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마르크스, 다윈 등과 함께 20세기 사상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프로이트는 전통적인 <의식>심리학에 대항하여 <무의식>의 심리학을
전개했다. 그는 정신분석 이론의 수립, 정신분석적 치료기법의 개발, 포괄적인 성격이론의 전개 등의 기반을 <무의식>의 탐구에 두고 우리의
정신적인 균형유지를 위해 꿈은 필수적인 것이며 꿈은 행위의 대체 현상이고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꿈의
의의를 찾아냈다.
인내와 용기를 지닌 <무의식>의 개척자
<<많은 암담하고 우울한 순간 속에서 이 책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어왔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40세의 아버지와 21세의 어머니 사이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났다.
그는 부친으로부터는 유머와 자유주의를, 모친으로부터는 감성적인 면을 물려받았다. 그가 두 살 때 동생이 출생하여 8개월 만에 죽었다.
동생의 탄생으로 자신이 독차지하던 어머니의 사랑이 동생에게로 향하자, <<동생이 죽어버렸으면...>>하는 생각도 했다고 후에 실토했다.
김나지움(독일의 중고교)을 17세에 우등으로 졸업하고 빈 대학의 의학부에 들어가 신경생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다. 졸업 후 학문의
세계로 정진하려 했으나, 유태인에 대한 사회적 질시와 경제적 곤란으로 3년간 빈 종합병원의 신경정신과에 근무하게 된다. 이 기간에 훗날
그가 <좌절과 고통의 정신병을 치료해준 나보다 훌륭한 정신과 의사>라고 술회했던 아내와 30세에 결혼했다.
1885년 당시 정신의학 연구의 권위자였던 파리의 샤르코를 찾아가 약 5개월 동안 그의 최면요법을 훈련을 받고 빈으로 돌아온 그는 신경과
전문의로 개업하여 최면치료를 시작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 방법은 재발환자가 발생하고 최면에 걸리지 않는 환자도 있어 그
한계를 보였다. 이러던 차에 그의 동료였던 브로이어로부터 히스테리 여성환자를 정화법(카타르시스 요법)으로 치료한 사례를 전해듣고 이
방법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방법은 최면상태에서 환자의 정서적 경험을 모두 털어놓고 말하게 하는 방법인데, 일시적 효과는 있지만
근본적 치료는 어려웠다. 아무튼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와 공동연구를 통해 <히스테리 연구>를 출판했다. 그러나 히스테리 증상에 있어서
<성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프로이트와 이에 반대하는 브로이어는 곧 각자의 길을 간다.
최면 치료법과 정화법을 넘어 프로이트는 <자유 연상법>으로 관심을 옮겨갔다. 이 방법은 최면을 걸지 않고도 최면을 걸었을 때와 같은
효과를 내는 방법으로, 최면요법이 일시적인 효과밖에 내지 못하는 단점을 극복한 것이다. 환자를 침상에 눕히고 신체의 긴장을 풀게 한 후
그의 마음속의 모든 것을 말하게 한다. 그런 과정에서 꿈과 관련된 사실들을 찾아내어 꿈의 의미를 이해하면 정신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이 과정에서 신경증의 원인 중 <성욕>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의 정신분석 이론의 첫번째 업적이 <꿈의 해석>으로 나타난다. <의식세계>를 분석하는 것이 심리학의 주된 연구과제였던 당시에, 의식을
빙산의 일각에 비유하고 수면속의 보다 방대한 <무의식의 세계>가 의식을 통제한다는 그의 혁신적 견해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꿈은 욕구의 표현이며, 이 욕구는 무의식적이어서 그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자아>의 검열을 거쳐서 왜곡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꿈을 분석해보면 무의식적 욕구를 확인할 수 있다고 보았다.
1902년에 융, 아들러, 카하네, 라이틀러, 슈테겔 등의 제자와 함께 <수요심리학회>(후에 빈 정신분석학회)를 조직하여 그들의 이론을
발전시켜나갔다. 1909년에는 미국 클라크 대학 총장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고 철학자 제임스로부터 <<심리학의
장래는 당신의 연구에 달려 있다>>는 격려까지 받았다.
그러나 1910년대에 오면서 프로이트는 시련을 겪게 된다. <성욕> 강조로 회원들간의 의견불일치배신변절 등으로 1911년에
아들러, 1912년에 슈테겔, 1913년 융과 결별하게 되고, 1920년대에는 페렌치, 랑크, 빌헬름, 라이히와도 헤어지게 된다. 그런 와중에서도
1917년에는 대학의 강의노트를 정리하여 <정신분석입문>을 출판했다.
만년의 프로이트는 턱에 생긴 암으로 33번이나 수술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나치 정권의 박해였다. 나치
정권은 그의 정신분석을 불법화하고, 그의 장서를 모두 불사르고 재산을 몰수했다. 딸 소피아가 가스실에서 처형되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그는 이를 피해 런던으로 망명을 떠나 그곳에서 83세에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다.
