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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상록수> :작가: 심훈(심훈, 1901 - 1936)

 일제치하의 암울한 농촌현실 및 이 상황을 깨치고 나아가려는 젊은이들의 민족의식과 저항정신을 보여주는 이 장편은 <동아일보>(1935. 9.
10 - 1936. 2. 15)에 연재되었다.
  이 작품은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제인물을 모델로 하여 지식인의 귀농 모티브를 중심으로 당시 농촌의 비참한 실상을 보여주면서
농촌계몽의 필요성을 역설한 대표적인 농촌소설이다. 여주인공 채영신의 기독교적 희생정신과 남주인공 박동혁의 농촌개혁 의지가 민족애로
결정된 심훈의 <상록수>는 이 작품의 짝으로 평가된 이광수의 <흙>과는 달리 당대의 현실에 대한 투쟁의지와 저항정신을 담고 있기도 하다.

     생애와 작품활동
 <브나로드> 운동의 교재와 같은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은 서울출신으로 경성 제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참가하여
복역한다.
  1920년 상해로 건너가 수년간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항주의 지강대학에서 극문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후 1923년에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25년 <장한몽>에 이수일역으로 출연했고, 26년 <동아일보>에 <탈춤>을 연재한 데 이어, 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집필, 각색, 감독했다.
<조선일보> <경성방송국> <조선중앙일보사> 등에 입사했으나 번번이 사상문제를 일으켜 사직했다. 30년 <동방의 애인>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는데 <영원의 미소> <직녀성> <상록수> 등을 남겼다.
  장편 <상록수>는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소설에 당선된 작품이며, 심훈은 그 상금으로 당진에 상록학원을 설립했다. 이 소설은
이광수의 <흙>과 함께 <브나로드 운동>의 모범작으로 꼽힌다.
  <동방의 애인>은 중국과 국내를 오가면서 벌이는 강경노선의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다룬 작품으로서 연재가 중단되었으며, <불사조>는
국내에서 좌익사상이 대두하는 과정을 긍정적으로 살핀 작품으로 역시 연재가 중단되었다.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하자 신문호의 뒷면에 애국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란 즉흥시를 썼는데 이것이 그의
마지막 글이다. 시집 <그날이 오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는 시종 강한 민족의식이 흐르고 있다. 저항적이고 행동적이었던 그는
작품 속에서 당시 일고 있던 좌익적 사상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계급적 저항의식과 순진한 인도주의를 결합시키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
  박동혁: 농림고보를 중퇴하고 농민운동에 뛰어든 주인공.
  채영신: 기독교청년회연합회 농촌사업부에서 청석골로 특파한 여자. 신학교 학생.
  강기천: 지주의 맏아들. 당국의 농촌진흥회 사업 앞잡이로 농우회를 파괴함.
     작품의 주요내용
 채영신과 박동혁은 모두 ??일보사 주최 계몽운동에 참가했던 열성적인 젊은이들로서 주최측이 베푼 다괴회에서 보고연설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동지애를 느끼게 된다. 박동혁은 고향 한곡리에서 3년째 한글과 셈하기를 가르쳤다. 그는 브나로드 운동이 비록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지식청년들이 농어촌 방방곡곡에서 주민과 함께하며 비참한 생활을 해결하도록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몽운동보다 사상운동으로 나아가 민중에게 희망과 용기를 길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지지와 반대가 엇갈렸을 때
채영신이 동혁을 강하게 지지한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뜻을 같이하여 학업을 뒤로 하고 농촌사업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후 동혁은
고향으로, 영신은 경기도 청석골로 간다.
