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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페스트 La Peste>
  작가: 카뮈(Albert Camus, 1913--1960)

 2차대전 후의 혼란하고 무질서한 정신적 풍토위에 <부조리의 철학>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기초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 했던 카뮈의 대표작. 오랑 시에 페스트가 만연했다는 가정하에 인간을 전멸시키려는 악과 이에 대한 인간의 집단적인 반항을
묘사하면서, 이 과정에서 인간의 연대의식과 존엄성을 역설했다. <이방인>에서 제시된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이러한 연대의식만이
인류평화에 도달하게 할 수 있다는 카뮈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분명하게 전달된다.


     사르트르와 함께 현대 젊은이의 우상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고 모든 것이 <부조리>하다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나의 부르짖음을 나는 의심할 수 없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며 <부조리>와 <반항>의 사상을 제시한 최연소 노벨 문학상 수상자 카뮈.
 카뮈는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나 2살 때 부친이 1차대전에 참가하여 마른 전투에서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가서 고집 센 외할머니, 그리고 다리가 불구인 외삼촌과 함께 방 2개에 5명이 살았다. 후에 카뮈가 <<나는 <자유>를
마르크스 속에서 배우지 않고 가난 속에서 배웠다>>고 술회했듯이 어린 시절을 가난 속에서 보냈다.
 당시 의무교육 덕분으로 국민학교를 마친 카뮈는 가정형편상 더이상의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웠으나,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담임 선생님의
배려로 중고교에 입학하게 된다. 노벨 문학상 수상연설이 책으로 나왔을 때 그는 이 책을 옛 스승 제르맹에게 바쳐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는 중고교 시절을 계속 장학생으로 지내면서 축구 등 운동에 몰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17세 되던 해 폐결핵의 첫 발작이 일어나서
좋아하던 운동도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불행중 다행으로 철학자이자 교수인 장 그르니에를 알게 되어 철학과 문학에 뜻을 둔다. 이 스승과
제자간의 우정은 평생을 두고 꾸준히 계속되었다.
 20세에 결혼했으나 1년 만에 이혼하고 공산당에 입당하지만 다음 해에 탈당한다. 알제 대학시절에 그는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는데,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해운업자에게 고용되기도 하고 자동차부품 판매원 노릇도 했다. 이러다 보니 평범한 대학생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산 체험을 했다. 지드, 말로, 몽테를랑 등의 작품을 탐독한 것도 이때였고, 아마추어 극단을 조직하여 연극활동에 적극
참여한 것도 이때였다.
 졸업 후 진보적인 신문 <알제리 레퓌블리캥>에서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면서 당국의 비위를 건드려 알제리에서 추방된다. 파리로 진출하여
<파리 스와르>의 기자로 1941년 6월까지 근무했다. 그는 이때 <이방인>을 탈고하고, 에세이 <시지포스의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의 파리 침공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였다. 독일 점령하의 파리에서 그는 지하신문 <콩바>의 주필 노릇을 하며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한다.
 이 기간에 출간된 <이방인>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아무 의식 없이 살다가 우연히 살인을 하고 사형선고를 받은 뫼르소가 죽음에 직면해서
비로소 인생의 부조리를 깨닫고 오히려 행복하게 죽음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시지포스의 신화> 역시 고독과 인생의 모순을 고백적
감상형식으로 해설하여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1947년 발표된 장편 <페스터>는 그의 철학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여기에서 전염병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우애를 역설하여 전후세대의 정신적 지주로 부상했다. 그는 전쟁과 사형을 반대했으며, 역사를 절대시하는 마르크스주의나
스스로를 절대시하는 사상적예술적 니힐리즘에도 반대한다.
 그는 초기의 주요개념인 <부조리>에서 <반항>으로 옮겨갔다. 두번째 장편인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사르트르와의 사상적 논쟁이 벌어져
10년간 지속되었던 우정이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가장 괴로운 시련은 자신이 태어났던 알제리에서 일어난 전쟁이었다. 그는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프랑스의 불공평한 식민정책을 비난했다.
 1956년에는 <반항적 인간>의 논리를 거꾸로 써서 그린 풍자소설 <전락>을 발표했다. 44세인 다음해에 스웨덴의 왕립한림원은 <<오늘날
인류의 양심에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명백하게 파헤친 그의 전 작품의 공로>>를 들어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했다. 1960년 자전적 소설인
<최초의 인간>을 집필하는 도중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부조리>와 <반항>의 문학세계
 카뮈의 문학세계는 <이방인> <시지포스의 신화> <흑사병> <반항인> <전락>등의 관계와 발전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간단히 말해 <부조리>와
<반항>의 철학이다.
