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의 기사 중에는 청소년의 탈선을 심각한 문제로 다루고 있는 경우를 심심
찮게 볼 수 있다. 청소년의 탈선은 여러 가지 형태 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환각 작용
이 있는 약물복용이 심각하다. 환각 작용이 있는 약물을 복용할 때는 으레 술과 함께
복용한다는데, 그렇게 술과 함께 복용하면 효과가 훨씬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체내의 모든 대사기능을 저해하는 작용이 있다. 물론 체내 대사기능에는
약물을 무효화시키는 기능도 포함된다. 따라서 알코올이 이 기능을 저해시키는 상태에
서 약을 먹게 되면 약의 효과가 매우 강해지는 것이다.
특히 알코올에 의해 그 효과가 강해지는 약에는 아세트아미노펜 (해열 진통제), 디
아제팜(수면제), 메프로바메이트(정신 안정제), 톨부타마이드(혈당 강하제), 페니토인
(간질 치료제), 포수클로랄(마취제) 등이 있으며 기타 항히스타민제, 혈압 강하제, 현
기증 치료제, 혈관 수축제, 혈관 확장제, 항생제 등도 포함된다.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술과 수면제를 함께 사용하다가 영원히 잠들어 버리는 경우가
가끔씩 생기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일반적인 알코올의 영향과는 반대로 만성 알코올중독자의 경우는
약효가 없어지게 된다. 술을 매일 많이 마시는 술고래들은 소위 약발이 잘 안 받는다
(약의 효과가 잘 안 난다)든가 마취가 잘 안 된다든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데 그
말은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다. 즉 술을 매일 많이 마시면 술을 분해하기 위하여 대사
가 증가하게 되어, 그 대사기능이 약도 빨리 무효화시켜 버리므로 약의 효과가 없어져
버린다.
신체는 매우 정교한 화학 공장과도 같아서 밖에서 독물이 끊임없이 들어오면 그 독
물의 파수꾼인 간장이 단련되어 점점 커진다. 그래서 간장가능은 점점 발달하고, 윗배
도 점점 불러진다. 술꾼들이 스스로 배가 나온 것을 '술배' 라고 지칭하는 것도 일리
가 있는 말이 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아
왔다.
약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해열 진통제)을 사 먹은 환자가 달려와 서 "이 약국은 참
엉터리야. 약 먹어도 하나도 안 낫는다"라고 투정하면 약사는 일단 그 사람이 평소에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인지 의심해 본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약은 아세트아미노펜뿐 아니라 신경 안정제 같은 종류도 마찬가
지이며 아이나(결핵약)와 쿠마린(혈액응고 방지제) 그리고 페니토인 (전간 치료제)의
효과도 없어진다.
이렇게 술이 약에 미치는 영향과는 대조적으로 약이 술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경우
도 있다. 항생제 편에서 언급할 세펨계 항생제 중 주사약의 일부는 체내에 들어가서
알코올의 대사를 억제시켜 취기(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토하게 되며 숨이 차는 등의 현상)를 강하게 해 준다.
또한 '시안아마이드'라고 하는 약은 알코올을 혈액 중에 축적시키는 작용을 한다.
물론 소위 '술 끊는 약'이라고 알려진 디설피람 (상품명: 알코올스톱, 알코올빙)을 복
용하고 술을 마시면 이들과 유사한 작용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이상과 같은 위험이
있기 때문에 술을 먹고 약을 먹어서도 안 되고 또한 약을 먹고 술을 먹어서도 안 된다
는 사실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물론 한약 중에는 간혹 술과 함께 복용하는 것이 좋다는 처방의 약도 있기는 하다.
그러한 처방이 만들어진 것은 이미 천 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 당시에 술과 약과의
화학적 작용을 알았을 리 없으며 경험적으로 그러한 처방의 효과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 이럴 때는 물론 소량의 술로 제한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