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바다라고 주장하는 파도가 있다면 그는 미친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
영혼의 스승이라 불리우는 인도 태생의 종교적 사상가.
21세 때 얻은 깨달음으로 아쉬람을 열어
철학을 전파하고 있음. 주요 저서에 "죽음의 예술"
"영혼의 철학" "신비주의자의 노래" 등이 있음.
왜 나는 아직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그대가 여전히 행복을 좇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결코 추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하나의 부산물이며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만일 행복을
목표로 삼는다면 그대는 결코 행복을 얻지
못하고 항상 놓치고 말 것이다. 행복은 조용히 다가온다.
마치 휘파람처럼, 그대의 그림자처럼 살며시 다가오는
것이다. 그대가 어떤 것에 완전히 몰두하여 행복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을 때 행복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대가
행복을 생각할 때 행복은 그대 곁에 없다. 행복은 참으로
교만하다. 그대가
행복을 찾으려고 주위를 돌아보면 행복은 곧 사라져
버린다. 그대가 '나는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그대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법이다. 행복한 사람이 어떻게 행복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불행한 사람만이 불행에
대해 생각하고, 행복을 생각함으로써 그는 더욱
불행해지는 것이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작은 강아지가 자신의 꼬리를 뒤쫓고 있는 것을 본 어미
개가 강아지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네 꼬리를 쫓고 있니?"
그러자 강아지가 말했다. "나는 나 이전의 어떠한 개도
해결하지 못한 우주의 온갖 문제들을
해결했어요. 그래서 나는 개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행복은 바로 내
꼬리에 있음을 알았어요. 그래서 나는 내 꼬리를 뒤쫓고
있는 거예요. 내가 꼬리를 잡을 때, 나는
행복해질 거예요."
어미 개가 말했다. "나도 내 나름의 방법대로 우주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고, 몇 가지 견해를
갖게 되었단다. 나 역시 개에게는 행복이 좋은 것이며 그
행복은 내 꼬리에 있다고 판단했단다.
그러나 내가 내 자신의 일에 열중할 때, 그 꼬리는 자연히
나를 따라오기 때문에 그것을 뒤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단다."
이 늙은 개의 생각에 귀를 기울어라. 그대는 개가
행복할 때 꼬리를 흔드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따라서 개들은 자연히 행복이 꼬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개들은 꼬리를 쫓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 자신의 꼬리를 쫓을 수가 없다.
그대가 뛰면 꼬리도 따라서 뛴다. 그대가 더 높이
뛰면 꼬리는 더울 더 높이 뛴다. 그리고 결국 그대는 미쳐
버리고 말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아루프의 질문이다.
늙은 개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그대가 자신의 일에
열중할 때, 행복은 자연히 뒤따라올 거이다.
이 한 가지 사실만은 꼭 알아야 한다. 이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대가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라, 그것이 위대한 일인지 아닌지 생각지
말라. 방을 청소할 때는 완전히 거기에 몰두하고,
요리할 때는 거기에만 열중하며, 세탁을 할 때에도
세탁에만 몰두하라.
그대가 자신의 행동에 완전히 몰두할 때 에고는
사라진다. 그때는 에고가 존재할 공간이 모두
사라진다. 에고가 존재하자 않는 그 순간 바로 행복이
존재하는 것이다.
에고는 불행하며, 무에고는 행복이다. 에고는 그대가
분열될 때에만 존재한다. 그대가 조화로운
상태에 있을 때, 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춤을 출 때
그대가 춤 자체가 되어 버린다면 에고는
사라진다. 노래를 부를 때 그대가 노래 자체가 되어
버린다면 에고가 사라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을 때 그대가 무위 자체가 되어 버린다면
에고는 사라진다. 행동을 하든 하지 않든 한 가지만은
명심하라. 즉 그것이 무엇이든 거기에 몰두하라. 그대가
아침 산책을 나갈 때는 완전히
거기에 몰두하라. 그대 자신에 관한 모든 것, 행복에 관한
모든 것, 건강에 관한 모든 것, 대기 중의
산소, 모든 주의사항, 그대가 아침 산책의 아름다운
경험에 관해 읽었던 모든 것들, 그리고 그밖의
다른 모든 것들을 잊어 버리라. 그저 걷기만 하라, 그러면
어느날 갑자기 그대는 자신이 완전히 행복에
도달해 있고 행복이 그대를 초대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때 그대는 행복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고
그것이 자신의 곁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복과의
접촉은 끊어지고 그대의 행복은 사라지고 말 것 것이다.
