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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중용>
    저자: 자사(BC 492--432?)

 <천인합일의 도>를 제시한 유교의 <철학개론서> 윤리와 정치를 중시하는 유가사상이 생사의 문제를 밝히는 불교사상이나 무위자연의
도가사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철학적 기반이 약하다는 자기반성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당시 지식인의 취향에 부응하여 주자는 당시 13경이나
되던 유가경전을 4서로 압축했다. 4서 중에서도 <중용>은 유교의 사상에 심원한 철학적 근거를 부여하고 흔히 소우주로 불린다. 즉, 우주와
인간의 근본원리를 <성>으로 설명하여 송과 명 이래 성리학의 철학적 기초를 부여한 저서다.

     자사와 중용의 유래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쓴 것으로 전해진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의 <공자세기>에 <<공자가 이를 낳으니 자를 백어라 했다. 이는
나이 50에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백어가 가를 낳았는데 그의 자가 자사다. 나이 불과 12살에 송에서 곤경을 당한 일이 있고 중용은 그의
저술이다>> 라고 했다. 여기에 대해서 학자들은 대체로 긍정하고 있다.
 <중용>은 원래 <대학>과 마찬가지로 <예기> 중의 한 편(31편)이었으나,<대학>보다 앞서 그 가치가 인정되어 진작부터 단행본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중용>이 본격적으로 개척된 것은 역시 송대에 와서다.
 송대에 학문적 경향이 철학적으로 심화되고 유가경전 가운데서 그러한 철학적 원리를 간명하게 밝힌 서적이 요구됨에 따라 <중용>이 크게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따라서 송대의 여러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중용>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이정자(정호.정이 형제)가 <중용>에
주석을 붙여 <논어> <맹자> <대학> 과 함께 4서의 하나로 다루게 되었고, 주자가 이전의 모든 주석을 총정리하여 <중용장구>를 지음으로써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중용의 체제는 <예기> 중의 고본에 의하면 33절인데, 정자는 이것을 37절로 고쳤고, 주자는 다시 33장으로 만들었다. 즉,
<천명지위성>에서부터 <천지위언.만물육언> 까지를 1장으로 하여 자사의 입언으로 삼고, 이하 10장에서 공자의 말을 이끌어 이것을 증거하고
있다.
 다음으로 <군자지도비이은>으로부터 <애공문정>까지의 20장에서 도가 천인에 일관하여 은현을 겸유하고 대소를 다 포용함을 논하고, 중용
즉, <성>된 것을 밝히고 있다. 최후로 <자성명위지성>에서 끝 장까지 <천인일관>의 의미를 반복해서 설명하고 그 입문으로 <신독>의
필요성을 논했으며, 그 도덕의 극치에 이르러서는 천지의 화육에 참여하고 무성무취의 경자에 도달케 됨을 논하여, 상장의 중화위육과
상호연관을 맺고 있다고 볼 수가 있다.
 <중용>은 한마디로 <천인일관>의 이치를 설명했고 성의 도를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나의 성은 우주의 본체인 성의 표현이요, 이것은
바로 또 하나의 소우주라고 생각했다.

