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디(Thomas Hardy, 1840--1928)
부호의 아들에게 순결을 빼앗기고 농장경영을 지망하는 성직자 아들에게 희생되어, 끝내는 살인을 범하고 사형을 당하게 되는 청순한
테스를 탁월한 예술적 솜씨로 그린 이 작품에는 인간의 운명이 그것을 좌우하는 우주의 맹목적인 <내재의지>에 대한 작가의 <비관주의적
운명관>이 펼쳐지고 있다. 테스라는 한 젊은 여인이 비정한 인간사회에 던져진 채 세파에 시달리며 겪어야 하는 일련의 고초는 독자들로
하여금 삶의 의미에 대한 원초적 물음을 진지하게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건축학도 출신의 작가
디킨스와 함께 빅토리아 시대 영국 문학사의 쌍벽을 이루는 인물인 하디는 영국 남부의 도싯 주에서 태어났다. 건축업자인 부친은 음악을
즐겼으며, 어머니는 왕성한 독서가로 하디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고 고독을 사랑했다.
그는 출생하는 순간 사산으로 오인할 만큼 허약한 체질이었는데, 이러한 신체적 조건은 그의 비관주의적 사상의 원초적 원인이 되었다.
하디는 가정적으로 행복한 환경 속에서 자랐으나, 신체적 허약함 때문이지 우울한 소년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음악과 시에 대한 감수성은
예민하여, 이 시절 하디는 뒤마의 소설과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즐겨 읽으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갔다.
16세 때 부친의 직업을 이어받기 위해 도체스터 교회 건축사인 존 힉스의 제자로 들어가 그에게서 건축의 기초와 라틴 어그리스
어를 배웠다. 이 무렵의 하디는 책벌레라 불릴 만큼 독서에 열중했고, 특히 로마의 시인들을 좋아했다. 한편 그는 여기서 두 번의 교수형을
목격하는데, 이는 그에게 그의 소설 <테스>에서 테스가 사형당하는 장면으로 재현될 정도로 강한 충격을 주었다.
20세 때 하디는 옥스퍼드 출신의 모울을 알게 되는데 그에게서 학문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하디는 그와 교우하는
동안 상당량의 독서를 하게 된다. 특히 <아가멤논> <오이디푸스>등의 그리스 비극에 심취했다. 전지전능한 신의 장난에 의해 나약한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장면들을 목격하고 이때부터 그의 정신세계에는 비관주의적 색채가 착색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청년 하디를 사로잡은
것은 다윈의 진화론과 쇼펜하우어의 염세철학이었다.
29세 때 첫 소설 <가련한 남자와 숙녀>를 썼으나, 31세 때 쓴 <최후의 충고>가 사실상 그의 처녀작이 되었다. 그러나 하디가 영국 문단에
확고한 지위를 갖게 된것은 35세 때 쓴 <광란의 무리를 떠나서>다. 이 작품은 이른바 <웨섹스 소설>의 첫 작품으로 자연과 인간감정이
초래하는 비극적 결과들을 목가적 풍경 속에서 열정적으로 그려냈다.
이 소설로 호평을 받자 그는 건축을 떠나, 결혼한 다음 고향에 <맥스 게이트>라는 저택을 짓고 평생 동안 문학에 전념했다. 하디는 <맥스
게이트>에서 살면서 계절마다 아름답고 변화하는 자연과 그 속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겼다. 그는 고향인
웨섹스(Wessex:도싯의 옛이름) 지방을 배경으로 많은 작품을 남겨 그의 소설을 <웨섹스 소설>이라 부른다.
이후 <웨섹스 소설>들인 <테스> <비운의 주드> <귀향> <숲속의 사람들> <푸른 숲의 나무 그늘 아래서> 등이 창작된다. 하디 문학의 주제와
특성이 집약되어 있는 <웨섹스 소설>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작품이 <테스>와 <비운의 주드>다.
그의 예술적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테스>는 진지한 양심세계와 심오한 도덕성이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출판 당시 비도덕적이고 반기독교적인 통속소설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의 마지막 장편 소설인 <비운의 주드>는 매우 비범한 작품으로 그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드러난 소설이었지만, 그 암담한 결말과 비극적
스토리로 인해 <테스>보다 더 심한 혹평을 받았다. 사상적 깊이와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났음에도 기존 윤리관과 가치관에 막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하디는 <테스>와 <비운의 주드>에 쏟아진 혹평을 계기로 소설의 세계를 단념하고 못다한 문학의 열정을
시의 세계에서 실현하게 된다.
