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검색

독서일반론

제 1 장 독서,왜 필요한가?

  사대부 사흘만 글을 읽지 않으면 거울보기가 민망하다
 --황산곡(소동파의 친구)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이전에 비해 크게 다양화되어가고 있다. 특히 문자
이외의 라디오.텔레지전.비디오.컴퓨터 등 정보의 전달수단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문자를 통한 독서가 인간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도전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들에 비해 책이 주는 유익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선 독서를 통해서는 나만의 절대적인 공간 속에서 저자와 대화를 하여 그들의 생활의 지혜를 얻을 수 있고,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인생에서 직면하게 되는 여러 문제나 의문을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능력이 자기도 모르게 확대된다. 또한 선악의 2분법적인 인간관에서
해방되어 폭넓은 인간 이해력이 가능해지고,욕구불만이나 갈등을 참고 그것을 승화시켜나가는 정서순화력도 값진 소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매체에 비해서 독자가 가지는 자유의 허용 폭이 넓다는 것이다.즉 읽다가 잊어버린 내용은 다시 찾아 기억을 새롭게 할 수
있고,읽다가 이해되지 않으면 멈추고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자유도 허용된다. 이러한 자유는 독자 내면에 은밀한 공간을 마련하고
창조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읽기를 중단하고 내용을 반추해볼 수도 있고,이미 읽은 결과를 종합하고 비판해 볼
수도 있다.
 또한 책은 언어가 가지는 시간적.공간적 세약성을 뛰어넘는다. 이러한 간접성을 통해 유성언어의 제약성을 벗어나고 문화의 전수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독서는 대화의 광장에 나서지 않고도 의식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한 점에서 독서를 현상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문화적 실천의 한 양상으로 파악 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공헌한 사람들 중에는 평소 책을 가까이한 경우가 많다. 이는 책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는데, 한 개인의 독서체험이 그의 전체를 좌우할 수도 있다. 즉,운명적인 삶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광범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친 성격은 몰론이고,다윈의 <진화론>마르크스의 <자본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
등은 한 권의 책이 인류역사를 바꾼 경우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독서현실은 어떠한가? 그간 우리의 학교교육이 양적으로 팽창하고 질적으로 향상되어왔음에도,특히 장기간에
걸쳐 중등교육이 대학입학시험을 위한 준비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고 대학의 교양교육도 대부분 피상적이고 명목적인 수준에서 행해져왔다.
 이에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대학 수학능력시험과 논리적 사고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본고사 논술시험이 실시됨에 따라 사고력 신장을
위한 독서능력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으며,대학에서는 그간 지나치게 전문교육을 중시함에 따라 참된 인간성을 결여한 전문가들을
양성해온 데 대한 자기반성으로 전인적 인간상을 위한 평생교육 차윈에서 독서의 생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독서취향에 있어서도 그동안 우리 사회의 독서는 지나치게 정신주의적인 경향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실용주의 경향을 띠어 왔다. 이러한
양극적인 대립현상은 경코 바람직하지 않다. 독서는 통합적인 정신작용이다.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이 독서를 통해 지식을 얻고 지혜를
터득하여 삶의 가치를 감동적으로 느끼는 것이라면 실용성과 정신적인 가치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러한 목적은 개별적으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수행된다. 때문에 독서가 실제적인 것이라는 실용성을 벗어나 독서 자체가
삶의 한 과정이고 실천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그러므로 독서를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것이라는 생각도,지식의 획득과 정보의 습득을
위해 이루어지는 노동이라는 생각도 각각 일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독서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1.인간과 자연에 존재하는 참된 진리를 발견하여 삶의 지혜를 체득
 요즘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인 어떤 책에서 작가는 <<만약 내가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책 속에 묻혀 있는 진리를 모르고 저 세상으로 갈
뻔했다. 나를 5년 동안이나 감옥에 보내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고 술회하고 있다. 감옥에 가지 않고 사회생활을 계속했더라면
독서의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책 속에 이런 저런 지혜가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라는 상당히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가슴에 무언가 와닿는다.
 그랗다.책 속에는 무한한 진리가 묻혀 있다.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책을 펴는 자에게 진리의 궁전은 개방되어 있다. 그러기에 역사적으로
독서를 국가적 차원에서 권장한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의 최고의 학술기관인 집현전(홍문관)에는 유교적 소양을 갖춘 20여 명의 소장학자들이 근무했는데, 이들에게는 정치적으로 신분이
보장되고 개인적으로는 산사에서 장기간 독서에 몰두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다. 이것을 <사가독서제라 하는데,아마도 번잡한 서울생활에서
벗어나 모든 잡념을 멀리한 채 오직 책 속에 묻혀 있는 진리탐색에 몰두하게 하여 국가경영의 철학과 지혜를 얻고자 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가 책에서 얻는 지혜는 인류의 정신적 유산이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그러한 지혜에 참여한다.
 고전을 읽음으로써 인류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받고 인간정신의 보편성을 이해하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고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도를 따르는 이들은 지혜를 얻기 위해 고행을 한다. 독서인의 경우 그러한 고행까지는 요구되지는 않는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책에서 얻어낼 수 있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위대한 지혜의 소유자인 선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단지 저자의 의도를 파악 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저자의 지혜를 내 사유의 내용으로 삼는 가운데 저자의 자아와 나의 자아의 뜨거운 만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의 자아를 손상시키지 않고 나의 자아를 주체적으로 세워나갈 수 있다. 이처럼 간접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사유방법이란 독서 말고는
그예를 찾기가 어렵다. 그러한 점에서 독서를 한다는 것은 이해의 차윈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체험의 양태라 해야 옳다. 그렇게 우리는
책에서 감동을 발견하게 되고 지식과 지혜는 감동을 통해 우리의 인격으로 정  된다.