  동혁이 김건배 동지의 머슴방에 야학당 겸 농우회관을 열고 회관건립을 목표로 공동답을 마련하는 등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영신이 정양
겸 견학을 온다. 영신은 농우회의 활동을 둘러보고, <한곡리 부인근로회>를 조직하여 건배 아내에게 맡긴다. 그녀가 돌아가기 전날 동혁과
해변에서 만나 장래를 약속하고, 3개년 계획을 세워 농촌사업의 뿌리를 다지기로 한 후 헤어진다. 영신은 이후 청석골의 문학적 개척사업을
위해 더욱 노력한다. 의사, 재판장 노릇까지 해가면서, 후락한 예배당에서 콩나물 시루같이 모인 아이들에게 농민독본을 가르치며 그녀는
어깨춤이 절로 난다. 그러나 주재소 주임이 한글강습에 나오는 아이를 80명 이상 받지 말 것, 기부금을 강요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50여
명의 학생을 돌려보내야 할 형편이니 그녀는 더욱 청석학원을 짓는 일을 늦출 수 없다. 그녀는 지주에게 기부금을 받으려다가 유치장 신세를
지는 고초도 겪는다.
  한편 동혁은 창석골에 가보고 싶지만 기회를 기다리며 참고 더욱 열심히 일한다. 농우회 열두 명의 회원은 염천에도 쉬지 않고 일하여
드디어 회관을 완공한다. 그들은 <<힘만 모으면 무슨 일이든지 되는구나! 땀만 흘리면 그 값이 저렇게 나타나고야 만다>>는 무한한 기쁨을
느끼며 겨울에도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는 사철나무 같은 교목들을 기념으로 심는다. 한편 기천이가 면협의원이 되고 진흥회 실시에
앞장선다. 그는 자신을 지지할 동네 청년을 매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한곡리에서 농우회관을 낙성했다는 소식을 들은 영신은 그보다
곱절이나 큰 학원을 지을 야심으로 밑천에 보태려고 학예회를 준비한다. 이를 계기로 마련한 돈으로 시작하여 청석학원은 낙성을 보게 된다.
그런데 동혁도 초대된 낙성식에서 영신은 쓰러지고, 맹장수술을 받는다. 동혁은 그녀를 간호하게 되고, 두 사람은 모처럼 자신들의 사업에
대해 반성한다.
  그들은 경제적인 사업을 할 결심을 한 것이다. 동혁은 아우의 급한 편지를 받고 영신의 퇴원을 못 본 채 한곡리로 왔을 때 기천이
농우회를 파괴하려는 사태에 접해서도 역시 <면단위 차원의 문화운동에서 실질적인 경제운동으로>나갈 결론을 내린다. 동지 건배는 기천의
주선으로 군청에 들어가고, 기천에게 찬성한 다른 회원들은 모두 그의 소작인들이다.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혁은 우선 농우회의
저축금으로 기천에게 회원들이 진빚을 본전만으로 청산시키고, 기천이 진흥회장이 된 자리에서 그것을 공식화시켜 그도 어쩔 수 없게
만든다. 그런데 회관이 진흥회로 넘어가는 것에 분개한 동생이 회관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 동혁이 입건된다.
  한편 영신은 일본으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떠나기 전 동혁에게 전보까지 보냈지만 소식이 없자 한곡리로 찾아간다. 그녀는 겨우 면회를
허락받아 동혁을 만나보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조선을 떠난다. 그런데 학업은 예상과 달리 취미에 맞지 않고 몸이 쇠약하여 각기병까지
앓게 되자 <<가자, 죽더라도 내 고향에가 묻히자!>>고 청석골로 돌아온다. 그녀는 사업에 대한 애착심이 고향을 떠나기 전보다 더해져
육신의 고통을 이겨낸다.
