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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주의

미국 민주주의(??)
  저자 :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

근대 시민혁명의 산물인 <민주주의>와 <자유>의 관계를 사례와 관련시켜 규명하고 있는 이 책은 근대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가장
깊이 있게 분석한 자유주의의 현대적 고전에 속한다. 이 책에서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오히려 <다수에 의한 전제>를 가져와 <개인적 자유>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새로운 민주적 자유체제의 수립 가능성을 미국사회에 대한 분석과 관련시켜 모색하고 있다.

    정치가와 연구자로서의 삶
프랑스의 유서 깊은 르망디 귀족출신의 정치가정치학자인 그는 키가 작고 감수성이 예민한 인물로 어려서부터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그의 아버지가 충성스런 왕당파여서 젊은 토크빌은 쉽게 공직에 취임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 보몽과 함께 공직의
길에 들어섰다. 이 두 사람의 인생사는 매우 흡사하다. 가문의 지위나 배경이 유사했던 그들은 미국영국 등을 함께 여행했고, 저작도
공동집필했으며 의회에도 같이 들어갔다.
<시민왕>으로 알려진 루이 필립을 왕좌에 앉힌 1830년 7월혁명은 그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이 사건으로 프랑스가 완전한 사회적
평등으로 급속히 진행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더이상 프랑스를 영국의 입헌군주제와 비교하지 않고 미국의 민주제와 견주어보게
되었다. 토크빌과 보몽은 미국의 교도 행정개혁을 연구하고 또 프랑스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 미국사회에 대한 지식을 수집할 목적으로
미국유학을 신청했다.
그들은 1831--32년에 9개월 동안 미국에 체류했고 귀국하여 두 사람의 공동저작인 <미국의 교도행정 체제와 그 체제의 프랑스내 적용
여부>를 내고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의 앞부분을 썼다. 자기 자신의 관찰과 여러 자료의 섭렵, 그리고 저명한 미국인들과의 토론을
바탕으로 하여 미국사회의 본질에 접근하려 했고, 자신의 철학에도 잘 맞는 미국사회의 특징인 <조건의 균등>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려 했다.
그의 저작은 미국 민주주의의 생명력과 과도한 점, 그리고 미래의 잠재력을 분석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저작에는 어떤 사회든지
적절하게 조직되면 민주사회 내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이 잘 드러나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앞부분으로 해서 토크빌은 단번에 명성을 얻었다. 이 시기가 그의 생애 중 가장 행복하고 자신 넘치던 때였다. <19세기의
몽테스키외>라는 존칭을 받은 것도 이때였다. 그의 책은 곧 영국독일덴마크 등 전 유럽에서 출판되었다. 특히 영국 지성인들의
환대는 대단하여 J.S.밀과도 교류하는 등 그는 영국을 제2의 고향으로 간주했다. 1836년 영국여인과 결혼하여 그의 친영의식은 깊어졌다. 이
책은 미국에서도 곧 고전의 지위에 올랐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미국 민주주의>의 마지막 부분을 저술하는 데 4년을 보내고 1840년에 출간했다. 당초 의도보다 훨씬 더 폭넓고 많은
자료를 다루었으며 더욱 진지해졌다. 이제 미국사회라는 주제보다는 프랑스의 사례가 더 많이 인용되었다. 이 책의 민주적 개인주의와
중앙집권화를 다룬 부분에서 그는 전제주의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가장 위험한 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1839년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꿈꾸어오던 정치입문의 뜻을 달성했다. 1848년 2월혁명 후에는 제헌의원, 다음해에는 외무장관에
임명되었으며, 51년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반대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뒤 정계에서 물러나 역사연구에 전념했다. 프랑스 혁명을 주제로
한 <구제도와 프랑스 혁명>에서 프랑스 혁명을 루이14세 이후의 전제정치의 당연한 귀결로 보고, 정치생활에서의 <자유정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중앙집권체제가 가져다 주는 획일적인 지배를 경고했다. 1857년 영국을 다시 방문하여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을 알현한 것을
그의 생애의 마지막 영예로 남기고 곧 쓰러졌다.

