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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작가: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함께 영국의 18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이 소설은 그동안 어린이용 동화로 소개되어왔으나, 사실은 비현실적인
명분에 집착하여 국민들의 생활이나 복지에는 무관심한 정치인들의 정쟁을 풍자한 작품이다. 인간의 도덕적 약점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풍자와 인간혐오 사상이 전편에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유지되고 있는 유토피아 추구의 기조는 독자들에게 아주 흥미있고
교훈적인 문학적 체험을 할 수 있게 한다.


     인간을 혐오했던 아일랜드 영웅
 이책은 스위프트가 <<세상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나게 만들려고 쓴 책>>이다.
  풍자문학의 대가인 스위프트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출생했다. 유복자로 태어나 큰아버지의 배려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그러나 그는 재학중 방종하고 게을러 학교측의 특사로 겨우 졸업했다. 런던으로 나와 모친 쪽의 먼 친척인 당시 정계의
거물이었던 윌리엄 템플 경의 집에서 비서로 일했다. 이 집에서 여러 고전과 역사를 배웠으며, 여러 정치가와 접촉하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지적 성숙은 여기서 이루어졌다.
  그가 스텔라라고 불렀던 에스더 존슨이라는 어린 소녀를 사랑한 것도 여기서였다. 그는 그녀를 가르쳤으며 다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다. 그들이 비밀리에 결혼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들의 관계가 서로에게 만족스러웠다는 것은
분명했다.
  한때 아일랜드로 돌아가 목사가 되었으나 1680년경부터 시문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1704년 익명으로 출간된 풍자소설 <지어낸 이야기>
중 <책들의 전쟁>과 <설교단의 이야기>는 그의 초기대표작이다. 전자는 고대와 근대 어느 쪽의 문화가 더 나은가라는 당시 논쟁에서 고전
찬미파를 지지했다. <설교단의 이야기>는 카톨릭, 프로테스탄트, 영국 국교회의 싸움을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웃옷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3명의 아들에 비유하여 풍자한 작품으로, 당시의 정세에 어두운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는 둘다 읽기 어려운 작품이나 작자의
풍자능력은 뚜렷하다.
  이후 풍자와 논쟁의 능력이 인정되어 당시 휘그토리 양당의 정치논쟁이 격심한 가운데 정치 저널리즘에 등장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공명에 대한 야심으로 집필상의 원칙이 없었으며, 때마침 정치적 환경의 변화도 있고 의지했던 템플 경도 세상을 떠나 정계에 대한
야심을 단념한다.
  1713년 이후에는 더블린의 성 페트릭 교회 수석사제가 되었다. 이때에도 그는 남과 어울리기 싫어했고 이것은 더욱 통렬한 풍자의 길로
나아가게 했다. 유명한 대표작 <걸리버 여행기>는 주인공 걸리버가 차례로 여러 나라에 표착하여 이상한 경험을 한다는 줄거리이며, 매우
기발하고 묘한 착상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각국에서 널리 애독되고 있다. 이 작품의 본질도 인간에 대한 그의 혐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아일랜드 출신으로서 영국에서의 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1714년 이후 아일랜드로 가서 은둔했다. 그는 여기서 돌변하여
영국으로부터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려는 문필의 투사가 되었고, 그 때문에 그는 아일랜드의 영웅으로 추앙되기에 이르렸다. 아일랜드의
낙후성을 주로 영국 정부의 탓으로 돌리면서 동시에 아일랜드 인 스스로가 자신들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묻혀 있는 세인트 패트릭 성당의 벽면에는 그가 직접 쓴 라틴 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신학박사이자 이 성당의 참사회장인 조나산 스위프트의 시신이 이곳에 묻혀 있다. 이제는 맹렬한 분노가 더이상 그의 마음을 괴롭힐 수
없으리라. 나그네여, 떠나시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전력을 다해 지고의 자유를 얻으려 한 이 사람을 본받으시오. >>
     <걸리버 여행기>와 검열문제
 영국 문학사에 있어 18세기 전반기를 <오거스터스> 시대라고 한다. 이는 문예운동이 활발하여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등이
활약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영국의 앤 여왕 시대를 비유한 것이다. 이중 <걸리버 여행기>와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가 대표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이 집필되던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서서히 그 자리매김을 시작하고, 의회파가 왕당파를 누르고 권리장전 선포와 의회 정치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사실상의 군주제가 폐기되기 시작하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와 같은 격변의 시대였다. 이 작품의 원본은
상당부분이 영국의 정치적 상황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어 적지 않은 삭제를 당하는 등 수난을 겪어야 했다.
