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홍관
인제의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많은 사람들이 감기에는 먹는 약보다 주사가 더욱 약효가 있다고 믿는다.
사실 주사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치료제가 없는 감기,
주사라고 잘 고칠리가 있을까?
며칠 전에 30대 중반의 남자 환자가 찾아왔다. 기침을 하고 콧물이 나고
두통이 있으니 감기인 것 같다고 하였다. 진찰결과는 역시 단순한 감기였다.
환자 기록지를 보니 지난 봄에도 비슷한 증상으로 약을 먹은 적이 있었다.
나는 같은 약으로 3일분의 처방을 하였다. 그랬더니 약은 필요없고 즉방으로
듣는 주사로 감기를 끝내달라고 주문하였다.
다들 알다시피 감기에는 특효약이 없다. 왜냐하면 감기는 바이러스가
일으키는데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가 있는 것과는 달리 바이러스를 죽이는 약이
개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분들은 그럼 의사가
쓰는 약들은 어떤 약들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의사들이 사용하는
약들은 증상을 좋게 하는 약들뿐이다. 즉 콧물이 나지 않게 하거나, 두통을
가라앉게 하거나, 가래를 삭히는 약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증상을 좋게
한다고 해서 감기가 낫는 것은 아니다. 감기의 치료는 스스로의 저항력에
의해서 감기의 바이러스를 스스로 이겨야 하는 것이다.
이 환자에게 담배를 피우느냐고 물어보니까 하루에 약 1갑 정도 피우는데
요즘 반갑 정도로 줄이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정중하게 설명하였다. "감기는
사실 치료약이 없고 오로지 휴식과 영양섭취를 통해서 스스로의 저항력을
키워서 치료합니다. 그리고 담배는 절대 피워서도 안되고 다른 사람이 피우는
연기도 피하는게 좋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감기의 치료는 의사가 약이나
주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 스스로 하는 것이고 의사는 혹시 폐렴을
비롯한 다른 나쁜 병이 없는지 진찰해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주사에 대해서 마술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치료제
자체가 아예 없는 감기를 주사로 치료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의사가 주사약을 사용하는 이유는 먹는 약보다 흡수가 빠르고, 먹는
약이 개발되지 않은 경우들이다. 그러나 감기약으로 주사제를 사용하는 경우는
대개 진통소염제를 사용하거나 항생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진통소염제를 사용하면 감기로 인한 두통이나 몸살기운이 약간은 가라앉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감기를 치료할 수는 없으며 이 정도의 효과는 먹는
약으로도 얻을 수 있다.
선생님이 감기약이 잘 듣는다고 칭찬하는 소리를 들을 때는 피식 웃으면서
다행입니다 하고 끝내면 그만이지만 감기약이 잘 듣지 않는다고 항의할 때는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라서 곤혹스럽다. 더구나 감기는 주사를 맞아야 단번에
듣는다고 주사를 요구하는 환자들이나 스스로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음껏
마시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엔돌핀같은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라 감기에 관한 간단한 상식부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