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운
성동주민의원
피섞인 가래는 폐결핵의 전매상표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 때문에 이같은
경우가 발생하면 대부분 심각한 폐결핵환자로 오해하게 된다. 단순히 코피가
섞인 가래일 수도 있는데...
아픈 사람이 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았을 때 병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좋아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실제로 꼭 그렇지는 않다. 머리 속에 큰
병을 그리고 있던 환자들 중 일부는 크게 다행하다고 느끼지만, 일부는 오진을
떠올리며 더 큰 근심에 휩싸여 제2, 제3의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한다.
일전에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온다는 젊은 남자분이 진료를 받으러 왔다.
세상의 온갖 번뇌를 혼자 싸앉고 있는 듯한 표정의 그는 진찰실로 들어서자마자
가슴 x선을 찍으러 왔다고 했다. 이리 저리 물어보아도 가래에 피가 나오니
x선을 찍어 달라는 말뿐 묻고 대답하는 것이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환자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일단 가슴x선을 찍어보니 정상이었다. 그러자 환자는
실망스런 표정으로 이미 보건소와 병원 등 세군데를 다니며 검사를 했는데
결핵이라는 진단이 나오지 않는다며 이제는 큰 대학병원에 가 보아야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결핵에 걸렸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환자와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물론 초기 기관지결핵의 경우에 가슴사진에 안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결핵은 가슴사진에서 확인을 할 수 있고,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경우가 결핵외에도 많이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평소 과중한 업무로 만성적인 피로감을
느끼던 차에 코피가 났고 다음날 가래를 뱉는데 피가 섞였던 것이었다. 설명을
듣고 진료실을 나서는 그는 계면쩍어 했으나 얼굴표정만은 밝았다.
많은 사람들이 가래에 피가 섞이면 제일 먼저 폐결핵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가래에 피가 나올 때 가장 흔한 원인은 기관지확장증, 기관지염 등의
기관지질환이고, 폐암도 제법 흔하며 심장병에서도 올 수 있다. 이 밖에도
폐전색증 등 몇몇 드문 질환에서도 피가래가 나올 수 있고, 목감기가 심할
때에도 피가 나오는 수가 있으므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아직도 폐결핵이 많고 폐암도 증가하는 추세이므로 가래에 피가 섞일
때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사에게 본인이 느끼는 이상을
충분히 설명하여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폐질환이 주요
원인이 대기오염과 흡연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여 원인을 없애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