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윤미
단국의대 가정의학과
가난병이라는 결핵을 치유해 온 것은 무엇인가? 돈없고 집없는 사람들이
잘먹고 푹 쉬었기 때문일까? 결핵치료제 없는 요양생활은 과연 올바른
방법일까?
결핵에 걸린 환자가 매우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도 진료실에서 결핵환자를
보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처음 결핵에 걸린 것이
아니라 얼마전에 결핵으로 진단받은 적이 있는데도 치료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내다가 여러가지 견디기 힘든 증상이 생겨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결핵의 심각성과 치료가능성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약처방을 받아
며칠 정도는 약을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약용량이 많아 한번에 다 먹으려면
힘이 들고, 자꾸 잊어버리기도 하고, 또 약을 먹다보니 소화도 잘 안되고 속도
불편하여 푹 쉬고 잘 먹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에 약 먹는 것을 중단하고
지내다가 자꾸만 몸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 다시 병원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푹 쉬고 잘 먹는 것이 약물치료보다 더 좋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 개인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우리사회에서 결핵이
사라지지 않고 주요질병 중의 하나로 꼽히는 데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원시인의 유골에서도 결핵을 앓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결핵의 역사는
매우 길며 그 긴 기간 동안 인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1950년대에
항결핵 화학치료를 실시하게 되면서 거의 불치의 병처럼 생각되던 결핵이
치료되기 시작하였고 열심히 결핵치료를 해온 나라들에서는 결핵의 발생이
줄어들었다. 얼마 전만 해도 '결핵왕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결핵이 심각한
문제였던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 비하면 결핵감염율이 현저히 줄어들어서
1965년에는 30세 미만 인구의 44.5p가 결핵에 감염되어 있었는데 1990년에는
27.3p로 감소하였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전반적인 영양상태나 주거환경등이
좋아지면서 결핵균에 대한 저항력도 증가하고, 결핵균의 전파가 과거에 비해
어려워졌고, 또 국가가 주도가 되어 결핵관리를 열심히 했던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결핵감소에 있어서 결핵치료제의 도입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없다고 생각된다.
전에는 결핵에 걸리면 푹 쉬게 하는 것이 결핵의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실제로 환자에게 그렇게 권유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약물치료와 동반되어서 권유된 것이고 그나마 최근의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쉰다는 것은 결핵치료에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영양섭취를 잘
하는 것도 결핵치유를 촉진시킨다고 생각되었으나 지금은 그것이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저항력을 떨어뜨리지 않을 정도로 적절한 정도의 영양만 취하면
된다고 한다.
해방이후나 6. 25 전쟁후와 같이 이렇다 할 약제가 없었을 뿐 아니라
먹을것이 부족하고 좁은 공간 속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지내던 시절에는 결핵이
매우 기승을 부렸다. 그리고 그 때는 잘 먹고 일을 덜하는 부유층보다는 잘
못먹고 노동일을 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결핵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결핵에는 잘먹고 푹 쉬는 것이 최고의 치료라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불변의 진리처럼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결핵을 퇴치시킬 수 있는
좋은 항결핵제들이 있고,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많이 좋아졌다. 오늘날
결핵치료의 요제는 꾸준히 완치가 될 때까지 항결핵약제를 열심히 먹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