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및 사실주의 문학을 건설한 최초의 작가로 간주되는 염상섭이 쓴 이 작품은 30년대 서울의 보수적인 중인계층 출신으로 중산층
집안의 조씨가의 몰락과정을 그린 대표적 장편으로, 유교 전통사회에서 식민지시대, 근대사회로 변모하던 당시의 현실과 정신사의 이면을
빼어나게 그린 대표적인 가족사 소설이다. 이 소설은 사실적 관찰을 통해 식민지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과 당대 젊은
지식인들의 다양한 초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생애와 작품활동
<<작가는 작품으로 승부한다>>는 말을 즐겨했던 염상섭을 두고 <<만약 그가 한국소설사의 첫머리에 없었다면 우리 문학이 얼마나
초라했을까>>라고 안도한 어느 작가의 말처럼 그의 존재는 우리 문학에서 <장인정신의 표본>으로 깊이 새겨져 있다.
호는 횡보. 서울에서 태어나 대한제국 중추원 참의를 지낸 바 있는 선조로부터 <동몽선습>을 배웠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유아시절에는
부유한 편이었으나 부친이 한일합방으로 벼슬에서 물러나자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1911년 보성소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중학교에 입학하나 이듬해 도일, 도쿄의 아사부 중에 입학한다.
그가 15세의 어린 나이에 유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그의 집안이 문명개화의 세례를 먼저 받았다는 것, 그의 부친이 고위층과 친분이
있었다는 것 등의 이유에서였다.
1917년 그는 게이오대학 문과에 입학하여 이때 몇 명의 일본정치가들에게 <조선독립론>을 써보낸 적이 있는데, 그의 성숙한 식견에 모두
놀랐다고 한다.
1919년에 염상섭은 학비조달 불능으로 게이오 대학을 중퇴하고 이때의 오사카 거주 동포들을 상대로 독립선언서를 돌리고 대거 궐기를
위해 텐노지 공원에서 현장을 미리 검색하려다 체포된다. 그는 금고 10월형을 받았으나 무죄석방된다. 당시 도쿄에서는 무산계급의 해방을
부르짖는 노동쟁의가 치열했는데, 그 역시 이에 공감하고 석방된 후 어느 인쇄소에 직공으로 취직, 노동자 생활을 통해 투쟁의식을 키우고
학비와 생활비를 벌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20년 귀국하여 <동아일보> 창간과 함께 기자가 되고 동인지 <폐허>창간에 참여하기도 하나, 이내 신문사를 사직하고 오산중학
교원으로 가며, 평론 <자기학대에서 자기해방에>를 발표하고 문학 비평가의 역할문제를 에워싸고 김동인과 논쟁을 벌인다.
그의 작가로서의 활동은 21년분터 시작되는데, 이해 처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 문단에 동단하며 특히 김동인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22년에 단편 <제야>, 장편 <만세전> 등을 발표, 사실주의 문학세계를 구축해간다. 특히 <만세전>은 식민지 치하의 암담한 시대적
현실을 묘사한 초기대표작의 하나다. 창작외에 그는 또한 <개성과 예술>, <지상선을 위하여> 등의 평론을 발표, 최초의 자연주의 문학론을
소개한다.
25년에는 <시대일보> 사회부장에 취임하고, 단편 <금반지> <정화> <고독> <윤전기>, 27년에 장편 <사랑과 죄>, 단편 <밤> <두 출발> 등을
발표, 사실주의에의 경도가 더욱 농후해진다.
29년에 결혼하며 <조선일보> 학예부장에 취임, 장편 <광분>, 단편 <똥파리와 그의 아내>를 발표, 점차 작가로서의 원숙기에 접어든다.
31년에는 <조선일보>를 시작하나 왕성한 창작력을 발휘, 그의 문학의 원류를 형성하는 한편, 장편 <삼대>, 그 속편인 <무화과>와 <백구>를
차례로 발표한다. <삼대>는 사실주의적 수법으로 3대에 걸친 가족의 세대변천과정을 통해 일제시대의 사회상을 총체적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그의 가장 뛰어난 대표작이다.
36년 염상섭은 <만선일보> 편집국장으로 초빙되어 가며, 이후 장편 <불연속선>, 단편 <실직> 등을 발표, 해방 직전까지는 안동 대동항
건설국의 홍보담당관으로 일한다. 45년 안동에서 해방을 맞은 그는 만주거류민단 부단장이 되어 <거류민보>에 힘쓴다.
