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Unterm Rad>
작가: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시인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며 그가 다니던 신학교를 뛰쳐나온 천부적 시인 헤르만 헤세는 정신적 방황과
혼미를 거듭하면서도 주옥같이 아름다운 시와 글을 썼다. 이 작품은 자신의 유년시절을 수채화처럼 펼친 자전적 소설로, 소년 시절의
즐거움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그의 고향 슈바벤을 배경으로 절실하게 묘사했으며, 엄격한 교육제도 아래서 희생되는 학생들의 창조적
개성을 폭로했다.
동양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작가
<데미안>의 작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헤르만 헤세는 동양인의 심성에 더 어울리는 작가다. 그의 부친은 선교사였고, 모친은 동양학자의
딸로서 인도에서 출생한 경건한 여인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동서양의 정신을 꾸준히 탐색하여 훗날 괴테와 도스토예프스키처럼
노자공자역선 등을 섭취하여 소위 <세계신앙>이라는 자신의 <도>에 도달했다.
라틴 어 학교를 마친 헤세는 14세에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관비생으로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는 선천적인
시인의 기질로 판에 박힌 듯한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이탈했다가, 결국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하게 된다.
<시인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느껴 신학교를 도망쳐나오긴 했으나 시인이 되는 길은 요원했으며 혼미와
우울증으로 자살을 기도하는 등 생사의 기로에서 그는 몇년간 신음했다. 그는 한동안 기계공이나 서점의 점원 노릇을 하며 그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런 중에도 서점의 점원으로 있으면서 괴테나 실러의 문학작품을 탐독할 수 있었던 것은 퍽
다행이었다. 가장 파란이 많았던 이 시절의 자전적 기록이 <수레바퀴 아래서>다.
1904년에 애절하고 체념에 찬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써서 문단의 호평을 받자 본격적인 작가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그해에 그는 9년
연상인 피아니스트 마리아와 결혼했고, 1906년 발표한 <수레바퀴 아래서>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즈음 그는
스위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 등을 여행했고, 1911년에는 인도를 여행하여 동양에 관한 관심이 깊어졌다. 1차대전중에는 중립국
스위스에 살면서 군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배격하고 독일의 전쟁포로들과 수용자들을 위한 잡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항상 자기를 <고독자>로 자칭한 헤세는 1919년에 독일을 떠나 스위스의 남단 아름다운 호수 몬타뇨라에 정착하여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은
채 혼자 사색과 창작에 몰두했다. 인간의 위기에 대한 심오한 감성을 지닌 작가로서, 심리학자 융이나 그의 제자들과도 교유했는데 이
영향이 <데미안>에 나타난다. 이 소설은 고뇌하는 청년의 자아인식 과정을 고찰한 작품으로, 당시 곤경에 빠진 독일국민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가정적으로는 불행하여 1919년에 마리아와 이혼하고 1931년에 재혼했다.
1차대전중에는 순수한 휴머니즘 입장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수호하려는 반전논문을 발표하여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의
후기 문학활동은 인간본성의 이중성 탐구에 집중되었다. 1930년에 발표된 <지와 사랑>에서는 기존 종교에 만족하는 지적인 금욕주의자와
자기 자신의 구원 형태를 추구하는 예술적 관능주의자를 대비시켰다. 1946년에 20세기 문명 비판서인 미래소설 <유리알 유희>를 발표하여
동년에 <한 비극적인 시대에 인간성의 깃발을 높이 내세운 시인>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62년 85세를 일기로 뇌출혈로 운명했다.
