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옥
인제의대 상계백병원 내과
흔히 혈압은 120/80이 정상수치라고 한다. 혈압이 그보다 낮으면 위험한
것일까? 얼굴이 창백하고 기력이 없는 경우 저혈압이라며 걱정하는데 대부분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료를 하다보면 "다른 사람보다 혈압이 낮다는데 혹시 무슨 약이 없을까요?
저혈압이 고혈압보다 더 위험하다는데" 라고 걱정하시는 분을 자주 본다.
혈압치를 물어보면 위쪽 혈압(수축기혈압)은 100이나 90정도이고
아래쪽혈압(확장기혈압)은 70이나 60쯤 된다고 대답하기 일쑤이다.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상 혈압치는 윗쪽은 120, 아랫쪽은 80정도이며, 만일
자신의 혈압이 이보다 더 낮으면 혈압이 이렇게 낮아서 어떡하느냐고 깜짝
놀란다. 정말로 혈압은 반드시 120/80이어야만 정상일까? 그리고 혈압이 그보다
더 낮으면 위험할까?
흔히 쓰는 물을 생각해보자. 만일 가뭄이 들어 상수도관으로 공급되는 물의
양이 줄거나, 물을 뿜어 올리는 펌프가 고장이 나거나, 아니면 상수도관의
어딘가가 새서 물이 그곳으로 흘러 나간다면 물이 잘 나오지 않아서
필요한만큼의 물을 공급받지 못하게 된다. 물론 생활이 여간 불편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 물이 무조건 세게 나와야만 좋다고 할 수
있는가? 물을 세게 작동시키거나, 아니면 상수도관을 좁게 해야 한다. 그리고
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만도 아니다. 가급적이면 펌프를 지나치게
가동시키지 않고 생활에 편리한 정도의 물이 적절한 세기로 공급되는 것이
좋다고 할 수 있다.
혈압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혈압이란 피가 혈관벽에 가하게 되는 압력이다.
심장이 피를 온몸으로 짜보내는 힘과 혈관내의 피의 양과 혈관이 가지는
저항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적당한 정도의 혈압이 유지될 때 피는 혈관을
통하여 우리 몸 구석구석으로 전해질 수 있다. 이렇게 흘러 간 피가 간이나
신장, 뇌와 같은 각 조직이나 기관에 산소를 공급해 줌으로써 우리가 정상적인
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저혈압은 혈관벽에 가해지는 압력이 정상보다 떨어진 상태로 심장의 짜내는
힘이 떨어지거나, 혈관 속을 흐르는 피의 양이 줄거나, 아니면 혈관의 저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다. 저혈압상태가 되면 마치 수압이 정상 이하로
떨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은 적적량의 피를 공급받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각 조직이나 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산소가 모자라게 되어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심한 출혈이 있는 경우 혈압계로 측정되지 않을 정도로
혈압이 낮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가 정말 위험한 저혈압 상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저혈압은 그냥 단순히 혈압이 다소 낮은
샹태를 말한다. 혈압이 얼마나 떨어져야 저혈압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혈압은
같은 사람에서도 상황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동하는 것으로, 정상혈압의 범위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현재의 정상혈압 범위는 많은 사람들의 혈압을
측정하여 그 분포양상을 보고, 혈압수준에 따른 심혈관질환 사망률을 파악하여
결정한 것이다. 만약 혈압으로 인한 사망의 위험이 증가하지 않는 수준의
혈압이면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혈압치 하나만 가지고 비정상
여부를 말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는 저혈압은 사망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정말
문제가 되는 정도의 저혈압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심한 출혈로 생긴 저혈압
등 다른 뚜렷한 원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저혈압이다. 보통 어지럽다거나
얼굴이 창백한 경우, 기력이 없는 경우 등에서 혈압이 약간 낮으면
저혈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대부분은 스트레스나 과로 때문이며 이
정도의 저혈압은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더 위험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속설일 뿐이다.
오히려 만성저혈압의 경우 동맥경화의 진행속도가 늦어 평균수명이 10년 더
길다는 보고도 있으며, '어지러움', '팔다리 저림', '쇄약강' 등의 증상이
있으나 의학적으로 큰 문제는 없으며 적절한 운동으로 이겨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