 부조리란 불합리한 것,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가 부조리한 것으로 보았던 것은 바로 인간세계에 있어서의 존재, 즉
인생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합리에의 욕망>과 세계의 <합리적이지 못한 것> 사이에 생기는 모순, 그것이 바로 작가가 내세우는
<부조리>라는 것이다. 그의 <시지포스의 신화>가 말하는 바와 같이 결국 굴러떨어지는 줄 알면서도 땀흘려 바위를 굴려 올리려는 존재, 결국
죽고 마는 허무한 존재이면서도 열심히 사는 존재, 결국 무의미해지는 인생을 의미있게 살려는 존재인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에게 피치 못할 숙명으로 주어진 부조리는 누구나가 언제나 느끼는 것은 아니다. 흔히 우리는 부조리를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 즉 의식이 졸고 있는 것이다. 그저 관습에 의해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일상생활, 인생에 뜻이 있는지 없는지도 문제삼지 않는
그런 생활, 그것은 실존자의 생활이 아니다.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서 부조리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될 때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인간이라야 <실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카뮈의 이러한 사상을 통해 본다면 <부조리의 인식>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부조리에 대해, 부조리한
세계를 인식하고 여기에 대항하여 인간의 가치를 복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부조리는 당연히 <반항적인 인간>을
낳는다. 이렇게 해서 <이방인>과 <시지포스의 신화>에서의 중심개념인 <부조리>는 <페스트> <반항인>에서 <반항>으로 옮겨진다.
     인생의 부조리와의 투쟁을 그린 작품
 페스트가 전 도시를 죽음으로 휩쓰는 과정에서 이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숭고한 인간애를 그린 이 작품은 알제리의 오랑 시에
흑사병이 발생한다는 가상의 소설로, 출간과 더불어 베스트 셀러가 된 소설이다. 여기서 페스트는 모든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프랑스 영토인 알제리의 오랑에서 어느 날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쥐들이 집안과 지하실 창고, 하수구에서 몰려나와 휘청거리며 연이어
빛을 보고는 죽어갔다. 시내의 모든 쥐들이 이처럼 죽더니 이제는 사림들이 또 갑자기 고열과 임파선이 붓고 몸에 종기가 생긴 끝에, 무서운
악취를 풍기며 죽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원인 모를 병은 흑사병으로 밝혀졌다. 시에서는 행정적인 조치로 시외곽을 통하는 모든
수송망과 도로망을 차단시켰다. 무장한 군대가 삼엄한 경계를 맡고 도시는 죽음의 공포 속으로 떨어진다.
 의사 베르나르 뤼는 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어느 산중으로 보내고 이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파리에 있는 아내를
남겨둔 채, 아랍인의 생활상을 취재하러 오랑에 들렀던 차였다. 자연히 그들은 이 도시에서 고립되게 되었다. 전염병은 날이 갈수록 더욱
악화되어 시민들의 생명을 빼앗기 시작했다. 매일 수십 명씩 죽어가더니 이제는 수백 명의 사망자수를 기록했다. 자연히 시내에서는
생필품의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환자 수용시설이나 의약품, 구호대 인원은 부족하게 되어 심각한 사태를 야기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죽음의
도시로 변한 것이다.
 환자가 일단 생기면 의사가 달려가 확인하고, 페스트 환자이면 격리수용소에 보내지게 되고 가족들도 전염 여부가 밝혀질 때까지 각기 다른
곳에 격리된다. 환자는 대개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숨졌으며, 그 시체는 가족들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매장되었다. 시체는
시간이 흐를수록 마치 쓰레기처럼 큰 구덩이 속에 던져졌고 그 위에 또 다른 시체가 던져졌다. 또한 처음에는 남녀의 구덩이가 따로
만들어졌으나 그 구별마저 지켜지지 않다가 끝내는 화장으로 처리되었다.
 한편 의사 뤼는 페스트의 고통에 빠진 환자들을 구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기독교적인 사랑을 시민들에게 베푼다. 또한 랑베르에게도
지극히 안간적인 충고를 하는가 하면 달아난 아내에게 미련을 갖고 있는 글랑에게 무한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 오랑의 호텔에 얼마 전부터
묵고 있던 타르는 뤼를 방문하여 격려하고 지원보건대를 조직한다. 그들은 악과 폭력을 앞에 두고 굳은 연대감으로 맞선다.