   2.인류 문화유산에 대한 계승과 새로운 정보와 사상의 습득
 우선 우리는 책에서 지식을 얻는다. 지식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경제지식.경영지식.법률지식 등 실제적인 지식을 우선 들 수 있다. 이러한
지식은 어떤 일을 하는 데 그 효용이 직접 나타난다. 과거에는 학문이나 교양을 위한 독서에 치우쳤으나 현대에는 그에 못지않게 실용적
목적의 독서도 증가하고 있는데,주로 신간서적들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문학.철학.사상 등의 지식처럼 실용성에 있어 서는 직접적이 아닌 경우도 있는데 이는 교양적인 지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양에 속하는 지식은 인격형성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어떤 사태를 판단하는 데 준거가 된다. 이러한 지식은 도구적인 속성보다는 지식
그 자체를 갖추는 것이 목적이 되기도 한다. 이는 독서의 실용적 목적과 교양적 목적을 함께 갖춘 것으로 볼수 있다. 이러한 지식은 개인의
시색을 통해 본래의 차원을 능가하여 지혜의 차원으로 상승된다.
 현대인에게 있어 교양은 단순한 역사적인 지식에 관한 교양이 아니고 하나의 결단,하나의 행위가 수반되는 교양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여기
있다. 현대의 삶으로부터 유리된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라, 현대의 삶의 욕구에서 출발하여 동시에 현대를 영원의 과제로 인도하기 위한
능동적인 규범으로서의 교양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인격형성이나 학문적 연구의 다양한 단계에 있는 젊은이들이 학문에 있어서 확정된 성과보다는 도리어 철학이나 문학에 있어서의 여러
문제에 직면케 하여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창조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한다면, 그 결과로 이 젊은이들에게 한편으로는 학문연구 그 자체를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연구의 시야를 확대시켜주고,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의 세계를 정복하게 될 때에 그들이 사용하게 될 지적 장치,즉
교양에 대해 일련의 추진력을 부여하게 할 것이다.