정신분석 이론 : <무의식>의 심리학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생활을 의식전의식무의식으로 나누어 설명하다가, 1920년대부터는 사람됨의 구조를
이드자아초자아의 3요인으로 보고 이 3요인의 상호균형 속에서 사람은 생활해간다고 보았다. 그의 정신분석이론에서 가장
독특한 면은 <무의식>의 개념으로, 그는 인간의 마음이 <의식>과 그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의식세계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의식의 밑에 깔려 있는 거대한 <무의식의 세계>가 우리의 생각 및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성격이론은 성격의 구조와 성격의 발달과정에 관한 2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드(id)
이드는 성격의 가장 근본이 되는 바탕으로 완전히 무의식적이며, 성적 충동 등 인간의 본능적인 충동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본능적 충동이
생기면 이드는 이를 <즉각적>으로 충족시키려는 <쾌감의 원칙>에 의해 움직인다. 쾌감원칙이란 동물적인 쾌락만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욕구의 즉각적인 충족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드는 욕구의 대상을 상상함으로써 일시적으로나마 내적
긴장을 풀려고 한다. 꿈도 이드가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시도 중의 하나로 그는 보았다.
자아(ego)
자아는 이드를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이를 적절한 방향으로 돌려서 좀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본능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처럼
자아는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여 욕구의 충족을 지연시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욕구를 억제하도록 한다. 따라서 자아는 <현실원칙>을 따르는
성격의 합리적이고 현실 지향적인 부분이다.
초자아(superego)
초자아는 사회의 도덕적 규범이나 가치를 대표한다. 자아에서 발달되어 나온 초자아는 부모나 사회의 도덕규범이나 가치가 성장과정을
통하여 내면화되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른바 우리 마음속에서 행동의 도덕성을 관할하는 <양심>의 구실을 한다. 특히 성문제나 공격적
행동의 억제에 있어서는 이 초자아가 억제기능을 많이 한다.
성격의 발달과정
프로이트는 사람의 발달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 출생에서 6세까지를 유아기, 6세부터 13세까지를 잠재기, 13세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를
성욕기, 그 이후를 성년기로 구분했다. 그런데 그는 성격의 기본적인 틀이 생후 5--6년에 형성된다고 보았다. 이 단계는 사람마다 타고나는
기본적인 성적 에너지인 <리비도>(libido, 인간행동의 밑바탕을 이루는 성적 욕망)가 주로 집중되는 신체의 부위에 따라 구분된다. 즉, 생후
1년--1년 반은 리비도가 주로 입술이나 구강에 집중하게 되며, 이 시기를 <구강기>라 한다.
그후 약 1--2년은 리비도가 항문 주위에 집중하게 되어 아동은 변을 참거나 배출시키는 데에 특별한 쾌감을 가지게 된다. 이때를 <항문기>라
하며 그후 4세부터 6세까지는 자신의 성기에 관심을 갖게 되는 <성기기>로서, 이 시기에 어린이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식하고
이성부모에 대한 관심이 싹트게 되어, 남자아이는 어머니에게, 여자아이는 아버지에게 끌리게 된다고 한다. 이와 함께 남자아이는 아버지를,
그리고 여자아이는 어머니를 경쟁 상대로 느끼게 되어 이에 대한 갈등과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을 각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한다. 이것은 남자아이는 아버지를 , 여자아이는 어머니를 닮으려고 하는 <동일시>현상으로 해결이 된다.
성기기 이후의 어린이들은 신체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으로 줄어들고 환경 적응능력을 기르는 데 열중하는 <잠복기>에 들어가게 된다.
잠복기는 사춘기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다, 젊은이들이 이성에 성적으로 흥미를 느끼고 성숙한 방법으로 사랑을 하게 되는 <성욕기>로
이어지게 된다. <성욕기>를 지나면 완전한 성적 성숙단계이자 최종단계인 <성인기>가 온다.
꿈은 <무의식>을 알아내는 지름길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꿈은 고대인들에게는 <신의 소리>와 같았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계몽사상의 대두로, 동양에서는 성리학이나
실학사상이 발달함에 따라 꿈에 대한 관심이 쇠퇴하다가 꿈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부각된 것은 꿈이 인간의 무의식의 표출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꿈에 관한 최초의 과학적 해석을 가한 프로이트에 와서다.
잠재몽과 현재몽
프로이트는 자유연상법을 통해 환자의 자유연상 속에 흔히 지난밤 또는 최근에 꾸었던 꿈의 내용이 나타나고 또 같은 종류의 꿈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관찰했다. 꿈이 연상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은 꿈과 관련된 어떤 사실이 마음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꿈은 한갓 헛된 망상이 아니라 환자의 심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그리하여 그는 만약 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면 마치 최면상태에서 병 증세의 원인적 경험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험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것이 그의 꿈에 관한
연구의 사상적 배경이었다.