  스위프트가 친구인 찰스 포드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처음부터 이 작품의 위험성을 예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여행기를 마무리하고 고치고 다시 고쳐 쓰고 정서하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새로 보탠 것과 함께 모두 네 부분으로 완결을
보았습니다. 세상이 이 작품을 받아들일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쇄업자가 감옥에 갇히는 것을 각오할
용기를 갖게 되면 출판해볼 생각입니다. >>
  사실 검열의 문제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있어왔다. 작가는 검열을 의식하면서 이 작품을 썼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검열과 타협한
상태에서 작품을 진행시켰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검열이 없었다면 작가는 좀더 직접적으로 당시 영국 사회의
정치적종교적윤리적 타락에 대해 신랄하게 공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검열이 없었다면 분명히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이 나왔을 것이라는 논리는 타당치 않다. 검열은 작품의 자유로운 전개를 방해하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에는 좀더 좋은 작품을 쓰도록 만들기도 한다. 오히려 그 작품이 영원한 고전이 되는 경우는 그 정치적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것보다 우회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보다 보편적인 문학으로 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대 유럽 사회에 대한 풍자
 걸리버의 모험을 통해서 본 세태의 비판과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1726년에 출판되었는데 출간 즉시 성공을 거두었고,
독자들을 즐겁게 하기도 하고 화나게 하기도 했다. 배의 의사인 걸리버의 난파표류기로 된 4부작 소설이다.
   소인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의학도인 걸리버는 항상 바다를 항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3년 반 동안이나 항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바다여행 후 런던에서 병원을 차리고 결혼도 했다.
  이후 그는 다시 배의 의사가 되어 6년간이나 떠돌아다니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가정에 충실하다가 바다 여행을
떠난다. 도중에 풍랑으로 배가 산산조각이 났으나 그는 운좋게 헤엄쳐 어느 섬에 닿아 쓰러져 잠들고 만다.
  그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온몸이 밧줄로 꽁꽁 묶여 있고 그의 몸에는 6인치도 안되는 벌레같은 인간들이 사오십 명이나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가 왼팔에 힘을 주어 밧줄을 끊자 그 조그마한 병사들이 일제히 활을 쏘아 온몸이 따끔거렸다. 그는 당분간 자는 체하여 화살을
멈추게 했다.
  소인국의 수도로 옮겨진 걸리버가 소인국 사람들의 말을 배우게 되자 그는 우선 몸을 동여맨 쇠사슬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임금은
회의를 한후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후 걸리버는 소지품 검사를 받게 되었다. 손수건담배갑작은
수첩시계칼권총 등이 있었는데, 소인국에서는 이 물건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걸리버는 칼과 권총이 위험한
물건임을 임금에게 알려주었다. 임금은 칼과 권총을 당분간 맡아두기로 했다.
  제1부의 압권은 소인국간의 감정대립과 전쟁에 관한 부분이다. 소인국에는 두 개의 당파가 서로 다투고 있었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는
당파와 낮은 굽을 신는 당파가 다투고 있었다. 그 싸우는 이유는 계란을   는 방법 때문이었다. 계란을 깨는 전통적인 방법은 밑부분이 넓은
쪽이었는데 현재의 국왕 할아버지가 소년시절 관습대로 계란을 깨다가 손가락을 다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그의 아버지였던
당시 국왕은 계란을 깰 때는 밑이 좁은 방향을 깨도록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이 명령을 두고 지지파와 반대파가 대립했고, 반대파들은 반란을 일으켜 이웃 나라 블레퍼스크로 이주해버렸다.
  작가는 소인국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이 믿고 있는 신념과 이념의 맹목성에 비판을 가한다. 즉, 소인국의 우화를 통해
작가가 제시하고자 하는 주제는 맹목적인 신념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벌이는 갖가지 폭력과 광기다.
   거인국
 고향에 돌아온 걸리버는 가족과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나 본래 바다를 좋아하는 천성 때문에 다시 바다로 향했다. 그러나 음료수가 떨어져
어느 섬에 머물게 되는데, 풀과 나무들을 구경하던 걸리버를 두고 배는 출항을 하고 만다.
  여기는 거인국으로 그들은 키가 18미터나 되지만 단순하고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거인국에서는 비교적 작은 편인 개, 고양이조차도
걸리버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크고 힘이 세다. 그들의 폭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걸리버의 모험이야말로 소년소녀들이 제일
흥미있고 읽을 만한 동화 속의 소재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 주인에게 걸리버를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걸리버는 수도로 옮겨져 쇼를
하게 되고 궁중에까지 알려져 왕후가 걸리버를 농부로부터 사들이게 된다. 그러나 궁중의 대학자들과 걸리버는 논쟁을 벌이게 되고 왕의
총애를 받게 된다. 그는 또 왕에게 유럽의 정세를 알려주어 감탄을 사게 되고, 후에 왕이 파리로 행차할 때,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거인국에서도 몸집이 작은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기는 따위의 모험담이 전부는 아니다. 걸리버를 못살게 구는 거인국의 사람들에
대한 묘사를 통해 작가는 몸집은 크지만 올바른 정신을 갖지 못한 사람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동화를 통해서 널리 알려져 있는 1--2부와는 달리 3--4부는 좀더 공격적인 풍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
  세번째 항해를 떠나게 되었을 때, 걸리버는 해적들에게 잡혀 섬으로 끌려간다.
  이 섬나라 주민들은 1--2부와는 달리 몸집은 거의 정상인에 가깝지만 행동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너무 지나치게 사색에 몰두해 옆사람이
뭐라고 말하든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절벽이 나타나면 떨어지고 기둥이 나타나면 머리가 부딪히며, 거리에서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밀려서 아무런 대책 없이 하수구로 떨어진다.
