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my blog with Bloglovin FraisGout: 신념을 가져라

신념을 가져라

신념을 가져라

  여러분에게 묻는다
  "우리나라는 온갖 기회가 넘쳐 흐르는 나라인가? 이
나라에서는 누구든 능력과 지구력만 가지고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가?"
  그러면 여러분은 입을 모아 "물론" 하고 대답할
것이다. 글로 쓴다면 끝에다 "!"표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큰소리로 말이다.
  그러나 당신이 실직중인데다가 돈도 한 푼 없고,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희망 또한 전혀 없는 처지에 있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래도 당신은 그런 씩씩한 신념을
바꾸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신념에 의해서 행동할
수 있겠는가?
  다음 이야기는 그런 사람에 관한 것이다.

  미국 미주리 주의 인디펜던스에 사는 레로나드 A.
트렌처드는 1928년에 돌아가신 부친으로부터 10만
달러 상당의 유산을 상속 받았다. 그런데 겨우 1년이
지난 뒤, 그는 한 푼도 없는 파산 상태에 처하고
말았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제 아버지는 부자셨습니다. 그리고 인자하셨죠.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아버지 수표를
사용하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벌써 그때부터
언제든지 돈이 필요할 때마다 아버지의 거래은행
구좌 수표에 서명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 일리노이
주립대학에 다닐 즈음에는 말할 것도 없었죠.
저는 돈이라는 것의 가치는 물론이고, 제 손으로 어떻게
벌어야 하는 지도 알지 못한 채 어물어물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버지
은행 구좌의 수표에 서명하는 것뿐이었죠. 그런데
아버지는 미주리 주의 렉싱턴 부근에 있는 제법 넓은
토지를 저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땅에 농사를 지으며 살기로 했습니다."
  그는 서툴게나마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때 무서운
불경기가 전국을 휩쓸었다. 그래서 그는 큰
적자를 보았다. 갈수록 빚이 늘어만 갔다. 그는 토지의
일부를 저당 잡혀 밀린 빚을 갚고 수표 구좌의
예금을 보충했다. 그러나 농사일은 갈수록 실패만
거듭했고, 그는 저당 잡힌 토지를 아주 헐값에
팔아 넘겼다. 그 돈은 밀린 빚을 겨우 갚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일은 그 뒤로도 되풀이됐다. 돈이
필요해질 때마다 그는 이것저것을 저당 잡히든가
팔아 치워서 급한 불을 껐다.
  그렇게 그는 아버지가
남겨 준 유산으로 살았다. 드디어 최후 심판의 날이
찾아왔다. 그에게는 이제 돈도, 팔아 치울 토지도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생명을 유지하려면,
일자리를 얻으러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그건 그가 그때까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잡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수표에 서명하는 습관'이라는, 지금껏 그가
의지하고 있던 낡은 지팡이가 뚝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처한 곤경에 대해서, 그리고
그때까지 자기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던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평소에 미국에 대해서 이렇게 입버릇처럼 말해
왔던 것이다. "성공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미국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가 주어진
나라다," 그런 신념으로 그는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불경기가 계속되고 있어서 일자리는 쉽사리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몇 가지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는 건강하며, 대학 교육을 받았고, 실무
훈련도 몇 가지 받았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그때까지의 실패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몸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즉시 행동에
옮기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활과 사물에
대하여 생각하는 방법을 완전히 새로 정리하여 고쳤다.
  그는 어떤 일이든 해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자리를 찾아내는 일은 무척 어려워서 그는
깊은 실망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나 실망이 그를
무너뜨리려고 할 때마다 그는 마음 속에서 피어오르는
의구심과 공포를 굳은 신념으로써 극복하려고
애썼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길이 열린다'는 신념!
적당히 단념해 버리고 싶은 그를 다져 준 것은 바로 그
신념이었다.
  결국 그의 신념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는 캔자스시티의 유니언 금융회사에
취직할 수가 있었다. 거기서 그는 4년 동안 아주
유쾌하게 일했다. 그후, 그는 사직하고 첫사랑의 상대에
다시 대들기로 했다. 그것은 땅과
농사일이었다. 그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농사일에
달라붙었다. 이번에는 모든 일이 잘 되어 갔다.
그는 서서히 신용이 늘어감에 따라 사업을 확장하기로
하고 농장을 좋은 값으로 팔아 넘겼다. 그리고
다른 일에도 손을 뻗쳐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다. 빚을
다 갚고 잃었던 재산도 다시 찾았다.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일들이 벌어졌죠. 저는
확실히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제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이제는 그동안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얻은 교훈 덕분에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되찾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고통의 세월을 통해서 두 아들 녀석들에게 물려줄
더욱 귀중한 것, 말하자면 어떤 커다란 진리를 배운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신념을 갖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트렌처드 씨의 이야기는 무책임하고 응석받이로
자라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아주
좋은 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자각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신념을 행동으로 옮길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정신적으로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룩할 수가
있는 것이다.
  "365일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저자 존 A.
신드라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뭐든지 스스로 배워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어떤 것에 대해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인간적인 성숙을 꾀하기에 부족하다.
용기를 신념으로 삼고 있는 것이 겁장이보다는
낫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막상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꽁지를 빼고 달아나 버렸다면 그까짓
신념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신념이라는 것은
그 위에 자신의 생활과 행동을 쌓아 올리지 않으면
아무런 값어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자기 신념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곤 한다.
