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조선 시대 때 섬나라 일본은 호시 탐탐('주역'에 나오는 말로 범이
눈을 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 우리 나라를 노리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선조 임금 때 드디어 전쟁을 일으켰어요. 임진왜란이 일어난
거지요. 우리 군사와 의병들은 있는 힘을 다해 싸웠어요. 하지만 신식 무기
인 조총을 앞세운 왜군을 당할 수는 없었지요.
이윽고 왜군이 한양 근처까지 밀고 올라왔어요. 선조 임금은 하는 수 없
이 피난길에 올랐어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급작스레 떠난 길이라 피난처
에서의 생활은 형편없었어요. 잠자리는 물론이고 음식도 초라하기 짝이 없
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백성이 생선 꾸러미를 들고 임금이 계시는 곳으로
찾아왔어요.
"상감마마께옵서 이런 생선을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신하들은 크게 기뻐하며 그 생선을 요리해서 임금께 바쳤어요. 오랜만에
고기 맛을 본 선조 임금은 생선의 담백한 맛에 홀딱 반했어요.
"음...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생선은 처음이구나. 도대체 이게 무슨 생선
이냐?"
신하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임금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
했어요.
"상감마마, 그것은 어떤 백성이 가져온 건데 저희도 처음 보는 생선이옵
니다."
"오, 그런 충성스런 백성이 있었다니! 짐이 그 백성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구나."
이윽고 생선을 바친 백성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달려왔어요.
"음, 네 덕분에 별미를 맛보았구나. 그런데 그 생선의 이름이 무엇인고?"
"예, 묵이라고 하옵니다."
"허어, 맛에 비해 이름이 보잘것 없구나."
선조 임금은 한동안 생선을 살피더니 무릎을 탁 쳤어요.
"옳지, 고기의 배 쪽이 은백색으로 빛나는 것이 아주 고귀해 보이니 앞
으로는 은어라고 부르도록 하여라."
드디어 임진왜란이 끝났어요.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과 같은 훌륭한 장수
들이 목숨을 걸고 왜군을 물리쳤기 때문이지요. 다시 궁궐로 돌아 온 임금
은 어느 날 피난길에 먹었던 맛있는 물고기가 생각났어요.
"여봐라, 오늘 저녁에는 은어 요리가 먹고 싶구나."
그런데 상에 올라온 은어를 맛보던 선조 임금은 얼굴을 찌푸렸어요. 예
전의 그 담백한 맛이 온데간데없어진 거지요.
"이런 맛이 형편없구나. 은어가 이렇게 맛 없는 고기였다니... 도로 묵이
라 불러라."
이래서 묵이라는 고기는 '도로묵'이 되었다가 나중에 '도루묵'으로 바뀌었
어요. 흔히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처음 상태로 되돌아갔을 때 '말짱 도
루묵이다.'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말이지요.