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만을 골라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그렇게
해서 어물어물 넘겨 버리려고 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 '싼 것이 비지떡'이란 말은
독서에 있어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독서'를 하고 있다고 말만은 번지르하게 하면서도 실제로는 남에게 보이기가
부끄러운 책을 몰래 숨어서 읽고 있는 단계에서는 정신의 향상은 바랄 수 없다.
가벼운 책이란 '생각하면서 읽는' 것을 오히려 방해하는 것이다. 당신의 눈을 뜨게
하는 책, 그런 책이야말로 훌륭한 책이다.
가벼운 것은 당신의 기분을 편하게 해주고 어루만져 주어 드디어는 한가로이 잠들게
해줄 것이다. 별로 부작용이 없는 수면제의 대용품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그런
책과는 정반대의 책을 상상해 보라. 그런 책이야말로 틀림없이 좋은 책이다.
그러나 '깜짝 놀라게 하는' 효과만을 노린 것 같은 책은 한때 잠을 깨게 할지는
모르지만 역시 수면제의 일종이다.
어떤 책이 당신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줄 안다.
책은 풍경과 같은 것이다.
어떤 풍경이 마음에 드느냐 하는 것은 물론 천차만별이다. 뛰어난 풍경을 선택할
경우에는 당연히 사람에 따라서 다른 대답이 나올 것이다. 거기에는 적성이란
것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당신을 잠시라도 머뭇거리게 하고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 생각하게 하는
책,
그것이 바로 도움이 되는 책이다. 팜플렛, 백과사전 속의 해설, 신문의 낡은
스크랩... 뭐든지 좋다.
"당신의 사상 바로 그것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 말은 라마르틴(1790-1869, 프랑스의 시인, 정치가)의 말이다. 두세 줄의 짧은
글에서조차도 사색의 씨앗으로 삼을 수 있는 철학자의 마음가짐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우리들에게도 이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당신의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시일지도 모르며, 역사, 철학, 과학 책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책을 읽으면 졸립다는 사람들에게는 짧게 압축된 북레뷰(서평)가 사색을
돕는 것으로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대수라도 좋다. 위대한 발명가나 실업가의
전기라도 좋다. 당신의 사색을 일깨워 주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당신 이외의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은 독자의 마음을 비춰 주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독자의 개성이 거기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고리타분한 톰슨(1700-1748, 스코틀랜드의 시인)의 계몽서 중의 열 줄이 나에게
있어서는 셸리의 작품 전체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이 톰슨의 책을
탐독했던 시기(어릴 때의 일)의 감수성의 강도가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이라 할 수
있다.
17세기의 메누엣에 도취해 있던 사람이 바그너(1813-883, 독일의 작곡가, 가극의
창시자)의 오페라를 그리 탐탁하게 생각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별로 우스울 것은 없다.
가치 있는 책(뛰어난 예술작품도 포함해서)에 대한 취미는 의식적으로 높일 수는
있어도 기호의 차이는 역시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 이외에는 누구도 필요한
책의 이름을 가르쳐 줄 수가 없다.
제목은 물론 종별조차도 대줄 수가 없다. 이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야말로 좋은 책입니다"
이런 막연한 대답밖에는 할 수가 없다.
월터 스콧은 테마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책을 읽으면서 자기 소설을 구상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철학자 칸트의 경우는 그가 몹시 좋아하는 여행기를 읽으면서
인스피레이션을 얻었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 식으로 말한다면, 예컨대 당신이 만약
"이 몇 권의 책 중에서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골라 주십시오" 라고
나에게 청했다 할지라도 나로서는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정말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책은 엉뚱한 곳에서 뒹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시
"당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책을 선택하십시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2. 즐길 수 있는 책만을 읽어라
'무엇을 읽을 것인가'하는 문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어떻게 읽을
것인가' 라는 이른바 테크닉의 문제가 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실제로는 기계적으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일단 검토해 보자.
일반적으로 '생각하면서 읽는' 요령은 될 수 있는 대로 '쉽게 읽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쉽게 읽으려면 많이 읽어야만 한다.
결국 많이 또는 되풀이해서 읽는 것이야말로 '생각하는' 여유를 우리들에게 익히게
해주는 것이다.
문체에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문체는 중요한 것이다. 작가에 있어서는 어떤 의미로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문체를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역시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문체에 너무 신경을 쓰면 중요한 것을 빠뜨릴 가능성이 많다.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요컨대 문체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작품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이 점을 놓쳐 버리면 독자는
문장의 한 단편, 그것도 현학적이 장식의 포로가 되기 쉽다.
작가가 의도하는 것, 지향하는 것-그런 것들을 파악해서 자신의 피와 살이 되도록
하는 것이 무엇 보다고 독서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잘 알려져 있는 격언 한 가지를 소개한다.