그대가 들어올 때 행복은 사라지고 그대가 나갈 때 행복은
들어온다. 그대는 행복과 함께 있을 수 없다. 아루프와
행복은 결코 같은 방에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대 자신을 잃기 시작하라. 아루프, 그대는 너무도
열심히 행복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행복에 대해
생각해 왔음이 틀림없고,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계획했음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결코 행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대가 지나치게 행복을
추구한다면 그대에게 있어서 행복은 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만일 그대가 행복에 관한 것을 모두
잊는다면, 행복은 극히 자연스럽게 그대에게
다가올 것이다. 자의식은 결코 행복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대를 하늘처럼 광대하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그대에게 행복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러므로 행복의 기술은 망각의 기술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순간에도 거기에 대한--어떻게
망각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행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등에 대한--계획을 세우지 않도록
명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똑같은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결코 '어떻게'의 문제가
아니다. 그대는 단순히 그것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내일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당장 행하도록
하라. 아루프, 내 말을 들어라. 그대가 내 말을 듣는 바로
이 순간, 내 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려
하지 말라.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도 말라. 아무런 계획도
세우려 하지 말라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도
말라. 아무런 계획도 세우려 하지 말라. 그저 듣기만
하라. 나와 함께 있기만 하라. 그러면 그 순간
행복은 그대 곁에 있다. 그대가 아무런 자아도 없이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어떻게 행복을
놓칠 수가 있겠는가? 자신을 망각하고 조용히 뭔가에
몰두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다.
만일 그대가 내 말에, 나의 존재에 몰두할 수 없다면,
그대는 다른 어떤 것에도 몰두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내 말을 듣기만 하라.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라.
한 나이 많은 랍비가 사람들에게 "죽기 전에
회개하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랍비여, 우리는 우리가 죽는 날을 알지
못하나이다"하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 지금 당장 회개하라."
모른다고 해서 뒤로 미루지 말라. 내일, 아니 다음 순간
그대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대의 유일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그대가 가진
유일한 순간이며, 여기야말로 그대의 유일한 장소이다.
나는 그대에게 준비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도의 전체적인 메세지는 '그대는 이미 그 자체로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대가 이 순간을 즐기기
시작할 때, 행복은 그대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행복은
꼬리에 있기 때문에 항상 그대를 따라온다.
그대가 자신의 일에 몰두할 때, 꼬리는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다.
그대는 자녀의 삶에 대해 간섭하고, 그대의 아내의 삶에
대해 간섭하며, 남편과 형제와 친구와
연인의 삶을 간섭한다. 자신이 간섭을 함으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대는 그들을 불구로 만들고 있다. 그대의 간섭은
선인들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들은
그것을 참으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뱀에게 신발을 신기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대는 돕고 있고, 대단히 힘든 노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며 위대한 일, 뱀에게 신발을 신기는 일을
하고 있으며, '뱀이 신발 없이 어떻게 걸을 수 있는가?
길도 험하고 가시들도 많아 신발이 없어
걷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거야. 삶은 가시들로
가득 차 있으므로 뱀에게 신발을 신겨 뱀을
도와야 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대는 결국 뱀을
죽이고 말 것이다.
인간을 도우려는 모든 노력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만일 그대가
그대 자신을 개선하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개선시키려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의 질병이 다른
사람들을 계속 뒤덮는다. 그러나 그대가 자신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중단하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아무런 불평도 인색함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그대가 있는 그대로의 그대 자신을
사랑한다면, 모든 간섭은 사라진다.
그대가 몸이 아파서 의사를 부를 때 의사가 온다.
