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진
국립의료원 소아과
약을 먹으니 감기가 뚝 떨어졌다. 약이 감기 바이러스를 모두 죽여버린
것일까? 잘 듣는 감기약과 잘 안듣는 감기약이 따로 있는 것일까 약과 감기의
상관관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소아과에서 기침, 콧물, 열 때문에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다. 병원을
찾는 이유는 물론 병을 빨리 낫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약을 준 날부터 증세가
좋아지면 다음에는 다른 환자들까지 몰고 오는 적극적인 보호자들도 종종
경험하게 되고, 반대로 다른 의사선생님이 주는 약은 빨리 낫는데 선생님이
주는 약은 먹어도 차도가 없다 라고 불만을 말하면서 전에 효과를 보았던 다른
선생님의 처방대로만 지어 달라고 할 때는 기분이 씁쓸해진 수밖에 없다.
약을 써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원인을
제거하는 치료와 증세를 완화시키는 치료다.
현재까지 약으로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병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약이나
주사로 치료한다고 할 때 대부분 항생제를 생각한다. 세균성감염이 있을 때
적절한 항생제를 사용하면 증세가 바로 좋아지고 아픈 기간이 현저히
단축된다. 그러나 바이러스감염이 원인인 감기는 아직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여러가지 약을 사용한다고 해도 아픈 기간을 줄이지는 못한다. 다만
기침이 심하면 기침을 덜하게 하는 약을 사용하고 열이 나면 해열제를 쓰고
코가 막히거나 콧물이 많이 나면, 이에 대한 약을 사용함으로써 불편한 증세를
줄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병이 심해지거나
합병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증세가 심해질 뿐이다. 항생제를 사용하면
감기의 합병증(즉 중이염, 부비동염, 폐렴 등)을 줄일 것이라는 가정하에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아직은 별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결론이 나 있다.
병이 걸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은 대부분 병에 대한 우리 몸의 방어작용이다,
기침을 한다는 것은 염증 때문에 기관지에 자꾸 만들어지는 가래를 뱉어내는
보호작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침을 할 때 약을 먹는 것이 좋을 것인지는
판단이 필요하다. 기침을 한다고 무조건 기침약을 먹이는 것이 좋지는 않다는
말이다. 뱉어내야 할 가래를 기관지에 그대로 갖고 있으면 그것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침이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정도와 기침을 억제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를 저울질해서 결정해야 된다.
감기증세가 있을 때 약을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의학적인 것보다는
개인적인 기호가 더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약을 먹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는냐도 딱부러진 기준이 없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약을 먹어야
빨리 낫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증세를 완화시킬 뿐이다. 물론 합병증이
생겼을 때는 이에 대한 치료로 앓는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감기 후에
폐렴이 합병증으로 생기면 기침도 오래 하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기침을 오래하도록 그냥 내버려두면 폐렴이 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물론
감기라고 생각하는 증세가 오래가고 심한 경우는 진찰을 받아 보아야 한다.
감기의 합병증이 생겼는지 여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증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감기와 비슷할지라도 치료가 필요한 다른 병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찰결과 병의 종류에 따라 원인을 해결하는 치료를 하게
되거나 증세를 완화시키는 치료를 하게 되고, 약이 꼭 필요 없으면 약을 먹지
말고 두고 보자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기침을 해서 병원을 찾아왔을 때는 증세가
고통스러운 증세를 해결하려고 시간과 돈을 내서 병원을 오는 것인데, 아무
약도 안주고 괜찮다고 그냥 빈 손으로 나오게 될 때, 약을 먹을 정도가
아니니까 안심하게 되는 것보다는 무언가 제대로 치료를 안해주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 합병증이 생겨 고생을 하게 되면
어떤 설명도 약을 미리 안 먹어서 이 고생을 하게 되었다는 오해를 풀어 줄
방법이 없다. 이런 일을 겪게 되면 의학적인 판단보다는 환자가 원하는 대로
약을 지어주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