36년에 귀국한 그는 <경향신문> 초대 편집국장에 취임, 언론계에 종사하며 창작활동을 계속한다. 이 무렵부터 625동란까지 발표한
주요작품으로는 단편집 <첫걸음>을 비롯하여 48년에 단편집 <삼팔선> <재회>, 49년에 단편집 <해방의 아들>, 그리고 그의 후기의 대표적인
단편들인 <임종> <두 파산> <1대의 유업>, 50년에 <굴레> 등이 있다.
51년에 동란 중 그는 해군 정훈장교로 종군하며 단편 <탐내는 하꼬방> <산도깨비> 등과 장편 <취우> 등을 발표한다. 54년에는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되고, 서라벌예대 초대학장으로 취임하나 폭음과 과로로 건강을 해치게 된다. 그러나 창작활동은 계속하여 55년에 단편
<짖지않는 개> <부부>, 57년에는 단편 <절곡> <동서> <돌아온 어머니>, 58년에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 59년에는 <싸우면서도 사랑은>
<올수> <동기> 등을, 60년대에는 단편집 <일대의 유업> 등을 발표한다.
건강이 나빠진 염상섭은 62년 31문화상 수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등의 영예를 받으나 <사상계>에 <횡보문단회상기>를 연재하다
이듬해 신병으로 사망했다.
문학적 특성
염상섭은 초기의 자연주의에서 출발했으나 후에 사실주의로 발전하여 끝까지 시종일관했다. 그는 김동인현진건과 함께 한국
근대소설 초창기의 선구자이자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 근대소설사의 초기에 사실주의 문학을 건설한 선구적 작가 중의 한
사람이며 최초로 자연주의 문학론을 제기한 중심인물이었다. 그의 문학사적 공적에 있어서는 그가 31운동 이후의 신문학운동의
선구자였다는 일반적인 공적 외에 근대적인 비평활동의 선구자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점과, 자연주의 및 사실주의 문학을 건설한 최초의
작가라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염상섭 문학에 대한 평가는 일부 부정론도 제기되지만 일반적으로 비판적 긍정론이 우세하다. 그 평가는 관점에 따라 논의의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만, 여기서는 시대적 현실인식, 세정과 서민의식, 사실주의 등으로 요약해본다.
1. 시대적 현실인식
그의 많은 작품 중에서 그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두 장편 <만세전>과 <삼대>는 식민지 체재하의 당대적 현상의 충실한 묘사를 통해 작가의
현실인식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작품이다.
<만세 전>은 식민지 시대문학의 수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1인칭시점 형식에 의해 서술되는 이 작품은 일본 도쿄에 유학 중인 주인공이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향하려 하는 데서 시작하여 귀향 후 끝내 부인을 사별하고 다시 서울을 떠나게 되는 여정을 그리고 잇다.
식민지의 현실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관점이 시종 비판적자조적이며 궁극적인 혈실대응의 태도가 모호하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만세전>은 식민지 사회양상 폭넓은 제시를 통해 당대적 현실인식을 진지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만세 전>에 제시된 식민지 시대현실의 묘사와 작자의 현실인식은 <삼대>에서는 한 가정 속에서의 세대간 대립과 갈등이라는 양상을 통해
보다 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삼대>는 식민지시대 최고의 문학적 작품으로 평가되는 작품으로, <만세 전>에서 직감적으로 파악한
한국현실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라는 평을 듣는다. 염상섭은 <삼대>에서 한 가족을 중심으로 부정적 혹은 긍정적인 결핍과 역사적
당위의 문제를 시사하고 있다. 그의 현실인식은 <만세 전>에 비해 치열성이나 강열도가 약화되었지만, 그것이 폭넓고 밀도있는 작품구조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야의 확대와 전지성의 심화를 느낄 수 있다.
2. 세정과 서민의식
그의 작품경향은 처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만세 전>이 대표하는 초기의 3, 4년을 지나면서 뚜렷한 변화를 드러낸다. 즉, 지식인의
우울과 침통이나 반항적 감정 등이 짙게 노출되어 있는 초기 작품세계에서 가족을 배경으로 일상서민의 새활의식과 세정을 치밀하게
그려나가는 평범한 사실적 작품세계로 변모하게 된다. 주관적주체적인 색채가 감소되고 객관적 표현에 철저해지기 시작하며, 제재는
편협해지고 범속해지게 된다. <삼대>도 작품의 다양한 인물군과 확대된 시간적 배경으로 그러한 한계성을 상당히 극복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가족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 유사성이 있다.
