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La Naus e)
저자: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
노벨 문학상을 거부하며, 끊임없는 사유 와 참여 를 통해 영원한 자유를 꿈꾸던 마지막 휴머니스트, 사르트르가 쓴 첫 번째 문학작품.
로캉탱이라는 역사 연구가의 일기 형식을 빌어 주인공이 존재의 무상성을 자각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형이상학적 소설은, 사르트르
초기 실존주의의 단초를 보여준다. 철학자. 극작가. 시사평론가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사르트르의 소설가로서의 면모가 가장
완결된 형태로 구현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생애와 작품활동
노벨상 거부,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 마르크시즘과의 동반 및 결별, 행동하는 지식인, 1980년 사망시 전세계의 추모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사르트르는 2차대전 후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외쳐, 전세계적인 영향을 끼친 20세기 최후의 지식인이었다.
사르트르는 해군장교 출신의 부친과 적도의 성자 시바이처의 사촌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부친이
별세하여 그는 외가에서 자랐는데, 독일어 교사이나 독서가인 할아버지 아래서 문학적 소양을 키웠다. 3세 때 오른쪽 눈을 거의 실명하여
말년의 불행이 이때 잉태되었다.
19세 때에는 파리의 수재들이 모이는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레이몽, 아롱, 메를로-퐁티 등을 만나게 되고, 23세 때 수석으로 졸업한다.
그러나 교사자격시험에는 낙방하여 1년 후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는데, 이때 전후 세계여성의 지성의 상징인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의
작가)는 차석으로 합격하여, 이들의 운명적 만남은 시작된다.
세간의 화제를 뿌린 이들의 계약결혼은 애초 2년이었으나 2년후 재계약시 사르트르가 장기계약을 요청해, 결국 이들의 동반자적 관계는 80년
사르트르가 별세할 때까지 50년간 지속된다(이들은 이생을 통해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하며 문학적. 정서적 반려자가 되었다).
28세에는 베를린에 유학하여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을 접하고, 인간존재의 총체적 이해를 가능케 하는 인간학의 정립을
모색했다. 이 시기에 상상력 자아의 초월 등을 썼는데 그의 사상적 기초는 이때 형성되었으며, 이후 1938년 존재론적인 우연성의 체험을
그대로 묘사한 듯한 장편소설 구토 를 발표하여, 철학이 뒷받침된 대담한 주제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당시 신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었는데, 그의 초기철학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존재와 무 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기념비적인 대작이 되었다. 이 책은
철학서 사상 유례가 없는 성공을 거두어 이 책 한 권으로 중학교 교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철학자로서의 위치를 확립하게 되었다.
그는 2차대전중 소집되어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었으며, 퐁티 등과 레지스탕스 조직을 만들어 독일의 나치즘에 저항하기도 하였다. 1945년
잡지 <현대>를 만들어 문학. 철학은 물론 정치. 사회의 모든 문제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사상운동을 전개하여, 그의 존재는 전후 혼란기의
젊은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후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를 통해 사회참여문학(앙가주망) 을 제창한 시기였다. 당시는 미. 소의 심한 대립이 세계의 정치상황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는 제3의 길 을 모색하여 혁명적 민주연합 이라는 운동에 적극 참가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행동은 거의 소득이
없었다. 그 무렵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던 장편소설 자유를 위한 길 이 미완성으로 끝난 것은 이 때문이다.
이후 제3의 길 을 완전히 버리고, 긴 논문 공산주의자와 평화 에서 공산주의를 평화의 기수라고 강조한 후, 공산당의 동반자가 되어 반전
평화운동에 참가하였다.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인해, 그는 함께 일해오던 메를로-퐁티, 카뮈 등과 결별하게 된다. 퐁티는 공산주의 국가가
침략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곤혹스러워한 반면, 사르트르에게 한국전쟁은 제국주의에 맞서는 사회운동 일 뿐,
중요한 것은 공산당을 중심으로 좌파 지식인이 뭉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를 평화의 기수로 보았다.
1956년 소련공산당의 스탈린 비판과 헝가리 의거, 그후의 알제리 독립전쟁 등이 일어날 때마다 자기의 입장을 표명하여 그때마다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알제리 독립전쟁시 식민지독립을 지지한 것은, 제3세계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1964년에는 자전적 소설 말 로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노벨 상이 서구작가들에 치우쳐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말년에는 하나 남았던 왼쪽 시력까지 약해져 독서는 물론 집필도 못했다. 그는 작은 키에 유머 감각으로 남을 잘 웃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여 누구에게나 호감을 샀으며, 자기의 신념을 가지고 싸울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1980년 4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한 사르트르의 죽음은 한 철학자의 죽음도, 한 소설가의 죽음도, 한 극작가의 죽음도 아닌, 한 시대를 마감한 최후의
지식인의 죽음이었다.
