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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작가: 호손(Nathaniel Hawthome, 1804--1864)

 식민지적 열등감 속의 19세기 미국문단에 찬란한 예술의 꽃을 피웠던 천재작가 나다니엘 호손의 작품. 간통을 했다는 이유로 가슴에
A(adultery, 간음)지를 달고 다녀야 하는 여인과, 간통죄로 괴로워하다 결국 죄를 고백하고 죽는 딤스데일 목사를 통해, 당시의 엄격한
청교도 사회와 죄인의 고독한 심리를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다. 청교도 사회의 비정함과 형식에 치우친 신앙의 타락, 그로 인한
인간사회의 비극, 그리고 죄의식으로 얼룩진 인간영혼의 어두운 심연이 매우 음울하게 그려져 있다. 


     어두운 인간영혼의 탐구자
 <큰바위 얼굴>의 작가로 우리에게 알려진 나다니엘 호손은 뉴잉글랜드 지방의 메사추세츠 주 세일렘의 전통적인 청교도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세일렘은 그의 조상들과 관련된 무서운 내력을 지니고 있었다. 즉 그의 조상들은 영국에서 미국의 세일렘에 정착했는데, 그의
조상 중에는 그 당시 미국 초기의 도덕적 혼란을 보여주는 마녀사냥(Witch-hunting)때 가혹하고 엄격한 판결을 내리는가 하면 어떤 퀘이커
교 여성을 공개처형시킨 사람도 있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악마를 몰아낸다는 대의명분 아래 무고한 사람들을 박해하고 인간의 양심과
존엄성을 해친 조상들의 반이성적 행위는 평생 동안 그의 마음에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그가 4살 때 선장인 아버지가 항해중 객사하자 그는 가족과 함께 외가로 가서 살았다. 9살 때 공놀이를 하다가 다리를 다친 그는 3년간
학교도 가지 못하자 집안에서 스펜서나 밀턴 등의 고전작품을 탐독함으로써 육체적인 불행을 정신적인 풍요로 대신하고자 했다. 이처럼 어린
시절을 고독과 명상, 그리고 독서 속에서 보낸 그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과묵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17세 때 보든 대학에 입학한 그는 후일 시인이 된 롱펠로,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피어스와 친교를 맺었다. 대학시절에도 그는 고독을
즐기며 비사교적이었다. 대학졸업 후 그는 고향인 세일렘으로 돌아가 무려 12년 동안이나 세상을 등지고 고독에 찬 은둔 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그는 홀로 방에 틀어박혀 광범위한 명상과 창작에 몰두하며 작가가 되기 위한 길고 외로운 기간을 보냈다. 이때 호손은 항상 자기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던 그늘의 정체를 파헤치고자 했다. 그는 세일렘과 청교도의 역사, 선조들의 행적에 대해 열중했다. 그 결과 선조들에
대한 원죄의식과 청교도정신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고, 이는 그의 평생의 문학적 주제가 된다.
  31세에 자신의 대학시절을 소재로 한 로맨틱한 소설 <팬쇼우>와 33세에 <큰 바위 얼굴>이 수록되어 있는 <트와이스 톨드 테일즈>를
출판했으나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아직도 세상은 그에게 더 많은 독서와 고독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 무렵 그는 세일렘의 치과의사의
딸인 소피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그의 고독한 내면생활에서 벗어나 다소나마 정신적 안정을 되찾았다. 영혼의 빛을 되찾은 호손은
소피아의 애정 속에서 가난하지만 매우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냈다. 소피아는 생계조차 꾸려나갈 수 없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호손에게 격려와
비판을 아끼지 않은 훌륭한 내조자였다.
  42세에 그들은 콩코드를 떠나 세일렘으로 돌아갔다. 아내가 임신하게 되고 생활도 몹시 궁색한 상황에서 친구 피어스의 주선으로 세일렘의
세관에 근무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는 세관의 버려진 위층 방에서 금실로 A자 모양의 수를 놓은 주홍색 천 한 조각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최대 걸작 <주홍글씨>를 쓰는 실마리가 되었다.
  1849년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자 민주당과 가까웠던 그는 실직하게 되고, 뒤이어 모친까지 사망하게 되자 한때 실의에 빠지기도 했으나, 이
불행이 중대한 전기가 되어 그의 아내의 격려 속에 <주홍글씨>를 완성했다. <주홍글씨>는 당시 대단한 호평을 받았고, 이후 <일곱 박공으로
된 집> <블라이드데일 로맨스> 등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전개했다.
