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쑥덕쑥덕....
왈자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동네 꼬마들이 모여
서 뭔가를 귓속말로 주고받다가 지나가던 왈자를 힐끔 쳐다보며 킥킥거렸
어요.
이상한 낌새를 챈 왈자는 아이들의 얘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어요.
"킥킥.... 저기 왈자 누나 있잖아. 오늘 왜 학교에서 늦게 오는 줄 아니?"
"아니, 몰라...."
"아까 심술이 형이 그러는데 .... 수학 시험에서 빵점 맞은 벌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오는 거래."
왈자는 못 들은 척하고 그냥 지나쳤어요. 사실은 새 학기를 맞아 선생님
과 교실을 꾸미느라 늦었던 거예요.
'심술이 녀석이 또 나한테 괜한 심술을 부리는구나. 어디 만나기만 해
봐라!'
때마침 왈자는 오락실에서 막 나오고 있던 심술이와 마주쳤어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왈자는 심술이를 잔뜩 노려보았어요.
"어! 와...왈자야, 지금 오니? 나 그만 가...갈게."
심술이는 왈자의 눈길을 피하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쳤어요.
"심술이, 너 각오해! 그냥 안 둘 거야."
"그게 말야.... 에라 이럴 때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다."
심술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까지 도망쳐 버렸어요.
"야, 너 거기 서지 못해!"
'삼십육계'는 <육도>라는 병법책에 나오는 말이에요. 군사를 이끌고 싸
움을 할 깨의 36가지 계략을 말하죠. 그 중 마지막인 36번째는 상대방이
너무 강할 때는 달아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쓰여 있어요.
제나라의 장수 왕경칙이 군사를 일으켜 도성으로 쳐들어갔어요. 임금의
눈밖에 나자 선수를 쳐 반란을 일으킨 거지요. 그가 진격하는 도중 임금의
군사들이 퍼뜨린 소식을 들어 보니 왕경칙이 도망치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
어요. 이에 왕경칙은 코웃음을 치며 소리쳤어요.
"단도제 장군은 갖은 계략 중에서 삼십육계 줄행랑을 으뜸으로 삼았다더
군. 네놈들이야말로 달아나는 게 상책일 것이다!"
단도제는 송나라의 명장으로 싸울 때 늘 도망치면서도 번번히 승리를 거
뒀기 때문에 '단공 삼십육계'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어요.
그러나 자신만만해하던 왕경칙은 임금의 군사들로부터 역습을 받아 크게
패하고 말았어요. 그 후 삼십육계 줄행랑이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
로 전해지면서 후세까지 이어졌지요.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면 비겁한 행동으로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도
망치는 게 무조건 비겁한 건 아니지요. 일단 위험을 피했다가 힘을 기른
다음에 싸우는 것도 한 전략이 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