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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자본론>(Das Kapital) : 저자: 마르크스(Karl Marx, 1810 - 1883)

 20세기 역사와 거의 모든 학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대작. 마르크스 경제이론의 결정체인 <자본론>은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생산유통과 분배를 결정하는 원리를 규명하고 이 생산양식의 내부조직과 모순들을 지적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을 밝힌
역작이다. 상품에 대한 논의로부터 출발하여
노동가치잉여가치착취재생산자본축척이윤율하락산업예비군공황이라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현대 자본주의 분석의 체계적인 출발점을 제시했다.

     생애
  칼포퍼는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보지 않는 자는 바보요, 나이가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는 자는 더 바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최근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보면 이제 마르크스주의는 더이상 필요없다는 논리를 펴곤 하는데 과연
그럴까?
  독일의 경제학자사회주의자철학자인 카를 마르크스는 처음으로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세워 오늘날의 세계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대립하게 된 원인을 만들었다. 그는 프로이센의 라인 주의 트리에르 읍에서 부유하고 교양있는 유태계 독일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835년 본 대학의 법학과에서 입학했고 이듬해 베를린 대학으로 전학했는데, 전공인 법률보다는 역사나 철학공부에 더 열중했다.
당시의 베를린 대학은 독일철학계를 풍미했던 헤겔 철학의 중심지였다. 또한 그 무렵에 독일은 프랑스 7월혁명의 반동 탄압시기였지만
자유평등의 거센 사조는 지식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베를린 대학에서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에 이끌려 독일관념론에 심취했었다. 그러나 포이어바흐 등 헤겔 좌파의 영향 아래서 점차로
이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철학을 버리고 무신론적 혁명적인 경향을 굳게 했다. 41년 대학과정을 마치면서 <데모크리토스의 자연철학과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42년 10월 급진적인 신문인 <라인 신문>의 주필로 취임, 혁명적 민주주의 입장에서 프로이센의 절대주의를 비판했으며, 이 시기를 통해
그는 관념론적 세계에서 벗어나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고 혁명적인 민주주의자에게 과학적 공산주의자로 바뀌게 되었다. 얼마 뒤에
신문이 폐간되자 그는 트리에르에서 가장 미인이라는 구귀족의 딸과 결혼했으나 그런 행복도 오래가지 않아 프랑스영국 등으로의
망명생활이 시작되면서 풍운아로 변해간다. 44년 파리에서 평생동지인 엥겔스를 만났고, 마침내 1948년 2월에 <공산당 선언>을 하게 된다.
  3월에 베를린의 <3월혁명>에 참여했다가 실패하자 런던으로 건너가 혁명의 선전이라고도 할 <자본론> 집필에 전념한다. 1859년에 훗날
<자본론>의 서문이 된 <경제학 비판>을 써서 경제학의 기초를 세우고 1867년에는 <자본론> 1권을 간행했다. 이후 계속되는 궁핍 속에서도
학문적 정열을 불태워 건강을 해치면서도 <자본론>의 완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으나, 결국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자택에서 평생의 동지였던
엥겔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간암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로는 <자본론> <경제학철학초고> 등이 있다. <자본론> 제2권은
1885년, 3권은 1894년에 엥겔스가 간행했다.
     마르크스의 사상과 그 배경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생존했던 시대적 배경과 사상적 배경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1. 시대적 배경
  그가 생존한 19세기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의 여파로 유럽세계가 풍랑 속에서 흔들리던 광란의 시대였다. 즉, 17, 8세기의 절대왕정을
타파한 근대사회 및 정치사상은 개인의 정치적종교적 자유를 근간으로 하면서 산업혁명을 거쳐 자본주의를 확립시키는 한편
자유주의적인 사조를 만연시켰다. 이 자유주의적 사조는 정치적종교적 자유와 더불어 경제적 자유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소유권의 불가침, 계약의 자유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경제적, 자유는 무절제한 <자유방임(laissez faire)>으로 인해 경제적인 불평등,
대량실업,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무질서 등으로 인한 사회불안이 오히려 심화되었다. 이러한 초기 자본주의 혼란상황을 목도한
마르크스는 산업혁명의 결과로 발전되기 시작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되고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2. 사상적 배경 및 사상
  마르크스의 사상적 배경은 19세기의 3대 지적 유산인 헤겔을 비롯한 독일의 <관념철학>, 스미스와 리카도의 영국 <고전경제학>, 생 시몽,
푸리에, 오언의 프랑스 <사회주의사상>이 근간을 이룬다. 마르크스는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 종합하여 <변증법적 유물론>, <노동가치설>과
<잉여가치설>, <계급투쟁론>과 <혁명론>등으로 발전시켰다.