    조국 프랑스를 위해 미국 민주주의 분석
이 책은 저자가 친구와 함께 1831--2년까지 9개월간 미국을 방문하여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쓴 책으로 제1권은 1835년, 제2권은 1840년에
각각 발간되었다.
당시의 미국은 소위 잭슨 민주주의 시대로 신대륙은 생생한 자신과 힘찬 활력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는 이러한 미국 사회에 대한 포괄적
연구를 시도하여 미국 민주주의의 원초적인 모습을 담아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미국은 하나의 길잡이에 불과했다. 즉, 그는 미국
민주주의의 정치적 성격을 분석하여 그의 조국인 프랑스의 민주주의 확립에 기여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미국 속에서 미국인들보다도
많은 것을 보았다. 나는 거기서 민주주의 자체의 형상을 구했다>>고 그는 실토했다.
그는 연구과정에서 <인간조건의 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도래를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필연으로 보게 되었다.
<<데모크라시를 저지하려는 것은 신에게 반항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여러 국민에게 있어서 신의 섭리에 의해 강제되는 사회상태에
적응하는 방법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을 일관하는 개념은 거의 종교적 신념에까지 고양된 <자유의 사랑>이다. 저자는 자유와 관련하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문제를
검토하고 그 명암을 냉정히 관찰했다. 그가 당시에 이미 대중 민주주의 미래에 우려를 표명한 바 있으나, 그래도 그는 미래를 믿고
<<민주주의를 교육할 것>>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 <새로운 정치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그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미
J.S.밀이 비평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에 관하여 씌여진 최초의 철학적 저술>>이며 <<정치의 과학적 연구의 새로운 단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느 의미에서 경제학에 있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필적할 19세기 정치학에 있어서의 최대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최초의 이론서
우리는 이 책에서 초기 미국의 민주주의가 정착해가는 과정을 정치적사회적관습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오늘날 고도로 산업화한 미국의 모습은 소박했던 옛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나, 그들과 불가피한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그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데모크라시>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 이는 단순한 정치형태의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의 평등>
즉, 인간의 사회상태에 있어서의 여러 조건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토크빌은 넓은 의미의 사회적 평등을 데모크라시의 동의어로
사용했다.
제1권에서는 영국계 미국인의 기원과 사회상태를 서술한 후 미국의 자치기구, 사법권, 정치적 재판관할권, 연방헌법, 정당제도, 언론제도,
미국 민주주의의 장점 등을 고찰하고 미국의 민주공화정을 유지시켜주는 주요원인을 분석했다. 이 책의 서론에서 그는 미국에서 무엇보다도
놀란 것은 미국인들 사이의 제반조건의 평등이 매우 성숙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조건의 평등
그는 근대사회의 역사적 운동을 귀족이 사회의 사다리를 내려오고 평민이 올라간 <사회적 평준화운동>으로 보고, 근대사회의 모든 현상을
<평등>이라는 관점으로 환원시켜 이것을 <데모크라시>라는 용어로 총괄했다. 따라서 저자의 대모크라시 연구는 실제로는 근대사회 그 자체에
뛰어나 정치학적인 분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처음에 제1권인 1835년에 나온 다음 5년 후 제2권이 나왔는데, 저자의 주제에 대한 접근방식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제1권은
오히려 본서의 제목에 어울리게 미국의 민주적 사회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많은 자료를 인용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이 독자적인
자연적역사적 제조건에서 민주적 사회를 형성하기에 이른 과정을 추구하고, 다시 여러 정치제도와 그 실제의 운용에 대하여 상세히
고찰했는데, 그것은 정치사회학적 분석의 훌륭한 실례를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수의 압제 경고
특히 본서의 제2편 제7장에서는 미국에 있어서의 <다수의 만능과 그 영향>이라는 데모크라시의 대중화에 수반되는 새로운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즉, 저자는 미국의 민주적 사회에서 다수의 만능이 개인적 독립성 및 자유를 위협하고 <다수의 압제>로 발전할 위험성이 있는 점,
그리고 같은 현상이 서구의 민주적 사회에도 장차 일어날 가능성을 지적하고, 이러한 <다수의 압제>에 대하여 아무런 예방조치도 강구하지
못할 경우에는 <조만간 한 사람의 무제한적 권력>의 길로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토크빌이 이미 민주주의에 있어서의 평등과
자유와의 이율배반, 즉 데모크라시의 변증법에 대하여 예리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제2권에서 한층 성숙된 깊이를 지니고 일종의 예언자적인 인상조차 풍긴다. 즉, 제1권은 제2권의 단순한 계속이 아니라, 저자는
본서의 제명에 구애받지 않고, 제1권의 성과 위에 서서 미국을 초월하여 민주적 사회(데모크라시)의 일반적인 운동법칙을 파악하여 한다. 그
때문에 미국은 이제 완전한 모델이 아니라 단순한 하나의 실례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제2권의 접근방식은 추상적사변적이며 저자는
