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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

<방법서설>: 저자: 데카르트(1596 - 1650)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 제1철학의 원리가 실려 있는 저서. 서양사상사에 있어  인권선언 으로 평가되는 이 책은
갈릴레이의 단죄사건으로 오랫동안 고심해 쓴 <우주론>의 간행을 유보해오다 사람들의 요구가 있어 자연학 전체가 아니라 그 일부분을
견본형태로 1637년 <이성의 올바른 인도를 위한 방법서설> 및 그 방법의 3시론인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이라는 표제로 출판했다. 이
책은 방법적 회의를 통해 인간의 이성이 독자적으로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선언하면서 신의 우산 아래서 벗어난 계몽된 근대인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생애
 프랑스의 대철학자이며 수학자 . 자연과학자인 데카르트는 기하학의 창시자이며  근세철학의 아버지 라 불리고 있다. 귀족출신의 법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법학공부를 하여 20세 때 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나, 그 법학지식을 실제로 사용할 기회는 갖지 못했다. 그는
독일에서 30년전쟁이 일어나자 구교군에 입대해서 돌아온 후 독일 . 네덜란드 . 이탈리아 등을 여행한다. 33세 때부터는 학문개혁의 결심을
굳히고 지적 자유가 있던 네덜란드로 가서 모든 자연학을 포함하는 우주론의 구상을 발전시켜나간다. 마침내 이것이 완성되어 인쇄하려 할
때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갈릴레이가 유죄판결을 받자 지동설을 주요내용으로 한 <우주론>의 간행을 포기하고 대신에
1637년 <방법서설> 및 <굴절광학> <기하학> 등 3시론을 내놓았다.
 그리고 41년에는 형이상학의 주요저서인 <성찰>, 44년에는 <철학의 원리>, 49년에는 <정념론>등을 간행했다. 이 무렵 데카르트 사상의
혁신성이 주목을 받기 시작해 여러가지 논쟁에 휘말린다. 그가  자유의 나라 라고 생각했던 네덜란드에서도 점점 살기가 어려워졌다. 바로
그때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으로부터 초청이 있어 그녀의 개인교사 생활을 하다가 5개월도 안돼 폐렴에 걸려 5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일생을 미혼으로 지냈다.
     데카르트의 사상
 그가 생존했던 시기는 사상적으로 전환기였다. 중세의 세계관이 무너지고 근대적인 세계관이 싹튼 과도기였다. 사상계의 권

위로서 전승되어오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자연학에 대해 반발과 개혁의 분위기가 생겨났다. 데카르트는 이 혼란한 시기에 확실한
진리를 찾는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근대과학의 초석을 놓았다. 대학에서 스콜라 철학과 수학 . 자연과학 등을 공부한 데카르트는 수학을 모든
과학의 왕이라고 생각했다.
   1. 과학연구방법
 데카르트는 과학적 연구방법으로 합리적  이성  중시와  연역법 을 채택했다. 테카르트는 당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학(3단논법)을 비판하고 학문의 수학적 증명을 시도했다. 그는 3단논법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물에 대하여
우리의 추리에 도움은 주지만 아직 모르는 것을 연구하는 데는 소용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모든 인식의 근원을 이성에 두고 방법적으로는
기하학이 사용하는 연역법을 내세웠다.
   2. 형이상학
 (1) 방법적 회의와 사유의 제1원리: 그는 학문의 확실한 기초를 세우기 위해 종교와 도덕을 제외한 일단 모든 것을 의심해보고(수학적
지식의 확실성은 물론, 신이나 나의 존재까지도)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것은 학문에서 다 빼버리고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어떤
것을 바탕으로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다. 이와 같이 어떤 기본명제를 바탕으로 모든 현상을 설명해가는 철학적 사유방법을 방법적 회의라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을 의심해보았지만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  만은 절대로 의심할 수 없었다. 이러한 회의의 과정을 통해서  회의하는 것은
사유하는 것이고 사유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을 사유의
제1원리(철학의 제1원리)라 한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확실성의 기초 위에서  진리의 궁전 을 세

