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삑도요새가 당신에게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여러 해 전 이웃에 사는 어떤 여성이 미국 북서부의 해변에서 겨울을 보낼 때
경험한 일을 내게 들려 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그녀가 들려 준 내용을 그대로 글로 적어 놓았다. 훗날 문인들의 모임에서 내가
발표할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나는 그 이야기를 발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그 여성이 내게 들려 준 이야기가 있다. 나는 아직도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그것으로부터 받은 깊은 인상을 지워 버릴 수 없다.
내가 사는 집 부근의 해변에서 그 여자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아이는
여덟살이었다. 세상이 나에게 문을 닫아 버릴 때마다 나는 오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해변까지 차를 몰고 가곤 했다.
아이는 모래성인지 뭔지를 만들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바다처럼 파란색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이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인사를
대신했다. 꼬마 아이에게 신경쓸 기분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가 말했다.
"난 지금 뭘 만들고 있는 중이에요."
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으며 건성으로 물었다.
"나도 그건 안다. 근데 뭘 만들고 있는 거니?"
아이가 대답했다.
"나도 잘 몰라요. 난 그냥 모래가 손바닥에 닿는 걸 느끼고 있을 뿐이에요."
괜찮은 소리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신발을 벗어들었다. 그때 삑삑도요새 한
마리가 근처를 날았다.
아이가 말했다.
"저 새는 기쁨이에요."
"저게 뭐라고?"
"기쁨이에요. 엄마가 그랬는데 삑삑도요새는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대요."
그 새는 해변 저쪽으로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잘 가라, 기쁨아. 그리고 어서 와라, 고통아."
나는 그 자리를 떠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나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내 삶은 완전히
균형을 잃은 상태였다.
그러나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줌만 이름이 뭐예요?"
내가 대답했다.
"루쓰. 난 루쓰 피터슨이야."
아이가 말했다.
"제 이름은 윈디예요."
아이는 웬디라는 이름을 윈디라고 발음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 이름이 바람 부는
것(원디)처럼 느껴졌다.
"그리구 여덟살이에요."
"안녕, 윈디!"
내가 그렇게 부르자 아이는 낄낄거렸다.
"아줌만 재미있으세요."
우울한 기분에도 불구하고 나도 따라 웃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이의 음악소리 같은 웃음이 계속해서 날 따라왔다. 아이는 말했다.
"또 오세요, 피터슨 아줌마. 또다시 행복한 날이 찾아올 거예요."
그 다음 몇 일, 몇 주 동안을 나는 완전히 타인들을 위해 시간을 쏟아야만 했다.
버릇없는 보이스카웃 단원들, 교사와 학부모의 만남, 몸이 불편한 어머니...
설거지를 끝내고 났는데 아침 해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난 삑삑도요새가 필요해."
나는 서둘러 코트를 챙겨 입었다.
해변의 변함없는 위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약간 쌀쌀했지만 나는 내게
필요한 고요를 되찾으려고 노력하면서 해변을 따라 걸었다. 난 그 아이에 대해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을 때 깜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피터슨 아줌마. 저랑 함께 놀이 하실래요?"
난 약간 성가신 투로 되물었다.
"무슨 놀이를 하고 싶니?"
아이가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줌마가 말해 보세요."
난 약간 빈정거리듯 말했다.
"엉덩이로 글씨 쓰는 놀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러니?"
딸랑거리는 웃음소리가 또다시 터져나왔다.
"전 그게 어떻게 하는 놀인지 잘 몰라요."
"그럼 그냥 걷자꾸나."
아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아이의 얼굴이 매우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음을
눈치챘다. 내가 물었다.
"넌 어디 사니?"
"저기요."
아이는 여름 별장들 중 하나를 가리켜 보였다. 이상하군, 나는 생각했다. 겨울철인데
여름 별장에서 살다니.
내가 다시 물었다.
"학교는 어딜 다니니?"
"전 학교에 다니지 않아요. 엄마가 그러는데 우린 지금 방학이래요."
해변을 따라서 걷는 동안 아이는 어린 여자애들이 흔히 하는 얘기들을 재잘거렸다.