'좋은 책은 읽지 말라'
이 말만 듣고 너무 성급하게 엉뚱한 결론을 내리지는 말라. 이 말에는 뒤가 있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지 말라) 인생은 너무나 짧다 .가장 좋은 책만을 읽어라"
이렇게 말하면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흔해빠진 이야기를 뭘
새삼스럽게 내세우느냐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 격언에서 얻을 수 있는 다시
없는 좋은 처방에 대해서 현대인의 95%는 외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또 당신이 자랑하는 그 걸작 리스트를 들먹이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버질이 '아에네이스', 단테의 '신곡', 밀턴의 '실락원' 말이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읽기 쉬운 책이 아니지요. 왜 보통 재미있는 것을 읽으면
안됩니까? 결국 그런 것도 도움이 되는 게 아닙니까?"
이러한 반박에는 난처한 표정을 짖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당신의 즐길 수 있는 책을 읽으십시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단지...
"가장 즐길 수 있는 책만을 읽으십시오"
이렇게 대답함으로써 일단 당신의 반박에 대한 대답은 한 셈이다.
걸작이 재미없이 보인다는 것은 분명히 난처한 문제이다.
"걸작이란 학교 선생님들이 해석해서 보여주는 따분한 교재라든가 시험의 문제가
되는 것들이지요"
이런 식으로 말하는 여러분의 통쾌한 음성이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교육이 낳은
최대의 걸작! 그렇다 하더라도
'무식한 편이 오히려 해가 없다' 라는 생각하는 것은 심술궂은 역설이다. 분명히
무식한 사람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그 걸작을 읽지를 못했어' 하는 식의 열등감이
숨어 있게 되는 것이다.
3. 고전이야말로 가장 좋은 작품
기차 속에서 우연히 만난 한 젊은 부인의 일이 생각난다. 그녀는 이른바
흥미 본위의 연애 소설을 읽고 있었다. 열렬한 소설 팬이었던 것 같다.
어떤 인연으로 우리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헤어질 무렵, 드디어 그
부인에게 대커리(1811-1863, 디킨즈와 나란히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소설가)의
"허영의 시장"을 읽도록 대중소설을 읽고 있던 부인에게 권했다. 그렇다. 나는 대화
속에서 상대방 부인의 참된 취미를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확실히 고상한 소설은
읽은 적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매우 대중소설에 대해서 싫증내고 있었다.
그것을 입밖에 내지 않았을 뿐이지, 그런 기분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감동했다.
그래서
"시시한 것을 읽느라고 싫증을 내는 것은 명작을 읽고 흥분하는 것보다 더 값어치가
있다" 라고 말해도 그리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다가 그 책이 시시한
것이라고 생각되었을 때에는 그 기분은 꼭 소중히 간직하기 바란다.
"최상의 것이 아닌 것은 단호히 버리십시오"
사색을 위한 테크닉으로서도 이것은 역시 효과적이 테크닉이 될 것이다. 고전은
최상의 것, 아니면 거기에 가까운 것들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엄격한 도태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고전의 정의
그 자체가 그 가치의 높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세월이라고 하는 이름이 정밀하고도
비정한 필터에 의해서 걸러진 것, 그 중에서도 오래 살아남아 있을 수가
있었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고전이란 레테르를 당신의 독서 카드에 적어 두면
틀림이 없다. 당신이 수고해서 찾아내는 시간과 시간이 매우 절약이 될 줄 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 자신이 책을 엄선하는 수고를 멈추어서는 안된다. 선택하
는
행위가 있고 읽은 사람(적극적으로 읽지 않는 사람도 포함해서)이 있는 한 책 자체도
끊임없이 선택되어지고 버려진다.-방법은 두 가지 중 한 가지밖에 없다.
4. 신간은 3개월 기다려라
여기서 고전만 가지고는 싫증이 난다는 좀더 욕심을 부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
보자.
현대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은 무익한 행위일까? 매일매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출판물 중에서 어떻게 해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수가 있을까? 진주와 유리구슬을
어떻게 구별하면 좋을까?' 이런 의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금방 제본소에서 나온 책이 있다고 하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참아야 합니다. 그 책이 정말로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어쨌든 과거의
기념비로서 남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가서 사서 읽으십시오"
실상 필자도 이렇게 말하지는 않겠다.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만큼 사색의 양식이 되는 것은 없다"
실상 우리들은 유행에 뒤떨어지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있으면 가장
새로운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책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매스 프로덕션이 되어
나오는 신간 서적 중에서 어떻게 좋은 책을 선택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좋은 방법을 소개하겠다.
출판된 후 3개월을 기다려 보는 것이다. 이 사이에 잊혀져 버리는 책은 우선 읽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단지 이런 정도의 선택 방법으로도, 당신이 선택해야 할 대상의 범위는 한결 좁아질
것이다. 불과 백 일도 안 되어서 독자의 엄격한 눈은 어김없이 잘못을 찾아 주기
때문이다. 고전을 포함한 과거 역사가 우리들을 끌어당기는 것은 현대의 역사에 조명
을
해주기 때문이며, 또 전적으로 이런 경우에만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다.
당신이 현대의 역사에 얼마나 밝은가, 다시 말하면 유행에 뒤떨어져 있는가,
어떤가를 아는 실마리로서 문제를 하나 제시해 보겠다. 세계지도를 한 장 준비하라.
어떤 지점을 가리키면 거기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나 문제점을 신문이나
잡지를 읽듯이 지적할 수가 있겠는가?
이 장에서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것도 결국 여기에 귀착되어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