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윤미
단국의대 가정의학과
어떤 병이든 좋은 치료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올바른 처방에 따라야 한다.
고혈압에 관한 일반인의 통념 중에는 특히 잘못된 것이 많다.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잘 못쓰시는 60대 남자분이 진료를 받으러 오셨기에
어디가 불편하시냐고 물었다. 환자는 머리가 아픈 걸 보니 혈압이 다시 올라간
것 같아 혈압약을 타러 오셨다는 것이었다. 이 환자는 1년쯤 전에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지셨고 지금은 그 후유증으로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잘 못쓰는
상태이다.
그 때 병원에 입원해서 처음 고혈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퇴원 후 몇
달은 열심히 통원치료도 하고 혈압약도 잘 드셨는데 병원을 계속 다녀도 크게
회복되는 것 같지도 않고, 혈압도 어느 정도 떨어져서 정상이 되었다고 하기에
뭐 혈압약도 양약인데 오래 먹어 좋을 게 있느냐는 생각에 요즘은 그 병원에
다니지도 않고 혈압약도 드시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최근들어
가끔 머리가 아파서 혹시 다시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나고, 전에 입원했을
때 담당의사에게서 혈압이 높아서 중풍에 걸린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것이
기억이 나서 이렇게 진료를 받으러 오신 것이다.
혈압이 높은 분에게 고혈압이란 진단을 내리고 혈압과 관련된 여러 가지
합병증을 알려드린 후 혈압은 완치되는 병이 아니나 조절은 가능한 병이고
조절을 했을 때의 결과는 그냥 내버려두었을 때에 비하여 매우 좋다는 설명을
드리면 처음에는 많은 분들이 계속 열심히 조절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앞서 말한
할아버지처럼 혈압으로 심각한 질환을 겪으신 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치료를
굳게 약속하신다. 그런데 정작 치료를 시작한 후에는 많은 분들이 혈압조절을
계속하지 못한다. 왜 그러냐고 여쭈어보면 한 가지 이유는 혈압은 완치가
안되는 병이라니까 치료를 계속하다 보니 마치 불구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는 치료를 안하더라도 아무런 증상도 없고 불편한 점도 없는데
계속 그런 느낌을 갖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더 나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평생 약을 먹다보면 혈압약에 의한
부작용이 생길 것 같은데 그것이 혈압을 조절하는 것보다 더 나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약을 그만 먹게 되었다고 하신다. 그 분들은 혈압약을 먹는 것은
중단하신 상태이지만 마음 한구석에 혈압치료에 찜찜함이 남아 있어 만일
머리가 아프다든가 몸에 다른 불편한 증상이 생기면 이것은 혈압때문이라는
판단에 혈압을 재보는데, 워낙 혈압이 높던 분이고 또 몸에 불편함이 있으면
혈압이 평소보다 더 올라가는 특성 때문에 자연히 그 때 재는 혈압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내 진단이 맞았지 하며 가까운 약국을 찾아 혈압약을 사서
한두 먼 먹다가 몸의 증상이 없어지면 이제는 됐다며 더 이상 약을 먹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고혈압은 무언의 암살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이 붙을 정도로 평소에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뇌졸중이나
관상동맥질환 같은 무서운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심각해서 운이 아주 좋은 경우라야 죽지 않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사망통계를 보면 아직도 고혈압과 관련된 질환으로 인하여 사망하는 사람수가
매우 많아서 4, 50대에서는 암으로 인한 사망의 뒤를 이어 사망원인 2위를
차지하고 있고 60대를 넘어서면 전체 사망원인중의 1위를 차지한다.
고혈압은 증상이 없더라도 치료해야 하는 병이고, 또 고혈압 치료제는
처음부터 장기치료를 전제로 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부작용도 흔하지 않아,
치료를 했을 때의 결과는 치료를 하지 않을 때에 비하여 매우 좋다.
고혈압치료를 잘 하면 치료를 하지 않을 때에 비해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보고도 될 만큼 고혈압관리는 매우 뛰어난
건강유지 방법이다. 게다가 고혈압치료약은 여러 종류가 있어 만일 부작용이
생긴다면 다른 약제로 바꾸어 치료를 계속하면 된다.
또 고혈압의 치료는 평생동안 계속해야 하는데 혈압약을 먹으면 약물의
작용에 의하여 혈압이 정상이 되는 것 같지만 약을 중단하면 혈압은 다시
올라간다. 고혈압 약을 먹어본 많은 분들이 처음에 기운이 없고 조금
어지럽기까지 한 경험을 해보셨을 것이다. 그것은 높은 혈압에 적응된 몸이
혈압약의 효과로 낮추어진 혈압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여 생기는 증상인데,
혈압약을 장기간 먹다보면 몸이 정상수준으로 낮추어진 혈압에 적응하게 되어
이런 증상들은 사라진다. 그런데 약을 먹고 끊는 것을 자주 반복하면 우리 몸이
높은 혈압에 적응해 있다가 갑자기 낮추어진 혈압에 적응하려는 변화를
반복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오히려 더 나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혈압이 높다고 진단받고 치유를 권유받은 분들은 증상이 있건 없건간에
평생동안 혈압관리를 계속하는 것이 건강한 삶을 누리는 비법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