그런데 의사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대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의사는 그대에게 어떠한 약도 주지
않았다. 다만 그의 존재, 관심, 사랑만을 보여
주었을 뿐이다. 그는 그대의 이마를 짚어 보고 맥을 짚어
볼 뿐이다. 그런데 그대는 갑자기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고, 약도 주지 않았고, 진찰조차 하지
않았다. 그 의사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라면 그가 진찰을
하기도 전에 병의 50퍼센트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나머지 50퍼센트에 대해 그는 뭔가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이 인간을
치료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치료하는
주체는 항상 신이다. 인간은 다만 치유
에너지의 통로일 뿐이다. 인간의 치료가 유효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랑을 아는 사람들 서너 명이
서로 손을 잡고 환자 주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찬송을
한다면, 환자는 갑자기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사랑을 아는 이 사람들은 신의 도구, 도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된다.
그의 에너지는 항상 그의 내부에 있었다. 다만 그가 그
에너지와의 접촉을 상실했을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곧잘 다리를 주무르게
하시곤 했다. 그는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불러 다리를 주무르게 하셨다. 그분은 나이가 매우 많아
아무에게나 항상 "내 다리를 좀 주물러 주지
않겠니?"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네"하고 대답하고 다리를 주물러 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싫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왜, 무슨 일이 있니? 너는
곧잘 내 다리를 주물러 주지 않니? 내
다리를 너만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가끔
싫다고 대답하지?"
"내가 싫다고 대답할 때는 그것이 의무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책임일 때 나는 기꺼이
주물러 드려요."
"그 둘이 어떻게 다르지?" 할아버지께서 물으셨다.
"내가 사랑을 느낄 때, 할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싶을 때,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해요.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형식적인 것이라고 느낄 때,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한다고
느낄 때, 아이들이 밖에서 놀며 나를 부르고 있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여기에 없어요. 그때 나는
할아버지 곁에 있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마사지를 원할 때 이따금 싫다고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할아버지, 다리 주물러 드릴까요? 나는 지금
할아버지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싶어요. 허락해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하는 거예요."
그대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그대의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행하라. 결코 그대의 가슴을
억압하지 말라. 마음은 사회의 부산물이므로 결코 마음에
따라 행동하지 말라. 그것은 그대의 진실이
아니다. 그대의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움직이고
행하라. 결코 어떤 원리나 예절, 행동 페턴,
그리고 소위 말하는 공자의 '군자도'에 따라 행동하지
말라. 군자인 체하지 말라. 인간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또한 여자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따금 그대는
뭔가가 하고 싶어질 것이다. 하라! 거기에
그대의 가슴을 열어라. 그것은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이따금 그대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라. 그 점을 명백히
밝혀라. 결코 그것을 감출 필요는 없다.
왜 인간은 기존의 것에 집착하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가?
거기에는 당연한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는 기존의
것에 대해서는 효율적이며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서투르기 때문이다. 기존의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새로운 것을 대할 때
그대는 자신의 무지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기존의 것에 대해서는 그대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대는 뭔가를 계속 반복해 왔고, 이제 그것을
기계적으로 할 수 있어 어떠한 의식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 새로운 것을 대할 때 그대는 항상
주의하고 의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잘못되고
말 것이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운전을 처음 배울 때 그대는
매우 주의한다. 그러나 운전을 다 배우고 나면
그대는 주의를 게을리 한다. 노래를 부르고, 라디오를
듣고, 친구와 이야기하고, 온갖 잡념을 떠올리며
기계적으로 마치 로보트처럼 운전을 계속한다. 이제
그대는 필요하지 않다. 기존의 것은 기계적이 되고
습관이 된다.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움이 따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때문에 어린이들만이 쉽게
배울 수 있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그대는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늙은 개에게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낡은 기술들만을 계속 반복할
것이다.
