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행복한가
느닷없이 비눗방울처럼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내게
떠오른다. 당신은 정말 행복한가? 물론이다.
하지만... 기다려 보라. 아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 우선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행복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한마디로 무의미한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많은 생활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가장 기뻤던 날들은
언제였을까? 나에게 있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나에게 가장 기뻤던 날! 나는 웃지 않을 수 없다.
순수하고 소중한 내 기억 속에는 수백 가지
이상의 것들이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은 티없이 맑고
원만한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
하나 하나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소중하게 아름답고
그 어떤 것도 다른 것들을 닮지 않은 빛깔
안에 기분 좋게 물들어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태양들이 나를 그을리게 했으며, 얼마나 많은 냇가와
강들이 나를 시원하게 했던가. 얼마나 많은 길이 나를
따라다녔으며, 얼마나 많은 개천이 나를 살포시
적셔 놓았던가! 나는 얼마나 많은 시선들을 파란
하늘과 생기 넘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시선 안에
주었으며,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좋아했으며 또 나를
유혹했던가!
이러한 순간들 중에서 그 어떤 것도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다. 또한 내가 술잔을 천천히 비우면서
음악의 선율 속에 사랑스런 기억들을 그리고 있는 현재
이 순간 역시 나는 매우 행복하다.
나는 계속 꿈을 꾸어야겠다. 경험의 바다로부터 다른
모습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라. 슬픔의 시간들,
비애의 나날들, 수치와 후회의 나날들, 패배와 죽음에
인접하여 백발이 되어 가는 순간들. 나는 내
최초의 사랑에 배신당하여 고통 속에서 헤매이던 그날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우편배달부가 찾아와서 저 멀리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전해 주고 돌아갔던
그날, 나의 죽마고우가 술에 취해서 내게 욕을 퍼붓던
그 밤, 시와 정열적인 글씨가 노트에 넘치는
반면 빵 하나를 사기 위한 몇 페니의 돈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를 몰랐던 굴욕의 날들, 내 사랑하는
친구가 고통스러워할 때 그 곁에서 같이
고통스러워하면서 도울 수도 위로할 수도 진정시킬 수도
없었던 그 많은 시간들을 나는 다시 되돌아본다.
그리고 나를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부유한
대중들 앞에서 경멸적인 말을 듣고는 경련을 일으키며
쥐었던 내 주먹을 숨겨야만 했었던 순간들,
불면의 밤을 뒤척이며 무엇 때문에 내가 삶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몰라했던 그 모든 밤들, 내가 여관집
식탁에서 함께 웃고 익살을 떨고 즐거워했던 반면에 내
마음 속에서는 비참하고 슬픈 기분이 들었던
그 모든 밤들, 또한 가망없는 사랑을 하던 때, 시작한
일이 또다시 실패로 돌아가고, 이상을 잃고
하나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때마다 불신하고 자기
조소를 하던 그 순간 순간들...
이 많은 기억들 중에서 나는 어떤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하고, 어떤 것을 삭제하고, 그리고 잊어
버리고 싶어할까? 아무것도, 그 어떤 것 하나도 그럴 수
없다. 가장 괴로웠던 시간도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시간 속에서 나를
찾아온 수백 가지의 기억들을 꿈을 꾸듯이
굽어본다. 그토록 많은 낮과 밤, 그 많은 시간들, 이
모든 것들은 어디에 있을까? 수천 번의 낮과
수천 번의 밤들, 수 백만 번의 순간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내겐 그것들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결코 눈뜨지 않고 그리고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 과거의 일이 되어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어디에서 머물게
될까? 그것은 언제 다시 한번 깨어나서 내 마음에
명료하게, 그리고 애타게 갈망하던 과거의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할까? 나는 지난 과거가 죽었기에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오늘 일을 하지 않아 나를
고생시켰더라면, 이 현재의 오늘은 틀림없이 바닥이
없는 암울한 날들로 가라앉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에 대해서 더 이상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열심히 삶을 향해 돌진하지 않은 사람은
추억거리를 위한 방법으로 우선 모든 예술 속에 때맞춰
자신을 숙련시키는 것이 좋다. 즐기는 힘과
기억하는 힘은 서로서로 의존하고 있다. 즐긴다는 것은
하나의 열매로부터 그것의 달콤함을 남김없이
빼앗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한다는 것은 언젠가
한번 즐겼던 것을 자신의 손안에 꽉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항상 마음 속에 더욱 순수하게
넣어 두는 것이다. 우리 개개인은 이미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린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거기에
환상이 되어 버린 추억들을 푸른 하늘에 황홀하게 펼쳐 보며,
수천 가지의 아름다운 추억을 마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과
뒤섞어 보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지난날들의 즐거움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그때의 즐거움을 다시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즐거움 하나하나를
행복의 상징으로, 동경의 목표로, 그리고 낙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우리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가르쳐 준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삶의 기쁨과 따뜻함과 광채를
압축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모든 새로운 날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자 할 것이다. 그들은 마찬가지로 어떤 큰
고통을 더욱 분명히 그리고 진지하게 맛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두운 날을 회상하는 것
또한 아름답고 성스러운 소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삶이란 의미 없고 잔인하고 어리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하다. 그것은 사람을
웃음거리로 삼지는 않지만(왜냐하면 정신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지렁이나 파리 같은 것이 아닌
바로 사람에게 간섭한다.
인생이 자연의 변덕이며
잔인한 유희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너무 집착하므로 생각 그것이 곧 착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인간들은 삶을 새나
개미의 생존보다도 더욱 힘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더 편리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삶의 잔인성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만나는 것으로 비로소
우리들 마음 속에 절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자연의
무의미함, 혹은 자연의 모든 잔인성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이러한 잔혹한
무의미함에 스스로 맞서 하나의 의미가 되도록
복종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다. 우리는 바로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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