1900년에 출판된 <꿈의 해석>에서 꿈은 무의식이 표출된 것이므로 꿈에 대한 탐구는 무의식을 알아내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나타나는 현재몽과 그것이 뜻하는 내용인 잠재몽 사이에는 거리가 있으므로 꿈의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바로 그의 정신분석학의
심리학적 이론이 출발한다.
꿈은 소망의 왜곡된 표현
그는 꿈을 억압된 <소망의 충족>이라고 보았다. 그 예로 기아상태에 있는 사람이 꾸는 음식물에 관한 꿈이나 수험생 자신이 지망하는 학교의
학생이 되어 있는 꿈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욕구는 충족되기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루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각해서도 안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그런 욕구는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무의식 속에서 충족시키려는 힘으로 작용한다.
잠을 자면 의식세계가 일시 중단되므로 이 욕망의 힘이 고개를 들게 되고 그것이 꿈에 나타난다. 그러나 꿈은 마음속의 소망이 <왜곡>되어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꿈의 작업
이 왜곡을 담당하는 것이 <검열>이라는 마음의 작용이다. 따라서 꿈에는 왜곡되어서 의식에 떠오르는 꿈과 왜곡되지 않고 무의식 속에
머물러 있는 꿈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전자의 기억하고 있는 꿈을 <현재몽>이라 하고 후자처럼 꿈의 잠재내용을 <잠재몽>이라고 했다.
꿈의 해석이라는 것은 현재몽을 소재로 하여 연상에 의해 그 배후에 잠재되어 있는 내용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재내용이
검열에 의해 왜곡되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다. 그는 이 왜곡작업을 <꿈의 작업>이라 하면서 압축이동극화상징화 2차
가공을 들었다.
<압축>은 꿈의 잠재내용이 그대로 현재몽으로 나타나지 않고 그 일부만 나타난다거나 여러 가지가 합쳐져서 압축되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여러 인물이 1명의 인물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동>은 잠재내용에서는 중요한 것이 현재몽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 등을 말하는데, 현재몽에서 시시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이러한 이동작업이 있기 때문이다.
<극화>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시각화>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아름답다는 느낌을 표현하는 데 있어 멋진 풍경이 등장하는
것 등이다. <상징화>는 일정한 꿈의 요소에 일정한 번역이 대응되는 것으로, 남자의 성기가 창펜뾰족한 무기 등으로 나타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2차 가공>은 잠에서 깨어나 꿈을 기억하려고 할 때 일어나는 것으로 가공과 합리화의 과정을 통해서 꿈을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기도 하고 찢어지고 갈라진 금을 메우고 장식하여 하나의 통합된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꿈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꿈의 잠재적인 의미를 알기 위해 프로이트는 꿈에 관한 자유로운 연상을 하도록 했는데, 정신분석가는 이 자유연상을 분석하는 한편 환자의
개인적 욕구를 이해함으로써 꿈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판정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이러한 꿈의 형성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올라감으로써 무의식 세계에 숨겨진 참다운 내용(잠재내용)을 밝히려는 것이었다.
<무의식>을 과학의 대상으로
무의식 세계탐험
인간 <이성>의 만능을 정면으로 부인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다윈의 진화론과 함께 현대의 인간관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왔다. 그는
다윈과 같은 혁명적인 사상가로, 그리고 외부세계를 탐험한 콜럼버스처럼 과감히 내부세계를 탐험한 사람으로서 현대 정신의학의 아버지로
정당하게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인간을 성적 충동에 사로잡힌 동물로 파악하고, 이러한 동물성이 자리하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에 의해 우리의 이성이나 의식이
결정된다는 혁명적인 주장을 했다. 또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내면의 갈등이나 소망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지적했고,
어린 시절의 성장경험이 성격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심리학의 대상을 의식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확장시켜 심리학을 근대적인 학문으로 정립시킨 프로이트는 20세기의 거의 모든
학문분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인문과학은 물론 사회과학 등에도 폭넓게 그늘을 드리웠다.
과학성 부족
그러나 항상 자기 주장이 뚜렷하면 이에 대한 비판도 따르게 마련이다. 프로이트의 인간관이나 연구방법에 대해서는 그의 생전부터 지금까지
찬반의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과학성을 따지는 독일인에게 꿈의 해석은 비과학적인 <꿈의 해몽>으로 간주되어 그가 재직했던 빈 대학에는 아직도 독립된 강좌를 개설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 성격형성에 있어 <리비도>라는 본능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데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환경적 요인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1992년 7월 6일판)은 <프로이트의 퇴색>이라는 제목하에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에 효과적인 약물이 개발되어,
이들의 치료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거의 무관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상처럼 프로이트에 대한 적극적 지지나 반대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나, 현실과 가상, 갈등과 분열, 좌절과 만족, 사랑과 증오 사이를
오가며 거의 무한한 인내력을 지닌 집요하고 용기 있는 창조적 사상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