하디가 소설에서 시로 전화하게 된 것은 자신의 소설에 대한 사회의 비난에도 그 이유가 있었지만,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시에 대한 그의
선천적인 애정 때문이기도 했다. 시 분야에서 그의 필생의 대작은 나폴레옹과 그의 시대를 그린 철학적 대하 서사시인 <제왕들>이다. 이
작품에는 삶의 온전함과 전쟁의 자제를 바라는 평화주의가 호소력을 얻고 있는데, 이러한 연유로 말년의 하디는 생존한 영국작가 중 최고로
칭송되었다.
1928년 하디는 두번째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88세를 일기로 그의 생애를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뒤늦게 그의 문학을 인정한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시대적 배경과 문학세계
시대적 배경
하디가 살았던 19세기는 산업혁명이 농촌중심의 영국사회를 도시중심의 산업국가로 개편하는 과정에 있었다. 또한 자유경쟁과 그에 따른
부의 증가와 불평등으로 영국 사회의 전통과 인습이 무너지는 와중이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19세기 중엽부터 대두하기 시작한 다윈의 진화론은 서구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 사상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았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당시 기독교 신념에 젖어 있던 하디에게도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새로이 진화론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접한 하디에게 이제 더이상 신의 섭리는 의미가 없었다. 이러한 생각은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결합되어 <내재의지>라는 새로운
사상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인간은 자신의 의지 여하에 관계없이 우주와 자연이 지배하는 맹목적인 내재의지에 의하여
행불행이 좌우된다는 하디의 비관주의적 운명관이 확립되기에 이르렀으며, 그의 문학세계의 핵심사상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문학세계
그의 문학은 한마디로 인간의 숙명적 부조리와 대결하는 비극의 문학으로, 그에게 인생은 인간들의 진실된 욕망이 외면당한 채 파멸되는
과정에 불과하다. 인생이란 실의와 고난의 실체이며, 인간의 행복이란 인간비극에서 하나의 우연한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의 비관주의적 사상은 허무주의적이라는 통념상의 비관주의가 아니라, 인생을 깊고 뜨겁게 공감하고 절망 속에서 괴로워하며
인생의 진실과 고뇌와 비탄에서 구제의 방법을 찾아내려는 적극적인 태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극을 통한 인간의 구원인 것이다.
하디 자신은 자기가 염세주의자라기보다는 사회 개선론자라고 불려지기를 원했다. 그러한 그의 열망은 고통과 좌절의 체험을 통해서
사회의 모순됨을 인식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하고자 하는 개선의 의지를 갖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통해 잘 반영되어 있다. 하디는
작품 속에서 끝없이 닥쳐오는 불운의 회오리 속에서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놓았다는 점에서 그를 염세주의자라기보다는 진정한 의미의 휴머니스트라고 불러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비극적 운명에 희생되는 한 여인의 삶
하디가 <테스>를 발표한 것은 그의 문학이 원숙기에 접어든 1891년이었다. 이 작품에는 창작활동 초기부터 그가 집요하게 모색해온
사회비판정신이 보다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그리고 <테스>는 하디의 비관적 운명론의 하나의 상징인 것이다. <테스>는 운명의 장난에
휘말려든 한 순진한 아가씨의 불행한 이야기다. 웨섹스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테스가 무책임한 남자에게 처녀성을 유린당하는 데서부터
이 소설의 비극이 시작된다.
명문 더버빌의 후손이라는 자의식에 도취되어 술로 세월을 보내는 게으른 아버지와 무능한 어머니, 그리고 많은 동생들을 둔 테스는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먼 친척인 스토크 더버빌의 집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양계일은 하던 중 테스는 바람둥이 청년 알렉에게 처녀성을 잃는다.
그후 집에 돌아와 사생아를 낳는데, 그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세례조차 받지 못하고 죽는다.
테스는 인생 최초의 비극을 경험하지만, 아직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젖 짜는 일을 시작한다. 그녀가 새생활을
시작한 낙농장에는 농장경영을 지망하는 에인젤이라는 건실한 청년이 있었다. 목사의 아들인 에인젤은 성직에 회의를 품고 농사를 짓기 위해
이곳으로 일을 배우러 와 있었던 것이다.
