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은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는 소홀한 채 술과 놀이만 일삼던 임금이
었어요.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자 나라는 점점 어지러워졌어요.
"허어, 왕께서 허구한 날 술과 계집의 치마폭에서 헤어날 줄을 모르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오."
"그러게 말이오. 옳은 말을 하는 신하는 멀리하고 간신들의 아첨에만 귀
를 기울이니.... 원, 참."
"뜻 맞는 사람끼리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임금을 몰아 내든
지 해야지, 원."
"쉿! 누가 듣겠소. 자, 사람들 눈을 피해 조용한 데서 얘기합시다!"
연산군의 그런 행동을 보다못한 몇몇 신하들이 비밀리에 일을 꾸미기 시
작했어요. 그들은 성희안, 박원종 등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나라를 바로잡
고자 뜻을 모았어요.
"오늘 밤 모두들 박원종의 집으로 모이시오. 마지막으로 내일 할 일을
점검해 보아야겠소."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다 모이자 성희안은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자 각자 어떤 일을 맡았으며, 준비에 차질은 없는지 돌아가면서 말해
보시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어요. 모두 다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오직
구석에 앉은 한 사람만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하지만 달빛
도 없는데다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촛불도 켜지 않은 터라, 그가 누
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어요.
성희안은 가만히 모인 사람들을 세어보았어요. 놀랍게도 모이기로 한 사
람보다 한 명이 더 많았어요.
"박 대감, 엄탐꾼이 들어와 있소."
박원종도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염탐꾼이 있다면 내일 벌이기
로 한 큰 일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 모인 사람들도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염탐꾼은 보이지 않았어요.
"성 대감, 대체 누굴 보고 그러시오?"
성희안은 말없이 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성희안이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던 박원종은 껄껄 웃었어요.
"하하하! 성 대감, 그건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내일 큰 일을 위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요."
정말 자세히 보니 보릿자루였어요. 그런데 거기에 누군가 갓과 도포를
벗어 놓아 영락없이 사람으로 보였던 거지요.
"허허, 내가 너무 긴장했나 보군. 꿔다놓은 보릿자루를 사람으로 착각하
다니...!"
그 뒤로 어떤 자리에서 있는 둥 없는 둥 말없이 그저 듣고만 있는 사람
을 가리켜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