  언젠가 어떤 부인이 내게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어떤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셈을 치렀는데,
점원으로부터 거스름돈 50센트를 더 받은 적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그래서 돌려주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불쾌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돌려주긴 왜 돌려줘요? 그 쪽에서 잘못한
거지, 내가 더 달라고 한 건 아니잖아요? 자기
멋대로 틀렸으니까, 그건 틀린 사람 책임이죠. 계산이
그렇게 되었기에 망정이지, 잘못했더라면 내가
손해볼 수도 있었던 일이잖아요?"
  아마도 더 이상 추궁을 했더라면 그녀는 몹시 화를 내든가 창피를
느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결과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아주 미인인 데다가 선한
용모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부정직하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내가 아는 어떤 회사에서는
경리사원 선발시 면접을 할 때 심리학자를 참석시킨다.
성격과 성실도를 시험하려는 것인데, 심리학자는
선발 대상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당신을 영화광이라고 칩시다. 그래서 극장에 갔는데,
표를 구입하지 않고도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론 이런 질문에는 맹점이 있다. 거의 누구나 그런
기회에 부닥치면 움켜잡게 되는 것이 상식인데,
그런 질문에 어느 누가 "잡겠다"라고 대답하겠는가?
그러나 어쨌든 이 질문에는, 작은 일에서 부정직한
사람은 벌을 안 받을 수도 있다는 승산만 서면 틀림없이
큰일에서도 부정을 저지를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
  신념은 그 사람의 행동을 통해 명확히
나타난다. 예수는 "그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느니라" 하셨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행위이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이는 사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맞춰 살지 않는다면 어떠한 이득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우리의 열매는 시고,
생활은 위선에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일단 강한 신념을
가지고 확고한 신조를 세웠으면 거기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에 모든 일은 기한이 있고, 이뤄지는 때가 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로울 때가
있다."
  아름답고 슬기로움이 넘치는 이 말에 나는 이렇게 덧붙인다.
  "생각할 때가 있고 행동할 때가 있다."
  행동할 때가 오면 절대 망설이지 말라. 주춤거리지
말고, 핑계를 대지 말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단숨에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미국 서부 쪽으로 강연을 간 적이 있다.
그때 샌디에이고에서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를
탔을 때였다. 나는 86세의 노부인과 나란히 앉게
되었고, 그녀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영국 태생인데, 얘기 그ㅌ에 그녀가
캘리포니아의 패서디나 부근에 영국계 노인들을 위하여
"노인의 집"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는
86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명예회장으로서 매일
"노인의 집"을 방문하여 봉사한다고 했다.
  "나는 하루하루가 너무 바빠."
  "연세가 많으신데, 힘든 적은 없으십니까?"
  "나이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아요. 나는 나
스스로 즐기고 있는 거지. 그저 마음을 쓴다면,
매일매일을 굉장히 좋은 날로 만들려고 하는
것뿐이라우."
  "그래서 그렇게 젊어 보이시는군요?"
  "재미있게 살아서 그럴 게야. 나는 하루하루가 여간
재미나는 게 아니거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뒤, 나는 샌이데이고로
돌아가기 위하여 비행기를 탔다. 도중에서
비행기는 샌타바버라에 착륙했는데, 거기에서 10대
초반의 애들 50명 정도가 배행기에 올라탔다.
그들을 인솔하는 어른들이 몇 명 있어서 알아보니,
그들은 가출을 했거나 경미한 범죄를 범한 9세에서
15세까지의 청소년들로서 현재 보호감독하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중에 한 소년이 내 옆좌석에
앉았다. 12세 정도로 보이는 그애의 눈은 지나온 과거를
말해 주듯 총기가 없어 보였다. 눈동자는
불안에 떨며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두 눈은 어두운
그림자에 싸여 있는 듯했다. 소년은 비행 도중
내내 몸을 돌려 말없이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비행기가 샌디에이고 상고에 도착해서 착륙
준비를 시작했을 때, 혼자말처럼 이렇게 내뱉었다.
  "와, 사람들이 되게 많다! 꼭 벌레 같네."
  그게 하늘로부터 관찰한 그 애의 감상이었다.
  나는 그 소년의 말에 이상스럽게 가슴이 떨렸다. 다른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더라면 아마도 안 그랬을
것이었다. 그런데 침울한 눈을 보이고 있던 소년의
입으로부터 그런 말이 나오다니... 나는 사람들을
벌레에 비유한 그 소년이 측은해졌다. 그에게 딴
사람들은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소년의 자아상은 너무나 나약한 것이었다.
산다는 것 자체가 그 애에게는 쓸데없는 짓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 감독 교사들이 소년을 잘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소년이 자기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향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충심으로 빌었다.
  나는 86세 고령의 노부인과 12세 소년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많은 쪽의 적극성과 어린
소년의 무기력함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사람들의 기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정서적 장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가? 또 어떤
것은 할 수 있고 어떤 것은 할 줄 모르는
사람인지 알고 있는가?
  그것을 잘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생활에 반영하는 것은 더더욱 중대한
일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에 따라 향상의 기회가
올 수도 있고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자아상은, 당신이 일을 즐겁게
하거나 여가를 유쾌하게 보낼 수 있도록 힘을
빌려 준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당신의 행동에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즐거워지면 당신의 자기 평가는 높아진다. 당신의
최고의 상태에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당신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건설적인 자아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유쾌한 생활
조성을 위해 일부러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
건전한 자아상을 유지만 할 수 있다면, 그에게 생활은
그 자체가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떠한
고통이나 고난에도 꺾이지 않는다. 극복의 차원을
넘어서 그것까지 즐기는 차원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아상은 더욱 강화된다. 끊임없이
전진하고,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여 자아상 강화에
힘쓰면서 무슨 일이나 즐겁게 붙들고 해나간다면 그는
어떠한 난관도 뚫고 나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교훈이 필요하다.
  매일매일 목표를 가져라.
  현실로부터 절대로 도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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