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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대로 살아야 건강하다

1.의사 선생님이 관상도 보세요?
  청진기로 몸 안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아니면서, 또  혈액 채취나 엑스레이로 과학적인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한의사들은 어떻게 진료를  할까? 물론 누구나 한두 번
쯤은 한의원에 가보았을테니 다 나름대로 짐작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일단은 환자가 의사
와 마주하게 되면 현재 자신이 고통받고 있는 증상들과 그 동안 겪은 병의 내력에 대해  이
야기한다. 그리고 의사는 그걸 바탕으로 진맥을 통해 병의 원인을 판단하는 게 일반적인 진
료법이다. 요즘엔 전신의 맥 상태를 정확한 데이터로 측정해내는  첨단 의료 기기가 이용되
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들이 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말없이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진찰
방법이 있다. 바로 환자의 형색을  살피는 일이다. 키가 큰가, 얼굴이  네모난가, 코가 큰가,
입이 작은가 등 사람의 생긴 모습(형)을  파악하고 얼굴빛이나 전체적인 피부색(색)의 특징
을 가려내는 것이다. 어려운 말로 표현하자면 관형찰색 또는 망진을 하는 방법이다. 결국 한
의학에서 행하는 진료는 형색맥증의 네 가지 요소에 의해 이루어진다. 환자의 생긴 모습, 얼
굴빛과 피부색, 맥의 상태,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종합하여 발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에
따라 치료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가 모두 합일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정확하고 완전하게 치
료할 수 있다. 맥증만으로, 또 형색만으로 치료를 한다면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므로  치료도
더딜 뿐만 아니라 치료 후 재발하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지금의 한의학 풍토를 보면 형색보다는 맥증에 많이 치우친 감이 있다. 진맥과 환
자의 증상을 중심으로 '이런 병에는 무슨 약을 썼더니 낫더라' 하는 문제만 생각한다. 나 역
시 10여 년 전 형상의학을 접하기 전에는  똑같은 오류에 빠져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병이란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되며, 동시에 복합적인 증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형색맥
증에 의한 종합적인 진단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그간 소홀히 해왔던 형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국시대 후
기에 활동했던 명의 편작(죽은 사람도 기적같이 살려냈다는 전설적인 명의)도 "병이란 내부
의 반응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어서 체표의 사소한 증상으로도 먼 미래의 예후를 알 수 있
다" 고 하였다. 우리나라 한의학의 고전인 동의보감만 보더라도 사람의 형색이 병을 진단하
고 치료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한 대목만 간단히 살펴보자.
  귀가 든든하면 신장도 든든하고 귀가 얇고 든든하지 못하면  신장도 연약하다. 귀가 앞에
있는 하악골(아래턱뼈) 부위에 잘 붙어  있으면 신장의 위치와 모양이  똑바르고 한쪽 귀가
올려 붙었으면 한쪽 신장이 처져 있다.(내경 편) 이목구비의 하나인 귀가 오장육부 중 신장
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귀를 보면  선천적으로 신장이 좋은지 나쁜지
를 가늠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식으로 동의보감에서는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오장과 연결시
킨다. 눈은 간과, 입은 비위와, 코는 폐와, 혀는 심장과 이어지는 신체 부위로 생각하는 것이
다. 물론 형색으로 병을 치료하는 게 말처럼 간단치는 않지만, 의서에 기록된 이 기초  공식
만 가지고도 오장육부의 상태를 웬만큼은 측정할 수 있다. 그래서 진맥을 하거나 환자의 얘
기를 듣지 않고도 어느 정도 환자의 병증을 알아맞히는 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콧구멍이
유난히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환자가 있다고 하자. 콧구멍이 밖으로 드러나 보인다는 건 방
광이 좋지 못하다는 증거이므로, 환자에게 질문을 할 때 이를 중심으로 하게 된다. "어릴 적
에 소변을 늦게 가리셨죠? 그리고 요즘에도 몸이 많이 피곤하면 소변 실수를 하실 때가 있
지 않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무척 놀라워한다. 자신이 얘기하지도 않
은 걸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싶은 것이다. 사실 나 자신도 형상의학 이론이 실제 환자들에
게 그대로 적용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하지만 한의학이란  게 수천 년 동안 축적
된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체계화된 학문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어쨌든 이쯤 되면 환자들은 모두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아세요? 맥도 안 짚어보시구요.
혹시 관상도 보실 줄 아세요?" 라고 말한다. 아울러  '이거 혹시 진짜 한의사가  아니라 어
설픈 관상쟁인 거  아냐?' 하는 의혹의  눈빛이 역력해진다. 얼핏  보면 관상학과 혼동되는 
점이 없지 않다. 우선, 그 판단의 기준이 사람의 생김새에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또 관
상학에서도 얼굴 모습과 피부색에 따라 질병이나 건강 상태를  알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생
김새를 통해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한다는 점에서도 혼동하기 쉽다.
  하지만 관상학에서 사람의 생김새를 파악하는 것과 형상의학에서 환자의 형색을 파악하는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아주 다르다. 관상학은 생김새의 좋고 나쁨을 가지고 그
사람의 길흉화복이나 운명을 점친다. 이에 반해 형상의학은 질병을 치료하고 보양을 목적으
로 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같은 대상을 두고도 서로 다르게 볼 때가 있다. 앞에서 잠깐 얘기
했던 귀의 경우가 그렇다. 관상학에선 귀가 크고 귓불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을 좋은 상으로
본다. 그러나 형상의학에선 귀가 큰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귀가 크면 신장 또한 큰데, 신
장이 크면 허리가 잘 아프고  나쁜 기운에 상하기 쉬우므로 건강치  못하다고 여긴다. 귀는
작으면서 단단해야 좋다.
  형상의학의 중요성은 질병 치료뿐만 아니라 예방의학의 차원에서도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
다. 형상의학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형상, 즉 생긴  대로 병이 온다' 는 것이다. 여기
서 말하는 '생긴 대로' 란 겉모습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성정과 살아가는 방식까
지 모두 포함된다. 가령 호랑이는  육식을 하고 등뼈 운동을 하는  동물이므로 병에 걸려도
모두 그 때문에 병에 걸린다. 썩은 고기를 먹었거나 너무 과식했을 때 병이 오는 것이다. 그
리고 등뼈 운동을 하며 살기 때문에 등뼈쪽으로 병이 오기 쉽다. 그것이 바로 호랑이병이다.