내면의 길 추구한 작품세계
이제는 역사 속에서 서서히 멀어져가고 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은 당시 유럽인들에게 자신들이 이룩한 문명과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했다. 애국과 정의라는 미명하에 엄청난 살육이 저질러지는 모습을 보고 양심적인 지식인들을 깊은 고뇌에 사로잡혔다. 헤세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유럽의 불행을 지나친 물질주의 추구로 인한 인간의 자기상실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역설했다. 전쟁이 끝나자 헤세는 이 세계와 인간 모두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해 반성해야 하며,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데미안>을 비롯하여 <싯다르타><황야의 이리>등은 인간의 구도적인 모습을 담았고, <유리알 유희> 등은
일종의 문명비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는 현대 독일의 양심을 대표하는 작가로, 그의 작품에는 줄곧 인간존재의 근원에 도사리고 있는 2원성의 대결, 서유럽 문화의 몰락과
동양적인 신비에의 동경, 영혼의 자유와 인간성의 고귀함 등이 나타나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인간의 내부에 공존하고 있는
양면성을 발견하고 그 존재를 다 같이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통일과 조화로 이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자연에 사랑과 지극히 서정적이며 전원적인 시풍으로부터 출발한 그의 문학은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여 <내면으로의 길>을 걷고 있는
구도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의 삶의 내실이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반복되는 것이 아님을 역설한다. 그것은 제한된 시간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도정이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헤세는 내면으로 가는 길을 발견하고, 뜨겁게 침잠하며 지혜의 핵심을
예감한 사람이었고, 자기 영혼과의 대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다. 후기에는 동양사상에 심취했는데, 이는 가정환경과도 무관하지 않으나
인간의 삶을 자신의 내면의 성찰로 본 그의 인생의 목표 때문이리라.
<데미안>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불안하고 혼란한 청춘기의 고뇌와 방황을 그린 작가 자신의 젊은 날의
초상화다. <<자신은 자신으로부터 우러나온 삶을 살고자 한 것뿐인데 그것이 왜 이다지도 어렸웠던 것일까>>라는 주인공의 절규는 패전으로
실의에 빠진 독일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영혼을 상실한 구시대가 무너지면 새로운 시대가 다가온다는 이 소설의 테마는 작가 자신과
유럽 문명이 거듭나기 위한 진통의 기록이다. 제2차대전 당시 독일 전몰학도의 배낭 속에서 흔히 발견되었던 책이 이 소설이었다고 한다.
<싯다르타>
<데미안>에서 이런 진통을 겪은 헤세가 찾은 세계가 바로 자아의 발견과 인간의 구원이라는 근본문제를 다룬 것이 이 작품이다. 가정적으로
인도와 인연이 있었던 작가는 동양사상과 불교사상에 나름대로의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석가모니라는 한 인간이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고난에 찬 역정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유리알 유희>
<유리알 유희>란 모든 문화의 내용으로서 행해지는 유희이다. 일종의 정신문화사적 미래소설로 20세기 전쟁의 와중에서 정신적 권위를
되찾으려는 운동이 일어난다. 교양인들에 의해 종교적인 이상향이 건설되고 여기서 인류문화가 총집대성되어 영재교육을 실시한다. 얼핏 이
작품은 시공을 초월한 가공의 이야기 같지만, 20세기 문화에 대한 비판과 헤세가 도달한 최고의 지성이 담겨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자전적 소설
이 작품은 학교와 사회의 수레바퀴 아래서 신음하다 결국에는 서서히 죽어가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학교제도의 불합리성을 질타하는 작가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 책에서 나타난 당시의 경직화된 학교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교육의 현실에 하나의 좋은 시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00년경, 남부독일의 작은 동네 중개업자인 요제프에게는 재능있는 아들 한스가 있다. 이런 시골에 재능있는 아들이 태어나면 으레 그
장래는 정해져 있다. 매년 시행되는 주의 시험에 합격하여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든가, 아니면 국비로 교사가 되는 길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소년다운 놀이를 즐길 여유가 없었고 오로지 공부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소년 한스도 예외가 아니어서 숨돌릴 틈도 없이 공부에만 쫓기고 있었다. 이 머리 좋은 소년을 엘리트 코스로 보내는 것이 그의
부모는 물론, 목사님과 학교 선생님들의 희망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첫번째 관문인 주 시험에 그는 2등으로 합격한다. 드디어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진학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에 대한 대가로 여름방학 첫날 그는 낚시대를 메고 강으로 가서 수영도 하고 낮잠도 잘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한스는 소년시절로 돌아가 즐겁게 놀았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이틀을 가지 못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따기 위해 방학동안에도 밤늦게까지 히브리 어나 그리스 어를 공부하여야만 했다.