 랑베르는 자신이 예기치 않게 이 죽음의 도시에 묶이게 되고 더구나 파리에는 아내가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이 도시를 탈출하려고 한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시의 관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을 매수해서 탈출할 날짜까지 받는다. 그러나 의사 뤼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또 봉사대가 자발적으로 조직되고, 게다가 타르와 판느루 신부까지 참석하는 것을 보고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자신이 이곳을 떠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비록 애인에게 간다고 하여도 마음이 불편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장 8개월 동안이나 극성을 부리던 페스트도 점점 약화되기 시작했다. 페스트의 피해자가 드디어 줄기 시작하고, 혈청주사를 맞은
공무원과 한 처녀가 최초로 구원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뤼의 동지이자 헌신적인 봉사자 타르가 이 병의 최후의 희생자로 쓰러진다.
이어서 뤼는 휴양지에서 자신의 아내가 병사했다는 전보를 받게 된다.
 페스트는 언제 그랬냐 듯이 물러간다. 오랑 시의 문이 크게 열리고 시민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의사 뤼는 이렇게 독백한다. <<페스트 병균은
결코 죽지 않는다.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행복한 도시에 불쑥 나타날지 모른다.>>

     대표적인 실존주의적 작품
 2차 대전을 전후해서 사르트르의 철학과 함께 세계적인 실존주의 선풍을 일으킨 이 작품은 2차대전시 경험했던 작가의 체험을 상징하고
있는 작품이다. 한 도시에 엄습한 재앙이 인간의 생존을 말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이별하게 만드는 파괴적인 모습은 전쟁과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50년대 한국 문학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전쟁의 인간살상과 타락한 인간성의 현실을 목도한 전후
한국사회의 작가들에게 큰 공감을 주었다.
 여기서 <페스트>란 전쟁을 포함한 자유를 부정하는 모든 폭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폭력 앞에 대응하는 인간들의 양식은
다양하다.  달아나는 사람, 절망하는 사람, 정당화하는 사람 등등. 카뮈는 이들을 모두 이해한다. 취재차 오랑에 온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처음에는 무슨 수를 써서든지 오랑 시를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시민들의 고통과 구조대원들의 희생적인 연대감에 탈출의 기회를 스스로
반납한다. 그는 탈출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자살도 거부함으로써 카뮈의 철학적 반항을 실현하고 있다.
 삶에 대한 애착, 인간에 대한 사랑, 이것을 뒤집어 보면 악에 대한 반항이다. 카뮈에게 악이란
전쟁독재감금억압질병빈곤 등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것들이다. 그의 글들은 낯선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개인의 소외, 악의 문제 등을 이야기함으로써 전후 지식인들의 소외의식과 환멸을 정확하게 반영했다.
 2차대전 후 황폐해진 인간정신의 위기를 간파하고 이의 극복을 위해 카뮈가 제시한 <부조리>와 <반항>의 사상은 전후의 젊은이들에게
중세의 종교 이상으로 큰 힘을 발휘한 것이 사실이다. 그는 혼란하고 무질서한 정신적 풍토 위에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확립시킨 공로
이외에도 자신에의 성실과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로 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한 세대의 정신을 대표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뤼의 말처럼 <<죽고 싶지 않은 인간이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부조리에 반항하는 인간의 모습은
영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완성 자전 소설 34년 만에 출간
 1960년 1월 4일 파리 근교에서 가로수를 들이받은 자동차 안에서 47세의 카뮈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의 가방 속에 든 미완성 원고와
함께. 144쪽 분량의 초고는 구두점도 생략되고 속필로 써서 불완전한 상태였다. 사후 34년 만에 그의 딸이 정리해 <최초의 인간>(Lepremier
Homme)으로 햇빛을 본 이 작품은 빈민지대에서 보냈던 그의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의 15년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최초의 인간>은 1994년 4월 15일 발간되어 1주일 만에 5만부가 팔리면서 파리 독서계를 흥분으로 몰아넣었다. 소설은 알제리에서 수레에
가재도구와 만삭의 아내를  싣고 황혼의 자갈길을 걸어가는 앙리 코르메리의 모습과 사내아이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카뮈의 가족이며 아이는 카뮈 자신이다. 이 작품 속에 기록된 그의 어린 시절은 본서의 생애에서 묘사한 것과 비슷하다. 파리의
비평가들은 <<카뮈가 돌아왔다. 이 책에 카뮈의 모든 것이 있다. 감수성충실자비정직믿음절대에 대한
갈망꺼지지 않는 슬픔 그리고 힘이 공존한다>>고 평하고 있다. 이 유고는 그 존재가 확인되어왔으나 그의 유족들은 미완성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출간을 보류해 왔다. 유고 곳곳에서 보이는 <<이름 바꾸는 것을 잊지 말라>> <<더 발전시킬 것>>이란 메모는 이 작품이
자전적 소설임을 입증한다. 다행히 최근에 김화영 교수의 한국어 번역판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어 국내 독자들도 카뮈의 숨결을 한층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