결코 호랑이에게 토끼병이 올 수는 없다. 토끼는 호랑이와 달리 초식을 하므로 초식에 관련
된 병이 찾아오게 되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뚱뚱한 사람은 뚱뚱한 게 병의 원인으로 작용하며, 마른 사람은  말랐
다는 게 병의 원인이 된다. 간단히 말해 '생긴 대로 병이 오는'  것이다. 따라서  뚱뚱한 사
람은 뚱뚱한 대로, 마른 사람은 마른 대로 각자 생활의  법도가 다르며 건강을 유지하는 방
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의 형상에 맞게 생활하면 누구든 병을 예방할 수가  있
다.
형상의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
키라는 말이 있다. 기름독 깨고 풀밭에서 깨알 찾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또 있겠는
가.
 
    2. 존재 그 자체가 병이다.
  인간은 누구나 병 없이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인간은 모두 어떤
형태로든 병으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태어나
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병에 걸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아프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일평생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몸에
좋은 음식과 보약을 찾아다니고, 건강에 좋다는 운동을 하며, 병을 잘 고친다는 의사에게 매
달린다. 하지만 이런 눈물겨운 노력도 질병에 대한 올바른 개념이 서지 않는다면 곧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일반적으로 병으라고 하면 절대로 걸려서는 안 되는 것, 만약 병이 생겼다면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하는 것 등 부정적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형상의학에서는 질병을 부정적인 시각으
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물론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에게 있어 질병은  부
정적이면서 동시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질병이란 인간이 흠(모순)을 지닌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타나지만, 그 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완전할 수  있도록 하는 삶의 원동력
이 되기도 한다. 형상의학에서는 '존재 그 자체가 병' 이라고  본다. 사람을 포함하여 이 세
상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물은 형상을 지니고 있다.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오로지
신뿐이다. 신은 존재물을 창조한 존재자로, 조금의 부족함도  조금의 넘침도 없이 완전하다.
이와 달리 존재물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 고유의 가치와 함께  흠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
치란 흠이 있으므로 해서 생겨난다.  흠 없이 완벽한 존재라면  그  자체로 필요충분하므로
더 이상 가치 있을 게 없다. 뭔가 가치가 있다고 하는 건 부족함(흠)을 메워줄 수 있기  때
문이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에는 항상 가치가 있다. 가치가 없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 백
사장에 널려 있는 수많은 모래알도 가치가 있다. 우리가 집을  짓기 위해선 모래가 꼭 필요
하다. 집을 짓는 데는 큰 주춧돌과 멋진 나무도 있어야  하지만 모래가 빠져서는 아예 집을
지을 수조차 없다. 좋은 것만 찾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렇듯 모든 존재물은 나름대로  필
요로 하는 데가 있다. 필요로 한다는 건 곧 존재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깨알 같은 모래알이 이럴진대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더욱이 사람은 정신과 혼백을
지닌 존재물이며, 천지의 사명을 받고  태어난 소우주이다. 사람도 다른 존재물처럼  형상을
갖고 태어났지만 사람에겐 오행이 갖추어져 있고 정신과 혼백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을
단순한 존재물(예를 들어 시계나 라이터 등)과 구분하여 태극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사람은 완전할 수 없다. 사람을 이루고 있는 오행 자체가 편협되어 있는 까닭이다.  사
람이 완전할 것 같으면 그냥 존재해야지 왜 존재물로 만들어지겠으며, 또한 자랄 필요가 없
을 텐데 왜 계속 자라겠는가. 바로 이 불완전함, 부족함이 존재의 흠인 것이다. 결국 사람이
란 존재 자체가 모두 흠이라고 할 수 있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 사람에겐 손이 있다. 손이 있어 물건을 집을 수도 있고 음
식을 먹을 수도 있으며 운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늘 달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며,
혹시 아프기라도 하면 그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손을 없애버린다면(다
시 말해 흠을 제거해버린다면) 그것이 또다시 흠이 되어 사람을 괴롭힌다. 존재물이란 있어
도 흠, 없어도 흠인 셈이다. 이러한 흠 때문에 사람은 병으로 고통받는다. 따라서 병이란 아
예 없던데서 새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흠을 지니고  있듯이 언제나 병을 몸에 지
니고 있는 것이다. 다만 몸이 허약해졌을 때 숨어 있던 흠이 병으로 변해 겉으로 드러날 뿐
이다.
  사람의 경우 입술이 크고 힘이 없으면 비장이 약하다는 것이니, 이것이 곧 흠이 된다.  귀
가 얇고 든든하지 못하면 콩팥이 약하다는 것이니, 이 또한 흠이 된다. 피부색이 희면 폐 기
능이 약한 것이므로 이것도 흠이 된다. 지나치게 살이 찌면  습에 약하므로 이로 인해 병이
올 수 있으니, 이것이 흠이 된다. 너무 일을 많이 하는 것도 흠이 되는데, 이는 과로로 인해
쉽게 병이 오기 때문이다. 눈가의 주름은 심이 허하다는 것이고, 콧등의 주름은 간이 허하다
는 것이므로 이 모두 흠이 된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흠이 있다. 얼굴에 낀 기미의 상태나 기미가 끼어 있는 부위로 흠을
찾을 수 있으며, 남자가 여자처럼 생겼느냐 여자가 남자처럼 생겼느냐에 따라 흠을 찾을 수
있다.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흠이지만  너무 나태한 것도 흠이 된다. 또한 엉덩이가  큰
것도 흠이며 작은 것도 흠이 된다. 피부색이 너무 희거나 검은 것도 흠이며, 너무  푸르거나
누런 것도 흠이다.
  나이를 먹는 것도 흠이 될 수 있다. 가령 나이가 70세인 노인분이 와서 자기는 아무 일도
안 했는데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하자, 실제 임상에 있다보면 이런 분들이 꽤 많다.  본인이
생각하기엔 특별히 허리 아플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자꾸 허리가 아픈  것이다. 왜 그럴까?
이 세상엔 원인 없는 결과란 있을 수가 없다. 환자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만 70세가 되도록 어찌 아무 일도 하지 않았겠는가.  집을 지은 지  70년이 되면 당연히 시
설도 낙후되고 고장난 곳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나이를  먹으면
오장육부의 기능이 저절로 쇠약해지고 정기도 흐려지게 되어 있다. 원기가 떨어지고 진액이
부족해지니 허리 쪽으로도 불편한 증상이 찾아온 것이다.