   3.삶의 가치의 발견과 삶의 질의 향상
 독서를 통해 우리는 삶의 깊이와 폭을 확충한다. 이는 독서 가운데 느끼는 감동의 차원이다. 그러한 감동을 통해 우리는 삶의 깊이와 폭을
확충한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는 가운데 감수성을 확대해나간다. 현대문명의 위기 중 하나로 감수성의 분열을 들곤 한다.감수성의 분열이란 영국의시인이며
비평가인 엘리어트의 주장인데,시인의 감정이 정연한 형식으로 형상화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감수성의 분열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나타나는데,주체가 내세우는 감정의 논리와 감정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개인의 자아 개념이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러한
분열을 통합해줄 수 있는 방법가운데 하나가 독서이다. 독서를 통해 감수성의 분열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의 논리적인 삶에 정서적인
삶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삭막한 시대일수록 한 편의 서정시가 소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식은 상상력이나 감정이 결부되지 않고서는 전달되지 않는다. 지식에는 주체를 통한 역동적 작용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 가운데 하나는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수립해준다는 점에서다. 현대인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데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어서 고민하고 방황한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조직화되면서 개인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거대한 조직사회의 한 부품으로 인간의 가치가 전락한 것이다. 그 결과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있는 삶인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대한 확실한 답을 발견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다른 말로
정체성의 위기라 한다.
 인간이 정체성을 상실하고 방황의 질곡에서 벗어나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독서다. 인간존재의 의의를 확인하고 내 자신이 그러한
위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힘은 독서가 인간형성을 위해 기여한다는 그 이상의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자기존중의 감성이
성숙되어야 인간이 인간을 무시하고 자신을 파괴하는 그러한 병을 치유할 수 있게 된다.
 독서가 삶의 질을 높여주려면 부단한 자기실현이 요구된다. 삶에서 실천이 없이 다만 책을 읽기만 한다고 해서 올바른 독서를 했다고 하기
어렵다. 독서는 근본적으로 남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쇼펜하우어가 남이 쓴 책만 읽고 사색을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고 한 것은 독서가 남의 생각을 내가 대신하는 그러한 특성을 지적한 것이다. 주체의 적극적이고 자박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독서가
이루어진다는 점은 작가의 생각이 나의 생각의 도가니 안에서 녹아 하나가 되었을 때 진정한 독서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독서행위가
일방적인 수용이면서 독자 자신의 창조적인 정신작업이라는 것은 독서과정에서 주체와 객체의 통일인 정신적 융합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독서가 학교교육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평생의 과업이라는 점이다. 학교교육이 끝난 다음에는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읽을 책을 택하고 책 읽는 방법을 모색하는 가운데 점점 독서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는 다른 말로 독서의 자기교육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교육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거나 완결된 것이라기보다는 교육받은 사람 스스로 그러한 교육을 자신을 향해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과정적이다. 이는 독서에 대해서도 동일한 원리로 작용한다. 스스로의 독서는 몰론 다른 사람의 독서를 부추기고 다른 독자들과 의견을
나누는 가운데 독서의 깊이가 확보되고 폭이 넓어진다. 독서를 강조하는 것은 결국 독서를 통한 문화사회를 이룩하자는 이념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서는 인류사회의 과업이 되낟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제 2장 독서,어떻게 할 것인다?

 독서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가 분분하나,우선 거시적인 독서계획에 관한 문제 (독서단계)와 미시적인 독서의
기술(독서방법)에 관한 문제로 나누어볼 수 있다

