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풍경
저자: 박태원(1909-1986)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적인 소설로, 도시성이 명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조광>에 1937년 1월호부터 9월호까지 걸쳐 연재된 이
장편소설은 일제 때 서울 청계천변 한 동네에서 일어난 여러 일상적 사건들을 다룬 세태소설의 본보기다. 에피소드의 병치, 끊임없는 시점의
변화, 객관적 시점의 확보, 다양한 인간상 제시, 세련된 문체의 성취 등을 특징으로 한 이 소설에서 1930년대 서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생애와 작품활동
월북 후 북한 역사소설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갑오농민전쟁 (전3권)을 쓴 작가 박태원. 그의 호는 구보.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 호세이 대학을 중퇴하고 집에서 밤늦도록 책을 읽는 등 불규칙한 생활을 해 건강과 시력이 나빠졌다.
한때 이광수를 사사했으나 그의 계몽주의는 따르지 않았다. 1930년 단편 수염 을 발표하면서부터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1933년 이태준.
이효석. 이무영. 정지용 등과 <구인회>를 만들어 예술파적 소설을 지향하였다.
<구인회> 출현시기는 카프계열의 경향파 문학이 일제의 탄압에 부딪친 때로서, 새로운 문단세력으로 박태원. 이태준. 이효석 등이 활약하게
되었다.
박태원은 특히 이태준과 친하게 지내면서, 일제 강점기 하에 작가자신이 속한 서울 서민층의 변모양상을 객관적인 서술로 묘사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 결과 시정적 소시민 사회의 현실을 저회하면서, 무기력한 패배자의 시선에 들어오는 풍경들을 그대로 그려나갔다.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이 그것이다. 이외의 단편들로 딱한 사람들 길은 어둡고 전말 진통 방란장 주인 성탄제 등이 있으며 주제가
소시민적 우울을 다룬 점에서 대체로 비슷하다.
해방 직후에는 이태준과 함께 조선문학건설본부에 참여해 소설부 위원을 지냈다. 6. 25전쟁중 월북해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조운과
함께 조선창극집 을 펴냈다. 1956년 한때 남로당 계열로 몰려 작품활동이 금지되었다가 1960년 작가로 복위, 1986면 고혈압으로 죽었다.
해방 전까지 개인의 문제, 지식층의 문제, 현재의 문제에 치중했으나, 해방 후에는 집단의 문제, 민중의 문제, 과거의 문제에 치중해
역사소설을 주로 썼다.
그의 대표작 천변풍경 은 짧은 이야기 50절로 이루어진 장편으로, 철저한 3인칭 관찰자 시점을 따르고 있다.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나
뚜렷하게 내세우는 사상도 없이, 청계천변에 사는 서민층의 몰락과 가난을 시선에 잡히는 그대로 그려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은
미혼이며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소설가 구보씨가 서울거리를 배회하면서 느끼는 내면세계의 방황과 세태풍속을 잘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형식과 문장의 기교 등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광고 전단 등의 대담한 삽입, 쉼표의 사용에 의한 만연체 등의 시도, 중간제목의 강조,
한자의 남용 등 90년대 작가들도 감탄할 만한 독특한 문체를 낳았다.
주요 등장인물
재봉이: 15-16세 가량인 이발소 사환. 이발소와 빨래터 골목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상세히 목격함.
민 주사: 재력있는 50대의 사법서사. 안성집과 취옥이 사이를 오가며 주색잡기에 골몰함.
하나코: 방년 스무 살의 카페 여급. 손주사, 은방 주인, 강서방 등의 표적이 되어 있는 미인.
이쁜이: 천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했으나 친정으로 쫓겨나는, 점룡이가 짝사랑하는 인물.
금순이: 순박한 시골색시로 가족들과 헤어져 기미코, 하나코와 함께 살아가는 인물.
만돌어멈: 포악한 남편을 가진 행랑어멈.
창수: 꾀 많은 한약국집 사환.
작품의 주요내용
민주사 한약국집 가족, 포목전 주인, 양약국 주인 최진국 등은 식민지 자본주의 속에 적응하면서 약간의 부를 축적한 인물들로, 이들은
식민지 사회가 아무런 변동 없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안정희구 세력들이다. 반면 재봉이, 창수, 금순이, 만돌이 가족, 이쁜이 가족, 점룡이
모자 등은 모두 시골에서 올라와 청계천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점룡이 어머니, 이쁜이 어머니, 귀돌어멈을 비롯한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터에 모여 수다를 떤다.
이발소집 소년인 재봉이는 이런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결코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민 주사는 이발소의 거울에 비친 쭈글쭈글 늙어가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짓지만, 그래도 돈이 최고라는 생각에 흐뭇해진다. 재봉이는 평화 카페 로 눈길을 돌린다. 여급 하나코의
어머니가 눈에 뛴다. 재봉은 하나코의 어머니가 광교 쪽을 바라보며 난처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발길을 돌리는 것을 본다. 저쪽
한약국집에서는 젊은 내외가 함께 대문을 나선다. 이들은 다정한 부부로 외출을 하는 것이다.