  1853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피어스에 의해 리버풀 영사로 임명된 그는 영국에서 4년을 보낸 후 이탈리아에도 머무르게 되는데, 이 무렵 쓴
작품이 이탈리아를 무대로 한 <대리석의 목양신>이다. 1860년 여름 미국 보스턴으로 돌아온 그는 창작력과 함께 점점 건강도 쇠퇴했다. 그후
친구 피어스와 함께 여행을 떠난 그는 미완의 작품을 남겨놓은 채 1864년 객지에서 사망, 콩코드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시대적 배경과 문학세계
 그가 살았던 19세기의 미국은 사회적으로 노예제도와 남북대립에 대한 비판적 논쟁이 격렬하게 일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산업화의 여파로
뉴잉글랜드에도 새로운 공장이 건설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미국의 민주주의 전개에 획기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변화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적철학적 변화였다. 1세기 이상이나 뉴잉글랜드를 지배해오던 청교주의적 신정정치에
분열이 생기고, 한편으로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계몽사상이 퍼진 시기였다.
  이에 따라 <유니테어리언 파>(일신론, 프로테스탄트의 일파로 3위일체설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단일성을 주장하며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파)와 <초월주의>가 출현했다. 교리보다는 윤리적 운동에 중점을 두는 유니테어리언 파는 기독교  속에서 인간성과 자유의지를 역설하는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신인간자연을 우주영혼의 공유자로 보며 자연은 신의 마음의 표현이고, 인간의 양심은 신의
음성이며, 삼라만상은 그대로 신성을 지닌 것이라는 믿음이 새로운 이상사회 건설을 추구한 지식계급에 널리 확산되던 시대였다. 따라서
당시의 미국은 인간의 천성이 선하고 인간이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풍조가 지배적이었으며, 사람들은 무한한 발전을 꿈꾸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조류의 흐름 속에서 호손은 자신의 문학적 과제인 청교도 관습과 인간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더욱 굳건히 확립하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다. 특히 당대의 유명한 초월주의자들인 에머슨 도로 등과 직접적인 교유를 가지면서 인간은 자신을 구속하는 과거와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경향에 한동안 심취하게 되었다.
  1841년 호손은 새로운 세계의 이상을 꿈꾸며 일단의 초월주의자들과 함께 <브루크 팜(Brook Farm)>이라는 유토피아적 농장건설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세계>와 <현실세계>와의 차이를 통감하고 곧 농장생활을
청산했다. 청교도적 죄의식과 비관론에 사로잡혀 있던 호손은 초월주의가 주장하는 이상적인 낙관론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에머슨 등의 초월주의자들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신만이 침묵과 우울의 세계로 돌아갔다.
  이렇듯 호손은 당시의 시대조류인 자유주의와 초월주의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에 무작정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문학세계의 폭을 넓히는
계기로 삼았다. 그리고 생생한 현실참여와 체험을 통해서 값진 예술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인간성을 억압하는 청교도사회 비판서
 이 작품은 청교도 사상이 지배하던 17세기의 보스턴을 배경으로, 삼각관계에서 발생한 간통사건과 이에 대한 청교도 사회의 냉혹한 제재를
다루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은 미모의 젊은 유부녀 헤스터 프린, 그녀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덕망있는 청년 목사 딤스데일, 아내를 빼앗긴 원한으로
복수의 칼을 가는 옛 남편 칠링워드, 그리고 불륜의 씨앗인 딸 펄이다.
  영생을 얻기 위해 엄격한 종교적 계율 밑에서 현세의 쾌락을 멀리하고 엄숙하게 살아야 하는 당시의 청교도들에겐 성도덕이 특히 엄했다.
성이 개방된 지금과는 달라서 간음은 절대로 용서를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뉴잉글랜드의 한 교수대 위에는 생후 3개월이 된 아기를 안고 있는 헤스터가 앞가슴에 수놓은 주홍색 A라는 글씨가 선명한 옷을
입고 군중들의 시선 속에 서 있다. A는 간통(Adultery)의 첫 글자였다.
  그녀는 주홍글씨에 의해 영원히 일상적인 평안의 세계, 현실적인 선의 세계로부터 추방되지만, 오히려 자신의 행위를 용기있게 인정하고
자신으로 인해 야기된 모든 비극을 꿋꿋이 감수하려고 한다.