그가 죽은 해에 그를 추모하는 세미나. 심포지엄 등이 전세계적으로 개최되었는데, 서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해 9월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린 사르트르 추모 강연회는 극우반동의 도시 한복판에서 새로 나온 극좌 지식인에 대한 구애와 애도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수만 명이 참석하여 빅토르 위고의 장례식을 연상시켰으나, 참석자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이었고, 사르트르가 항상 그의
글로써 권리를 지켜준 사람들이었다.
사르트르의 실존철학
실존주의문학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구토 는 사물의 존재에 직면했을 때의 불안과 실존의식을 묘사하면서 인간존재의 부조리 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이런 불합리한 존재를 깨달았을 때의 느낌을 구토 라고 표현하였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실존. 자유. 주체성 등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개념들은 그의 방대한 철학서인 존재와 무 에 제시되어 있다.
실존주의
실존이란 원래 본질 에 대한 현실 존재 라는 뜻이다. 본질은 무엇이냐? 를 문제삼지만, 실존은 가능성 을 문제삼는다. 현실 존재는
물건의 경우에는 상대적이지만, 인간존재의 경우에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물건이나 동물인 경우에는 서로 바꿀 수도 있고 얼마든지 대신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남과 대신될 수가 없다. 나 라는 인가, 나 라는 개인, 나 라는 주체는 남과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그 자체가 독립하여 존재하는 단독자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대로 남과 바꿀수 없는 단독자, 즉 있는 그대로의 엄연한 본래적인
자기 를 실존이라 불렀다. 이런 의미에서 실존철학이란 인간이 자기초월에 의해서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철학이요, 위기상황에
직면한 인간이 본래적 자기를 되찾으려는 자기회복의 철학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철학
사르트르에게서 실존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요, 다른 하나는 실존은 주체성이다 이다.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의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등장한 후, 기독교의 창조론적 세계관이 의심받자 이들의 반격은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 였다. 이에 대한 대답은 한마디로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존재 그 자체는 분명히 존재한다 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의식이 있는 존재(대자적 존재, 인간)와 의식이 없는 존재(즉자적 존재, 사물)로 나눌 수 있다. 책상의 겨우 미리
정해진 설계도에 따라 목수의 의도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본질이 실존보다 앞선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그 행동이 순간순간 변화하게
되어, 잠시 후에 어떤 행위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경우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 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로부터 인간의 본질을 미리 생각하고 규정해서 만들어낸 존재, 즉 신은 없다. 왜냐하면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신의 의도를
따를 것인데, 그렇지 않고 순간순간의 행동을 자신이 창조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인간을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행동이 가능한 주체적 존재로서 파악하였다. 자유로운 선택과 결단에 의해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는 행동적 실존으로서 인간을 파악하였다. 즉 실존은 주체성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작품의 주요내용
실존주의 문학을 창시한 이 소설은 소설 속의 주인공인 역사학자 로캉탱이 외계의 사물이나 인가에게서 느끼는 구토감을 일기로 극명하게
기록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추구한 일기형식의 소설이다.
30대의 역사학자 앙트완 로캉탱은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그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지금은 부빌이라는 도시의 도서관에서,
18세기 프랑스 혁명기의 인물들의 전기를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물가에서 물수제비뜨기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흉내를
내려고 돌을 집는 순간, 갑자기 구역질 같은 것을 느끼고 손을 떼고 만다. 이 손 안의 구역질 은 그 뒤에도 그를 자주 엄습한다. 그때마다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2년 1월 말부터 약 1개월간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의 생활은 무미건조한 나날들이었다. 그가 하는 일이란 기껏해야 로르봉 후작에 관한 자료들을 정리하거나, 카페에서 들려주는 언제나
가까운 날에 란 음악을 듣는 것이 고작인, 그야말로 혼자만의 생활이었다. 간혹 그는 일상생활에 안주하는 사람들을 살피기도 했고, 이 지방
특유의 것을 알아내기도 했다.
그는 자기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그가 살아온 것은 경험이 아니라 말의 잔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과거와 합일점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자기자신은 과거의 그 어느 곳에서도 정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그는 정녕 한 사람의 전기를 쓸 수 없다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그가 이러한 난해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옛날 자신과 헤어졌던 여인이 파리에서 만나자고 편지를 보내온다. 그녀는 예전에 완벽한 자아의
충실을 기대하며 꿈꾸던 여인이었다. 그는 옛여인을 만남으로써 자기에게 희망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는 한가닥의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기묘한 감각을 쉴 사이 없이 일어난다. 그의 손이 닿거나 눈길만 주어도 일어나는 이상한 감각은 그의 몸을 떠날 줄 모른다.