  그러나 그녀는 동혁도 만나보지 못한 채, 동혁에게는 끝까지 꿋꿋하게 싸워나갈 것을, 원재를 비롯한 청년들에겐 청석학원을 계속할 것을,
그리고 자신의 무덤은 학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마련할 것을 유언하고 죽는다. 동혁은 출감하여 전보를 받자 달려와 슬픔 속에서
영신을 영결하고, 그녀가 못다한 일을 두몫 하겠다는 결심으로 돌아온다. 오는 길에 동혁은 모범촌 몇 군데를 견학하고, 그네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해 농촌운동을 통일시키도록 힘써보리라 결심한다. 동혁이 동리 어귀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띈 것은 회관 낙성식 때 심은
상록수였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상록수>는 1930년 초에 일기 시작한 <농민 속으로>라는 구호를 내세운 브나로드 운동과 문맹퇴치를 위한 교육보급을 내세운
농촌계몽운동을 전형적으로 그린 농촌계몽소설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이 무렵 농촌계몽을 위한 브나로드 운동가들의 열성적인 봉사활동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 작품 역시 <동아일보>에서 행한 농촌계몽운동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현상모집에 응모하여 당선된 작품으로,
1935년 9월부터 1936년 2월까지 연재되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심훈의 큰조카 박동혁(실명:심재영)이 그의 고향 당진군 부곡리에서 농촌운동의 실제조직인 <공동 경우회>의 활동과
당시 수원군 반월면 천곡리에서 농촌계몽활동을 하다가 숨진 채영신(실명:용신)의 삶을 형상화한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들이 실존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문단에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작가 심훈은 사회주의적 계급문학을 표방했던 염군사의 회원
출신이다. 때문에 그가 그리고 있는 농촌계몽운동은 이전과는 달리 좀더 적극적이며 실천적이요, 실제적인 것이었다. 이 점은 이광수의
<흙>에서 형상화된 농촌계몽운동의 성격과 비교될 때 그 정당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브나로드 사상의 일종의 교화소설적인 성격을 가짐과 동시에 숱한 장애 속에서도 변치 않고 발전하는 사랑을 로망스 소설적인
성격(심훈의 조카이자 실존인물인 심재영 옹의 회고에 의하면 같은 시대에 태어나 농촌계몽운동에 함께 활동은 했어도 소설 속의 로맨스는
없었음)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종말은 속죄양 모티브와 관련성을 가진 여주인공 영신의 죽음으로 이루어져서 비장감을
자아내고 있으며, 소설의 플롯이 동혁과 영신과의 만남과 헤어짐의 구조가 반복되면서 발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한
교화소설이나 로망스 소설에서 벗어나고 있다.
  동혁과 영신의 만남은 다섯 번 이루어지는데, 그 각각은 이 소설의 플롯의 전개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동혁과
영신과의 거듭되는 만남은 처음에는 타인으로 우연히 만나 이 둘의 사이가 동지에서 애인 사이로 발전하여 마침내는 생사를 초월한 정신적
결합의 경지로까지 귀결되는 과정이며, 또한 두 주인공들이 벌이는 농촌사업의 수준이 심화되고 확대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는 농촌계몽사상과 농촌계몽운동의 실상은 이광수의 <흙>에서 나타나는 지식인의 시혜적인 것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은 브나로도 운동의 성과를 단순한 계몽 차원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명제, 즉 일제와의 대결과 농민계층과의 밀착이라는 명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한곡리의 농우회관의 건립을 둘러싸고
잘 드러난다.
  또한 동혁의 농촌계몽사상은 단순히 글자를 깨우치고 단체를 만드는 문화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당장 시급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이고 실제적이며 실천적인 사상으로 발전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들의 농촌사업이 시혜적인 태도에서 수행되지 않고 농민계층과의 융합 속에서 진행되며 보다 적극적이고 실제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당시의 농촌계몽소설 중에서는 선진적인 면모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지식인의 귀농을 주제로 한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라 불안과 위기의 시대에 민족의 자활과 자강문제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낭만성을
살려낸 것도 1930년대의 대표적 농민소설로 꼽히는 이유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소설 전체의 분위기가 낭만성에 너무 의존하고 있고,
주인공이 여전히 영웅적인 이미지에 머물러있다는 점에서는 한계를 가진다고 볼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작품은 <흙>과
함께 농민문학의 전범적인 소설로서 그후에 나타난 농민소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