우려 했다. 단, 여기서 사유와 존재는 선후관계나 인과관계가 아닌 동시관계(사유=존재)라는 점이다. 따라서 어떤 학자는 그러므로를 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2) 자아의 문제: 사유에 의해 주어진 자아는 사유다. 사유는 의식에 의해 직접 내재적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아의 사유=의식
이다. 또한 사유하는 실체는 그에게는 곧 정신이다. 여기서 정신이란 육체보다 먼저 인식되어지고 더 확실하고 명증적인 것이다.
 (3) 신관: 그의 저서 <성찰>에서 신과 인간의 본성을 중심문제로 다루고 있다. 의심한다는 것은 불완전한 존재를 의미하는데 완전한 존재의
관념을 생각해낼 수 있겠다. 여기서 그는 신을 생각해냈다. 완전에서 불완전이, 불완전에서 완전이 나올 수는 없어서 완전한 것의 관념의
원인은 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완전은 사유 속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존재해야 한다. 완전한 존재의 신은 관념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 속에서도 존재한다. 데카르트에 있어 신은 궁극적으로 진리의 연원인 것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어떤
생각도 형이상학적으로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존재론적 증명으로 신의 문제를 보았다. 즉, 그는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계적인
자연계와는 별도로 신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3. 과학이론
 그의 물리학은 연역법으로 전개된다. 물질계의 일반원리는 신으로부터 연역된다. 신은 우주를 운동과 정지의 규율에 의해 창조했기 때문에
사물들은 인위적으로 작용을 가하지 않는 한 정지상태를 유지한다.
   4. 심리학
 테카르트의 심리학은 정신과 육체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심신

2원론 을 고수한다. 육체는 전적으로 물리학의 대상이고 정신은 순수사유로서 오성과 의지로 구분된다. 그러나 한 인간에 2개의 세계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 벽을 느끼고 만년에는 정신인 동시에 신체이기도 한 불가사의한 존재인 인간을 논하면서 <정념>을 집필했다.
   5. 윤리관
 <정념론> 에서 정념과 도덕적 과오를 이야기한다. 신체적 자극으로 생겨난 정념(육욕 . 질투 . 야심 등)이 이성을 방해해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기가 힘들고, 이로 인해 도덕과 과오를 범하게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이성적 의지로 정념을 철저하게
지배하고 단호한 판단을 내리는  고매한 마음 이라고 했다.
     <방법서설>의 내용
  이성의 올바른 인도를 위한 방법서설 이라는 긴 제목의 이책은 흔히 <방법서설>이라고도 하는데, 이 책의 서론에 해당하며 데카르트
사상의 형성과정과 핵심이 자서전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총 6부 중 제1부는  양식은 이 세상에서 만인에게 공통된 것 이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하여 그가 당시에 학교에서 배웠던 학문하는 방법을 비판한다. 그토록 학교에서 배운 결과가 오류와 의혹투성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불확실한 지식에 그치는 책에 의존한 학문을 지양한다.
 제2부에서는 수학적인 확실성을 규범으로 하는 자신의 철학방법을 4가지 규칙으로 정리했다.
 (1) 모든 진리를 의심할 수 있는 데까지 의심한 후에 명백하고 분명한 것이 아니면 진리로 받아들이지 말라.
 (2) 복잡한 문제는 단순한 것으로 분류하라.