창수는 한약국집의 사환인데, 출세하기 위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강권에 따라 시골에서 올라왔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일에 얽매여
고생하는 것은 비단 창수 혼자만의 슬픔이 아니다. 파란 색칠을 한 중문을 사이에 두고 약국 안에서는 행랑에 든 지 사흘도 안되는
만돌어멈이 안방마님의 꾸지람을 듣고 있다. 만돌어멈은 불한당 같은 남편을 피해 서울로 도망질쳤으나, 우여곡절 끝에 다시 남편과 남의
드난살이를 하는 것이다.
한편 음력 3월 중순, 이쁜이네는 오늘 큰 경사가 있다. 점룡이 어머니는 마음이 애석하다. 아들 점룡이가 은근히 이쁜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쁜이 어머니의 마음은 그렇게 한가로울 수가 없다. 영감이 세상을 뜬 지 이미 13년, 저만큼이나 키워서 오늘
마침내 시집을 보낸다. 결혼식은 간단히, 또한 별일없이 진행되었다. 이처럼 한쪽에서 경사가 있을 때, 신발집의 온 가족은 아직도 장가를
못 간 주인의 처남까지 몽땅 어디로 나들이라도 가는 것처럼, 스무 해를 살아온 이 동네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한번 기울어진 가운은 다시
어찌할 도리 없이 신발집이 몰락하자 청계천변 사람들의 마음은 어둡게 된다.
민 주사는 요사이 마음이 우울하다. 마작노름으로 족히 사오백원을 날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민은 그뿐이 아니다. 그는 경성부회의원
선거전에 출마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에, 다른 후보자들의 운동원들이 이 일을 폭로할까 봐 걱정이 태산 같다. 또한 안성집이 자기 눈을
피해 젊은 학생놈하고 좋아지내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고는, 가슴이 내려앉을 지경이다. 민 주사는 입안에 가득 고인 쓰디쓴 침을
길바닥에 탁 내뱉고 천변길을 우울하게 걸어간다.
신수 좋은 포목점 주인은 남쪽 천변을 걸어간다. 그는 자기의 매부가 선거에 출마하기 때문에 밑천 들지 않는 인사 라도 열심히 하려고
정신이 없다. 민 주사의 선거사무소는 제법 활기에 넘쳐 있다. 돈을 많이 뿌린 까닭이다. 그럼에도 민 주사는 자기가 어째 꼭 헛수고만 하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 갑자기 자기가 변변치 못한 인물로 생각되어져 부회의원 이란 것이 당치도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민
주사는 낮에는 선거 때문에 부산하고, 밤에는 학생놈과 붙어 지내는 안성집 처리문제에 마음이 괴로워, 잠깐 동안에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만돌어멈은 드난살이를 하던 한약국집에서도 쫓겨나, 어디론가 정처없이 사라져버린다. 동제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린 이쁜이는
남편의 바람기에 시달린다. 그리고 선거는 마침내 끝이 났는데, 민 주사는 선거에 패배해 병석에 누웠다. 젊은 학생놈과 안성집이 눈에
삼삼하다. 마음고생한 끝에 민 주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담판을 벌이려고 안성집을 찾아간다.