기숙사 제도로 운영되는 신학교 생활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시인 기질이 있는 주인공 한스는 권위를 싫어하는 천재적인 소년 헤르만
하이르너와 친밀한 우정을 나눈다. 하이르너는 비정스러운 교육의 수레바퀴에 힘껏 반항했지만 한스는 자기 지위를 지키기 위해 하이르너를
배반하고 만다. 얼마 뒤 하이르너는 신학교의 속박에 대한 반항심에서 탈출해버리고 만다.
친구의 탈출을 본 한스의 영혼은 고뇌로 가득 차게 된다. 주의력은 흩어져 산만해지고 신경쇠약의 증세를 일으켜 거의 폐인이 된다.
<갸름한 소년의 얼굴에 떠오른 멋적은 미소의 그늘 속에 메말라가는 한 영혼이 고뇌하고 무서움에 떨며 절망적으로 주위를 살피는 모습>을
어느 누구도 보지 못했고 심지어 신학교 선생님들조차 무관심하다. 결국 의사와 교장의 편지를 간직하고 실망에 빠진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너무 큰 상처를 받은 두뇌는 집에 갔어도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 빈둥빈둥 지낸다.
과실주를 담그는 가을 날, 그는 처음으로 엠마라는 연상의 여인에게서 매력을 느끼게 되고 몇 차례 짜릿한 키스의 경험을 한다. 그러나
엠마는 갑자기 한스의 곁을 떠난다. 엠마에게는 진실한 사랑이 아닌 장난기 어린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실의에 빠진 한스는
부친의 권고에 따라 기계공이 되기 위해, 대장간 견습공이 된다. 지금까지의 괴로움도 희망도 버리고 그는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채
일터에 나갔다. 그는 노동의 기쁨과 괴로움을 그제서야 터득했다.
어느 일요일 날 한스는 학교동창이며 이제는 어였한 기계공이 된 아우구스트와 함께 들놀이를 갔다. 한스는 처음으로 맛보는 맥주에 취해
곤드레만드레가 되었다. 그 놀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스는 죽음의 그림자에 이끌려 나골트 강에 몸을 던진다. 장례식 날 옆집 구둣방
주인은 선생들을 가리키며 <<저기 가는 놈들도 한스를 이런 지경으로 만드는 데 조력한 거야>>라고 말한다.
비인간적인 교육제도에 경종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자신의 학창시절의 경험을 집요하게 되새기면서 편협한 학교제도야말로 재능 있는 젊은이를 좌절케하는 장본인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력을 억압하고 위축시킴으로써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되며, 자아의 붕괴를 가져오는 그런 명령과 규범,
의무와 학습내용에 질식해버리고 만다.
학생들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나 교사들에 의해 강요된 교육이라면 결국 바퀴 밑에 깔린 것처럼 그들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테마인 이 소설은 출간 즉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그때까지 가정과 학교에 팽배해온 현대의 교육관과 교육제도에 경종을
울려주었다. 대학입시만을 강요하고 학생들의 창조적 능력개발을 소홀히 하는 현대의 비인간적 교육행태 때문에 이 작품은 여전히
교육서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그의 작품은 그 자신이 걸어갔던 삶의 과정의 반영이다. 그 과정이란 어린이의 순수함과 평화로움에서 성년의 방황과 절망에 이르는 길고
긴 도정을 뜻한다. 그리고 그것은 헤세만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가 걸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순탄하지만은 않은 인생 길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차츰 좌절을 경험하게 되며, 이 세계의 윤리와 가치에 회의를 지닌 채 미망의 길로 빠져든다.
헤세의 경건하고도 매우 비판적인 정신은 소위 20세기의 잡문문화시대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전 우주와 자아가 합일되는 것을 느끼며,
밝고 어두운 세계 등 부조리한 인생의 수많은 대립을 모두 긍정하는 전일적 인생론을 설교한 헤세는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많은 구원의 책을
선사하여 큰 기쁨과 위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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