  영국에서 태어난 헤스터 프린은 그곳에서 나이가 훨씬 많은 연상의 의사와 결혼했다. 비극은 그녀가 남편을 홀로 두고 먼저 식민지인
미국땅에 건너온 데서 일어났다. 그녀의 뒤를 따라 곧 오기로 되어 있는 남편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소식도 끊어졌다. 사람들은
그가 틀림없이 죽었다고들 했다.
  그러는 사이에 헤스터는 지금 품안에 있는 갓난 아이를 낳은 것이다. 남편이 없는 사이에 임신하여 낳은 아이이니 정상적인 아이일리는
없다. 때문에 엄격한 청교도들은 헤스터를 간통죄로 고소하여 형무소에 감금했고 재판결과 다음과 같은 선고를 내렸다.
  <<헤스터 프린은 교수대 위에서 부정한 자식을 안고 세 시간 동안 구경거리가 된 뒤 앞으로 일생 동안 죄의 상징인 A라는 글자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한다. >>
  그러면 헤스터의 간통 상대는 누구였을까? 그녀는 총독과 늙은 목사, 그리고 젊은 성직자인 딤스데일의 힐문에도 입을 굳게 다문채
상대방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군중 속에는 오랫동안 행방불명 되엇던 그녀의 남편 칠링워드도 끼여 있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오는 도중 여러 가지 재난을
만났다.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으로 얼굴도 크게 변한 상태였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 헤스터의 간통 사실을 알게 되자 상대방에 대한 복수를
맹세한다. 자신의 이름도 칠링워드라 고치고 의사로서 이 도시에 머무르게 되었다.
  반면 숨은 죄인인 딤스데일 목사는 외면적으로는 청교도 사회의 성스러운 목사요, 정신적 지도자로서 존경을 받지만, 내적으로는 자신의
죄를 내적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처절한 고통 속에서 보내는 인물이다. 그는 은밀한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으로 자신을 점점 어둠의 골짜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처럼 딤스데일이 스스로 죄를 고백하지 못하고 죄의식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것은
그가 칠링워드나 다른 청교도 시민들처럼 대서양을 건너와 청교도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한편 이 작품의 또 다른 죄인인 칠링워드는 아내인 헤스터의 부정을 알고서 무서운 복수를 결심한다. 늙은 그는 자기의 신분을 감추고
<냉혹한> 의미의 칠링워드라는 이름으로 사악한 정열에 사로잡혀 고립 속으로 빠져든다. 그는 펄의 아버지가 발견되지 않는 한 지상의
부정은 제거되지 않는다는 그릇된 신념을 가짐으로써 고통 속에 성격이 왜곡된다. 무서운 악마로 변신한 칠링워드는 마치 악마의 마법에
끌리듯 성스러운 목사 딤스데일에게 접근하고 마침내 마음의 병을 고백하려 하지 않는 그의 가슴 속에서 주홍글씨는 발견하게 된다. 그가
바로 자신이 찾던 펄의 아버지요, 복수의 대상임을 알아낸다.
  헤스터는 형기를 마치고 교외의 초가집에 조용히 살면서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세 살이 된 그녀의 딸 펄(마태복음의 <값진
진주>에서 따온 이름>은 친구도 없이 자유분방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딤스데일은 헤스터와 나란히 형벌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헤스터가 그의 이름을 숨기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잃고 말았다.
그에게는 스스로 죄를 고백하고 형벌을 받을 용기가 없었다.
  7년이 지난 어느 오월의 밤이었다. 딤스데일은 밤일에서 돌아오는 헤스터 모녀를 불러 세우고 셋이서 손잡고 교수대 위에 서자고
제의한다. 그의 고민을 알게 된 헤스터는 칠링워드에게 딤스데일을 용서해달라고 간청하지만 복수의 화신이 된 남편은 그 말을 거절한다.
헤스터는 숲에서 목사를 만나 남편의 정체를 밝혔다.
  축제일에 딤스데일 목사는 설교를 하게 되었다. 교수대 위에 서서 훌륭한 기념설교를 한 후 헤스터 모녀의 손을 잡고 손을 잡고 청중들
앞에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숨을 거둔다.
  이렇듯 칠링워드는 지상에서의 완전한 세계의 실현을 위해 인간 마음의 신성함을 짓밟는 용서받지 못할 죄악을 저지른다. 그의 존재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딤스데일에게 달려 있어 복수의 대상을 잃은 칠링워드는 급격히 기력이 떨어져 1년 이내에 죽고 만다.