  그래서 대화를 하기 위해 시종을 거느리고 다니는데, 그들이 머리를 때려주는 도구로 대화하는 상대방의 머리를 때려야만 비로소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대화가 가능하다.
  그들은 매우 사색적이어서 수학과 물리 방면에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빵조차 원뿔이나 원기둥, 평행사변형의 수학적인 도형으로
자르고 옷을 한 벌 맞출 때도 자와 콤파스를 가지고 높이를 측정한다. 그것은 나일 강의 삼각주를 측량할 때의 기하학과 동일한 방식이다.
  그들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묘사할 경우에도 사다리꼴, 원, 평행사변형 등의 기하학적 용어를 구사한다. 그들은 매우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비합리적이어서 개인의 상상력이나 공상, 창조적인 발명과 같은 단어는 아예 없을 정도이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매일
걱정하는 일뿐이다. 예컨대 수학적인 계산에 의하면 130년이 지난 다음 혜성이 분명히 지구를 파괴해버릴 것이라는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과학을 만능이라고 믿으면서도 오히려 인간이 원래 지닌 소박한 지혜마저도 잃어버린 당시의 지적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말들의 나라
 네번째 출항은 선장이 되어 떠나게 되지만 선원들이 난동을 일으켜 걸리버는 선실에 유폐되고 미지의 땅에 버려지게 된다. 이 나라에는
인간 모습을 한 추한 짐승인 <야후>와 말과 비슷한 형상인 <휴이넘>이 공존하며 살고 있다. 걸리버는 말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그 나라의
지도자들을 만나 자기 신세와 영국의 유럽의 실정을 얘기하고 이곳 사정을 자세히 알게 된다.
  말나라는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이상적인 곳이었다. 이성이 존중되고 거짓이 없고 악이란 단어조차 없다.
결혼출생죽음 등 모든 사건은 순리대로 처리되고, 인구는 국가차원에서 조절되며 자녀교육은 국가가 맡고 있는 곳, 걸리버는
여기가 바로 유토피아라고 감탄하며 깊은 애착을 가진다. 그러나 더러운 야후들에게는 심한 혐오를 느낀다.
  사실 이 책 중에서 제4부가 유럽의 당대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고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상호간의 사소한 의견차이로 국가간에 전쟁이,
개인간에는 거짓말과 도둑질이,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에는 착취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사실은 잘못된 사회통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걸리버 자신이 깨닫게 된다. 당대의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은 제4부의 내용은 이 책을 오랫동안 금서의 목록에 오르도록 만들었다.
  사실 이 책은 여러 사람뜰에 의해 끔찍하고 신성 모독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어느 작가는 이 책은 비교적 재미있고 교훈적이지만
제4부의 내용은 읽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 작가의 풍자가 너무 통렬해 그 사회와 그 사회에 몸담고 있는 인간의 치부가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그것을 모두 보여주는 일이 너무 끔찍하고 비교훈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풍자문학의 백미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인과 거인, 지나치게 사색적인 사람과 괴물인 <야후>를 각각 그리면서 가장 바람직한 사회는 무엇인가를
강력하게 발언하고 있다.
  제1편 소인국에서는 영국의 앤 여왕 치하의 실정에 대한 시사적인 풍자가 넘쳐흐르고, 제2편 거인국에서는 그의 조국인 아일랜드 국민의
행동과 이상국가에 대한 그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어 스위프트의 냉철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제3편에서는 토론에는 열심이지만 실지로
응용에 머리를 쓰지 않는 학자들을 비웃으며, 왕립 아카데메이아를 풍자하고 있다. 제4편에서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성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결국 당시 영국의 정치사회종교 등 사회전반에 대한 풍자를 통해 결코 동물과 다를 것이 없는 인간사회를
그려냈던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신랄한 인간혐오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비평가들은 스위프트의 재능이 인간의 본성 중 가장 추악한 부분을
폭로하는 데 발휘되기는 했지만, 그 재능만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문학가로서의 그의 문체는 분명하고 단순한 어휘, 복잡하지 않은 문장구조, 경제적이고 함축적인 언어가 특징이다. 그는 기교와 장식을
피했다. 표현하고자 하는 분노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의 문체는 더욱 긴장되고 절제되었다.
  이 책에 얽힌 재미있는 사실은 <신중하고 심오하고 암울한> 풍자인 이 작품의 재치가 지워진 채 아동용 도서가 되는 과정에 놓인
아이러니다. 19세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스위프트의 소설에서 잔인한 재치의 부분을 무턱대고 삭제해버림으로써 아동용 도서로
만들어낸 것은 바로 비평가들이었다. 이들은 어린이들에게 흥미있는 부분만 모아 편집해버렸다. 스위프트의 재치는 어느 부분이든 삭제를
하면 전체적인 효과에 치명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자에게 이 작품의 완역은 필요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에 3--4부를 포함한 완전한 번역이 이루어져 독자들의 욕구가 충족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1--2부만
번역되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