   1.거시적 측면: 장.단기 독서계획
 독서단계론적 측면에서 보면 일생 동안의 장.단기 독서계획이 중요하다. 독서는 일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어린 시절부터 문학이나
문자에 흥미를 갖고 그것에 의해 좀더 넓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독서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모나 선생님이 독서를 지도할
때는 개인적 독서체험이 필요한데,학생의 흥미나 개성이 다양하므로 똑같이 지도하기는 곤란하며,세밀한 개별지도가 필요하다. 우리 나라의
경우 그간 입시교육의 영향으로 국민학교 시절에 보는 아동문학과 위인전기 등이 고작이고,중.고등학교에 오면 학과공부에 밀려 사실상
교양독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최근에 대학 수학능력시험과 본고사의 부활로 일선고교에 독서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학생들이
정작 독서를 하려 할 때우선 당면하는 문제가 책의 선택과 시간의 문제다.이 문제에 명쾌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교육부나 대학당국,각 학교에서는 청소년에게 알맞은 체계적인 독서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지혜를 모아 그 방법을
학생들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대학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공교육에 치우친 나머지 1학년에 이수하는 교양과정은 그 운영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중.고교시절에
입시라는 부담 때문에 독서는 대학으로 유보하지만,정작 자유로워져도 지적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는 데는 인색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소화력을 가진 시기에 적절한 영양분의 섭취를 위한 훈련과 절제는 필요하고도 유익한 일인데도 말이다.
 대학생이 되어 지난 시기의 유보와 억제에서 해방된 학생들은 유보된 정신을 성장시켜야 한다. 이는 독서를 통해 인간의 역사에서 큰
봉우리를 이루었던 정신들을 만나보며. 이정신들이 헤쳐나갔던 인간 삶의 구비와 역사의 굴곡들을 함께 하는 일이다. 책 속에는 인간의
고통과 죽음의 비애,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는 철인의 지혜가 있다. 이 무궁한 세계로의 여행이 무거운 의무일 수는 없다. 그것은
양보할 수 없는 정신의 권리이자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될 삶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어떤 책을 어떤 순서로 읽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옛날의 독서단계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사서오경을
4서부터 보고 나서 5경을 보며 그후에야 사서를 본다.
 독서으 순서에서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먼저<소학>을 읽고,이어서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읽도록 하고 다음으로 <시경> <예경>
<서경> <역경> <춘추> 등의 5경을 읽도록 했다. 그런 다음 <근사록> <가례> <이정전서> <주자대전> <어류> 등을 읽고 난 다음 여력이 있으면
사서를 읽도록 했다.
 정약용의 경우고 이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남 강진의 유배지에서 그의 아들에게 보냄 편지에서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사서5경,또는
13경의 자구해석과 내용,이치를 분석하는 학문)공부를 하여 기초를 다진 후 사서를 섭렵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책의 수가 기하학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그러한 추세는 계속될 전망인데,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떠한 책을 얼마만큼 읽어야
할 것이가 하는 경제적인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다. 다시 말하면 한정된 시간과 예산 속에서 최소의 시간과 경비로 효율적인 독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  게도 그에 대한 분명하고 일률적인 대답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독자의 지적
관심과 직업적 필요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제약조건 하에서 자신의 절실한 지적 관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책부터
선택을 시작하여 점차 고전을 폭넓게 섭립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은 될수 있을 것이다.

   2.미시적 측면: 구체적인 독서기술에 대하여 살펴본다
 전통적인 독서방법이 대개 그렇듯 이이와 정약용 모두 정독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책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 현대에는 모든 책을 정독할
수는 없다. 독자의 시간이나 책의 종류에 따라 적당한 방법을 취하면 되는데,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 중.고등학생들의 경우는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보다는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상의하여 독서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대학생이나 일반인의 경우도 선배나 독서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의 조언을 참고하여 자신의 시간과 경제력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는 것이 유익하다.
 독서의 방법은 책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있는데,여기서는 독서를 위한 텍스트 일반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고전에 해당하는
책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그것은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완결성을 가진다. 또한 고전 (고전의 개념에 대해서는
후술)은 가치를 인정받은 책이다. 너무 유명하여 읽지 않고도 읽은 것처럼 착각하는 책이 고전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책이
어느 영역에 속하든 관계없이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 책이라면 일단은 고전의 가치를 인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고전의 독서를
위해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우선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고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간다.
 우선 그책의 서문이나 머릿말.그리고 목차를 주의 깊게 읽어서 그 책의 전체적인 내용과 순서의 배열을 조망해본 다음 본격적으로
읽어나가는 것이 좋다. 읽어가는 도중에도 현재 읽고 있는 부분이 이 책의 전체구성 중 어느 위치에 해당하는지를 점검해가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그때그때 잘 모르는 용어가 나와 독서속도가 늦어지거나 중단하는 경우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면 중요한 문맥에 반복하여 나오게 마련이다. 문맥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면 어느덧 그의미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책에 나오는 중심개념은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된다. 단어,즉 용어는 읽어나가면서 표시를 해두었다가 나중에 정리하는 것도 편리한
방법이다. 그리고 어떤 논문에서는 중요개념을 논문앞에 미리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장치가 없는 경우는 독자가 표를 해두었다가
나중에 정리할 수도 있고,독서과정에 점차 개념이 명확해지면 전체를 파악하는 과정에 포함되어 이해된 것이기 때문에 중요개념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포착된 것으로 보아도 좋다. 중요개념은 대체로 문장으로 표현된다. 이를 문장론에서는 주제문이라 한다. 주제문에 해당하는
문장에는 밑줄을 그어두는 것이 기억의 재생을 위해 도움이 된다. 또한 주제문의 핵심개념이나 다른 주제문과의 관계를 간단히 메모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도서관이나 다른 사람에게 빌린 책을 읽을 때는 따로 공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번거로움을 피하려면 자신이
책을 사서 읽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