  또한 약점만이 아니라 장점도 흠이 된다. 형상의학에선 관골(광대뼈)이 나온 사람은 뼈가
굵은 체질로 본다. 뼈가 굵은  사람은 원래 타고난 골격이 튼튼하기  때문에 강단이 있으며
웬만한 일엔 그다지 힘들어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대체로 아주  열심히 일하는 편이며 쉽게
지치는 일도 별로 없다. 하지만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과로하는 일이 많다. 말 그대로 뼛골
빠지게 일한다. 뼈가 굵은 사람이 뼛골 빠지게 일하니 뼈 쪽으로 병이 오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한번 병이 오면 쉽게 고치기 어렵다. 건강한 체질이 도리어 흠이 된다고 하
겠다.
  지금까지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내적으로 지니고 있는 흠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인간
을 둘러싸고 있는 외적인 조건(환경)도 흠이 된다. 풍한서습조화라고 하여 바람, 추위, 더위,
습기, 건조, 화기 등이 외부적인 흠으로 작용한다. 병이란 이러한 외부적인 조건을 이겨내지
못할 때 생긴다. 결국 우리 인간은 흠 없이 태어나는 사람도 없고, 흠 없는 곳에서  살 수도
없으니 존재하는 것 자체가 흠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구나 제몫의 병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렇게 흠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병이 되는 것은 아니다.
  흠이란 나쁜 것은 아니다. 흠을 흠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그 흠을 배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 오히려 흠은 발전의 원동력, 건강의 원동력이 된다. 옛말에 '골골 팔십' 이라 했다.
원래부터 몸이 약한 사람, 즉 흠이 많은 사람은 그 흠을 보충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더 오래
산다는 뜻이다. 반대로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는 사람들 중에 요절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
다. 건강하다는 생각에만 젖어서 과로와 과식, 과음을 하는 등 불규칙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생활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불행한 결과다. 흠이 병이 되어 고생하느냐, 아니면 흠이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건강하게 사느냐는 오로지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3. 똑같이 생긴 쌍둥이는 병도 똑같나요?
  형상의학의 관점에서 생긴 대로 병이 온다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호기심 어린 질문
을 해댄다. "관상학하고는 어떻게 다른가요?" 부터  시작해서 "진짜로 생긴 모습만 척 봐도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알 수 있나요?" "똑같이 생긴 사람은 똑같은 병을 갖고 있겠네요?" "가
족들끼리는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병도 비슷하다는 얘긴가요?" 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
다.
  질문의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이런 질문들 속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의문점은 모두 똑
같다. 과연 형상의학이란 것이 어떠한 의학적 근거를 갖고 있느냐, 그리고 실제로 환자를 치
료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냐 하는 점이다. 환자의 생긴 모습과 겉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징후와 증상을 바탕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형상의학이란 이름을 달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아니, 의학이라는 체계화된 학문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환자(사람)라는 대상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고는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형상을 바탕으로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이 의학적으로 정리된 것은 중국 한
의학의 최고 의서로 꼽히는 황제내경부터 시작된다.  이 책은 복희, 신농과 함께 중국  삼황
(삼황이 누구누구인가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다)의 한 사람인 황제가 기백이라는 신화와 더
불어 의학 원리론에 대해 묻고 대답한 내용을 실어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오장외후(몸 바깥
의 형상과 징후로 몸 안의 오장육부  상태를 살피는 것)를 비롯하여 생활  법도까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우리나라 한의학의 뿌리인 동의보감도 황제내경의 의학  이론들을 수용하고 있는데, 내경
편과 외형편을 보면 인체의 형상이 여러 가지 질병과 어떻게 연관되는지가 상당히 구체적으
로 나와 있다. 특히 사람의 형색을 살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형체는 긴 편이 짧은 편만 못하며, 큰 편이 작은 편만 못하고 살찐 편
이 여윈 편만 못하며, 흰 편이 검은 편만 못하고... 더욱이 살이 찌면 습이 많고 여위면 화가
많으며, 살결이 희면 폐기가 허하고 검으면 신기가 족하므로 사람에 따라 형색이 다르고 오
장육부도 같지 않으니,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비록 같을지라도  치료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는 형상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콧물이 줄줄 흐르고 목구멍이
따갑고 기침을 해대는 식으로 똑같은 감기 증상을 보이더라도 그 환자가 살이 쪘는가 말랐
는가, 피부색이 흰가 검은가에 따라 병의 원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병의 원인이
다른 만큼 똑같은 증상의 감기라고  해도 치료법을 달리해야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동의보감의 잡병편에 보면  얼굴의 모양과  빛깔로  병을 진단하는 그림인  '관형찰색도'가 
있다. 그리고 얼굴에 나타나는 빛깔을  보고 병증을 알아내는 데  대한 노래인 '면상형증가'
도 나온다. 그림과 노래로까지 기록했다는 것은 그 활용도가 매우 컸음을 의미한다.
  '생긴 대로 병이 온다'고 하는 형상의학은 이러한 의학 이론을  토대로 하면서 주역을 비
롯한 동양 철학과 실제 임상 경험을 의학적으로 체계화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형상의학이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는 데는 어떻게 적용되는가, 과연  사람의 형상이 병의 원
인을 가려내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무엇보다 중요하고  궁금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선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여기서도 간단히 살펴보
기로 하자. 임상 환자들의 증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지만 그 중에는 허리
요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두 다리로 서서  직립보행하는 인간의 특성상 허리
가 가장 쉽게 손상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요통은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증상도 참
으로 다양하다. 허리가 은근히 아픈 사람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려면 몸이 개운치  않으면서 
허리가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아픈 사람도 있다. 또 오전에는   괜찮다가 오후만 되면 허리
통증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허리가 아프면서 두통과 식욕부진 등 다른 증
상까지 겹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요통은 가장 흔하면서도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복합적이기 때문에 그 원인을 정
확히 가려내 치료하기란 그리 수월치가 않다. 이때 환자의  형상을 중심으로 진단하면 호소
하는 요통 증상들도 조금씩 차이가 나며 원인도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피부색이
검은 사람의 요통은 대부분 그 증상이 은근하게 나타난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고 호소
하는 게 아니라 뻐근하고 은근하게 아프다고 표현한다. 이런 경우 변비의 경향도 보이며 입
냄새도 많이 나고 발바닥이 화끈거리는 수도 있다. 배에 가스가 차기도 하고 뒷목이 뻣뻣하
면서 어깨 통증도 수반된다. 이것은 신허(신장 기능이 약함)로  인해 발병하는 요통이다. 피
부색이 검은 사람은 체질상 신 기능에 장애가 많이 오는데 허리 통증도 그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 기능을 돋워주는 '가미신기환'을 쓰면  전체적인 몸의 기능도 호전되면서
허리 통증도 사라지게 되어 있다.