  호손은 그에게 일말의 동정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칠링워드는 지적 교만에 의해 인간성을 상실하고 인간마음의 신성함을 파괴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손은 육욕과 위선의 죄를 지은 딤스데일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칠링워드는 반인간적 심성으로
딤스데일의 영혼을 분해하다가 풀잎처럼 시들게 되지만, 딤스데일은 불길 같은 설교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죄의 고백과 함께 치욕적이지만
떳떳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칠링워드로부터 그의 영혼을 구한 것이다.
  딤스데일의 구원은 오랜 고행과 참된 고백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것은 살아 있는 주홍글씨라고 할 수 있는 죄의 산물인 펄 없이는
불가능했다. 딤스데일이 헤스터와 펄을 껴안은 행위야말로 자신의 비밀을 고백한 행위이며 속죄와 구원을 동시에 얻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펄은 죄의 실체이지만 죄형벌사랑과 구원의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완수함으로써 헤스터와 딤스데일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데에
소임을 다하고, 마침내 그녀의 눈물로써 죄의 상징에서 벗어난 펄은 기쁨과 슬픔 속을 걸어갈 수 있는 인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후 헤스터는 고국으로 돌아가 딸을 잘 키워 시집보낸 후 다시 이곳을 찾아와 바닷가 오두막에 혼자 살면서 불행한 여자들을 돕다가
여생을 마친다.
  이처럼 주홍글씨 <A>를 중심으로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들며 펼쳐진 인물들간의 심리적 갈등과 고뇌는 인간과 삶에 대한 호손의
문학적 깊이가 얼마나 첨예했던가를 보여준다. 호손은 <A>자 하나로 딤스데일을 깊은 고뇌와 뉘우침으로 어둠 속을 헤매게 하고 칠링워드를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케 하며, 헤스터를 치욕과 고립의 세계에서 방황케 했다.
     문학사적 의의
   청교도적 삶의 허구 묘사
 이 작품은 1640년대 보스턴 식민지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재로 하여 청교도가 지배하는 신정일치의 식민지 사회에서 억압되는 인간의
모습을 19세기의 시대정신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호손은 유토피아적 신세계를 건설하려는 청교도인들의 불완전성을 파헤쳤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3가지 형태의 죄, 즉 세상에 드러난 죄(헤스터 프린), 숨겨진 죄(딤스데일), 그리고 용서 못할 오만의 죄(칠링워드)를
다루고 있다. 동시에 칠링워드의 타락과 죽음의 파멸을 통해 에덴 동산이 상징하는 이상주의의 꿈이 얼마나 위험하고 실현불가능한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이에 반해 헤스터와 딤스데일은 처음부터 죄를 범한 불완전한 인간으로 묘사하면서 이들을 통해서는 죄를 범한 인간, 즉 불안전한 인간이
바로 참된 미국인의 형상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동시에 기계문명 속에서 <정원의 신화>를 꿈꾸고 있는 작가와 동시대의 미국인들을 통렬히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진실성 추구
 호손은 그의 작품들을 통해 도덕적 진실성을 밝히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그의 문학세계가 죄악으로 인해 야기된 고립과 비극이라는
인간사의 어두운 내면에 중점을 두기는 했지만 오히려 호손 문학의 진정한 의의는 죄를 통한 구원의 완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호손은 죄를 다루되 인간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역설적으로 전달했다. 그는 죄로 인한
비극적인 인간의 심리를 그리면서 고통받는 모든 죄인에게 동정심을 보냈으며, 죄를 미워하기보다는 용서했던 따뜻한 감성의
인본주의자였다. 따라서 그의 근본사상과 그의 작품이 갖는 궁극적인 목적은 인정이 넘치는 인간과 죄 없는 밝은 세계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것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데 있었다.
  이처럼 인간에게 우러나는 동정과 온화함에 대한 사고는 호손의 도덕적예술적 신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상상이 아무리 어둡다 할지라도 문학의 세계에 있어서의 호손의 생명은 언제나 강렬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미국 최초의 문화적 르네상스
기에 그는 그 열기를 주도할 수 있었으며,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인간본성 속의 신성을 믿으면서도 죄의 고통과 자각을 통한 인간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작가는 삶의 처음에서 끝까지 인간성의
심연을 그의 문학적 소재로 삼아 인간의 도덕적 진실을 추구했다. 그는 인간영혼의 탐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