염상섭의 작품세계가 식민지 사회라는 거시적 방향에 시선을 돌리고 있지만, 식민지 시대의 세대교체 문제를 깊이와 폭을 가지고 다루고
있는 <삼대>의 세계와는 스케일이 다른, 서민들의 범속한 일상사와 세정을 미시적으로 그리는 작품세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그리고
후자가 오히려 그의 작품세계의 본류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그의 작가정신과 작품의 세계에 보다 정확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3. 사실주의
초기의 작품인 <표본실의 청개구리>에서 자연주의 속성을 보이기도 한 염상섭은 전반적으로 사실주의적 창작방법을 고수해온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20년대의 다른 사실주의적 작가들과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사실주의적 방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의 작품세계에 있어 관찰자적인 객관적인 태도에 있다. 그의 객관적 태도는 대상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작자의 주관을
일절 배제하는 것으로 그 철저성에 있어 같은 사실주의 계열의 한국작가들 중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플로베르가
<<예술은 개인적 감정과 정서적감정적 감수성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한 비개인성의 입장을 철저히 실천한 것이 된다.
주요 등장인물
조의관 : 조씨 가문의 가장으로 완고한 봉건의식의 소유자. 재산을 노린 후취 수원집 일당에 의해 독살당함.
조상훈 : 조의관의 아들. 일본 유학생.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상과 행동에 반감을 가진 계급운동의 심정적 동조자.
김병화 : 덕기의 중학동창이자 마르크스주의자.
작품의 주요내용
덕기의 조부 조의관은 고루한 봉건의식의 소유자다. 어렵사리 모은 거액의 재산으로 집안의 크고 작은 제사를 받들고, 가문의 명예를
키워나가는 것을 가장 큰 일로 삼는다. 칠순 노인이면서 부인과 사별 후 서른을 갓 넘긴 수원댁을 후취로 들여 네살박이 딸까지 두고 있다.
조의관이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은 바로 아들 조상훈이다. 맏아들이면서도 집안일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교회사업에 골몰해 짐안의
돈을 바깥으로 빼돌리는 데만 혈안이 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더구나 조의관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봉제사를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우상숭배라고 반대하고 전혀 돌보지 않는 것이다. 그는 아들보다도 손자인 덕기에게 더 큰 믿음을 가진다. 집안의 모든 일도 손자인 덕기와
의논해서 결정하고, 자신이 죽고 난 후 재산관리도 덕기에게 일임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덕기의 부친인 조상훈은 희대의 위선자다. 미국유학까지 마친 인텔리에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요 교회 장로인 그는 교회를 통한 사회운동과
교육사업에 큰 뜻을 품고, 집안의 재산으로 그런 사업에 직접 투자하기도 하고 민족운동가의 가족을 돌보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의
실생활은 구린내나는 축첩과 노름 그리고 술로 얼룩진 만신창이 난봉꾼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보살피던 운동가의 딸인 홍경애와 관계를
맺어 아이까지 낳고도 무책임하게 내동댕이치는가 하면, 당대의 오입쟁이들이 출입하는 매당집이란 곳엘 드나들면서 나이 어린 여자들과
황음에 빠진다.
덕기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다른 신세대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도 친구 김병화처럼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 병화가 하는 일에
심정적으로 동조를 하기는 해도 그 자신은 법과를 마쳐 판사나 변호사가 되려는 꿈을 품고 있다. 자신의 그런 꿈이 가끔 운동가인 병화의
조소를 받아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병화는 목사인 아버지와 사상대립으로 가출해서 이곳 저곳 떠돌면서 기식하는 형편이지만 자신의 뜻을
절대 굽히지 않는 반면, 덕기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정면충돌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는 세대를 달리하는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이해하고 동정하기도 한다.
잠재되어 있던 조시 가문의 불화와 암투가 전면에 드러난 것은 조부의 임종을 앞두고 생긴 재산분배 과정에서였다. 조의관의 후취인
수원집과 그를 조의관에게 소개해준 최 참봉 등은 재산을 가로첼 욕심으로 유서변조를 계획하고 조의관을 독살한다. 의사들의 배설물 검사로
비소중독이 판명되자 상훈은 더 명확한 사인규명을 위해 사체부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집안 어른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고
범인을 찾기도 흐지부지되고 만다. 그러나 손자 덕기가 나타나 수원집 알당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재산관리권은 덕기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다. 상훈은 범적 상속자인 자신을 건너뒤어 아들인 덕기에게 그 권리가 넘어가자 유서와 토지문서가 든 금고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힌다.