  피부색이 희면서 뚱뚱한 사람은 허리가 아플 때 땀이 많이 나고 설사의 경향을 보이면서
항상 피곤해한다. 또한 소변이 잦고 낮이면 꾸벅꾸벅 졸기도 하며  식욕이 나지 않아 통 먹
으려 들지 않는다. 이런 증상과 함께 발병하는 요통을 한의학에선 양허요통이라 하는데,  이
는 양기가 부족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양허요통에는 체질에  맞게 '보신탕'을 처방하면 효과
가 아주 좋다. 하지만 여기서의 보신탕은 복날에 먹는 보신탕이  아니라 한약 처방 중의 하
나이므로 잘 구별해야 한다.
  그리고 깡마른 사람들이 호소하는 요통의 증상은 대체로 오전보다는 오후에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불면증과 변비 증세가 같이 나타나는 수가 많다.  이는 음허(음의 기운
이 약함)로 인해 발병하므로 음의 기운을  보해주기 위해 '보음산', '대조환'이나 '보음익기
전'을 처방하면 된다. 물론 이 처방들은 개인의 체질에 따라  각기 다르므로 전문 한의사의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이렇게 요통으로 고생하는 환자의 형상을  살피면 그 원인을 정확
하게 가려낼 수 있다.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야 빠르고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요통도 그렇거니와  거의 모든 질병이 다양한  증상을  수반하게 마련이라
치료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럴 때 환자의 형상을 살피는 것은 중요한 잣대가 된다.  형
상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환자의 형상을 살피는 것, 즉 관형찰색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독 관형찰색만을 두드러지게 강조하려는 건 아니다.  맥을 보고 증상을 진
단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진맥의 과정을 빼놓을 수
없다. 옛말에 "남자 열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보다 부인 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어렵고, 부
인 열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보다 어린이 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이
는 어린아이들의 경우 구체적인 증상을 정확하게 묻기 어렵고 맥을 진찰하기 어렵기 때문에
치료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자기 속마음을 솔직
하게 털어놓지 않는 까닭에 진찰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여자들은 평생  살을 섞고 사는
남편한테도 영원히 털어놓지 않는 비밀이 있다는데, 글쎄...  어쨌든 여성은 맥을 반드시 짚
어봐야 정확한 병증을 알아낼 수 있다. 이에 비해 남성은 형을 위주로 해서 보게 된다.
  맥을 살펴보면 병의 원인과 진행  상황뿐만 아니라 환자의 성격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지금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알 수 있다. 한약이든  양약이든 어떤 종류의
약이든 복용을 하면 양쪽 손의 맥이 똑같이 나온다. 병이  났다는 것은 맥이 불규칙학 일정
하지 않다는 것인데 약을 복용하면 불규칙한  맥을 눌러주어 양쪽 맥이 똑같아지기  때문이
다.
  형색맥증은 어디 하나만을 따로 떨어뜨려 생각해선 안 된다.  네 가지 모두를 종합적으로
활용했을 때 비로소 완벽하고 효과적인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다. 자칫  형상의학이라 하면
다른 건 모두 무시하고 형상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형상의학
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형색맥증의 합일에 의해 질병을  치료하고 보양하는 데 있다.
이처럼 형색맥증에 의한 종합적인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져야 검사상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계속 병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나, 원인은 밝혀졌는데도 잘  치료되지 않는 경우도 순조롭게
완치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궁금증을 풀어보면서 건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
려 한다. "똑같이 생긴 쌍둥이는 과연  병도 똑같을까?" "비슷하게 생긴 가족들끼리는 비슷
한 병을 앓게 되는 걸까?" 이 두 가지 질문은 하나로  묶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형상의
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생긴 모습에 따라 병이 오고 증세와 맥이 일치한다고 하는데, 그렇다
면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은 비슷한 병을 앓게 되는가'  하는데 대한 의문이다. 주위에서 보
면 흔히 병내림이라고 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이 간암으로 사망한다든지, 고혈압이나 당
뇨병으로 가족 중 여러 명이 함께 고생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런 경우를 형상의학에서는
과연 어떻게 해석할까.
  우선 똑같이 생겼다, 혹은 비슷하게 생겼다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족
들끼리 서로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은 체질을 결정짓는 유전적인 형질이 비슷하다는 걸 의미
한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니 서로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한날 한시에  태
어난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체질이  비슷하니 병을 일으키는
소인도 서로 비슷하게 갖게 된다. 특히 한 공간 안에서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생활한다
는 생활 환경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체질이 똑같다고 해서 모두 똑같은 질병을 앓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흠이 병
이 된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흠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병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아
무리 큰 흠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건강한 상태에서는 그  흠이 드러나지 않는다. 지나친 육
체적, 정신적 노동이나 과도한 성생활,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노쇠 현상 등의 원인
이 작용하여 신체적으로 허약해졌을 때 질병에 걸리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러한  부정적
인 요인이 작용하지 않도록 건강하게 생활하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똑같은 체질을 타
고난 쌍둥이라 해도 각각의 개인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선천적인 체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생활
습관으로 후천적인 환경을 건강하게  가꾸는 일이다. 이점을  명심한다면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 물음에 대해 확실한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4. 남자는 코, 여자는 입이 잘생겨야 한다.
  우리 한의원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불임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첨단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호르몬 요법이나 인공 수정, 시험관 아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시
도되고 있긴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도 아기를 갖지 못해 시름에  잠긴 부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32세의 김씨는 두 번에 걸친 시험관 아기 시술과 함께 인공 수정도 여러 번 시도했다.
뿐만 아니라 도중에 나팔관이 막혀 뚫는 수술까지  받는 등 온갖 애를 썼지만 임신이 되지
않아 무척 고생했다. 또 38세의  양씨는 결혼한지 10년이 되도록 아기가  없어 인공 수정을
여섯 차례나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불임으로 고생하는 여성들을 보면 생김새에  있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
다. 훤칠한 키에 골격이 굵고 어깨가 넓어서 마치 남자처럼 생겼다든가, 피부에 윤기가 없고
거칠며 색이 좋지 않다든지, 손발이 차고 배에 살이 많이 쪘다든가 등등. 이러한 특징은  여
성으로서 본래 갖춰야 할 기본 조건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즉, 여성의 기본형과  어긋
난다는 말이다.