     <중용>의 내용과 중심사상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널리 보급되면서 유가의 전통사상에 일대충격이 가해졌다. 그 이유는 1. 유가경전이 수기치인의 도를 강조하는
것으로서 윤리와 정치를 중시하는 것임에 반해서 불교의 경전은 생사의 문제를 밝히는 철학적인 면을 가진 점이고, 2. 불교에 있어서도
중구에서는 특히 선종이 성립되여 복잡한 이론을 따질 것 없이 마음 하나를 밝히면 그대로 부처가 된다고 하는 주장이 풍미함으로써 당시의
대중들이 모두 불교에 쏠리게 되었다.
 여기에서 유가는 자기반성이 불가피해졌다. 1. 간명 직절을 추구하는 당시 교양인들의 분위기에 부응하기 위해 모두 13경이나 되는 경전의
간소화가 요구되었고, 2. 유가사상이 경국제세의 현실문제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깊은 철학적 원리가 뒷받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응하여 4서가 출현하게 되었다. <대학>은 유학의 지향처와 차서를 밝히는 책으로서,
<중용>은 유학의 철학적 배경을 밝히는 책으로서 채택되었다.
 <중용>은 그 첫머리에 <<하늘이 내려준 것을 <성>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교>라 한다>>고 하여
유교철학의 출발점과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즉, 아니라 도에 바탕해 있고, 도는 우리의 본성에 바탕하고 우리의 본성은 다시 천에서 나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중용>은 33장으로 편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전후 두 부분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전반 부분은 <중용 (중화)>을 설하고 후반 부분은
<성>을 설했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발하기 이전의 순수한 심의 상태를 <중>이라 하고, 심이 발하여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고 한다.
<중화>를 시간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때 이를 <중용> 이라 한다.
 제1장은 전편의 요체로서 천명.성. 도.교로써 중용의 철학적 근거를 밝힌 뒤, 사람이 중화를 이룩할 때 천지가 제자리에 위치함을 보게
되고 만물을 자라게 할 수 있다는 중용 최고의 경지를 밝히고 있다.
 제2--11장은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중용의 도를 이루는 방법을 논함으로써 1장의 뜻을 완결시켰다.
 제12--20장은 먼저 <5도>(군신.부자.부부.형제.친구의 도)과 <3덕>(지.인.용),그리고 <9경>(수신: 임금 자신의 덕을 닦을 것, ?현: 현명한
인재를 존중할 것, 친친: 어버이를 어버이로 받들 것, ?대신: 대신을 공경하는 것, ?군신: 여러 신하들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것, 자?민:
백성을 친자식처럼 아껴주는 것, 래백공: 여러공인들을 모여들게 만드는 것, ?원인: 먼 곳의 사람들을 유화시키는 것, ???: 제후들을
진심으로 따르게 만드는 것)을 설명하고 <중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성>을 밝히고 있는데, <성>을 우주가 우주되는 원리라고
설한다.
 <<성은 하늘의 도요, 성되려는 것은 사람의 도다>>라고 하여 수양을 통해 성을 이루면 타득하여 행할 수 있다고 했다. 성은 속임이
없음이요, 그침이 없음이다. 진실,무망하고 영원불변하기 때문에 우주의 원리가 될 수 있다. 성 없이는 만물이 존재할 수 없다.
 27--33장은 지성을 체득한 성인의 도덕교화에 대해 설명했다. 사람의 도는 이 성의 원리를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데 있다. 이 성을 철저히
체험한 사람이 곧 성인이다. 성을 체험한 사람만이 비로소 우주와 합일될 수 있다. 여기에 유가의 궁극적인 경지인 천인합일의 세계가
전개된다.
 그밖에 <대학>에는 이용후생에 관한 사상이 경시된 인상이 있으나, <중용>에서는 <자서민> <내서민> <내백공> 등 상당한 주의가 경주되고
있다.

