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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파금(1904--)
이 작품은 인류애를 작품기조로 반항적 영웅주의자의 사랑과 미움, 사상과 행동의 갈등 속에서 끝내 니힐리즘에 빠지는 주제를 즐겨 다룬
파금의 현대 장편소설로, 후에 장편소설 <봄>과 <가을>을 합쳐 <격류 3부곡>으로 묶었다. 파금의 자전소설로 알려진 이 소설은
54운동을 배경으로 한 봉건대지주 가정에서 벌어지는 신세대와 구세대간의 갈등과 젊은이들의 격정과 비애를 그린 작품으로, 특히
젊은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인도주의적 무정부주의자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무정부주의 작가 파금은 본명이 <이불감>이고, 1904년 사천성 성도의 봉건 관료지주
가정에서 태어났다. 조부 및 부친이 모두 청조에서 관리를 했던 그의 집안은 파금 본인의 진술에 의하면 <<한항렬이 위인 어른이 20여 명,
형제자매가 30여명, 남녀 하인이 50여 명>>이나 되는 봉건 대지주 가정이었다.
그의 모친은 어린 파금에게 항상 <<빈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고통 속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이러한 <사랑>의 정신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 이처럼 <인간은 사랑으로 키워지는 것>으로 믿고 자란
그는 모친과 부친이 일찍 작고한 후, 봉건 가족제도의 모순을 스스로 체험하며 <인간이 인간을 먹고 있는> 현실에 치를 떨었다.
1919년 54운동은 신사상에 굶주려 있던 파금에게는 새로운 세계의 도래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이 시기에 진보적 잡지를 탐독하고
외국 문학작품을 통해 <민주와 과학>이라는 당시 두 조류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1920년 이후 그는 크로포트킨, 골드만, 유사복(중국의 무정부주의자) 등의 저서에 심취했다. 특히 크로포트킨의 <소년에게 고함>은 파금
자신이 <<나는 세계에 이런 책이 있으리라고는 도대체 생각하지 못했다. 이 안에 있는 것은 모두 말하고 싶었으나, 무어라 정확히 말할
방법이 없었던 내용이다. 그것들은 얼마나 명확하고 합리적이며 웅변적인가>>라고 말할 만큼 그에게는 충격적이었고, 이때부터 무정부주의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27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그는 크로포트킨의 <윤리학의 기원과 발전>을 번역하는 동시에, 프랑스 대혁명과 러시아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에 관한 탐구를 시작했다. 그는 중국 초기의 무정부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자신의 심경을 장편소설 <멸망>에 담아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이상을 위해 용감하게 자신을 희생하는 혁명가의 모습을 찬양하여, 무정부 사상을 짙게 하고 있다. 파금이라는 필명도 이때
사용했는데, <파>는 친구의 이름을 빌렸고, <금>은 중국음으로 일으면 <킨>과 유사한 <찐>이 되는데, 이것은 크로포트킨에서 따왔다.
1928년 상해로 돌아온 그는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몰두했다. 이 시기의 창작은 대략 다음과 같이 3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봉건군벌에
대항하는 반봉건사상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신생> <안개> <비> <번개>의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 <애정3부곡>등이 이에 속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현실을 부정, 고발하고 밝은 미래를 추구하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기키는 고결한 정신을 지닌 청년인물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이런 청년층의 실패와 희망을 통해 중국의 현실과 비극의 원인을 깊이 있게 그렸다.
둘째로는 노동자들의 고통스런 생활과 그들의 투쟁을 주제로한 작품들로 <사정> <눈> 등이다. 이것들은 1931년 파금이 절강성 장홍탄광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하여, 광산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생활과 자본가들의 착취를 폭로한 작품이다.
셋째로는 봉건제도 및 유교윤리가 <사람을 잡아먹는> 죄를 자행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새로운 세대의 반항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격류3부곡>의 제1부이자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가>가 이에 속한다.
파금은 뒤이어 1938년 <격류3부곡>의 두번째인 <봄>을 완성하고 40년에는 마지막 부분인 <가을>을 창작했다. 이 작품들은 봉건 대지주
가정의 보수적 구세대와 변혁을 추구하는 신세대간의 갈등과 투쟁을 기본축으로 하여, 봉건제도의 붕괴와 혁명조류가 신세대에게 준 심각한
충격을 반영했다.
1937년 항일전쟁이 발발하자, 파금은 적극적으로 구국 항일운동에 참가했다. 그동안 38년부터 44년 사이에 <항전3부작>이라 불리는 <불>을
창작했다.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1, 2부에서 일본군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상해에서, 청년들이 열정적이며 희생적으로 구국
항일운동에 종사하는 모습 및 민중들의 애국활동을 찬양하고, 일본군의 잔혹한 행위와 반동세력과 매국노들의 파렴치한 행위를 비판한다.