  여자다운 여성의 모습은 몸에 비해  머리의 크기가 작으며, 얼굴 중에서  특히 눈과 입이
예쁘게 생기고 뼈는 가늘면서 살이 통통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슴과 엉덩이가 잘 발달되
고 상체보다 하체가 풍만한 것이 좋다. 이는 여성성이 풍부할 때 나타나는 외형적인 생김새
라 하겠다. 여기서 여성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서양 의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면 여성 호르
몬이 충분히 분비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같은 여성 호르몬
이 충분해야만 여성의 고유 기능인 월경, 임신, 출산  등이 순조로워진다. 한데 남자같이 생
겼다는 것은 바로 이 여성 호르몬의 분비가 원할치 못함을  뜻한다. 결국 이런 생김새는 여
성으로서 흠, 모순을 지녔다는 얘기가 되고, 따라서 불임이라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
렇다면 여성성이란 무엇이며, 반대로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생겨야 여성다운 것이며,
또 남성다운 것인가? 그리고 거기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해
볼 필요가 있다.
  여자는 키가 작고, 남자는 키가 큰 것이 원칙이다. 앞에서 잠깐 살펴보았듯이 여자답게 생
긴 여성은 몸에 비해 얼굴이 작고, 뼈가 가늘면서 살이 통통하며, 상체보다 하체가 크고  잘
발달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 모습은  비너스상을 떠올리면 금방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삼각형의 구도를 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남자다운 남성의 모습은 미
켈란젤로의 다비드상처럼 근골형으로 생겼다. 머리가 크고 어깨와 등이 잘 발달되었으며 뼈
가 굵은 것이 역삼각형의 구도를 갖추고 있다. 또한 여자에 비해 어느 정도 배가 나와 있는
게 특징이다.
  이러한 신체적인 차이는 남녀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내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동의보감
에는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며,  남자는 천기가 성하고 여자는 지기가  성하며..." 라고
쓰여 있다. 천기는 인간을 '바로 세워주고 지켜주는' 성질이 있으며 지기는  '채워주고 길러
주고 살찌게 하는' 성질이 있다. 남자와 여자의  특성은 바로 이 기본 성질로부터 발현되는 
것이다. 천기를 지닌 남자는 하늘과 좀더 가까우므로 하체보다는 상체가 더 발달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자는 지기를 지니고  있으므로 땅과 가까운 하체 쪽이  더 발달한다. 이
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좀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처럼 하늘의 기운을 갖고 있는 남자는 땅과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항상 땅을 그리워하
며 아래로 내려오려고 한다. 그리고 여자는 땅의 기운을 갖고 있으므로 언제나 그리운 하늘
을 향해 올라가려고 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성향이 강한 남자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
가려는 여자에 비해 당연히 키가 클 수밖에 없는데, 이는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훨씬 수월
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위를 향해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여자는 키가 조금씩
밖에 자라지 않는다. 따라서 남자는 키가 큰 것이 원칙이고, 여자는 키가 작은 것이  원칙이
다. 한데 요즘에는 키 큰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여기서 키가 크다는 것은 지기에 비해
천기가 성하다는 얘기가 되므로 키 큰 여성은 남자처럼 기를 소모하는 사회 활동에 적합하
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보면 키 큰 여성은 여자로서의  역할에는 다소 미흡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즉, 여성이 키가 크면 생리불순이나 불임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고 임신을 하
고 출산하는 데 우여곡절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여성은 집안일에도 취미가 없다.
반대로, 키 작은 남자들 중엔 여성스런 기질을 가진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키가 작
은 사람은 지기가 성하여 성생활을 즐기는 경향도 있다.
  남자는 코, 여자는 입이 잘생겨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 은근히 떠도는 말 가운데  남자의
코와 여자의 입을 성기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 있다. "언닌 참 좋겠다. 형부의  코가 굉장히
크니까 말야. 코가 크면 그것도  크다던데, 히히히" 하는 농담  따위가 그렇다. 하지만 이런
유의 말은 완전히 맞는 것도,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코와 성기의  크
기는 별로 상관이 없지만, 남자는 기 위주로 생겨야 하는데  바로 코가 기에 해당하기 때문
이다. 다시 말해 코가 잘생긴 남자는 기가 강한 사람으로, 이런 사람은 가정과 사회에서  제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인간에게는 기와 혈이라는 것이 있다. 이 중에서 남자는 기  위주로 생기고 여자는 혈 위
주로 생겨야 한다. 기 위주로  생긴 남자는 양적이고 주관이 뚜렷해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
가정을 이끌어 나가고, 밖에서는 사회 생활을 잘 해나간다. 이와 달리 여성은 혈 위주로  되
어 있기 때문에 생리를 하고 아기를 잉태하고 기르고 살림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 그러
나 여성 중에는 혈보다 기 위주로 생긴 사람이 있는데, 이런 여성은 살림에 취미가 없고 집
에 있으면 답답해한다. 아기를 갖는 데도 관심이 없으며, 또한 가지려 해도 잘 생기지  않는
다. 불임 여성들을 보면 남자같이 생긴 여성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
이나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들 중에는  혈보다 기 위주로 생긴 사람
이 꽤 많다.
  기와 혈은 얼굴의 이목구비 가운데 코와 입에 해당한다. 그래서 남자는 코가 잘생겨야 하
고, 여자는 입이 잘생겨야 하는 것이다. 옛말에 행복하고 복 많은 여자는 남편한테 사랑받고
살림 잘 하고 아기 잘 키우는 여자라고 했다. 이 말은 남편한테 사랑이든 무엇이든 간에 잘
받아 먹는 여성이 복 많은 팔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받아 먹는 것은 코가 아니라 입으로 받
아 먹게 된다. 그러니 여성은 입이 반듯하고 보기 좋게 생겨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여성이
코 위주로 생기면 평생 직업을 갖고 제 손으로 벌어 먹어야 한다. 즉,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소리다.