 (1) 마르크스의 <철학이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독일의 칸트로부터 헤겔에 이르는 독일의 관념철학의 영향을 받아 헤겔의 변증법과
그의 제자인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결합시켜 변증법적 유물론(유물변증법)을 완성했다. 즉, 모든 것은 내부 모순에의해 정 - 반 - 합의
과정으로 계속 변화하는데, 결국 물질적인 하부구조(생산력+생산관계)가 정신적인 상부구조(법률적정치적 제도)를 결정짓는다고 보고,
사회변화와 역사발전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2)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은 잉여가치설과 착취설이 그 핵심이다. 이는 영국의 스미스와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을 발전시킨 것인데,
노동가치설은 일체의 상품가치가 그 상품생산에 투하된 직간접적인 노동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는 학설이다. 마르크스는 유물사관을 주창한
뒤로 그의 중심연구를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구조를 해부하는 데 두었는데, 이때의 중심개념이 바로 잉여가치론이었다. 자세한 것은
<자본론>에 기술되어 있다.
 (3) 마르크스의 <정치이론>은 계급투쟁설폭력혁명론국가소멸론프롤레타리아 독재론 등으로 구성된다. 이는 마르크스가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명명한 생 시몽 등의 프랑스 사회주의 사상에서 영향받은 것이다. 이들의 사상은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과 해악을
비판하여 무계급사회의 이상을 고양시킨 점에서 마르크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하는 원동력을 사회와 상충계급 사람들의 자발적 반성에서 찾고 있는 데 비해 마르크스의 정치학은 그것을 계급투쟁에서 찾고 있다. 이
계급투쟁론은 유물사관이나 잉여가치론과 아울러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낳는데 큰 기여를 했다. 여기서 그는 결국 자본주의의
필멸과 사회주의의 도래를 예견한다.
     <자본론>의 내용
 그가 구상하고 서술한 <자본론>의 초고는 총 3권 4부로 되어 있는데, 제1부는 자본의 생산과정, 제2부는 자본의 유통과정, 제3부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 제4부는 학설사였다. 제1권은 그의 생존시 1859년, 제2, 3권은 엥겔스가 1885년과 1894년에 각각 발행했고,
제4부는 카우츠키에 의해 <잉여가치의 제설>이란 이름으로 1905년과 1910년에 3권으로 나누어 발간되었다.
  마르크스의 기본철학인 유물사관이란 어느 사회를 알려면 그 역사를 알아야 하고, 그 역사는 주로 물질, 곧 경제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관으로, 그의 자본론을 이해하려면 그의 경제이론을 잘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은 각 개인이 사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저절로 사회전체의 이익도 증진케 하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전체적으로는
사익과 공익을 조화시키는 기막힌 장치라고 보았다. 반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시장의 어두운 면, 즉
계급갈등인간소외착취실업빈곤 등 우리 인간사회의 부정적인 면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이러한 자본주의에 대한 시각이 그의 저서 <자본론<에 생생하게 나타나고 있다. 완전 자체의 내용이 다소 무겁고 난해하나 가능한
쉽게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른바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상품의 가치를 그 상품생산에 투하된 지간접 노동량의 총량이라는 노동가치설에서 출발한다. 그에
따르면 상품의 시장가격은 노동의 가치와 일치하므로 상품의 판매수입은 노동자에게 전부 돌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그
일부를 자본가들이 <착취(exploitation)>한다고 보고, 그것을 <잉여가치(surplus value)> 또는 불로소득이라고 명명했다.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이유는 노동자는 착취당하더라도 생존을 위해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팔지 않을 수 없고, 또한 자본가는 그 속성상
자본을 계속 축적하려 하므로 노동자에게 그 몫을 다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노동가치론과 잉여가치론으로 자본주의가
어떻게 멸망하고 사회주의가 어떻게 탄생하는 것인가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자본가의 속성은 이윤과 자본의 계속적인 축적이라는 것이다. 축적의 목적은 후일의 소비가 아니라 부의 추구, 또는 자본축적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본가가 자본을 축적하면 할수록 그 이윤율은 떨어지게 되고 그렇게 될수록 자본가는 노동자를 더
착취하게 되므로 노동자계급의 궁핍화는 심화된다고 본다. 즉,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하락해서 노동자는 스스로가 생산한 제품조차 구입하게
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또 공장자동화 등에 사용하는 기계나 장비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노동자들이 이의 지배를 받게 되며 노동조건
또한 악화되어 소외감이 증가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자본가가 자본을 축적함에 따라 노동보다 자본의 사용이 많아져 실업이 증가하게 되므로
이른바 실업자들의 집단인 <산업예비군>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산업예비군의 증가는 노동의 임금이 인간의 최저 생계수준 이상으로 증가하는
것을 막게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자본의 이윤율이 계속 떨어지고 국내의 투자기회가 소진되면 자본가들은 정부와 결탁하여 해외에 진출, 식민지를 만들어 잔인하게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침략주의자제국주의자가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주의 국가의 자본축적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소득분배의 불균등이 심화되므로, 수탈당하는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점차
계급의식을 갖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축적이 고도화되고 대규모생산이 이루어짐에 따라 경쟁체제는 붕괴되고 자본의 집중과 집적을
통해 독점화 현상, 즉 <독점자본주의(monopoly capitalism)>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산은 증가하나 이를 소비할 노동자계층의 소득은 줄어들어 경제는 소비가 부족한 이른바 과소소비 상태가 되고 따라서
경기침체는 심화되어 <공황(depression)>이 발생하게 되므로 경제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무산대중은 더욱 고통을 받게
된다.