그리고 강력한 증오감과 함께 구토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마로니에의 나무뿌리를 보며 명상에 잠기다가 마침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구토의 정체를 알아내게
된다. 그가 마로니에라는 나무뿌리를 생각했을 때, 마로니에 나무뿌리는 그 마로니에 나무뿌리라는 말의 형체를 벗고, 모든 부위를 통해
그의 몸으로 침입해 들어온다. 구토란 인간이나 사물의 언어에 의해 성립되는 의미나 본질을 박탈당하고 괴물처럼 흐물흐물한 무질서의
덩어리였다. 또는 무섭고 음탕한 벌거숭이의 덩어리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언어 이전의 체계였고, 세계를 체험한 본질의 것이었다.
그가 드디어 생각해낸 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물은 전혀 존재 이유를 가지지 않고, 또 존재의 의지조차 가지지 않은 채 단지 사실상
우연히 거기에 존재할 뿐이라는 것, 즉 하나의 덤 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도 이러한 생명체인 이상은 어쩔 수 없는 실존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옛여인 아니를 만나게 된다. 그녀도 이제는 그 실존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녀가 꿈꾸던 완벽한 순간을 단념한 채, 단지 살아 있는
고독하고 비만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전기집필을 포기하고 부빌을 떠나 파리도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언제나 가까운 날에
를 들으며, 소설을 집필하는 행위가 부조리와 대항하는 정당한 방법임을 알고 또다시 새로운 희미한 희망을 품게 된다. 즉, 모든 존재에는
존재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여 깊은 절망에 사로잡히나, 소설을 쓰는 것이 하나의 구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가지면서 이
소설을 끝맺는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은 부빌이라는 가공의 도시를 중심으로 역사학자인 앙트완 로캉탱의 일기형식을 빌려 쓴 작품이다. 그는 바닷가에 널려 있는
조약돌이나 문의 손잡이 따위 등에도 구토를 느끼는 인물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인간의 내면의식을 추적해가는 과정이 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이다.
그는 또 외계의 사물이나 인간에게서 자신이 느끼는 현실을 토해버리고 싶은 진한 구토감을 일기에 상세히 기술한다. 여기서 구토란 바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물이 어떠한 존재이유도 없이, 나아가 존재의 의미마저 없이 다만 사실상 그곳에 존재하는 여분의 것 이라는,
존재의 실상에 대한 징표라 할 수 있다. 즉, 그는 모든 존재에 대하여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궁극적으로
그가 찾아낸 이러한 인간의 절망감을 해소하는 방안이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희미한 희망을 갖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이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겪게 되는 어둠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구원의 희망을 품는다. 음악은 물질성이
전혀 없는 순수존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구체적인 사건에는 관심이 없고 주인공의 인식의 변화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카뮈는 사르트르가 삶의 추함을 과장했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에로틱한 대목들이나 여성을 죽은 뱀의 가느다란 입 으로 비유한 것과
같은 소름끼치는 표현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사르트르의 삶에 대한 고발의 힘을 인정했으며, 인물과
길거리들의 독특한 냄새와 같은 그의 관찰의 신기함과 정확성을 인정했다. 그들은 또한 별 차이가 없는 나날 속에 사로잡힌 영혼들의
우둔함과 걸음걸이를 느꼈거나 보았다. 여기에 집요하게 들려오는 하나의 새로운 목소리가 있다고 그들은 동의했던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우리가 읽어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시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이 서로 혼합되어 있는데, 현대작가들 사이에서 이
작품은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꼽히고 있다. 구토 는 사르트르가 주장하고 있는 사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그것은 그의 사상이 실존과 존재의 부조리 및 삶의 형태를 비롯한 인간의 깊은 절망감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세기적 계약결혼
20세기 대표적 지성들인 이들의 계약결혼은 사르트르의 제안으로 우선 2년간 살아보고, 좋으면 재계약한다는 조건으로 이루어졌다. 결혼식도
하지 않고,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아 자식도 두지 않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결혼 모델이었다. 공동생활의 이점은 취하되 단점은 버리는
가운데,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하면서 50년 동안 확고한 애정관계를 유지했다. 둘은 작품활동에서나 사회활동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는데, 그들은 생활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서로가 겪은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들이 평생 동안 한지붕 밑에서 잔
것은 딱 하루뿐인데,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면 그날 일은 우연한 사고 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