  53세의 여성으로 손발이 너무 저려 고통스럽다며 찾아온 적이 있다. 그녀는 코가 크고 오
똑하며 살이 없는 현대판 미인형이었다. 의사인 내 눈에는 코, 즉 기 위주로 생긴 남자 같은
여성이었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기실하다고 하는데, 흔히 얘기하는 '기가  드센  여성'에 속
한다. 그녀는 손발이 너무나 저려서 여러 가지 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유명하다는 병원, 한의원, 침술원을 다녀도 효과가 없다며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조금만 신
경을 써도 통증이 심해져서 밤잠을 설칠 지경이란다. 어떨 땐 말도 못 할 정도로 아파서 팔
이 아예 없었으면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경우,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아주 당연한 얘기였다.  아무
리 의료 기술이 발달했다 해도 기가 제대로 운행하지 못해서 생긴 손발 저림이 검사상에 나
타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전업 주부인데도 집에만 가만히 있질 못한다고 했
다. 왜냐하면 집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것이다. 진찰  후, 그녀의 기를 소모시켜 제
대로 운행시켜줄 목적으로 향부자를 중심으로 한  처방인 정기천향탕을 투여하였다. 그리고
나서 얼마 안 있어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하던 손저림이 신기하게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
다. 아마도 여성이 입술(혈) 위주로 생겨야 한다는 원칙을 몰랐다면 치료가 불가능했을 경우
였다.
  남자는 피부색이 검고, 여자는 흰 것이 원칙이다. 인간의 생활이 아무리 급변하고  시대가
뒤바뀐다고 해도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여자의 고유 기능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불변의 원칙이다. 또한 여자가 이렇게 집 안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남자는 식
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밖에서 일을 하도록 되어 있다. 원시  시대엔 사냥을 했고 농경 시대
엔 농사를 지었으며 요즘에는 각자 직장에 나가 사회 활동을 함으로써 식구들의 생활을 책
임진다.
  우리말에 '바깥양반' 과 '안사람' 이라는  것이 있다.  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안에서
주로 생활하느냐, 밖에서 주로 생활하느냐에 따라 남녀를 구분한 호칭이다. 이러한 생활  공
간의 차이는 사람의 생김새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밖에서 생활하는 추위, 바람, 더
위라는 환경적 요인을 극복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여리고  흰 피부보다는 강하고 검은
피부가 더 적합하게 마련이다. 이와  반대로 주로 집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피부가 저절
로 희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남자는 피부색이 검으며, 여자는  피부색이 희다는 원칙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남자와 여자는 단순한 의미의 남녀 구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폭넓은 의미
에서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피부색이 검은 여자는 여성성보다는 남성성이 더  강한 사람으로, 외분의 나쁜
여건들과 맞서 이길 수 있는 강한 기질을 지녔기 때문에 집 안에만 얌전히 있기보다는 남자
처럼 활동적으로 생활하는 게 더 맞는 타입이라 하겠다. 만약  검은 피부색의 여성이 집 안
에서만 주로 생활하면 남성처럼 강한 기가 제대로 풀리지 못하고 울체되어 신경성 두통, 신
경성 위염, 우울증, 생리불순, 갑상선 질환 등에 시달리기 쉽다. 그러므로 여성이라도 피부색
이 검으면 직업을 가짐으로써 기가 쌓여 울체되는 것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이것이 병을 치
료하는 좋은 처방이자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각각 생긴 모습대로 자신이 지니
고 있는 가치를 최대한 발휘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반대로, 피부가 흰 남자는 기허하다고 해서 쉽게 지치고 진취력이 부족하며 추위, 바람 등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약하다. 그래서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축농증, 그리고 만성  위염
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내가 치료했던  환자 중에 피부색이 유난히 흰 남자로,  안면마비
때문에 고생한다며 찾아온 적이 있었다.
  눈이 많이 내리던 추운 겨울날이었다. 30대 중반의 남자가 마스크를 하고 내원하였다.  그
는 안면마비 증상으로 벌써 2개월째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치료를 하고 있는데 도통 기운
만 빠질 뿐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었다. 진맥을 하려고 보니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손
끝에 닿는 느낌이 끈적끈적했다. 나는 그것이 피부가 흰  남자에게 나타나는 상풍 현상임을
직감하고는, 그에게 바람이 싫은지를 확인하였다. 그가 말했다. "바람이 조금만 강해도 금방
눈에서 눈물이 나오고 코가 꽉 막힙니다. 제 직업이 책  외판원이라 항상 밖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는데, 맨날 이렇게 몸이 골골거리니  정말 힘이 듭니다. 안면마비가 온 날도  그랬어
요. 땀을 많이 흘린 상태에서 바람이 아주 싫으면서 오싹 감기가 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
군요. 그러더니 저녁식사를 할 때부터 안면 감각이 이상했고, 다음날 아침에 안면마비가  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후로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침 치료도 하고 한약도  먹어봤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어요."  진찰 후, 그가 남자면서도 피부가 유난히 희고 땀이 많으며 바람이 싫은
것으로 보아 상풍으로 인한 안면마비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에 삼소음을 투여하였다. 그런
데 삼소음이라고 하면 주로 감기나 기침에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처방을 안
면마비 증세에 투여했다고 하면 누구라도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환자는 삼소
음을 복용하고부터 땀이 덜하면서 피곤도 가시고 마비 증세까지 차츰차츰 풀리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 침 치료가 필요없다고 하니까 환자는 무척이나  못 미더워하는 눈치를 보였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안면마비가 오면 무조건 침을 맞는 것이 상식화되어 있고, 지금까지도
그런 치료를 받아왔기 때문에 침을 맞지 말라는 나의 말에 불안해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 환자의 경우는 피부가 흰 사람이, 즉 기운이 부족한 남자가 힘든 일을 많이 함
으로써 땀이 흐르고 추운 겨울의 찬바람을 이기지 못해 안면마비가 발생한 것이다. 만약 이
경우에 남자에게 있어 흰 피부가 모순이라는 것을 모르고 안면마비 증상에만 치중했다면 정
확한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환자는  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 피부색
이 매우 중요한 착안점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이 밖에도 여자와 남자
는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른 원칙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각자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특정짓고
삶의 방식도 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 내용만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여자는 살결이 곱고 남자는 살결이 거친 것이  원칙이다. 여자는 원래 습(습기)하기
때문에 살결이 부드러울 수밖에 없으며, 남자느 조(건조)하기 때문에 대체로 살결이 거칠거
칠하다. 만약 이 원칙에서 벗어나 여자면서도 피부가 곱지  못하고 거칠거나 희끗희끗한 반
점이 피부에 있으면 여성으로서 모순을 갖고 있는 것이 된다.  이런 여성 중에 불임이나 유
산 등으로 고생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자가 너무 습해도 병이 온다. 따라서
습한 것이 지나치지 않게하려면 치마 끝에 바람이 일도록 부지런해야 한다. 여자는 땅의 기
운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땅의 기운이란 습하기 때문에 게으르게 살면 습에 손상되기  쉽다.