나는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영어를 못하는 한 외교관이 미국 국회에 참석했다가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식당으로 가서
줄을 섰다. 그때 그는 앞에 있던 사람이 애플 파이와
커피를 주문하는 것을 듣고 자기도 애플 파이와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는 2주 내내 애플 파이와
커피만을 주문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다른
것을 주문하고 싶어 다른 사람이 햄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듣고 자기도 햄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햄 샌드위치." 그는 카운터 맨에게 주문했다.
"흰빵으로 할까요, 흑빵으로 할까요?" 카운터 맨이
물었다. "햄 샌드위치." 외교관은 반복해서
말했다.
"흰빵입니까, 흑빵입니까?"
"햄 샌드위치."
마침내 카운터 맨은 화가 나서 외교관의 코앞에 주먹을
들이대며 소리쳤다. "이것 봐요. 흰빵을 먹겠소?"
"그냥 애플 파이와 커피를 주시오." 외교관은 대답했다.
누가 그처럼 골치 아픈 일을 자청하겠는가? 새로운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존의 것에
집착한다. 그러나 기존의 것에만 집착한다면 그대는 전혀
삶을 영위한다고 할 수 없다. 그대는 다만
명목상으로만 살고 있을 뿐이다.
삶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만 가능하다.
삶은 신선해야 한다. 결코 아는 자가 되지 말고
언제까지나 배우는 자가 되라.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항상 열어 두도록 하라. 항상 무지하라. 축적된
지식을 던져 버리라. 자동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매일 그리고 매순간마다 그대가 알고 있는
것부터 벗어나 다시 어린애가 되도록 하라.
어린애처럼 순진해지는 것이 충만하게 사는 길이다.
나는 결코 학자도 아니고 학자들도 존경하지도 않는다.
언젠가 나는 E.Y.하버그의 아름다운 시를 읽고 있었다.
그 중 몇 귀절은 너무나도 감명 깊었다.
그 시의 일부를 명상해 보라.
시는 나와 같은 바보들이 짓지.
하지만 나무는 신만이 만들 수 있다네.
그리고 나무를 만드는 신만이
나와 같은 바보를 만든다네.
그러나 나와 같은 바보만이
나무를 만드는 신을 만들 수 있지.
나는 너무도 무식하다. 그러나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나는 내 자신을 개선할 어떠한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일 그대가 이따금 어색한 처지에
놓인다면,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브하그완은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이건 옳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대의 문제이다. 그대의 스승에게 헛점이
있을 때 그대는 약간 당혹감을 느끼고 그대의 에고가
상처받는다. 나에 관한 한 나는 실로 완벽하다.
그리고 나는 그대를 위해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것이고,
그대는 해답을 발견한다. 항상 뭔가를 고안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하라. 내가 많은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는데, 그대라고 왜 할 수 없겠는가? 그대는
내 말에서 어떤 비밀스러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늘 쉬운 일이다. 그대가 다른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없을 때, 항상 거기에 있는 은밀하고
신비스러운 의미를 발견하도록 노력하라. 이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한 멋쟁이 신사가 불쌍한 거지에게 5달러 짜리 지폐를
주며 말했다. "자 이걸 받아. 이 돈이면 배를
채우고 술도 한두 잔 할 수 있을 거야."
그러자 그 거지는 곧바로 토니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생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만찬을 먹고 포도주도 한 병 마신 뒤 웨이터인
루이지에게 팁까지 주었다.
"오, 정말 행복한 세상이야!" 멋쟁이 신사가 말했다.
"모두들 행복해. 불쌍한 거지는 배불리 먹었고,
토니는 매상을 올렸고, 웨이터는 팁을 받았으니까.
그러면 나는... 나도 행복해. 그 지폐는
위조지폐였으니까."
결국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다. 몇 장의 위조지폐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라.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지나치게 사실에 집착하지 말라. 사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허구일 뿐이다. 명심하라.
모든 것이 허구이다. 심지어는 여기에 있는 나와 그대의
존재마저도 엄청난 허구이다. 실제로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로지 진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발생한 것은 모두가 허구이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할 뿐이므로 역사도 마찬가지로 허구이다. 실제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신은 역사도,
전기물도 가지고 있지 않다. 신은 다만 존재 할 뿐이며
과거도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