한편 사훈에게 농락당하고 아이까지 낳은 후 버림받았던 홍경애는 비록 표면적으로는 술집 여급으로 나가면서 생계를 꾸려가지만 해외의
독립운동가인 이우삼과 연계를 가지면서 그를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한다. 경애는 과거에 묶이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애쓴다.
그는 병화와 자주 만나는 사이에 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낟. 그들은 주그마한 잡화상을 경영하며 경찰의 눈을 속이지만 그것이 다른
운동가인 장훈 일파들의 오해를 사게 되어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한편 이우삼이 국내를 다녀간 뒤 서울에서는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불어닥친다. 비밀조직인 장훈 일파는 물론, 가게를 운영하며 경찰의 눈을 피해왔던 병화와 경애도 검거된다. 그리고 덕기도 병화에게 자금을
대주었다는 혐으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다.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장훈은 비밀유지를 위해 코카인으로 음독자살을 한다. 장훈의 자살로
갑자기 조사가 미궁에 빠지자 연행되거나 검거되었던 사람들은 다 풀려나오게 된다. 가짜 형사를 등장시켜 금고와 문서를 훔쳐냈던 상훈도
결국 훈방조치로 풀려난다.
덕기는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공백을 느끼면서 이제 자신의 어깨 위에 내려얹힌 조씨가문의 유업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지
망연해한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1932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한국 신문학사를 통해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30년대 서울의 이름난 만석군 조씨 일가를
무대로 조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 이 3대가 일제 식민지 하에서 어떻게 몰락하고 어떤 의식을 지니며, 당시 청년들의 고뇌가
어떠했는가를 사실적인 수법으로 파헤쳐 인간심리를 미묘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대지주이며 재산가인 조부 조의관은 양반행세를 하기 위해서는 족보까지 사들일 정도로 명분과 형식에얽매인 봉건제도를 좇는 구세대의
전형이고, 아버지 상훈은 신문물에 물들어 이를 받아들이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자 하면서도 축첩을 하고 애욕에 사로잡혀
이중생활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과도기적 인간형이다. 아들 덕기는 선량한 인간성의 소유자이나, 조부와 아버지의 이러한 부조리 속에서
재산을 지켜나가는 일에 한정되어 적극성을 잃은 우유부단한 인간형으로 그려진다.
이 3대의 이야기는 조부의 죽음과 함께 재산상속문제에 불이 붙으면서 주변인물들의 추악성을 그려보임으로써 절정을 이룬다. 덕기의 집은
조부가 죽자 쑥밭이 되게 망해버린다. 젊은 사회주의자들은 그들 사이에도 불신과 갈등이 있어 한패끼리 잔인한 테러가 횡행한다. 불의의
테러를 당한 덕기의 애인 필순의 아버지는 늑골이 부러져 입원을 한다. 덕기는 열심히 간호를 했으나 필순 아버지는 그의 가족을 덕기에게
부탁하며 죽어간다. 덕기의 친구 병화가 추구하는 인강에의 길, 필순 아버지의 불행한 일생 등에서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삶을 전개하려는
의도가 보이며, 끝으로 새로운 세대, 즉 덕기와 병화 들의 명확한 새 세계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변모해가는 역사적사회적
상황에서 세대교체를 분명하게 보였다. 장편인만큼 여러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나 주로 삼대에 걸친 31운동 당시를 전후한 시대상을
그린 작품이다.
횡보는 <삼대>의 집필ㅇ의도에 대해 <<새로운 뜻을 뼈로 삼고 조선현실 사회의 움직이는 모양을 피로 하고 중산계급의 사람과 그들의
생각을 살로 붙여서 그리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대 삶의 광활한 세계를 펼쳐보이는 소설 <삼대>는 이 같은 목표를 훌륭하게 성취하고 있으며, 우리 문학에 있어서 하나의 분기점으로
여겨진다. 동세대의 다른 작가들이 추상적인 지식이나 책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구체적인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그려나갔다면, 그는 진짜
사람들이 숨을 쉬고 사는 현실에 대한 감각을 <삼대>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삼대>는 우리 소설사에서 기념비적 작품이자 리얼리즘의 승리로 손꼽을 수 잇는데, 그 이유는 서울토박이 언어감각을 살려 당시의 중산층
생활을 장편적 수준에서 구체적이고 정확히 그려내고 있다. 30년대의 식민지 사회를 보여주는 데는 어떤 역사나 논문보다 이 소설의 몫이
크기 때문이다. 이 소설 이후 그는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시점, 장면제시와 개성있는 인물창조에 대한 소설화 방법을 정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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