테스는 에인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자신이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번민하게 된다. 그러나 에인젤의 고매한 인품에 이끌려 그를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게 된 테스는, 그가 과거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줄 것으로 믿고 마침내 결혼한다. 그러나 첫날밤 과거를
고백하자 처녀성을 중시하는 에인젤은 신부를 남겨둔채 혼자 외국으로 떠나버린다. 이리하여 테스는 다시 버림받은 몸이 되었으나, 언젠가는
남편이 다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모진 고생을 참아낸다. 그 무렵 우연히 테스를 만난 알렉은 열정에 사로잡혀 또다시 그녀를
유혹한다.
한편 테스의 집에서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죽고 식구들은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가족의 생계를 떠맡게 된 테스는 결국 지난날 자기의
인생을 짓밟았던 알렉의 원조의 손길을 물리치지 못하고, 그의 정부가 된다. 그때 뜻하지 않게 테스를 버리고 떠났던 남편이 정신적으로
훨씬 성장한 모습으로 그녀를 찾아온다. 그토록 기다리던 남편이 돌아왔건만 기쁜 마음으로 재회할 수 없게 된 테스는 이성을 잃고 자신을
정부의 위치로 전락시킨 알렉을 과도로 찔러 죽인다.
그런 다음 테스는 에인젤을 뒤따라가 처음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1주일 뒤, 그들의 짧지만 황홀했던 행복은 막을 내리고, 테스는
뒤따라온 경찰에게 체포되어 처형된다. 작가는 마지막에 쓰기를 <<드디어 심판은 끝났다. 신들은 말하기를 <거느리는 자>는 마침내 테스에
대한 희롱을 마친 것이다. >> 결국 사회 전체가 그녀를 사형대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비극적인 운명론
<순결한 여인>이라는 부제가 내포하고 있듯이, 테스는 피해자이지 죄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막다른 길로 몰아가는 운명의 힘에 쫓겨
마침내 엄청난 살인죄를 저지르고 사형당하게 되는 것이다. 교수형이 집행되는 날 감옥의 탑 위에서 나부끼는 검은 깃발은 하디 문학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테스가 일자리를 옮김에 따라 변화하는 웨섹스의 경관과 그 평화롭고 전원적인 분위기는 테스가 겪고 있는 불행을 한층 심화시킨다.
이렇듯 서사적인 기교와 작가의 리얼리티가 융화됨으로써 하디는 <테스>에 의해 <젊은 세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으며 불멸의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을 한 여인의 슬픈 이야기쯤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작품에는 당시 영국사회를 지배했던 인습의 모순이 예리하게 파헤쳐져 있고
비관적 운명관을 가진 작가의 사상이 전편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디는 이 작품의 곳곳에서 정신적인 정조를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가련한 주인공 테스로 하여금 다시 소생하는 데 조금도 인색치
않았다. 간음한 여자이자 살인자인 테스를 서슴없이 순결한 여인으로 일컫는다. <<테스의 본연의 순결성은 마지막까지 온전했다고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하긴 그녀가 쓰러졌을 때 육체적인 순결성은 사라졌을지라도. >> 그토록 험난한 운명 앞에서 인간의 힘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으로도 구원은 내려진 것이다.
<테스>에서 우리가 음미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첫째 육체의 순결성보다는 정신의 순결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점, 둘재 불가항력적인
운명이 연약한 인간에게 부여하는 재난에 대한 문제, 셋째 종교적인 문제로서 죄지은 자 대신 죄 없는 자가 끊임없이 받는 형벌이라는
비극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테스>가 발표되었을 때 <타임>지의 비평자는 하디의 최고 작품이라고 갈파하는 동시에 <<인습적인 관념을 다루는 데 대담하고 애틋한
비애감이 서리는 동시에 지극히 감동적인 비극감을 자아냈다>>고 말했고, 시인 윌리엄 와트슨은 <테스>를 읽으면 인간의 지적정서적
경험폭이 넓어진다고 말했다. 웨스트민스터의 비평가는 <<조지 엘리어트가 별세한 뒤 영국이 낳은 최고 역량의 작품>>으로 극찬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