 (2) 책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독서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어떤 책이든지 내적인 논리를 지니고 있다. 글을 써가는 방식 자체가 내용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역사를 서술하자면 구체적인
자료를 모아 객관성있는 서술을 하고 나중에 사가의 의미부여가 이루어진다. 시를 쓰는 경우는 어떤 대사에 대한 직관적인 파악이 앞선다.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러한 직관을 운율이나 이미지를 통한 표현한다. 과학적 영역의 책은 자료의 수집과 검토,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한 가설의 수립,가설에 대한 검증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사고과정이 책의 내적인 논리다.우리가 책을 읽을 때에도 이러한 내적 논리에 충실하게 읽는 것이 원칙이다. 시집을 읽을 경우와
과학이론을 읽을 경우는 반법이 다르다. 각각 영역의 내적 논리에 따라 독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글의 양면성.즉 논리와 정서를 함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간의 행동에 어떤 동기가 있는 것처럼 책에도 어떤 동기가 있게 마련이다. 우선 책을 쓴 사람은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있고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글을 읽는 동기가 있다. 그러한 동기가 바닥에 깔리지 않는 순수한 논리나 이론은 상상하기 어렵다. 사실 어떤 윈리를 발견하여
글로 쓸 만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거기에는  커다란 기븜이 안으로 술렁이게 마련이다. 인간의 그러한 정신영역을 일반적으로 정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글을 정서적이다. 논리적이다 하는 식으로 양분하는 사고에 젖어 있다. 그러나 책은 흔하지 않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학국역사> 첫머리는 응혼한 기상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서술함으로써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경우는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도 같다. 정서와 논리 두 요소는 어떤 책에도 함께 나타나게 된다. 논리만으로 구성된 책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작자의 진리추구의
열정이라든지 양심의 실천에 드러나는 고뇌를 통해 정서적인 감동을 얻게 된다.
 책의 그러한 양면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독서에 성공하는 길이다. 그런데 정서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이 이따금 소홀히 취급되는
것을 볼수 있다.이것은 독서가 지나치게 실용주의로 기울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서는 책을 읽어가면서 주제를 투여하는 훈련을 거쳐
성장한다.

 (4)객관적 사실과 저자의 주관적 판단을 구분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
 책은 그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데에 따라 읽는 목적도 달라진다. 지식을 얻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정신차원의
문제를 음미하고 그 결과를 나의 삶을 방향짓는 데 견주어 볼수 있는 책도 있다. 또는 주로 상상의 즐거움을 겨냥하는 문학작품 같은 책도
있다. 채그이 성격에 따라 그 내용을 정리해나가야 한다. 사실을 중심으로 한 책은 지적인 작업으로 내용을 정리해나가야 한다. 허구적
상상력을 중심으로 한 책은 주제를 허구적인 양상으로 투여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정신병의  초기증세라고 한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못한다든지 사실과 허구를 혼동한다면 이는
독서의 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책의 성격을 파악하고 이해할 부분과 해석할 부분을 바르게 가려내는 작업이 책읽기
방법의 중요한 요건이라 할 수 있다.