하지만 내 마음은 딴 데로 가 있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쯤 웬디는 행복한
하루였다고 말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 나도 아이에게 미소를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주가 지나서 나는 거의 미쳐 버릴 것 같은 마음 상태가 되어 다시 해변으로
달려갔다. 나는 웬디에게 인사를 할 기분도 아니었다. 아이의 엄마가 여름 별장의
현관에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아이를 집안에 있게 하라고 고함을
쳐주고 싶었다.
웬디가 내게 말을 걸었을 때 나는 심통맞게 말했다.
"얘야, 미안한 말이지만 난 오늘은 혼자 있고 싶구나."
아이는 전과 다르게 얼굴이 창백하고 숨이 가빠 보였다. 아이가 물었다.
"왜요?"
나는 아이에게 얼굴을 돌리며 소리쳤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으니까 말야!"
그리고 나는 후회했다. 오, 하나님! 내가 지금 어린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그랬군요. 그럼 오늘은 행복하지 않은 날이네요."
"그래. 어제도 그랬고, 그저께도 그랬고, 그그저께도 그랬어. 언제나 행복하지 않았어.
아, 넌 저리 가거라."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셨어요?"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는 거니?"
나는 아이에게, 또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아이가 말했다.
"아줌마 엄마가 돌아가신 것 말예요."
"물론 상하다마다!"
나는 닦아세우듯이 말하고는 내 자신에 파묻혀 그 자리를 떠났다.
그로부터 한 달여쯤 지나 내가 다시 그 해변으로 갔을 때 아이는 거기에 없었다.
죄책감이 들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어서 나는 아이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산책을
마친 뒤 그 여름 별장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짙은 갈색 머리에 찡그린 얼굴을 한
젊은 여자가 문을 열었다.
내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전 루쓰 피터슨이라고 해요. 댁의 딸이 보고 싶어서 왔어요. 오늘은
어딨는지 안 보이는군요."
"아, 예, 피터슨 부인. 어서 들어오세요."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웬디에게서 부인에 대해 많이 들었어요. 아이가 부인을 괴롭히지나 않았는지
걱정되는군요. 아이가 귀찮게 했다면 제가 대신 사과드려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웬디는 무척 명랑한 아이인 걸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알고 스스로 놀랐다.
"그런데 어딜 갔나요?"
"웬디는 지난 주에 죽었답니다, 피터슨 부인. 그 애는 백혈병을 앓고 있었어요. 아마
부인께는 말씀드리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충격을 받고 의자를 움켜잡았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앤 이 해변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 애가 여길 오자고 했을 때 우린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었어요. 이곳으로 와서 건강이 좋아진 것 같았고, 그 애가 말하듯이
행복한 날들을 많이 가졌어요.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더니
그만..."
그녀는 말을 맺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그 애가 부인께 전하라고 남긴 게 있어요. 그걸 어디다 뒀더라... 제가 그걸 찾는
동안 잠깐만 여기 앉아 계세요."
난 바보처럼 고개만 끄덕였다. 이 사랑스런 젊은 여자에게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무슨 말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그녀는 내게 때묻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겉봉에는 어린아이의 필체로 큼지막하게
<피터슨 아줌마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봉투 안에는 그림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밝은 색상의 크레용으로 노란 해변과 파란 바다, 그리고 갈색 새 한마리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림 밑에는 정성들인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삑삑도요새가 당신에게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눈물이 내 눈에서 흘러내렸다.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거의 잊고 지내온 내 가슴이
활짝 열렸다. 나는 두 팔로 웬디 어머니를 껴안았다.
"정말 안 됐어요. 정말 안 된 일이에요. 정말로."
나는 그렇게 계속 중얼거렸다. 우린 둘 다 흐느껴 울었다.
지금 그 소중한 작은 그림은 액자에 넣어져 내 방에 걸려 있다.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그 아이가 산 인생처럼 짧기만 한 그 문장이 나에게 마음의 평화와 용기와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해준다. 그것은 바다처럼 파란 눈과 모래 빛깔의 머리칼을
가졌던 한 소녀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그 아이가 내게 사랑의 선물을 전해 준 것이다.
<메리 셔먼 힐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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