     중용론 비교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

 인류역사를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지적 능력이 기원전 6--2세기에 최고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원시사회에서
고대국가체제로 전환되면서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은 생산에서 자유로워진 전문적 지식인을 배출했고, 이들은 이간과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으니, 이들이 서양의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동양의 공자.맹자.순자.장자.석가 등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물질문명의 발전이 정신문화의 발전을 앞지르면서 양자간의 불균형발전이 심화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동양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공자아 서양학문의 아버지로 불리어지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치 서로 정신적인 교감이 오고간 듯 그들은 <중용>을
가지고 인류행위의 준칙으로 삼으려 했다.
 그들의 공통점을 들어보면 1.그들은 다 같이 사람들에게 덕을 밝히고 선을 행하며 지극한 선에 머물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똑같이
개인도덕과 정치도덕을 하나로 합쳐놓고서<지극한 선>이란 최후의 목표에 도달하려 하고 있다. 2. 중용의 도가 바로 덕이 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중용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즉 <과불급>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며, 중용의 덕이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둘 다
똑같이 느끼고 있다. 올바른 길은 하나지만 그릇된 길은 매우 많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잘못 빠지기는 쉽지만 선으로 나아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3. 중용이란 곧 상대적인 양극단의 중간에 위치하며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고, 지나치는 일도 없고 미치지 못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행동은 언제나 그 경우에 합당하고 어떤 일에나 꼭 알맞게 된다. 4.모든 행등은 중용이 준칙이 되며 그 행동에는 개인의 감정과
행동 및 국가의 정치행위가 모두 포괄된다. 5. 중용의 덕이란 마땅히 언제나 그것을 버리지 않고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인류의 진보는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양극단 사이에서 굴곡을 이루는 것이므로, 중용은 그때 그때 알맞게 나아가야 하며, 그 경우와
일에 따라 계속하여 쉴새없이 언제나 꼭 알맞은 길을 추구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자의 출생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100여 년이 바르다. 이들 동양의 성인과 서양의 철인은 모두 어지러운 세상에 생존했기에 당시의 학술과
사상은 지극히 복잡했다. 공자는 요임금과 순임금의업적을 소술하고 문왕과 무왕의 다스림을 법도로서 밝혀 드러내었으며, <시경>을
편찬하고 <서경>을 정리하고 <춘추>(이설 있음)를 지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은나라와 주나라 이래의 학술과 사상을 집대성한 분이 공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이 깊고도 넓어서 그가 연구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여서, 그리스 학술과 사상도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집대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 동양의 성인과 서양의 칠인은 모두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고 어긋남이 없게 함으로써 중용의 도로 그들을 인도하려고 애썼다.
이들은 마음도 서로 같았고 이론도 같았던 것이다.
 
   <중용> 비평

 주자는 4서에 대하여 <논어>는 유학자의 생활태도를 익히게 하고,<맹자>는 유학원리의 정치적 적용을 알게 하며,<대학>은 학문의 지향처를
알게 하고, <중용>은 학문의 궁극처를 알게 한다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중용>은 4서 중에서도 초학자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서 <대학> <논어> <맹자>에 이어 가장 나중에 읽는 것이
효과적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그 내용을 집약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인간은 본래 도를 알고 성을 행하는 <성>을 부여받고 태어나므로 필연적으로 도가 행해지며 <교>가 마련된다. 따라서 인간은 자주적으로
중용의 도를 걷고 그것을 배움으로써 <지.인.용>의 덕을 갖추는 동시에 그 근본에서 <성>을 뚜렷이 하고, 마침내 <성>이 <지성>이 되어
완성될 뿐만 아니라 우주정신과 일체가 되어 우주와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것을 완성한 것이 <성인>이고 성인 가운데는 예부터 성인의 도를 계승하여 뚜렷이 한 공자가 목표가 된다. 인간은 공자를 목표로 하여
먼저 자기를 닦는 일에서 도를 걷고 지성에 이르려야 한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처럼 <중용>은 천도와 인도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론이 너무도 형이상학인데 기울어 일상적 도덕을 너무 고원한 것으로 만든 느낌이 있고, 너무 개인적 방면의 고찰에 치우쳐서
사회의 일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 성을 너무 이상의 것만으로 인정한 결과 후세 유학자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논쟁을 일으키게 했다는 점
등에 있어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중용>이 유가사상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전술한 바와 같이 실천성만을 내세우는 유교사상에 심원한 철학적 근거를 부여한 점을 들 수 있다.
원래 유교는 실천성을 요구하는 사상으로, 공자는 주로 형이하학적인 일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의 인륜의 교를 설파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상이 노장철학에 비해 어딘가 심원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이에 자사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심원한 기초를 세우고 독자적인 철학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