3부에서는 전방에서 일하던 공작대원이 후방으로 돌아와 기독교도와 맺은 사랑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고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정치적 신뢰를 받아, 주요 문학예술기관에 중용되었다. 1950년대 말 자신의 무정부주의적 사고를
공식적으로 포기했지만, 새로운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60년대 후반의 문화대혁명 기간에 반혁명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심한
비판을 받았다. 1977년까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1978년 최고인민회의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곧 상임위원이 되었다.
1981년 중국작가협회 집행의장으로 선출되었다.
파금의 문학사상
휴머니즘
정치와 문학이 밀착되어 있는 중국의 현대 문학사에서 파금은 드물게 정치색이 없는 작가다. 그는 작가나 문학이 정치나 투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되며, 문학은 어디까지나 사랑과 정열을 불사르고 자아의 심성을 고양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그의 문학이 투쟁의 현장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 같은 파금문학의 본질에 기인한다.
진정한 휴머니스트요 사랑의 인도주의에 심취한 그는 격렬한 정치투쟁에 있어 그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양쪽에서는 서로가 그들을
자기 진영에 끌어들이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다 같이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휴머니스트였다. 미움과 싸움보다는 사랑으로 아름답고 좋은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고 믿었다. 몰아적 사랑을 바침으로써 사회가 개혁될
것이라고 믿었다. 열정적혁명적반항적이면서도 그는 사랑을 내세운 이상주의적낭만적 휴머니스트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당연히 실망이요 낙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고독한 자아의 철저한 영웅주의자였다. 이러한 인간이 가는 길은 필연적으로 허무주의와
아나키즘일 것이다.
아나키즘
그의 작품을 통해 나타나는 선명한 문학사상은 아나키즘(anarchism)으로 요약된다. 그는 54운동 시기에 중국에 소개된 크로포트킨,
골드만 등의 저작을 통해 지속적으로 아나키즘을 수용했다. 그는 미국의 여류작가이자 무정부주의자인 골드만의 <무정부주의>를 읽고서
<<골드만의 문장은 나를 완전히 정복했다. 아니다, 마땅히 나의 모호한 시야를 맑게 해주었다고 말해야 한다. 이후 나는 명확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자술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멸망> <신생> <죽어가는 태양> 등의 초기 작품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주인공이 인간을 억압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개인적 테러를 하다가 희생당한다는 기본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파금이 아나키즘을 문학창작의 기본사상으로 지니고
있었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애정3부곡>이나 <가>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기존의 권위와
제도에 대한 부정은 그의 일관된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반증하고 있다.
봉건가정의 세대간 갈등 묘사
고백소설이라 할 수 있는 <가>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파금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집에서의 십수 년이란 생활은 얼마나 끔찍한 꿈이었던가! 곰팡이 냄새나는 책들을 읽으며 예교의 뇌옥에 앉아,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눈으로 보아야 했다. 거기에는 청춘도 없고 행복도 없으며, 영원히 불필요한 희생에 몸을 바쳐가지만
마침내는 멸망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집에 무슨 미련이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는 집을 떠났다. 그런데 그는 그 사람들, 그 장소, 그 사건들로부터 일탈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고통을 느껴야
했고, 그 때문에 더욱 커다란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런 것들이 이 작품을 쓰게 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54운동시 사천성 성도의 봉건 대지주 가정의 구세대와 신세대간 갈등을 그리고 있다. 제1세대에 속하는 고씨 할아버지,
제2세대인 고국명고정안과 그들의 부인 및 첩들, 손자들인 각신각민각혜 형제들이 모여 사는 대가정은 표면상으로는
화목하고 예의 바르며 서로를 사랑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상호 비방과 모함이 그칠 날이 없었다.
집안의 주된 갈등은 집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예교제도와 윤리도덕으로 일체의 새로운 것을 억압하고 심지어는 젊은 세대들을 희생시키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고할아버지와, 허위적 도덕과 구습의 박해에서 벗어나려는 손자들간의 모순에서 파생된다. 집안의 경제대권과 자손들의
혼인과 앞날까지 한손에 움켜쥐고 있는 할아버지는 과학은 사악한 학설이고 민주는 반역이라고 간주하는 인물이다.
맏손자인 각신은 구사회와 구가정에서는 무기력한 <작은 나리>였으며 그의 두 동생과 같이 있을 때는 <신청년>인 신구세대의 중간에 위치한
모순된 성격의 소유자다. 54운동 전에 가정을 이룬 그는 전통적인 봉건관념을 받아들여 행동의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나 양가
모친들의 사소한 감정 때문에 사랑하던 여자와 이별하고, 우매한 구시대의 미신 때문에 부인과도 사별하게 되자 자신의 굴욕적인 생활에
대해 불만을 품게 된다. 그러나 그 사상의 굴레가 너무도 완고하여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사상적 모순 속에서 괴로워한다.