이와 반대로 남자는 본래 건조한 기운이 우세하므로 굳이 습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
가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남자는 여자보다 게으른 편이다.
  둘째, 여자는 추위에 강하고 남자는 추위에 약하다. 여자는 추위에 강한 만큼 더위에는 약
하며, 남자는 추위에 약한 만큼 더위에는 강하다. 왜냐하면 생리적으로 볼 때 여자들은 땀이
적으며, 남자들은 땀이 많기 때문이다. 땀이 많다는 것은 여름철의 뜨거운 열기를 땀으로 내
보낼 수 있다는 뜻이므로, 땀이 많은 남자가 여자에 비해 더위를 잘 견디는 것이다. 또한 여
자들의 경우 여름철이 되면 양산을 쓰는데, 이것도 단순히  맵시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땀이
적은 체질이라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어야 한다는 생리적인 이유가  담겨 있다. 이렇듯 여자
는 원래부터 땀이 적은 것이 원칙인데, 만약 여성이 지나칠  정도로 땀을 많이 흘리면 혈한
이라고 해서 음혈이 새는 것으로 본다. 음혈이 새버리면  피부가 거칠어지거나 변비가 생기
기도 하며 자궁이 메말라서 임신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셋째, 여자는 가슴과 엉덩이가 발달하고 남자는 어깨가 넓고 등과 배가 발달하는 것이 기
본이다. 여자는 식사를 잘 하고  많이 먹으면 가슴부터 커지고 남자는  배부터 살이 찌면서
앞으로 나온다. 이는 체질상 남녀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본에서 벗어나  만약
여자가 배에 살이 너무 많이 찌면 임신이 잘 되지 않는 문제가 일어난다. 배 부위에 지방질
이 지나치게 많으면 자궁과 그 부속 기관들이 압박을  받아서 순환장애를 일으키고, 난소와
자궁의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불임이 되는 것이다.
 
    5. 보약도 생긴 대로 먹어야 한다
  유독 봄, 가을만 되면 보약을 지으러 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다. 이들은 대부분 특별히
무슨 병을 앓고 있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힘든 계절을 건강하고 편안하게 넘기고 싶
어서 찾아온다. 어떤 이는 단골 한의원을 정해 해마다 연례 행사처럼 보약을 지어 먹는다고
도 한다. 보약 먹는 게 마치 생활 습관처럼 굳어져버린 것이다.
  보약을 지으러 오는 사람은 거의가 주부들이다. 자신의 약을 지으러 오기보다는 남편이나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정말이지 눈
물이 날 정도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더니, 그 말 그대로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 딸아이 때문에 보약을 좀 지으러  왔어요. 학교에서 수영 선수로 뛰
고 있어서 체력 소모가 많은  편이거든요. 하지만 워낙 건강한 아이라  아직껏 크게 앓아본
적은 없어요. 보약도 한번 먹이지 않았구요. 근데 다른 엄마들을 보니까 아이들한테 쏟는 정
성이 이만저만 아니더라구요. 무슨 민물고기를 고아 먹인다, 보약을 먹인다 하면서 야단들이
에요. 그래 저도 이번에 큰맘 먹고 보약 한 제 지어 먹이려고 이렇게 찾아왔어요."  제 자식
제가 위한다는데야 누가 뭐라고 탓하겠느가. 하지만  요즘 엄마들의 극성에 가까운 애정 표
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영 편치 않다. 불편한 데도 없고, 그렇다고  아프지도 않은 아이
에게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보약을 지어 먹이려는 것은 별로 보기 좋은 풍경이 못 된다. 아
이들에겐 뭐든 잘 먹고, 잘 소화시키고, 잘 뛰노는 것만큼 좋은 보약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온 이씨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아이가 어떻게 생겼습니
까? 마른 편인가요?" "네, 키가 크고 마른 형이에요. 뭐든 가리지 않고  굉장히 잘 먹는데도
살은 찌지 않더라구요. 살결은 흰 편이구요." "잔병치레를  많이 하지는 않죠?" "어려서부터
별로 앓아본 적이 없어요.감기에 걸려도 오래 끌지 않고 금방금방 낫구요." 여기까지 물어본
나는 더 이상 질문할 것이 없었다. 한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그렇게 건강하게 잘 지내는데 뭐 하러 보약을 먹이려고 하세요? 그냥 평소에 잘 먹는 음식
을 자주 만들어 주세요. 맛있게 먹도록요." "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이씨는 어리둥절
한 표정을 지었다. 지어달라는 보약은  안 지어주고 엉뚱한 말만 하는  내가 도무지 이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먼 곳까지 찾아와준 부인의 정성이 헛되지 않도록 보약에 대한 이
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흔히들 보약 하면 건강할 때  미리 맞아두는 예방주사 같은 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 심하게는, 보약이 만능이라도 되는 양 보약만 먹으면 절대로 병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과신하는 이들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보약을  비롯하여
어떤 종류의 약이든 간에, 일단 약을 쓴다는 것은 우리 몸에 여러 가지 불편한 증상이 나타
났을 때에 한한다. 예를 들어, 자꾸만 잔병치레를 한다거나 감기에 잘 걸린다거나 밥을 제대
로 못 먹고 깜박깜박 졸면서 시름시름하는 경우들 말이다. 조금 전에 얘기했던 이씨의 딸아
이처럼 무엇이든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는 아이들은 굳이 보약을 먹일 필요가 없다. 일반적
으로 사람들은 뚱뚱하고 체격 좋은 아이들이 건강하다고 믿는  듯하지만, 오히려 이런 아이
들의 경우 잔병치레도 많고 땀도 잘 흘리며 체하기도 잘  한다. 이와 반대로 이씨의 아이같
이 잘 먹어도 살이 안 찌고 마른 체질들이 병에  대한 저항력도 강하고 차돌같이 단단하다.