  독점자본주의의 최종단계에서 자본주의경제는 하나의 거대한 트러스트나 독점기업화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불황과 궁핍화도 극에 달해서
트롤레타리아 계급은 단결하여 격렬한 사회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이 노동자계층의 혁명과 대공황을 수반하는 경기변동이 자본주의의 위기와 멸망의 원인이 된다고 했다.
  이상이 노동가치론과 잉여가치론으로 자본주의의 멸망과 사회주의의 도래를 설명하려고 한 자본론의 요지다.
     마르크스 사상의 현대적 의의
 카를 마르크스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철학자역사학자사회학자저널리스트였으며, 무엇보다도
뛰어난 경제학자였다. 또한 그는 철학의 목적을 <<세계를 해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번역하는데>> 두었기 때문에 파란만장한
혁명가의 삶을 살았다. 아마 인류역사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처럼 애증의 상반된 평가 속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예도 흔치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르크스만큼 천사와 짐승의 극단적인 평가를 받으며 후세 역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도 흔치 않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그는 성인의 반열에 올라있으나 그 반대에서는 혹독한 박해를 받아야 했다. 그의 저서<자본론>이 우리 나라의 금서목록에서 해제된
것이 불과 몇년전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 혹독한 탄압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 전달하려는 핵심적 요지는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1) 자본주의 체제가 현대사회의 조직형태로는 부적합한 체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는 소수의 자본가계층에서는
고도의 생산력으로 인한 엄청난 잉여의 혜택을 누리게 하면서 다수의 대중에게는 경제적 예속에 따른 막대한 인간적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며, 자본주의 체제는 주기적 불황을 초래하여 많은 대중들을 실업과 불안에 시달리게 만들고 노동자들을 궁핍화시킨다고 보았다.
 (2) 자본주의는 역사적 소명(생산력 증대)를 다하고 인류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야 할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사라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신고전파 경제학과 케인스 경제학)은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가지고 있으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역사발전의 한 단계로 보고 사회주의가 도래 할 것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어떤 이는 자본주의는 반드시 붕괴되고 공산주의가 건설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이 빗나가고, 최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만
보아도 마르크스주의가 틀렸으니 이제 마르크스주의는 더이상 필요없다는 논리를 펴곤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대한 맹목적 신앙이 금기인 것처럼 그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도 부당하다. 그의 사상은 인류역사에서 명멸한 다른
많은 위대한 사상과 마찬가지로 완전무결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오류도 아니다.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불길한 예언 또는
<과학적 논증> 역시 전적으로 실현되지도 완전하게 벗어나지도 않았다. 마르크스 자신의 세계관과 역사철학에 입각해서 생각해보아도 그의
사상은 19세기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역사의 산물이지 역사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닌 절대불변의 진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 처럼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밖에 없다>>는 절대빈곤의 나락에 빠져 있지
않다. 한 세기를 뛰어넘어서까지 인류문명의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는 것은 그가 추구한 가치이지 구가 선택했던 방법이 아니다. 경제적
평등에 의해 뒷받침되는 자유, 소외되지 않는 노동, 정당한 근로에 의한 소득,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불합리한 관습과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 개인의 자유롭고 전면적인 발전 등 그가 옹호한 <영원한 진리>는 당장은 요원하다할지라도 언제나 인류문명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