매고 1위에서 3위까지 드링크제가 차지하고 있다) 광고를 통해 더 많이 마셔 댈
것이 우려된다. 드링크제는 음료수가 아니라 의약품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중독성이
있는 의약품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시판되지 않는 약이 시판되고 있다
항생제 이야기 편에서 자세히 말하겠지만, 항생제 클로람페니콜 이나 에리스로마이신 등은 혈액이나 간에 대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밝혀져 외국에서는 시판이 금지
되고 있다. 항생제 뿐 아니라 해열 진통제 설피린(상품명:바랄긴, 노발긴 등)은 백혈
구 손상, 쇼 크 등의 부작용을 일으켜 전세계적으로 수천 명의 목숨을 앗은 것으로 알
려져 유엔에서 정식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이미 수십 개 나라에서 시판이 금지되고 있
다.
한편 수면제인 할시온이라는 약은 정신착란, 우울증, 환상 등의 부작용으로 영국,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에서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수면제 할시온의 안전성 문제가 최
초로 제기된 것은 1991년 그룬트버그라는 한 미국 여성변호사가 이 수면제를 먹고 정
신착란상태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 때문이다. 당시 미국 법원은 할시온의
과용을 인정해서 그룬트버그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외국에서 시판이 금지되는 약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탈리도마이드'사건
이후라는 사실을 이 책의 서두에서 밝힌 바 있다. 즉 1957년 독일의 한 제약회사에서
개발한 수면제인 '탈리도마이드'라는 약을 임산부가 복용한 후에 양팔이 없고 손이 어
깨에 붙은 기형아가 태어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 이후 전세계적으로 들끓는 비
판과 불행을 당한 사람들의 경험을 받아들여, 새로 약을 개발할 경우에는 약의 효과
외에 약의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되어야만 정부에서 허가하게 되었다.
또한 의약품에 대한 대대적인 재평가 작업을 실시하게 되어, 미국의 경우를 예를 들
면, 1937년 미국의약품공정서에 수록된 약품이 3,091개 품목이었으나 30년 후인 1967
년에는 이 중 80%인 2,470개 품목이 부작용이 많거나 가치 없는 약으로 지목되어 폐기
될 정도로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정성은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우 보건의료계나 국민 모두가 이러한 약물 부작용에 대해서
대단히 둔감하다. 먼저 보건의료계 쪽을 보면 약을 생산하거나 처방, 조제하는 전문가
들이 약의 독성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보다는 눈에 당장 나타나는 효과에 더욱 집착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에서 금지된 여러 의약품에 대한 정보에 접하고도 대체 약물을 찾기
보다는 습관적으로 생산, 투약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들도 약을 사용하기 전에 그 약
의 부작용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병으로 당하는 고통을 제거하기에 급급하여, 사용상
의 주의사항에 대해 알지 못한 채 함부로 약을 사용하고 있다. 더욱이 의약분업이 어
루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의 약에 대한 상식과 주의가 매우 필요함에도 불구
하고, 그에 대한 보건교육은 실시되고 있지 않다. 보건사회부가 추진하고 있는 학교약
사제도가 하나의 대안이라고는 하지만 그나마 제대로 실시되려면 상당한 진통이 예상
되어 약에 대한 보건 교육의 앞날은 아직도 밝지 않다.
특히 우리 나라 사람들의 약물 대사능력이 유전적으로 서구인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이미 나와 있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서양인에게는 한
알이 부작용을 낳는 기준치라면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 절반 정도인 반 알이 기준
치가 되는 셈이다. 우리 나라 제약회사들이 외국의 신약을 도입할 때는 통상 2개의 종
합병원에서 30명씩 6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약 효능에 대해서만 임상실험을 실시한 후
보사부의 허가를 받아 약품의 시판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외국의 임상실험
을 그대로 답습할 뿐 인종 차이에서 올 수 있는 부작용과 투여 용량 차이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영국과 서로 인종이 비슷해도 2년 정도의 임상연구를 거쳐 약품 판매 허가를
내 주고 있으며, 일본도 이미 15~6년 전부터 미국에서 신약을 도입할 경우 철저한 임
상실험을 거쳐 적정 용량을 조정해 시판을 허용하고 있다니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
다. 우리는 아직도 외국에서는 시판이 금지된 약을 그대로 복용하고 있을 정도이니 소
비자의 목숨을 저당 잡히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비싼 약이 좋은 약은 아니다
서울의 강남 지역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들이 하는 말이 있다. "비싼 약이 아니면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여 아예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 많은 부자 동네 사람들
은 약의 효과는 약의 가격과 비례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원래 약값은 연구 개발에 드는 비용이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 된다. 그 다음으로 원
료나 생산 시설에 드는 비용도 중요한 요건이다.
한편 약의 효력은 약값에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기존의
약에 존재하는 한계(부작용, 효과미약-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현재의 약으로 얻지 못할
경우-등)를 극복한 더 효력이 좋은 약에 대한 요구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 개발
되는 약이 비싸지만 여러 모로 좋은 약일 것이라는 통념이 있을 뿐이다.
실제로 항생제의 예를 들어 보면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의 성인기준 1회분의 약
값은 60원인데 비해 페니실린 이후에 개발된 약 값은 훨씬 비싸, 세펨계 항생제인 세
파드록실(상품명:듀리세프)의 성인기준 1회분의 약값은 그의 약 20배엔 달하는 1,200
원으로 시판되고 있다. 물론 페니실린은 1일 4~6회 복용해야 하는데 비하여 세파드록
실은 1일 2회 복용하므로 1일 총액으로 따지면 10배 가량의 차이로 줄어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페니실린보다 세파드록실의 효과가 10배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폐렴
구균 등의 감수성균에 대해서는 페니실린의 효과가 더욱 좋은 경우도 있다.
이렇게 약의 효력과 약값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문제 외에도 제약회사에서 상
품을 조금 바꾼 후 약값을 대폭 인상하는 문제도 있다. 실례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아
주 오랫동안 소화제로 사용해 온 '노루모 산'이라는 가루약이 있는데 이제까지는 12회
분들이 한 포장의 가격이 400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노루모A(산)'이라는 새로운
상품명으로 내용상에 약간의 변화와 함께 그 포장을 바꾸었는데 그 가격을 6회분들이
한 포장에 1,000원으로 대폭 인상하였다. 5배나 인상된 것이다. 약 뒤에 F니, A니, 5
니, 포르테니, 골드니 하며 붙은 꼬리들은 약값의 인상을 증명하고는 있는데, 그 약값
이 2~3배 오른 만큼 효력도 인상되었는지 곰곰히 따져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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