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식
한국보훈병원 산부인과
결핵, 고혈압, 간질, 심장질환, 내분비질환 등 만성질환으로 약을 계속
복용하는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산부인과 레지던트로 있을때의 일이다. 분만예정일을 몇주 남겨놓지 않은
산모가 호흡곤란으로 급히 병원을 찾아왔다. 흉부 X선 사진을 보니 폐가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주 심한 결핵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핵에 걸려
약을 복용하던 중에 임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로부터
임신했을 때에는 약을 먹으면 안된다는 말을 듣고 의사와 상의도 없이 결핵약을
끊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임신한 산모의 경우에도 결핵에 걸려
있으면 결핵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결핵약이 태아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가능한 안전성이 입증된 약을
선택하여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결핵약을 복용하고 있는 사람은
결핵치료가 완료되기까지 임신을 하지 않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 산모는
임신중에는 무조건 약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잘못된 의학지식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결핵, 고혈압, 간질, 심장마비, 내분비질환 등 만성질환으로 약을
계속 복용하는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환자들은 매우 당황하게 된다. 복용하던 약물때문에 태아에게 기형
등의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임신중절을 해야되는 것은 아닌지, 태아를
위하여 먹고 있던 약을 끊으면 만성질환은 어떻게 될 것인지 등의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우선 담당의사와 상의하여 임신중절 또는 약물복용중단
또는 약물을 복용하면서 임신을 지속하는 것 중에서 선택을 하여야 한다. 물론
선택을 할 때에는 먹었던 약의 종류와 그약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 즉 약의
안전성과 임신 중 어느 시점에서 약을 복용하였는지를 종합하여 판단하게 된다.
임신한 줄을 모르고 무슨 약을 먹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임신중 심한 감기
증상으로 감기약을 먹었는데 괜찮을지 등의 문제로 상의하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에도 위에 언급한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판단하며, 대개의 경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임신중에 요로감염, 급성신우신염 등의 병에 잘 걸리게
된다. 그냥 내버려 두면 산모와 태아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약물을 포함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확실치 않은 이야기를 믿고 무조건 약물을 피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다. 덧붙여 임신인줄 모르고 감기약과 같은 약을 복용한 경우에 반드시
임신 중절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지나친 걱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고로 임신중 약물복용시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약물들을 5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A군은 확실하게 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약물, B군은
동물실험에서 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진행된 임상연구가 없는 약물, C군은 적절한 동물실험이나 임상연구 모두 없는
약물, D군은 태아에 위험이 있지만 위험보다도 약물사용이 가져다 주는 이익이
더 많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사용할 수 있는 약물, X군은 태아에게 미치는
해가 매우 커 어떤 경우도 약물사용이 이익이 되지 않는 약물군이다. A군이나
B군은 임신중에도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C 군 그리고 심지어는
D군조차도 특정상황에는 적절하게 사용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