 (5)독서 후에는 반드시 핵심적인 내용을 메모해두는 습관이 필요하다.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읽었던 내용도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망각되게 마련이다. 독서후에는 반드시,그것도 즉시 햄심적인
내용을 메모해두는 일이 필요하다. 메모해도면 나주에 다시 보아도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필자의 독서체험으로 볼때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책을 읽을 때는 형광펜을 들고 중요하고 공감이 간다거나,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체크하곤 한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그 책의 내용을 요약해두는 습관을 들였는데,아마 이책이 나오게 된것도 이러한 메모하는 습관 덕분에 아닌가 한다.

     제 3장 독서,무엇을 읽을 것인가?

 우선 고전이란 무엇인가? 즉 고전의 개념을 정의해보자.

   1.고전의 정의
 <고전>이란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그 가치가 검증된 작품> 또는 <고유의 탁월한 성질 덕분에 문학사나 사상사에서 오랫동안 널리
공인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최상급의 작품>을 말한다.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은 그 작가의 당대나 그가 살았던 지역에서만 높이
평가되어온 것이 아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 진가가 검증되어왔으며,그 어떤 새로운 작품들에 의해서도 대체가 쉽지 않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고전의 선정기준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합의를 볼 수 있는 기준이 있으리라 본다.

   2.<동서고전 200선>의 선정경위
 고전 200선 선정의 동기에 대해 서울대학교즉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간 우리의 학교교육이 양적으로 팽창하고 질적으로
향상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알맞은 교양교육은 오히려 소홀히 취급되어왔으며 그 상당한 원인이 고전교육의 부재에 있었음을 직시하고
고전읽기의 활성화를 통해 대학의 교양교육을 내실화하고 학생들의 인문적 소양을 확대하는 데있다.>>
 <<그리고 장차 사회 각 분야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할 학생들에게 읽혀야 한다고 여겨지는  동서고금의 고전들을 선정하고자 했과,나아가
우리 나라 독서운동을 위한 지표로서 이용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목적이 있다.>>