그의 고찰을 통해서 보편적 명제를 도출하려 하고 있어 J.S.밀의 말처럼 <<데모크라시에 관하여 씌어진 최초의 철학적인 저술>>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는 당시 충분히 이해되지 못했다. 제1권은 전례없는 성공을 거두어 그의 명성을 높였는데, 제2권은 제1권과는 달리
<명료하지 않은 미해결의 사항>이 서술되어 있었기 때문에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하여 그다지 읽히지도 않았다. 그러나 토크빌은 본권에서
데모크라시의 사상정조도덕 등에 대한 사회적 영향을 광범하게 고찰, 민주적 사회의 전체 구조를 파스칼적인 <심정의 논리>로
파악하여 했는데, 그것은 멀리 현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예견을 포함하고 있다.
저자는 본권의 4편에서 그의 연구성과를 종합요약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이다. 즉,
저자가 찾아낸 것은 근대사회(대중사회)의 구조적 특질을 통합하여 탄생되는 새로운 전제주의, 즉 <민주적 전제주의>의 위협이다. 그럼에도
저자 외에 이 대중 민주주의의 변증법을 예견할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데모크라시의 대중화에 의해서 사회적인 평준화가 진행됨에 따라 각 개인은 그의 위에 높이 솟은, 사회를 대표하는 권력(정부권력)에 원조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권력의 강화와 입법의 획일화가 스스로 이루어지고 정부권력은 중앙집권화하게 되는데, 이러한
자연스런 발전과정을 밟아가면 새로운 전제주의의 길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즉, 저자는 데모크라시에 있어서의 평등과 자유의 이율배반을
통해서 출현되는 <민주적 전제주의>라는 새로운 현상의 구명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새로운 <리바이어던>의 모습을 매우
인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권력은 인간의 의지를 파괴하지는 않으나 나약하게 혹은 비뚤어지게 만들면서 지도한다.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일은 거의 없으나
행동하는 것을 항상 방해한다. 폭정을 행하지는 않으나 구속하거나 무력하게 만든다. 귀찮게 굴거나 경멸하거나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국민을 위협하여 열심히 일만 하는 동물의 무리에 지나지 않는 상황에 빠뜨려버리는데, 그 목양자는 정부인 것이다.>>
이리하여 저자는 제1권에서 지적된 <다수의 압제>와 나란히 <민주적 전제주의>의 위협을 경고하면서 시대적 문제의 핵심을 데모크라시와
자유의 조화속에서 발견하고 개인의 독립성 및 개인의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련의 제도적 보장을 제안하는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에 대한 고전적 저술
<자유의 순교자> 토크빌의 명성은 그의 사후 10년 동안, 즉 유럽 강대국들이 보통 선거권을 받아들인 시기에 절정에 달했다. 본서의 제1권은
크게 환영받아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이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에서 자유주의가 소생하기 직전에 죽은 그는 영국에서는
1860년대 선거권 개혁논의시,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에 의해 탄생된 제국성립 이전 자유화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 그의 이름이 거명되었다.
그러나 1870년대 이후 그의 영향력이 감퇴하기 시작하여 20세기 초가 되면서 그는 거의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특히 제2권은 J.S.밀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인의 무관심 속에 이 책은 저자의 운명과 함께 잊혀지게 되었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지식에 익숙한 세대에게 그의 저작은 너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었다. 더욱이 민주주의가 계층간의 갈등을 완화시키는
거대한 균형력을 갖춘 힘이라는 그의 예언은 빗나간 듯이 보였다. 산업화가 가져온 새로운 불평등과 갈등을 토크빌이 미리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럽에는 계급없는 사회가 출현하지 않았고, 미국은 계급없는 사회가 되기는 커녕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추구함으로써
유럽적인 국가가 되었다.

  토크빌 르네상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두 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면서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전체주의의 위협이 가시화되자 소위 <토크빌 르네상스
현상>이 일어났다. 그의 저작은 다양한 철학적사회학적 가설을 풍부하게 담고 있고 미국 민주주의 정치적 성격을 규명하고 있어 근대
민주주의의 <예언의 서>로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1945년 이후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가 재부상하게 되고, 여기에 냉전에 의해 세계의 양국화 현상까지 겹치자 서방세계에서는 사회개혁의
예언자로서 마르크스에 맞설 수 있는 인물로 토크빌을 내세우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의 발전경향에 대한 저자의
역사적인 통찰이 시대의 지평선을 훨씬 초월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대중 민주주의의 도래와 함게 J.P.마이에르의
<<토크빌을 이해할 시기가 겨우 성숙되고 있다>>는 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사회적지적 분위기가 또다시 일변하여 그의 인기가 다시 하락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정체된 독재사회를 경멸하고
계급차별이 마침내 사라지며 자유를 최종적인 가치로 믿는 이들에게 토크빌은 권위와 영감의 원천으로 늘 인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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