순진한 시골색시였던 금순이는 가족과 헤어져 기미코, 하나코의 방에서 함께 생활한다. 조석 준비와 세탁, 그리고 재봉질이 그녀의 중요한
직무다. 광교에서는 점룡이가 아이스케키를 팔고 있다. 우연히 금순이는 헤어졌던 동생 순동이를 만난다. 순동이는 한양 구락부라는
당구장에서 게임놀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순동이는 모범적인 소년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각처로 밥거리를 구하여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해본 터이라 성실하였고, 그래서 주인과 감독의 신임을 얻고 있다. 아버지 용서방은 새어머니의 행실이 정숙치 못해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그는 지금보다 불행한 적은 없었다며 입맛을 다신다. 계집 경영하기의 어려움은 용서방보다도 오히려 민 주사가 좀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한편 좋은 집안의 가문으로 시집간 카페 여급이었던 하나코는 시집살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집온 지 달반도 못되어 하나코는 극도로
마음과 몸을 상했다. 시어머니의 구박은 물론이고, 하인배들의 멸시, 그리고 믿었던 남편의 마음조차도 변해버렸다. 전처 소생의 아이들도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쁜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마침내 이쁜이는 서방에게 쫓겨 어머니에게로 돌아온다. 외로운 어머니는 이번에는 다시
이쁜이를 그 집에 보내려 하지 않고, 이튿날로 필원이를 시켜 딸의 세간을 모조리 찾아온다. 이발소의 귀여운 소년 재봉이는 젊은 이발사
김서방과 밤낮 다툼을 하면서도 좀처럼 이발소를 떠나지 않는다. 이제 얼마 안 가서 이발사 시험에 어렵잖게 합격하리라는 것이 이발소
주인의 말이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천변풍경 은 박태원의 대표적인 장편으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이 경성 도심에 대한 기록이라면 천변풍경 은 도시의 주변부에 대한
관찰이다. 청계천변은 분명히 도시에 속해 있으면서도 도심과는 다른 공간이다. 현란한 도시문화의 영향으로 천변에도 카페와 구락부 같은
유흥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아직 동네아낙들이 모여드는 빨래터가 있고 이웃집 속사정을 제 속처럼 아는 전통적 공동체가 살아
있다. 천변은 생활의 무대이며 도시문명에 속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발소와 빨래터
그런데 천변풍경 에 나타나 있는 이 다양한 인물들의 갖가지 행색은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적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나는 천변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의 이발소이며, 다른 하나는 천변의 빨래터이다. 남정네들이 모여드는 이발소에서 그들의 삶의 모습이 투영되고, 빨래터에서
나오는 아낙네들의 입을 통해 온 장안의 화제가 소설 속으로 끼어든다. 이 같은 소설적인 기법은 개별화된 인물들이 보여주는 특이한 행동과
태도를 하나의 공간 속에 배치하는 데 기능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영화기법의 활용
천변풍경 은 그러한 천변 사람들의 생활을 파노라마처럼 잡아낸다. 이 소설에 특별한 주인공은 없으며, 천변과 근처의 상점들 그리고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보여주듯이, 이 소설을 한 장면(그리고 특정한 인물)에서 다른 장면(다른
인물)으로 넘어간다. 이어지는 장면들 사이에는 주제나 사건의 영속성도 없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36년 당시, 이는 새로운 기법으로
받아들여져서 작가의 시각이 카메라의 눈처럼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부터 천변풍경 이 영화의 기법을 활용했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최재서의 평가를 빌면 박태원은 자기 사상에 의하여 어떤 가상적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인물을 조종하지 않고, 그 대신 인물이
움직이는 대로 그의 카메라를 회전 내지 우회 하였다는 것이다.
이 소설 전체가 그러한 특징을 유지하고 있는데, 특히 등장하는 인물 중 이 카메라의 눈 을 체현하고 있는 인물은 재봉(이발소 소년)이다.
그의 즐거움은 천변을 오고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 관찰에는 어떠한 목적의식도 없다. 그저 그는 오가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그들이 어떤 태도로 어디를 향해가는지를 관찰할 뿐이다. 이런 재봉의 시각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있는 작가의 시각, 카메라의 눈
과 같다. 그러나 장면의 무조건한 배열만으로는 소설의 완결성이 획득되기 어렵다. 작가는 여기서 시. 공간적 폐쇄성이라는 장치를
마련한다. 곧 사건들의 무한한 나열을 막기 위해 시간과 무대를 제한시키고 등장인물의 운명도 이 무대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조정하는
것이다.
시간적 폐쇄성
시간적 폐쇄성은 1년의 순환 을 소설의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데서 생긴다. 이 소설은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이
부는 천변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만 하다 라는 말로 시작해, 이듬해 같은 시기를 알리는 입춘이 내일 모레라서 그렇게 생각하여 그런지는
몰라도 대낮의 햇살이 바로 따뜻한 것 같기도 하다 라는 말로 끝난다. 그런가 하면 공간적 배경은 천변에 제한되어 있다.
공간적 폐쇄성
주요 등장인물 역시 천변으로 모아짐으로써 공간적 폐쇄성을 강화시킨다. 소설의 말미에서 이쁜이는 천변의 친정으로 돌아오고, 금순이는
가족과 해후하여 천변에 자리잡는다. 이들의 운명은 천변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리고 또 하나 소설 내의 카메라 눈 이라 할 수 있는 재봉이
소설의 첫부분에서 기대했던 일(포목점 주인의 중절모가 벗겨져 개천에 떨어지는 일)이 소설이 끝날 때 일어남으로써, 중심적인 인물이나
사건이 없음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구성의 해이함은 견제되고 있다.
세태소설인 이 작품의 가치는 일찍이 최재서가 리얼리즘의 확대와 심화 에서 피력한 바 있고, 임화에 의해 세태소설 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는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사상이나 성격을 다루는 대신 외면풍경의 묘사에만 치달았음에 대한 비판이다. 외면묘사의 철저화는 내면의
심화와 평행선을 그으며 진행되는데, 이것이 변증법적 전개를 보이면서 새로운 단계를 이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한계를 가지며,
곧 이는 1930년대 소설의 한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