   3.<동서고전 200선>의 선정절차
 고전 200선 선정절차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200선의 목록작성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일련의 세미나를 통해 고전에 대한
원론적 문제와 고전읽기에 관계되는 실제적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세계의 유수한 고전총서 목록과 그동안 우리 나라에서 적성된 고전목록을
두루 수집하고,교내의 각 분야 교수님들에게 널리 설문지를 돌려 필독고전의 목록을 추천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종목록
<동서고전200선>은 위의 자료를 근거로 하여 연구위원들이 10여 차례의 회의와 장시간의 토론을 거쳐 선정한 것이다.
 단, 그후에 들리는 말로는 이번에 발표한 목록이 최종목록이 아니어서 목록의 변경은 추후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4.고전읽기의 중요성
 우리는 현재 과학의 무한한 확대와 세분화,근대산업사회의 능률 제일주의의 구현 등으로 자아확장에만 열을 올리는 테크놀로지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문주의적 교양은 그 역할과 기능을 잃는 지 오래인데,이 시점에서 왜 우리는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우리 다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고전은 시공을 초월한 인류문화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고전은 역사적 가치와 현대적 의미를 함께하고 있다.
 (2) 고전은 인간경험의 다양한 폭과 깊이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동서양의 문화를 다양하게 넘나들면서 선인들의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다.
 (3)창조적 사유체계 형성에 도움을 준다. 창조적 상상력은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기능으로, 이 기능은 모든 위대한 사상과 문학의 근본이며
또한 고갈될 줄 모르는 원천이다. 대학생들은 스스로 학문을 개척해나가기 위한 기초를 닦는 단계에 있으므로 특히 창조적 과업을 위한
사고과정을 이해할 내용을 지닌 고전은 유익하다.
  (4)고전과의 만남은 인간의 삶의 방식에 의해 우리가 지녀왔던 선험적 전제에 물음을 던져서 우리가 빠져 있던 오류를 스스로 교정하고,
극에서 극에 이르는 다양한 인간유형과 이들이 보여주는 사고와 행위 등을 적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5)지적 성장을 위한 자극이 된다. 고전내용 그 자체가 직접적인 학습의 소재를 이루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  이 하나의 범례 또는
암시를 제공함으로써 이를 통해 그 어떤 깨달음의 계기가 마련된다면 이것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교육적 효과라고 말할 수 있다.
  (6)인간이 주어진 조건에서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고 구현하려는 체계적인 경험을 제공해준다. 과학적 사고의 폭과 깊이를 체득하고 폭넓은
사물이해의 방식을 얻는다.
  이처럼 우리가 고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풍부한 교양은 과거의 정신적 창조와 연결되어 있으며 살의 내면적인 풍요의 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한 의식은 내면의식의 확정에 대한 정열적인 노력이며 하나의 새로운 인간형.인간성의 이상을 창조하는 데 대한 노력이다.
   5.고전에 대한 관심의 역사적 실례
 그렇다고 고전에 대한 독서가 어느 한 개인의 자기함양을 위한 방편이나 집단의 가치판단을 위한 준거로만 원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
시대.혹은 한 민족이 벌이는 분예운동 및 일반 문화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역  을 할 수 있다.
 그 전형적인 사례를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을 수 있다. <르네상스>라는 낱말의 어의에서 암시되어 있는 대로 그 시대의 사람들이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의 <재생운동>을 벌이고 있을 때 그들에게 정신적.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된 것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남긴
고전들이었다. 이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1천여 년에 걸친 기독교 정신의 지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채 그늘에 묻혀 있어야 했던 고대의
고적들을 발굴해내어 그것을 연구함으로써 자기들의 정신적 지주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므로 서양의 역사에서 인본주의적 근대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였던 것도 우연은 아니다. 오랫동안 인간의 의식 위에
군림해왔던 신본주의가 이 시대에 이르러 인본주의의 사상으로 전향함에 있어서 당대의 학자들이 열심히 찾아서 읽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은 기독교가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에 풍미하고 있던 인간중심의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이시대의 시인.화가.
건축가들은 당대의 사람드링 고전의 연구를 통해서 확립한 인간관과 세계관을 각각 자기 나름대로 원용하면서 예술적 창작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배경이 있었기에 서양의 역사에서 가장 신명나는 <문예부흥>이라는 문화운동이 성립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면, 18세기 말 괴테나 훔볼트 등의 인문주의자들은 그들의 삶의 모범을 고대 그리스 인에 두었다. 계몽사상의
합리주의와 기게적인 세계관에 대한 반항으로서,그들은 고전적 교양의 존중,인간성 및 인간적 본서의 존중,그들의 교양이상은 인간의 전면적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고전고대인 속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 당시 고대전성기의 예술과 문학이
연구되었으며 이 연구에 의해 얻어진 이상형으 인간상과 문화상을 규범으로 하여 현대인의 삶과 문화를 변혁하려는 의도를 그들은 갖고
있었다.
 고대고전을 모범으로 삼음에 있어서 그들은 모든 역사적 과정은 불문에 부치고 고대와 현대 사이의 방대한 시간차를 뛰어넘는다. 괴테는
2천 년의 시간차를   어넘어 직접 호메로스를 호홉했고. 그에 의해 호메로스는 언제나 우리 앞에 새로운 존재로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각계각층에서 드러나고 있는 더덕으 타락 및 규범의 와해를 예방하거나 바로잡는 길잡이로 고전의 전범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오늘날 우리의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형식 우위주의 표피문화,허위의식,경박한 도피주의,건전한 감수성과는 거리가 먼
감각주의,물질주의,배금주의.상업주의 같은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데에도 여기에 있는 고전들은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우리가 준경하는 사람은 폭력으로 인가느이 육체를 억압시킨 자보다 진리의 힘으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