 (3) 사상은 가장 단순한 것부터 가장 복잡한 것의 순서로 배열하라.
 (4) 추리의 연쇄에 틈이 나 그릇된 연결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추리의 연쇄를 다시 반복하라.
 이상의 원리가 엄격하게 시행된다면 누구나 명확치 않는 사물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가 이 규칙을 정한 다음
불과 몇달 사이에 많은 문제들이 속속 풀렸으나, 아직 풀리지 않는 동안에도 사람은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학문연구를 위해서도 실생활의
방침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고 제3부에서 이것들을 서술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확실한 인식에 도달하기 이전에 지켜야 할 도덕준칙이 세 가지로 기술되어 있다. 그것이 유명한  임시적 도덕 인데, #1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법률과 종교를 받아들이고 극단적인 의견을 피하면서 온건한 중도를 지킬 것, #2 그러면서도 자기의 결단을 분명히 할 것, #3
운명에 불평하지 말고 스토아 철학자들이 생각한 것같이 우리들의 자유는 우리들 자신의 사고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 것.
 이와 같이 학문과 생활의 방침을 독일의 한 여관에서 정한 데카르트는 현실세계에서의 경험을 먼저 쌓기로 결심하고 9년간 여행한 다음,
드디어 체계적인 연구에 돌입하기 위해 조국을 등지고 네덜란드에 이주하여 고독하게 묻혀 살았다.
 제4부에서는 네덜란드에 이주하여 처음으로 정리한 형이상학을 서술하고 있다. 모든 것을 회의한 후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 하는 원리를 찾아내어 이것을 철학의 제1원리로 삼고 있다. 즉 회의,  코기토 , 신의 존재증명에 이르는
데카르트적 형이상학이 처음으로 제시된다.
 제5부에서는 형이상학에 기초를 둔 자연학의 개략이 기술되어 있고 그중에도 심장의 작용과 동물기계론에 중점이 두어져 있다.
 제6부에서는 <방법서설>과 <3개의 시론>의 집필 경위와 향후 연구포부가 제시되어 있으며, 그의 철학이  인간을 자연의 주인

이며 소유자 로 만드는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그가 구상한 <자연학>은 기계기술이나 의술에 응용할 수 있어 인류의 행복에 공헌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갈릴레이 사건도 있고 또 이해성이 없는 사람들과의 논쟁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여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향후 연구를
진행시키는 동안 시간을 보호해주었으면 한다고 밝히고, 이제부터 자신의 최대과제는 의학의 새로운 규칙을 발견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 저서는 저자의 3가지 국면, 즉 #1 학원을 나와 책을 멀리할 정도의 저자의 상황이고(제1부), #2 독일의 여인숙에서 학문과 생활의 방침을
확립하는 장면이며(제2-3부), #3 네덜란드에 이주한 8년간의 저자의 사색(제4-6부)을 그린 것인데, 근대사상을 개척한 철학자의 사상과 그
형성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 기념비같은 작품이다.
     비판적 평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테카르트가 후대에 미친 영향은 #1 근대과학적 세계관의 기초 #2 대륙론의 창시자 #3 과학적 성찰에 대한 적극적
태도 #4 과학에서 수학의 적용 #5 최초의 방법적 회의주의 #6 인식론적 사고 #7 해석기하학의 발명과 운동량 보존 개념의 도입 등 너무도
크기 때문에 그의 역사는 서양철학사와 혼동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17세기 이후 현재까지 서양세계에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합리론 과
기계론 이었다.
   1. 합리론
 그러나 데카르트의 합리론은 프랑스는 정복했으나 영국이나 독일은 정복하지는 못했다. 독일에서는 라이프니츠, 그리고 영국에서는 헨리
모어를 비롯한 케임브리지의 플라톤 학파가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영국에서는 베이

컨의 실험과학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정신에 의한 합리주의의 발현자 데카르트의 연역적 환원주의는 베이컨의  귀납적 경험주의 와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진정한 과학은 위의 두 방법이 없이는 발전이 불가능하다. 실험위주의 결과를 중시하는 것과 관념위주의 우주구성을
고집하는 것 역시 근거가 미흡하다. 양자의 결합만이 현실적이며 진정한 과학탐구 방법이다.
   2. 기계론
 자연과 우주를 시계바늘처럼 정확히 운행하는 거대한 기계로 본 기계론적 세계관은 이후 뉴턴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져서 이후
현재까지 인류의 사고를 지배하는 세계관으로 군림해왔다. 이러한 그의 연역적 환원주의 사상은 이후의 거의 모든 학문에 깊이 영향을
미쳐서 생의학의 경우 환자를 고장난 시계, 의사를 시계수리공, 질병은 고장난 부품으로 보는 현대의학적 사고를 만연시켰다. 이런 곳에서는
질병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요인이나 환경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그의 과학적 사고가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나아가 환경문제 등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일고 있는  신과학운동 의 핵심 인물인 버클리 대학의 카프라 박사는 그의 저서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에서 과학기술의 한계와 문명의 위기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동양의 도교적 세계관의 수용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