이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런 체질은 비싼 보약을  먹이기보다는 균형 잡힌 식
습관으로 평소의 생활 리듬을 깨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값지고 좋은 보약이 된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치료란 찬 것은 따뜻하게 해주고, 열한 것은 식혀주며, 놀란 것은 안정
시키고, 응어리져서 맺히면 풀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치료의 가장 기본적인 밑바탕인 동시에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보약도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기능이 이상 상태로 항진된(실
한) 부분은 덜어내고(사하고), 이상 상태로 약한(허한) 부분은 기능을 돋워주어(보하여) 건강
한 육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기계도 오래 사용하면 고장이 나게 되고,  그
러면 기름을 치고 부속을 바꿔 끼우는  등 수리를 해야 한다. 그와 똑같이  인체 역시 여러
가지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원인에 의해 허약해지고 약점이 드러나서 불편한 증상들이  나
타나는데, 이럴 때 쓰는 약이 바로 보약이다. 결국 어떤 약이나 민간 요법이라도 그  사람의
체질에 맞아 그 사람의 불편함을 없애줄 수만 있다면 이것이 그 사람의 체질에 적합한 보약
이 되는 것이다. 이 말에는 보약이라는 개념을 좀더 폭넓게 보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꼭 약재로 만든 보약이 아니더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말 한마디가 보약이 될 수
도 있다.
  어느 주부가 항상 피곤하고 온몸이 아파서 갖가지 검사를 해보았지만 원인을  모르겠다며
보약이나 지어달라고 찾아온 적이 있다. 특히 집에만 들어가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늘상 누
워만 지내는 등 아무것도 못 하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고 했다. 의사인 내 눈에, 그녀는 여
성이긴 했지만 남성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성격도 아주 예민하게 보였다. 그래서 직업
이 있느냐고 물으니, 대뜸 눈물부터 흘리는 것이었다. 결혼 전에는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는
학원 강사였는데 남편이 하지 못하게 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있다고 했다. 나는
보약을 주기에 앞서 우선 그녀가 자기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능력에 맞는 위치나 상태에  있을 때 생활이 즐겁고 보람 있으며 병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자세한 설명과 함께 '선생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일
을 해보라고 권했다. 얼마 뒤, 그녀의 일을 잊고 있었는데 그 주부가 다시 찾아왔다. 예전과
는 달리 안색도 많이 좋아졌고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어찌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물으니, 자
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깥일을 열심히 하
고부터는 자신의 능력도 인정받고 너무나 즐거워서 여기저기 아프고 불편했던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얘기다. 이제는 웬만해선 피곤한 줄도 모르겠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결국 이 주
부에겐 '직업을 갖는게 좋겠다' 는 말 한마디가 보약이 된 셈이다.
  보약이란 개념 자체가 이렇게 폭넓듯이, 보약의 종류 또한 아주 다양하다. 각 개인의 체질
과 상태에 따라 적용되는 보약의 성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열 사람이면 열 가지 보약, 백 사
람이면 백 가지 보약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인삼이니, 녹용이니, 십전대보탕이니 하는
것들이 있지만 이것들도 각 개인에 따라 달리 처방되어야 한다. 녹용이 좋다고 해서 누구에
게나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편의상 보약을 나누어보면 보기약,  보혈약, 보음약, 보양약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보기약은 보양약, 그리고 보혈약은 보음약과 같은 개념에서 해석하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보기약과 보양약은 양기가 부족하여 몸이 불편할 때 쓰는  보약이다. 주로 얼굴빛이 창백
하거나 눈에 정기가 없고 살이 찐 체질의  사람들 가운데 양기 부족으로 인한 허약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수험생이나 뚱뚱한 아주머니들이 낮에 꾸벅꾸벅 조는 것, 늘 무기력하고  모
든 일에 자신이 없으며 겁이 많고 소심한 것, 고무풍선이 부풀듯 체중은 늘어나지만 오히려
기운은 더 없어지는 것 등등.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양기가 부족해서 생겨나는 것으로, 보기
약이나 보양약을 투여하면 불편한  증상들이 없어지면서 전체적으로  건강해진다. 대표적인
약으로는 인삼이 중심이 된 사군자탕을 들 수 있다.
  보혈약과 보음약은 음혈이 부족할 때 이용한다. 보통 얼굴빛이  검으면서 몸이 마른 체질
들에게 많이 쓰인다. 음혈이 부족되면 몸이 자꾸 마르면서 오후가 될수록 더 피곤해지고 정
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러다가 밤에는 정신이 맑아지면서 잠이 오지 않아 무척 괴로움을 당
한다. 음혈은 밤에 충분히 수면을 취함으로써 조성되는데,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몸이 고단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노인이 되면 허리가 구부러지는 것도 음의 부족으로 나타
나는 현상이다. 이럴 때 이용하는  대표적인 약으로는 숙지황이 중심이 된  사물탕을 들 수
있다. 이처럼 보약은 체질과 증상에 따라 달리 써야 하므로 전문가의 정확한 진료가 우선되
어야 한다. 섣불리 짧은 지식으로 대했다가는 몸에 좋으라고 먹는 보약이 도리어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삼과 녹용도 마찬가지다. 체질과 증상에  맞추어
쓰지 않으면 부작용을 일으켜 건강을 크게 해치게 된다.
  생긴 대로 약을 써야 한다는 형상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삼은 피부색이 희고 비교적
뚱뚱한 체질의 소유자에게 매우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이와 달리 피부색이 검은 편이고 살
이 없는 체질들이 인삼을 복용하면 오히려 좋지 않다. 때로는  숨이 차는 천식이 되기도 하
고 두통을 일으키며 피부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인삼의 경우, 여러 가지  다
른 한약재와 혼합해서 투여할 때는 부작용이 덜하지만 '독심탕' 이라고  해서 인삼 한 가지
만을 달여서 복용하면 부작용이 더 심하므로 아주 조심해야 한다.
  녹용은 대체로 뼈가 굵게 생긴 체질들에게 효과가  좋다. 원래 녹용은 어린아이들에겐  '
인신의 근본'을 튼튼하게 하며, 성인들에겐 보정을 시키고 골수를 튼튼하게 한다고 했다. 뼈
가 굵은 사람은 대부분 과도할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뼈에 쉽게  손
상이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뼈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하는데, 바로  이럴 
때 녹용을 쓰면 좋은 것이다. 이와 같이 아무리 좋은 명약이라고  해도  체질에 맞게 잘 복
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함부로 투여하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한 사람에게 
좋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좋으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  바로 한의학의  어려움이라
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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