이런한 봉건세력과 과감히 투쟁하는 대표적인 형상은 각혜라는 청년이다. 54운동 세대인 그는 <<유치한 면을 지니고는 있으나
대담한>> 반역자로, 봉건가정의 여러 비루하고 추악한 행위를 인식하고 자신의 생명을 질식시키는 이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과 행복을
찾고자 사회활동에 참가한다.
그는 새로운 사상을 학습하고 문제들을 연구하면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도덕성이 이제 곧 무너질 이 봉건 대가정을 초월하고 있다>>고
느끼고, 봉건예법과 제도에 과감히 반항하고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는 여종과 연애를 했으나, 여종이 할아버지가 그녀를 친구의 집에 예물로
주려는 것을 거부하고 자살하자, 이에 더욱 큰 충격을 받고 봉건세력과 결사적으로 투쟁할 것을 결심한다.
혼인문제에서 손자인 각민이 할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자 할아버지는 충격으로 숨을 거둔다. 그의 죽음은 이 거대한 가정과 봉건제도의
몰락을 의미한다. 하녀인 명봉의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각혜는 그녀가 결국 자살하자, 조부의 장례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더이상 봉건가정의 효자이기를 거부하며 새로운 세계를 찾아 상해로 떠난다.
봉건제도의 몰락을 담은 사실주의 작품
이 작품은 파금 자신이 어려서 자랐고 후일 뛰쳐나온 자기 집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인습에 얽매인 봉건적 가정과, 무능하고 부패한
지주나 관료 등의 권위주의에 의해 새싹이 짓밟히고 젊은이가 억눌리어 마침내는 희생돼가는 낡은 제도에 대한 억센 반항을 그린 것이다.
<<나는 붓을 든 이래로 한 번도 나의 적에 대해 공격을 멈춘 적이 없다. 나의 적은 무엇일까? 모든 낡은 전통적 관념이며 사회의 진화와
인간성의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인위적 제도이며, 사랑을 파괴하려는 모든 것들이다. 그들이 바로 나의 가장 큰 적이다. 나는 그들에 대해
촌각의 타협도 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성격이 다른 세 유형의 청년을 부각시켜 놓았다.
첫째는 고각신으로, 현실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반항할 힘이 없고 우유부단해서 무슨 일에나 독자적인 판단을 못 내린다. 모든 문제는
절충주의로 해결하려 하나, 결국은 자기 자신이 봉건제도의 중압감 밑에서 희생되어간다.
둘째는 고각민으로 그는 형과는 달리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고루한 예교윤리에 반기를 들지만, 한편으로는 절제심과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셋째는 고각혜로 그는 가장 개화한 청년으로 진취적이며 반항정신이 확고하다. 그는 봉건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으며, 끝내는 집을
버리고 자기의 앞날을 개척하기 위해 대도시로 떠난다. 각혜의 반항적인 행동은 54운동 시기 개성해방 운동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진실되게 반영한 것으로, 비록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했으나 봉건가정을 배반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청년들에게는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작가는 각혜를 사랑하고 각민에게는 동정을 표시하고 각신은 비판적인 눈으로 보고 있다. 작가는 또 고노인이나 풍요산을 봉건세력의
대표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그들을 통해서 봉건 통치계급의 죄악위선인면수심의 실태를 폭로하고 있다.
등장인물이나 시대적 상황측면에서 우리 나라 염상섭의 <삼대>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가>에 나타난 반봉건적 현실성은 매우
선명하고도 강렬하다. 이것이야말로 많은 청년들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키고, 낡은 인습의 틀을 벗지 못한 당시의 중국사회에서 신음하고
있던 많은 청년들을 계몽한 요체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구 사회의 반역자 각혜에게 확실한 앞길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집을 떠나 사회에 발을 내디뎠다고만 했을 뿐, 사회에
나와서 어떻게 했는지가 불분명하다.
이것은 작가가 당시에 품은 사상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스스로 이 작품을 두고 냉정한 사고력, 치밀한 구상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지금 볼 때 결점투성이라고 겸허하게 인정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말로 후기를 맺고 있다.
<<<가>는 성공한 작품이 아니다. 오늘의 독자들은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쓴 소설에 대해 관용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나 자신은 이
작품을 몹시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 청춘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나는 끝까지 기억할 것이다. 청춘은
아름다운 것, 그리고 이것은 내 삶을 고무하는 원천이라는 것을>>
<<자기의 행복을 남들의 고통 위에 꾸며놓고 있는 인간들은 다 멸망해야 한다.>> -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